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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또 다른 아픔
山子   Hit : 4032 , Vote : 211        [2008/06/02]





   [장선자, 연길시 텔리비죤방송국 신문부 편집, 기자]


   대학때, 반에 어떤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체구가 말랐으며 언청이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어릴때 수술했었는지 수술자리가 뚜렷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첨엔 같은 연변친구라 남다른 친근함을 느꼈지만 날이 감에 따라 그렇게 조금씩 싫어지던군요.
수업시간에  과자 가득 물구 우물거리는 입이 싫었습니다...누군들 아침 제대로 챙겨먹고 다니겠습니까?

   여자애들한테서도 꺼리낌없이 간식을 받아 먹는 쪼졸함이 너무 초라해보였습니다.

   제 친구말대로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아먹는 행위가' 여자애들의 신경을 건드렸나 봅니다.
하여튼 그 애는 여자애들가운데서 인기가 별로였습니다.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인기를 배신한거였습니다.

   그 애가 그렇게 고독해하더군요...이 사실은 오늘에 와서 그애의 블로그를 보고 알았습니다. 고중때 짝사랑하던 여자애를 위해 써놓은 글이 있는데 모르게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어제 밤 12시경이라고 시간이 밝혀있었습니다.
 
   한장 두장 펼치니 여자애를 위한 글들이 꼬박 메인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성이 하나 있는데 한창 든든한 벽돌로 나만의 즐거운 성을 쌓는다고...그안에 공주가 바로 너라고."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열손가락으로 행복한 노래를 연주하고싶었으나 내겐 두손이 없었고, 목소리로 행복한 률동을 노래하고싶었으나 성대가 없었고, 화려한 편장을 연출하고싶었지만 이때의 행복은 이미 나에게 속하지 않았다.' 하며 '乞跪幸福的来临,留下两抹殷红'로 잔잔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보인 그애...

   정말 몰랐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기만 한 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가 하는 이룰수 없는 꿈을 지녔기에 너무나 큰 아픔이 되였던 사랑이 아닐가 생각하지만 정말 어떤 말도 남길수 없었습니다. 6년이 넘게 진행된...것도 갈수록 아파오기만 하는 사랑을 하는 그 애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가요?

   그 앤 입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 못찾고 운남성 어느 초중선생님이 되여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빨간 얼굴의 시골애들이 옆에서 찬란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그속에 그 애의 야윈 얼굴이 보이더군요..

   너무나 사랑을 갖고 싶어서 사랑을 미치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한때 제  주위에 있었습니다.



청설   - 2008/06/02 10:46:22  
장선자님 재미 있는 이야기 읽었습니다.
이럴 때는 말이 필요없는 사랑인것 같습니다.
사 랑은 고통을 수반하며 사랑은 기쁨과 동시에 고통도 같이 느끼는 것은 옳은 말씀인것 같습니다.
서국화   - 2008/06/02 10:48:52  
사랑하면서..사랑의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슬픔..
사랑하면서..나보다 더 좋은 사람한테 보내야 하는 슬픔..
사랑하면서..내 모든것 다 주어도 이 마음 몰라주는 슬픔..

하지만..그땐 몰랐어요.
사랑이 아름다운줄 알았는데..어떤 사람들한텐 이렇게 큰 아픔인줄..

님의 글 잘 보구 갑니다.
청설   - 2008/06/02 10:50:28  
그것은 마치도 강한 빛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듯이,
큰 사랑에는 큰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지 않을가는 것과 같은 도리일지도.
너무 사랑하면, 보고 있는 사이에도 슬픔이 깃드는 것이랍니다.

마음의 소리   - 2008/06/02 10:51:33  
山子님 반갑습니다.
사랑이란 또 다른 아픔, 마음이 아픔니다.
외모의 결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
어쩌면 그러한 외모가 자신을 그러한 성격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항상 구석진 곳에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山子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드릴게요.
청설   - 2008/06/02 10:52:21  
이를테면, 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면 어떻게하나하는 슬픔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마냥 행복한것만 아니고 그렇게 아프기도 한게 바로 사랑이 아닐지. 그래서 진짜 사랑에는 기쁨 속에 슬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초승달   - 2008/06/02 10:56:48  
여자가 한 남자를 진하게 사랑한다.
존재가 크다. 부재의 빈공간도 클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기쁨과 동시에 사랑의 아픔을 느낀다.
결국 사랑은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이 싫어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처이다.
상처때문에 사랑을 거부하는 병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픔이 큰 것은 사랑이 큰 것이다.

山子   - 2008/06/02 11:05:36  
청설 님 :"너무 사랑하면, 보고 있는 사이에도 슬픔이 깃드는 것이랍니다" 동감입니다. 사랑에 대해 여러가지로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구요...
서국화 님: "사랑하면서..사랑의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슬픔.." 그 남자애가 빠진 슬픔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의 소리 님 :"항상 구석진 곳에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랑" 그 남자애가 빠진 사랑입니다. 제게 처음으로 추천을 주신 마음의 소리 님 감사합니다.
님들의 관심에 더 좋은 글 써내도록 힘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碧雲   - 2008/06/02 11:13:49  
장선자님 글 읽다가..
예전에 누가 사랑이 뭐냐고 묻길래.. 사랑은 아픈거라고 했더니.. 상처가 많은가봐요! 그러더라고요..
난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닌데.. ^^
제게 참 감사한 글이예요^^ 너무 고마워요..^^
주성호   - 2008/06/02 11:36:38  
개인적으로 한편의 수필 편폭이 이글의 길이가 적격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청춘들이 사랑 때문에 더이상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하던 딸애가 웃고 들어오는 날이 적어지고 요즘은 매일같이
지짜고 울고불고 다투다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점점 깊어질수록 마음 아픈 것이 사랑인가고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lili   - 2008/06/02 12:37:56  
이글을 보니 저의 조카가 생각납니다.
소학시절 그애의 생김생이가 정말로 못났었읍니다. 퉁퉁한 얼굴에 쬐꼬마한 눈, 게다가 외모땜에 생겨난것인지, 늘 뭐가 심사에 안맞는것처럼 입이 뿌루퉁해서 퉁명스럽게 말하곤 해서... 공부성적은 좋았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지요.

여자애 열몇번 변한다고, 지금 고중에 다니는 걔의 모습은 어느새 너무 이쁘게 변해있는거 아니겠읍니까.... 어릴적 얼굴 그 얼굴인데, 뭣땜에 이렇게 이뻐보일가... 그게 바로 웃음이였답니다. 뿌루퉁하던 얼굴이 웃으니 환하게 복스럽게 변한거지요.

한사람의 이쁜 모습은 결코 생김생이에서 오는것 아니라고 마음가짐에서 오지요.
님의 글속의 그 친구도 이런걸 좀더 일찍 깨쳤더라면 친구도 많았고 이쁜 사랑도 듬뿍 받았을거라 생각 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김경희   - 2008/06/02 13:58:36  
마음속에 기쁨으로 요동쳣을 설레임
그 마음을 알리수 없었던 안타까움
사랑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하는것죠...
잘 읽고 갑니다....
박향연   - 2008/06/02 14:37:57  
아~~저기 방명록에 있었던 그 분이시네요...
사랑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요..
글을 읽으면서 좀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구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할꼐요~~
수희   - 2008/06/02 23:18:32  
"사랑이란 또다른 아픔" 잘 읽고 갑니다.
추억할 아픔이 간직된 사랑이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시은   - 2008/06/03 03:09:27  
사랑이란 또 다른 아픔,, 그 아픔마저 사랑하는것이 진정 사랑...?
그렇다면 아픔이란 실은 역시 사랑...
님께서 이쁜 사랑 하시길 바랄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아미산월   - 2008/06/03 10:13:53  
장선자님,
연길시 텔리비죤방송국 신문부 편집 기자이시라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10여년 전인가요,<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에 내 시가 2편 발표된 적 있거든요.
그걸 소중히 간직하고 있지요.
지난 여름 연길 갔을 때는 연변텔레베젼의 유명한 촬영장소라는 식당에 가서
김계월아나운서와 프로듀서님과 점심을 함께 먹은 적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연변텔레비젼방송국도 있고 라디오방송국은 따로 있던데요
나는 연변라디오방송국 옆 골목에 숙소를 정하고 있었지요.
반갑습니다. 연길은 아마 6월 23일 후 가서 여러 곳 갈 예정입니다.
허미옥   - 2008/06/03 16:34:45  
가슴아픈 짝사랑 내 피부에 와 닿는 듯 싶습니다.산자님은 이런 아픈 사랑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그리고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합니다.
山子   - 2008/06/03 17:05:19  
아미산월선생님의 시를 정말 좋아하고 있습니다. 저도 시쓰기를 좋아하는데 제 시가 너무 부끄러워서 가르침을 받자고 청구를 못들만큼 제게 그런 존재이십니다. 많이 보고 쓰도록 해서 언젠가 선생님앞에 가르침을 달라고 자신있는 시를 써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연길텔레비죤방송국에 있습니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과 다른 곳에 말입니다. 선생님이 6월말에 연길로 오신다니 정말로 반갑습니다. 여러모로 가르침을 받고싶습니다.
山子   - 2008/06/03 17:07:12  
허미옥 님 과찬이십니다. 허미옥 님의 글도 보고싶습니다.
이목월   - 2008/06/03 18:34:26  
가볍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읽고나서 무언가 아쉬움이 몰려오는듯 합니다.
좋은사랑을 이루기에는 너무 힘들어 글에 기대에 숨쉬어보는것도 괜찮을듯 합니다.
좋은글입니다. ^^
아미산월   - 2008/06/04 02:09:58  
山子님, 글 참 조리있게 잘 쓰시네요.
솔직히 나는 산문을 잘 보지 않거든요. 장춘의 박향연양이
디리 밑에서 주어온 줄 알았더니 집이 연길 부근이라 하더군요.
바로, 박향연양이 나를 니카에서 <산월(山月)>이라 부르더군요.
글고 보니 山子님이 더 의미있는 마크 같네요.
나도 山月이라 할까 봅니다.
아미산월   - 2008/06/04 02:14:17  
솔직히 말해, 니카에 들어와서는 처음으로 읽은 山子님 수필입니다.
아주 담담한 문체,그러면서 논리정연한 서술이 미사어구 없이
설득력을 주며 가슴에 절로 와 닿네요. 사실은 시나 수필이나 별 거 아닌 거죠.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별 거가 되게 하는거지요.
그게 문필의 힘이라 봅니다. 내가 전혀 모르고 내가 함께 경험해 보지 않은 데도
그때 그정황들이 훤히 눈에 선하게 비쳐오거든요.
시도 그래야 하거든요. 그게 감동의 전달이지요.
山月   - 2008/06/04 02:23:00  
山子님, 또 보여주세요.
산문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요, 한국 대구에도 수필가가 많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수필을 쓰지만(니카에서 대구 수필가 두분이 들어와 있음)
산문 읽을라치면 머리가 아퍼요, 빨리 안 끝나고 기니까요.
시는 아무리 길어도 한번 눈으로 훓으면 직감적으로 다 알아버리거든요.
사실 시는 읽는게 아니라 눈으로 훓어버리면 끝이어요
山子님의 수필을 보고
수필에 재미를 가진 것 같네요.
또, 보여주세요. 위의 수필은 재미도 재미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복합적으로 묻어나고 잘못된 버릇이라는 것도 은근히 보여주면서
그게 인생에서 크나큰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시사해 주고요
그렇다고 그 사람을 나쁘다고 단정 지어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정활들 속에서 느끼게 하는 필치가 아주 돋보입니다.
니카에 들어와서 처음 읽은 글인데..............
山月   - 2008/06/04 02:30:06  
山子님, 오해는 마세요.
수필을 전혀 안 읽는 건 아니고 골라 읽지요.
수필가의 수필은 잘 안 읽고 시인이나 소설가 평론가들 산문은 잘 놓치지 않지요.
내게도 큰 공부가 되니까요. 내 견해로는 한국에서는
문정희시인이 산문을 잘 써요, 남자다워 직격탄도 잘 날리고....
연길에서 어느 여성이 <나는 마흔에도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라는
신달자시인 산문집 부탁해 와서 구해서 지금 옆에 놔두고 있어요.
읽어보지는 안았지만(읽어볼 시간도 잘 안나지만요)

또, 또, 그곳 재미있는 인생담 없나요?
山月   - 2008/06/04 02:37:10  
山子님,
한국에서는 산문 문장력이 가장 뛰어난 문인으로는 정비석을 뽑아요
물론, 피천득이 가장 이름난 수필가이요
미당 서정주시인도 산문을 찰지게 잘 쓰지요.
문장을 해란강 굽이처럼 구비치게 써거든요.
그게 미당 특유의 문체의 매력이어요,언제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어머니와 엉컹퀴>인가 생각나네요.
山子님의 이 수필은 피천득 스타일과 가깝다고 봅니다.
山子   - 2008/06/04 09:51:37  
그럼 저도 박향연님처럼 산월선생님이라 할가요?
산월선생님, 저는 어린 시절을 산이 좋고 물이 좋은 곳에서 보냈습니다. 먼저 정들인곳이 산이라 여행 가서 간혹 보는 바다보다 산이 훨씬 좋은거죠... 정말 다른 사람은 이런 동년이 없었을거야! 하고 자신있는 그런 아름다운 동년을 산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산의 아이 라는 뜻으로 산자라고 지은거죠...
山子   - 2008/06/04 10:01:09  
산월선생님, 제 글을 상세하게 분석해줘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 제 미니홈피 일기에요...제가 그 애의 블로그를 보고 정말로 충격을 받았거든요...얘가 이런 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복잡한 감정이 이는거죠...난 솔직히 이 애의 외모로 해서 이 앨 미워한것이 아니였어요...이런 저런 골격에서 비치는 성격이 싫었던거죠...헌데 이 애도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 계속할것이라는 신념이 돋보였습니다. 아름다운 꿈은 항상 현실속에서 존재한다고 사람의 그런 신념을 느끼게 되였습니다.
일기였기에 아무 가식이 없이 아주 슴슴하게 써내려갔던것 같습니다. 과찬을 해주신 모든 분들의 너그러움을 바라는바입니다.
山子   - 2008/06/04 10:06:21  
피천득 작가님의 <인연> 굉장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산월선생님, 정비석작가님과 문정희시인님 그리고 서정주시인님의 산문 꼭 찾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고무와 인도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山月   - 2008/06/04 11:56:19  
시인이 시는 잘 쓰는데 산문을 잘 쓰지 못하면 추태라 하거든요. 왜냐하면
시만 잘 쓰면 되는게 아니니, 내가 알기엔 한국에서 시 잘 쓰는 시인들 대개가
조리 있게 산문도 잘 쓰더라구요, 나도 젊은날 시인들 에세이 굉장히 많이 읽었지요.
그래서 많이 배웠지요. 잘 써야겠다고요. 내가 좋은 에세이들 있으면 이곳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山月   - 2008/06/04 12:00:39  
서정주 산문이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몰라요. 문장이 넘어가는 것 보면
엿가락이 휘거나 구렁이가 담 넘어가는 것 같거든요.
조만간 한 편 소개하께요. 깜짝 놀랄 거여요.
세상에 이렇게 능청스럽게 쓰는 매력도 있나? 하고 탄복할 겁니다.
대구시인학교 시나무 홈페이지 어디에 몇 편 있지 싶은데 찾아보께요.

山子님의 위의 에세이처럼, 못다 이룬 신라시대 최항이라는 사람의 사랑이야긴데요
서정주의 산문을 통해 읽으면 재미가 몇 갑절이어요.
안되면 아들냄이 불러다가 워드쳐 달라해서 이곳에 소개하께요.
山月   - 2008/06/04 12:39:44  
山月님이 어린 시절을 산이 좋고 물이 좋은 곳에서 보냈다 했듯이
나도 지금까지 내가 단오날 태어난 곳에서 지금도 살고 있지요.
한국에서는 3번째 큰 도시가 대구광역이나 시내에서 10분거리의 산골짜기여요.
그게 나를 전통서정시인으로 키운 거고요,만주땅이 있기에 나를 민족시인으로
벋어나가게 하고 있는거 같아요.
그래서, 만주 가면 산과 들 정겹지 않은 데가 없지요.
특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만주벌판!>
아, 미친다고요,언제 봐도 감타사가 절로 나와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며
말이 한국인지 만주벌판 본 한국시인 별로 없거든요.역사의식도 약하고요.
전부 동남아나 유럽, 미국으로 놀려가지 만주땅은 잘 안가더라구요?
나는 늘 만주땅을 갔다와도 또 가고싶고 갔다와서도 또 그립고 해요.희한하지요.
꼭, 한 사람에게 매료되면 그 사람만 쳐다보고 생각하고 맨날 함께 하고싶듯
그런 만주땅인 거여요. 앞으로도 수십 수백 번은 더 만주땅 갈 겁니다.
내 문학이 거기 있더라구요. 오천년 역사의 만주땅에...........
아미산월   - 2008/06/04 16:37:41  
<참고로>

미당 산문(서정주 저 | 민음사)



ㅡ 책 소개
언어구사에 있어서 창의성 있는 기여와 본보기,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을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 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 서정주를 드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른 미당은 정히 부족방언의 요술사이다. [엘리트2000 제공]

목차
-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1] 베갯모의 학
1. 베갯모의 학
2. 향 사르는 마음
3. 미소의 여유를
4. 영생관
5. 재래종 소나무
....

[2] 봉산산방 시화
1. 선우사 침향을 사르며
2. 봉산산방의 의미
3. 종정문과 나
4. 난과 진사와 돌
5. 석가모니에게서 배운 것
....

[3] 문치헌 밀어
1. 한늘과 땅 사이의 사람들과 동물들의 시체 이야기
2. 내가 차지한 하늘
3. 시간
4. 지성 재고
5. 정에 대하여
....

[4] 여왕 선덕
1. 여왕 선덕
2. 표훈 스님
3. 황진이
4. 관기와 도성
5. 추사의 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

[5]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
1.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
2. 시정신과 민족정신
3. 불경에서 배운 것들
4. 그리스 신화와 성경
5. 괴테 <빌헤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

[6] 떠돌이의 글
1. 떠돌이의 글
2. 봄에 대하여
3. 손톱의 반달
4. 4월이 오면
5. 깨끗한 체념과 슬기로운 처리
....
山子   - 2008/06/04 17:42:15  
산월선생님, 서정주시인님의 능청스러운 산문 꼭 읽어보겠습니다. 엿가락이 휘거나 구렁이가 넘어가는듯한 매력이란 선생님의 말씀에 흥미가 진해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곳에 크나큰 사랑을 느끼는 선생님의 마음이 우리에겐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몰라요...또 그래서 민족시인으로서의 선생님의 흉금과 기백이 돋보여보입니다.
서정주시인의 미당산문 꼭 읽어보도록 하겟습니다.
姜美蘭   - 2008/06/05 01:59:30  
추천드려요.
장선자님... 글구 첨 뵙니다.

멋지신 분들이 니카에 와주셔서 더욱 니카에 빠지게 되네요.
山月   - 2008/06/05 04:43:32  
山子님, 내가 <미당산문> 오래된 책이어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山月   - 2008/06/05 04:44:35  
**아래의 글을 참고해 보시면 이해 하는데 좋을 겁니다<1>

[한국 현대시의 큰 산맥]

#서정주 시인의 시와 언어/“발명적․독창적인 部族 방언의 요술사”

시인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우리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터줏말 혹은 모국어와 평생고질로 사랑놀이를 계속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도 하나의 가능한 접근법이다.

말에 반해서 터줏말과 죽자사자하는 사람이 곧 시인이다. 따라서 뛰어난 시인은 자기 ‘部族의 方言’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마련이다. 모국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우수한 시인은 뛰어난 언어의 연금술사인 것이다.

그러나 그릇 큰 시인은 부족 언어에 대한 기여만으로는 되지 못한다. 뭣인가 삶의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특한 생각의 갈피를 보여주어야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분량의 시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권의 얄팍한 시집이 우수한 시인됨이나 독특한 지혜를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언어구사에 있어서 창의성있는 기여와 본보기,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을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우리 시인 가운데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 좋게 구비한 이로 未堂 徐廷柱 詞伯을 드는 데 반대할 사람을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되는 경지에 이른 미당은 정히 부조방언의 요술사이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신선하고도 대담한 선포에서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라는 공자의 襲用에 이르기까지 미당의 말씨는 독창적이고 발명적이다. 그리고 손본 글귀가 높낮이 없이 두루 시에 도달해 있다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미당의 말씨와 말버릇은 소재에 따라 층하를 두는 법이 없다. 그리하여 이룩한 시 수백은 우리 시의 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金聖佑문화칼럼이 상기시켜준 ‘花蛇集 이후 50년’ 동안의 미당 詩歷은 조금씩 변모하면서 일저한 수준을 견지한다는 연속성을 보여준다. 물론 시세계의 변화는 지속적이다.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능구렝이 같은 길로/님은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와 같은 강렬한 관능의 세계, “등잔불 벌서 키어지는데/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엇구나”와 같은 ‘저주받은 시인’의 옆모습, “애비를 잊어버려/에미를 잊어버려/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아프리카로 가라는 부정은 격정적이고 현시적인 것이었다.

미당의 문학적 기원이 서구적이라는 평가를 얻은 것은 이러한 격정성과 강렬한 관능성과 ‘저주받은 시인’의 풍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초기에 있어서도 미당의 말씨가 크게는 터줏말에 의지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고향을 떠나가면서도 고향의 말씨를 버리지 못하였다.

짤막한 청년기를 보내고 이내 미당은 동양의 하늘 아래로 돌아온다. 그것은 <귀촉도>와

<木花>와 <국화 옆에서> 의 세계이다. 젊은 시절 잊어버리자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긍정과 새로운 발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수백왕조의 몰락을 겪고도 오히려 늙지 않는 저 물같이 맑은 소리”에 귀기울이고 “물같이 구기잖게 살아간” 백결 선생을 기리기도 한다.

긍정과 화해를 지향하면서 미당은 신라와 불교적 초월의 세계를 그리기도 한다. 선덕여왕을 기리고 노인헌화가를 재구성해보기도 한다. 달관과 체념과 만유인연설의 세계를 눈짓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시적 노력이 항시 터줏말의 새 가능성 탐구로 연결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시의 과제는 미당 넘어서는 것

무엇이라도 시로 올려놓을 수 있는 탁월한 솜씨는 <질마재 神話>에서 고향의 재발견으로 맺어지고 <안 잊히는 일들>에서 시로 쓴 자서전으로 맺어진다. 그것은 뒷날 세계 기행시로 이어진다. 이들 근작시에서 미당은 대담한 산문에의 접근을 시도한다. 분명히 우리 시의 기준 속에서도 산문시에 속하는 이들 작품에서 미당은 의젓한 지혜의 눈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토박이 터줏말을 줍고 갈고 닦아서 새 옥돌로 만드는 데 있어 미당이 발휘한 정성과 안목은 외경에 가깝다. 그 전에 정지용이라는 선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집 두 권으로 끝난 정지용의 시력을 짧았고 또 초행길이었다.

미당이 남긴 부족 언어에의 흔적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그것을 요약하기는 힘들다. 미당의 시는 이제 우리 터전을 지키는 큰 산이 되었다. 그 산그늘에 가리어 좀처럼 다른 시들이 햇볕을 못 받을 정도다. 한국시의 과제는 이제 미당이란 큰 산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사저널 1991.10.31

柳宗鎬(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교수)
山月   - 2008/06/05 04:48:33  
**아래의 글을 참고해 보시면 이해 하는데 좋을 겁니다<2>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未堂 서정주

나는 갓 젊은 청소년 시절에는<인생의 진리는 무엇이냐?>하는
것을 열심히 생각하고 지내던 말하자면 사상소년(思想少年)이어서,
동서양의 이것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도 이것들의 대강을 요약해
가르치는 곳을 찾어 동국대학교 철학과(중앙불교전문학교 철학문학
고)에 들어갔던 것인데, 거기에서 글쓰는 걸 연습하면서 곰곰이 생
각해 보니<사상은 그 진리라고 머리로 생각한 것을 이론으로 쓰면
되겠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그 정서(情緖)라는 것들은 시나 산문문학
으로 표현할밖에는 딴 수가 없겠다. 시나 산문문학이면 사상도
아울러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깨달아져서, 시나 수필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느끼는 것을 표현해 보기 시작한 것이 어느 사인지
길이 들어 문학적 문장의 표현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것은 내게는 참 다행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뒤에 깨달아 안 일이지만 <니체>만 하더라도 그의 사상의 표현을
실감 있게 하기 위해 그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에서는
서사시적인 문학적 구성과 표현을 했었으며, 20세기에 와서는 평론
들까지도 딱딱한 이론전개를 피해 <에세이>라는 것으로 문학적 표현의
효력을 노리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먼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불교나 기독교, 유교의 경전들 역시 문학적
표현으로서 그 중요한 것들이 나타나 있음을 누구나 보게 되는 것이니,
이거야말로 인류가 발견한 정신 표현의 가장 정수라고
아니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써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즉 정신의 완전한 자유다. 어떤 개인
이나 단체의 강제에도 얽매이는 일이 없이, 또 사상사 속의 어떤
유파나 개인에게도 편승하는 일이 없이, 먼저 하늘만큼 훤출한
자기 자유의 능동적인 관찰력과 자기류의 독자적인 느낌을 가지고
사상의 선택과 그 수립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나는 1929년과 1930년의 두 해 동안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현재의 중앙중고등학교를 합친 것)의 한 학생으로 1950년대에는
광주학생사건 2차년도의 중앙학교 주모자의 하나이기도 했었는데,
이때의 내 사상은 덜 익은 사회주의였다. 이때의 내 정신의 실상을
회고해 보자면 <가난하고 비참한 동포들을 서러워하는 감상적
인 인도주의 감정> 그것이었는데, 이때는 그 사회주의라는 것이
이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많이 유행하고 있던 때인만치 그런
군중운동 속에 나도 흡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 도서관에 파묻혀 문학작품들을 탐독하면서 한 문학소년
으로 변화하고 있던 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자니, 톨스토이
말씀마따나 <경제적 균등 한 가지의 해결로 어떻게 인생의
그 넓고도 미묘하게 복잡한 불행이나 행복이 두루 잘 해결될 수가
있겠느냐?>하는 새로운 이해가 생겨서, 여기에서 재출발해
문학작품들의 탐독과 아울러 종교와 철학을 주로 한 사상들의
공부에도 열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니 또 이때는 우리나라의 정지용(鄭芝溶), 김영랑(金永郞),
박용철(朴龍喆)등의 시인들이 《시문학》(詩文學)이라는 시동인지를
내면서 순수시 운동을 하며〈사회주의 정치사상에서 시정신의
자유를 먼저 해방해야 한다〉는 걸 주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번쩍 뜨여서 이런 선배동지들이 여간 반갑고 고마운게 아니었다.

이 점, 젊은 여러분에게도 크게 짚이는 데가 있기를 바랄 따름이 다.
한동안 구소련을 비롯해서 온 세계에 유행하고 있었던 그 사회주의의
〈빈부격차의 해소운동〉이라는 경제정치 중심의 사상이
실효 없이 끝나면서, 인제야 인류는 다시 그 반성기에 들어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잘 명심해 생각해서 말이다.

이 나라에서 새로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또 먼저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첫째 영어나 불어 같은 서양말이나 중국의 한문
에도 길드는 일이다. 우리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세계의 문학을
비롯한 학문들의 번역출판이 구체적으로 빈틈 없어서 일본말의
번역만 가지고도 문학이나 기타 학문의 기본교양을 마련하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2차대전 뒤 민족분열과 6.25의
남북전쟁과 생활난과 여러가지 혼란을 겪느라고 번역문화 그것도
아직도 형편없는 실정에 놓여 있으니 여기에선 서양말이라도
하나 둘 유창해야만이 보충이 되겠고, 중국의 한문은 또 별도로
공부해 내야만 이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중국과 동양과 우리나라의
고전들을 읽어 알 수가 있으니 말씀이다. 힘드는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그 팔자라는 것이니 할 수 있는가?

문학작품을 습작하고 지내는 어떤 젊은이들은 생각하기를 〈시인
이나 작가가 되려면 그 소질이 첫째 문제다. 거기 필요한 교양이라
는 거야 시인이나 작가노릇을 하면서 두고두고 공부해서 쌓아
나가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미리 다 쌓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나?〉
하는 것 같지만 언뜻 보기엔 지당해 보이는 이런 이해 속에도 간과
해서는 안될 하자가 들어 있으니, 그것은〈자기 혼자나 주의의 몇
사람이 인중한 것뿐인 그 소질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도 애매할
뿐이라〉는 하자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 하자의 불안을 메꾸고 자기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 나갈 수가 있을까?
그 확신을 만들어 가지는 길은 물론 내 나라의 문학과 세계문학
의 공부를 통해서일밖에 없다. 먼저 우리나라의 현대문학과 고전
문학 속에서 100사람의 대표적인 실력 있는 시인 작가들의 대표
작품들을 골라 정독하며 그 속에서 귀군의 실력은 어느 만큼의
것인가를 이해해 내고, 또 세계문학의 현대 시인 작가들과 고전
시인 작가들 200명을 골라 그 작품들을 정독하면서 자기의 실력은
어느 만큼한 것인가를 마음속으로 이해해 내라. 그러면서 내 나라의
문학의 역사를 비롯해 세계의 유력한 문화국가들의 그것들도 꼼꼼이
공부해 알아보며 그 문학사들 속의 각 시대를 통한 유파들의 사조
(思潮) 내용과 거기 속한 대표적인 시인 작가들의 작품 특질이 무엇
인가도 판독해 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대가 한 문인으로 이유 있게
출발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기본교양은 겨우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자네의 그 소질 있다는 습작이 어느 정도 수준의 것인가를
식별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 나라 문학사와 세계 문학사 속의
유력한 시인 작가들의 좋다는 작품들의 표현과 자네의 작품들의
표현을 면밀하게 대조해 고찰해 보고 〈그들보다 한술 더 뜰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자신의 양심에 물을 일이다. 그래서 자네
마음속의 대답이〈있다〉거든 비로소 자네의 좋은 소질이라는 것은
자네 자신의 확신을 얻어 나가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늘 마음 써야 할 것은 이런 초벌의 확신 이것도 변화 없이
계속되어 가는 것만도 아닌 점인, 자네의 공부와 교양이 점점 늘어
넓어져 가고 깊어져 가는 동안에는 전일의 확신이라는 그것도 한낱
유치한 것이 되고 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한 문학인의 교양이란 꼭 문학 그것만의 한계 안에서만 멎을 수 없는
것이고, 종교와 철학, 역사, 지리, 그 밖에 필요한 여러 학문에
걸쳐야만 하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유치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늘 명심해야만 된다.

일생 동안 문학공부를 하고 글쓰고 살려는 사람들이 또 늘 이어서
마음을 써야 할 것은 〈1. 어떻게 사회에서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며
살아갈 것인가? 2. 사회의 모태인 자연과의 관계는 어떻게 잘 이어
갈 것인가? 3. 역사 속의 자기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서 세워 나갈
것인가?〉하는 세 가지 문제다.

이 첫번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한 민족사회를 지배하는 정치권력이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나치스
시절이나 2차대전 말기의 일본의〈도죠히데끼〉의 군국주의 시절
이나 스탈린을 비롯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시절같이 개인의
자유와 평화와 가족적 번영을 못 견디게 억압하는 때에 놓이어서
어떤 항거도 성취할 가능성이 없거든 어떻게라도 해서 여기서
탈출하거나 그것도 안되건 침묵하는 수풀의 나무들처럼 침묵하는
속에서 그 강압 정권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 무너질 날을 기다리며
살아 남아 갈밖에 없겠다.

그리고 둘째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또 아래와 같다.
자연을 마치 오랫동안 버려운 고향집같이 생각해서 어쩌다가 한
번씩 찾아들면 되는 것으로 간주하지 말고, 우리가 늘 이어서 숨쉬며
살고 있는 이 숨결의 모태로서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그 예부터의
느낌과 사고방식을 회복해 사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복잡하고 바쁜
일터에서라도 때때로 허리를 피고 하늘 쪽을 보며 거기가
우리들의 숨결의 본고장임을 실감해 살도록 해라. 그래 이 실감이
더 간절해지면 더 간절해질수록 그대의 목숨의 계속에도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짬을 얻어 맑은 수풀 속도 거닐고,
바닷가의 한때씩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뭇 생명들의
본 고향과의 교류를 점점 더 두터이 해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에서
생기는 온갖 협소함을 완화하고 키워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번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또 아래와 같다.
문학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무얼하는 누구거나 다 그래야만
할 것이지만, 우리는 늘 역사 속에서 무얼하고 있다는 역사적 의식
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문학사가
이룬 문학업적들을 현대문학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해 발전시키는
각도에서 작품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니, 또한 여기에서 미래의 문학을
위한 좋은 유산이 되어야 할 것도 자연히 의도하며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문학작품을 쓰는 이가 안 가져서는 안될 역사의식이라고
한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은 그걸 쓰는 본인들에게도 그저 불확실한
것이 될 뿐일 것이다.

- '未堂산문'중에서 -
山子   - 2008/06/06 09:39:41  
산월선생님, 제게 좋은 영양물이 되였습니다. 일생 동안 문학공부를 하고 글쓰고 살려는 사람들이 또 늘 이어서
마음을 써야 할 것은 〈1. 어떻게 사회에서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며
살아갈 것인가? 2. 사회의 모태인 자연과의 관계는 어떻게 잘 이어
갈 것인가? 3. 역사 속의 자기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서 세워 나갈
것인가?〉하는 세 가지 문제다.
몇번이나 읽어봤습니다. 우선 사회인으로서 자리매김이고 다음은 자연인으로서 대물관계, 마지막엔 문학을 하는 개인적인 사고의식이라고 리해했습니다.
제게 너무 큰 학습이 되였습니다. 명기하고 있겠습니다.
박향연   - 2008/06/09 12:10:36  
엥?山月님이...아저씨세요?
언제 아이디 고치셨어요?
깜짝 놀랐잖아요..
내말이 나오니까.....ㅠㅠㅠ...

봄소리   - 2008/06/10 01:01:36  
장선자님 추천드리고 가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더 좋은 글 기대할께요~~
첨 뵙니다..
山月   - 2008/06/10 09:39:01  
박향연양,
아저씨는 女子한테 아주 약하거든!
서정시인이니까.....
그래서 山子님 따라 山月이라 했지롱~
근데 말야, 아저씨 장춤 가는 거
6월 16일(목) 오후에 장춘 도착한다!
마중 나올래?
길림신문사에서 승용차가 장춘공항으로 나올거야.
그러니 미리 길림신문사 박문희아저씨 찾아가
장춘공항으로 마중 나가는 승용차 같이 타고 오라구?
<장백산>잡지사 김성림총각이 나올 거 같은데......
글구, 향연양을 위한 3행시 버얼써 써서
공지사항에 올려놨는데~
山月   - 2008/06/10 16:30:56  
山子님,
내 생일을 축하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연길에서는 연락이 많습니다. 일정이 하루 앞 당겨서
19일 저녁 장춘에서 만찬회를 가지고
20일 문학세미나를 가진다 하네요
내가 집필하고 있는 니카시창작강의는 좀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군요
여러 사람들의 견해가 궁금해서요.
미당 서정주 수필 <엉겅퀴꽃> 어데 올려놨는데.....

山子   - 2008/06/10 17:17:02  
덕분에 좋은 수필 잘 봤습니다. 산월선생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걸 정말 잘 아십니다.ㅎㅎ정말 좋아하는 수필류형입니다. 언어나 수필구조가 정말 맘에 듭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그 글을 보고 오늘 올린 <사랑하는 법>을 썼습니다. 반시간이니 다 써지더군요...ㅎㅎ 좋은 글을 보면 같이 써보고 싶은게 제 맘입니다.
엉컹퀴꽃 제 컴퓨터에 저장해두었습니다. 번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니카시창작강의 저 다 보고있습니다.
제가 시를 잘 몰라서 말도 안남깁니다. 그냥 지켜보며 배우고 있습니다.
너무 세심하게 자세히 잘 하시더군요...여러 시인들과 보는 이들에게 아주 배부른 충족감을 주셨습니다. 니카 들어오면 내용이 벅차서 모르는것에 대해선 그냥 지켜만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지금 만족하고요...
이제 선생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고 여러 작가시인님들의 좋은 글을 많이 탐독한후 제 약간한 의견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山月   - 2008/06/10 19:18:38  
山子님,
안 그래도 아들냄이가 중학교 2학년생인데 부탁했지요.
여러 편 있는데 우선 하나만 워드친 거죠.
딸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인데 안되고요.
요즘은 내 방에 안 오네요. 미당선생님 수필문장 표현이 찰지거든요.
생전에 내게 하신 말씀이,수필(산문)도 한국에서는 자신이 제일 잘 쓰신다 하신 분이어요
물론, 시도 한국에서는 제일 잘 쓰신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구요.
자신이 있으니 그런 말도 할 수 있다 생각해요.
다른 한국 수필중에 좋다는 건 다 소개해 드릴께요
나는 또 연길하고는 깊이 인연이 많이 닿아있는 고장이니니 더욱 훈훈하게 느껴져요
山月   - 2008/06/10 19:27:08  
山子님 수필 <사랑하는 법> 메인화면으로 언뜻 봤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보고 말해드릴께요.
얼마나 바빴든지요......
아무리 바빠도 니카에 들어와서 <니카 시창작강의> 해설을 20번까지 채운다고
진땀 뺐어요. 청설작가님이 아시기나 할는지.....
마침 한국 시잡지<시와 시인>에 특집으로 게재해 주겠다 하여 기회를 놓치면 안돼잖아요.
3일을 밤샘했지요.
또, 서서히 중국 갈 준비도 해야하구요.
이번엔 책을 많이 가지고 가지 싶은데 마땅한 거 골라 보께요.
山月   - 2008/06/10 19:34:26  
나는 언젠가부터 글을 쓸 때 한순간에 써거든요
방명록에 보면 시를 쓰는 채옥이라는 분이 용정에 살고 있다는 말 듣고요
당장, 몇해 전 용정 갔었던 풍경이 훤히 떠올라 <용정의 하늘>이라는 시를 썼거든요.
그러니까 문학은 경험 체험 독서도 중요하지만 충격요법이라는게 있잖아요
무시 못하지요. 내가 댓글에서 이런저런 수필 이야기 해드리는 것도
아마 힘-충격요법이 될거라 봅니다. 충격요법이란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
저절로 떠오르는 상들을 말하지요.
자꾸 끊임없이 누군가 하고 대화하거나
새로운 걸 제시하거나 노닥거라는 거 모두 문학에서는 중요하지요.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봐도 문학을 하는 사람은 셈세하고 직관에 뛰어나잖아요.
검도하는 검객은 몸이 날렵해야 한다면 문학하는 사람은 정신이 날렵해야 한다고 봐요
山月   - 2008/06/10 19:37:49  
참,고향은 어디세요?
내가 누구에게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양수진이라 하데요, 나는 순간 까암짝! 놀랬거든요.
왜 놀랬을까?요!
山月   - 2008/06/10 19:47:31  
내가 요, 지난 여름 만주 가서 소원이 훈춘쪽으로 가는 거니
좀 안내해 달라고 도문에서 시를 아주 잘 쓰는 젊은 시인에게 말했더니
이 친구가 훈춘 가다가요 밀산인데에서 택시를 돌아려버렸거든요.
물론 해가 지는 시간 얼마 안남아 그런거 같더군요.
돌아오며 간 곳이요, 양수진 두만강!
북한으로 통하는 끊어진 다리에서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풀밭이 얼마나 평화로운지요,놀랬거든요.
여름에 여기 음료수와 김밥 준비해 와서 시낭송도 하고 낮잠도 자고
했으면 참 좋겟다고 느꼈지요.
게다가 양수진 마을 들어서는데 왼통 옥수수밭이 즐비했는데(물론 다른 데도 있지만요)
그 풍경이 너무 좋고 또 그 마을이 두만강을 두고 낮게 앉은 마을같이
너무나 평화로운 거 있죠,
그래서 <양수진에 가 살고 싶어라>는 시를 썼던 곳이기도 하니
얼마나 반가웠든지...........
그래서 묻는 거여요, 그냥 지나칠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게
문학하는 사람 기질 아닐까요?
山子   - 2008/06/11 09:42:16  
이후에도 좋은 수필 올려주겠다니 정말 좋습니다. 산월선생님이 다망하셔서 올려줄 짬이 없을가봐 근심했거든요... 룡정에도 오셨던 적이 있었어요? 제 고향이 바로 룡정 삼합이에요... 오랑캐령 아시죠... 선바위도 아시죠..우리 민족의 이주사 있는곳이잖아요...우리 할아버지가 두만강 건느고 바로 삼합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시더군요...오랑캐령 넘으면 아예 중국땅이 된다고...ㅎㅎ 그 곳이 고국이신줄로 알았던 모양이에요...
山子   - 2008/06/11 09:46:32  
양수진 두만강이라면 가본적이 없어 모르겟지만 제 고향의 두만강도 굉장하거든요. 제가 고향이여서 그러는것이 아니에요...제 아버지때엔 두만강이 하도 맑아서 게도 있었다고 하더군요..헌데 지금은 많이 오염되여 있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바위 얼마나 멋있는지...명동학교에서 윤동주시인이랑 나오셨잖아요... 선생님은 우리 땅의 가는곳마다에 좋은 시를 선물하시니 제 고향 같은 곳에도 꼭 좋은 시를 남겨주세요...^^
山月   - 2008/06/11 10:52:28  
山子님,
안그래도 두만강 풍광 좋은 곳 많다는 말은 들었지요.
용정 많이 가봤지요. 용정 가게 되면 일송정 오르니까요.
용정 삼합이어요?
이름 많이 들었습니다.
중국 조선족신문에도 많이 나와 내가 자료를 모아놨는데....
이번에 두루가 볼까 해요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연길 도문 용정 등에 머무를 예정이지요
미소^^   - 2008/06/11 13:16:17  
장선자님 첨 뵈요~~
재미나는 에피소트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님만의 특색을 갖춘 수필이네요 ^^
읽기가 어렵지 않고 좋아요..
추천드립니다.
山月   - 2008/06/11 21:52:30  
山子님,
아들냄이한테 부탁해 워드치게 해 올려드립니다.
(다른 분들도 관심 있으면 보시오)

한 사발의 냉수

서 정 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인 미켈란젤로의 <에레미아.를 보면, 거기에는 해 질 무렵의 성 변두리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늙은 애국자 에레미아 노인의 끝없는 수심이 보이고, 그의 등 뒤에서 물동이에 맑은 우물물을 길어 들고 돌아가는 마을 여인들의 모양이 보인다.
에레미아 노인의 배경이 이러하듯이,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여러 영상들 속에서도 맑은 물을 물동이에 길어 머리에 이고 가는 우리 여인의 상은 내게는 그 중 귀한 것 중의 하나다.
언젠가 무슨 시에서도 쓴 일이 있지만 맑은 물동이를 엎지르지 않고 조심조심 여 나르는 우리 여인에 대한 미더움으로 나는 내 인생의 아주 딱한 때들을 많이 달래어 살아온 셈이다.
나는 20대로부터 술을 좋아해 와서 실수가 적지 않고, 이런 나를 위해 내 아내는 큰 실수나 않도록 신명께 비는 것이라고 벌써 여러 해를 깊은 밤마다 냉수를 사발에 담아 그녀의 제단 장독대에 올려놓고 지낸다. 그걸 나는 한동안
“거, 밤마다 귀찮게 그럴 것 뭐 있느냐”고 핀잔을 주어 왔지만, 요즘은 새벽에 변소에 가는 길에 문득 이 하얀 냉수 그릇을 별빛에 눈여겨 보고 보고 하는 동안, 어느 새인지 나도 이걸 믿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여보. 한국인이 살아서 아이들을 깨끗하게 길러내는 건 아무래도 당신들 여자들이 더 깨끗한 덕은 덕인가 보오. 그것, 당신을 믿소.”
어쩌고, 내가 어떤 때 아내에게 뇌까려대는 것도 바로 그 냉수사발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불가불 냉수는 내게 어떤 때에는 일종의 신 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공구 선생 말씀하신 “물건마다 신 안 붙은 것이 없느니...” 한 것도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냉수는 물건 가운데서도 신이 쉬이 붙을 수 있는 물건인 셈인가?

가만히 좀 생각해 보자.
다설 살 때던가 ? 여섯 살 때던가 ?
우리 집은 두메의 농가여서, 온 집안 식구가 들로 일을 나간 뒷면 카랑카랑한 빈 집을 나는 혼자 지키다가 너무 외롭고 무서우면 집앞 개울가로 나와서 개울의 냉수, 네 속을 들여다보고 섰는 것이 마지막 위안이었다. 어린 송아지 못물 들여다 보듯 들여다 보고 섰는 것이 마지막 위안이었다.
그 뒤 나는 커서 문학청년이 되어서 셰익스피어의 시를 읽다가 ‘우리 방 벽의 흙은 선조의 살이 섞인 것이다’는 뜻의 대문을 보고, 그럼 냉수 너는 우리 선조의 피가 섞인 것이다고 유추하며 기막혀했었다.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나 애인의 피도 죽어서 증발하면 속절없는 구름이고, 그 구름이 비 되어 내린 것이 물이로구나, 그것을 우리는 우산 받고 가며 맞고 있구나. 유추해 보곤 기막혀 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을 불교의 윤회설에서 풀어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부모 몰래 절간으로 도망갔었다.
그리하여, 겨우, 우리 육신의 부분으로서 하늘을 영원히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피의 제일 원료 너뿐이라는 것을 알기는 알았다마는, 냉수야, 알고 보니 너는 육신의 것으로선 너무 맑고 어질머리 나서 견디기 어렵구나!
나는 자주 진펄같이 술에 취하기를 소원한다. 내 중학의 은사였던 사학자 시인 고 권덕규 선생의 말씀 그대로, 안 취하곤 세상이 너무 빤히 마주 들여다보고 있어 못 견디게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를 한동안 잊고 술에 곤죽이 되어 쓰러져도, 새벽 술 깬 뒤의 갈증을 통해, 너는 잊지 않고 꼬박꼬박 나를 다시 찾아오는구나.
시를 도피해 아무리 술이고 말려 해도 시와 술의 중간의 교량 위에 새벽이면 결석하는 일 없이 언제나 맨 먼저 나타나는 냉수 제일 허물 없고도 또 무서운 친구, 너를 마실 때는 나는 참 이상한 꼴의 묵도를 하고마는 버릇이 어느 새인지 생겼다.

ㅡ서정주 에세이집 <한사발의 냉수>에서.
박향연   - 2008/06/11 22:40:13  
16일요?아니면 19일요?
아까는 19일이라구 하신것같은데요....
山月   - 2008/06/11 23:06:49  
향연양,
6월 19일(목) 한국에서 출발해서 오후 2시 25분에 장춘공항 도착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7월 2일(수) 연길공항에서 오후 1시 25분에 출발하구~
중국남방항공이네.
山月   - 2008/06/11 23:07:18  

: 박수소리 들려오는 사루비아 꽃밭 너머
: 향기로운 꽃구름은 어디로 실려갔나
: 연이는 혼자서 거울보고 앉아있네

위의 詩, 아저씨가 정말이지 붓글씨 잘 쓰니
멋드러지게 써서 말야
아예 <방명록>에다가 올리면 어떠까?
청설아저씨가 괜찮아 할까?
하여튼 멋드러지게 쓰께

山月   - 2008/06/11 23:12:04  
향연양, 그런데
We 지금 남의 방에 와 주인 없는 사이
We끼리 놀고 있는 건 아닌지?
山子언니가 향연양 좋아하는 거 같으니
지금 목욕탕 사우나 간 모양인데 돌아와도 좋아할꺼야.
山子언니가 목욕탕 사우나 다녀오면 말야
무조건 더더더더더 이뻐졌다고 막막막막막 말하라구!
아저씨가 山子언니 3행시도 하나 지어주까?
山月   - 2008/06/11 23:20:26  

: 장구소리처럼 들려오는 문밖의 비 오는 소리
: 선 채로 서성이며 문 열고 듣고 있으면
: 자수정목걸이 목에 걸고 임 오시는 발걸음 소리

향연양, 위의 詩 방금 썼어.(2008.6.11. 밤 11시 17분)
어때?
이 시는 좀 밝지?
어쩔 수 없어. 앞 글자 가지고 읊어야 하니까.
山子님은 잘 썼다고 할까?

山月   - 2008/06/11 23:22:04  
어머, 위 3행시 쓰고나서 보니
山子님 메인사진에 우산이 그려져 있네.
전혀 그것 생각 않고 떠오르는 대로 썼는데........
山子   - 2008/06/12 09:16:59  
우선, 선생님과 향연님은 제 방에서 이야기하시는걸 무척 좋아하시는것 같애요...^^
선생님께서 또 한편의 수필 올려주셧군요...요즈음 아침에 컴만 켜면 니카부터 올라 선생님께서 제게 남긴 말부터 찾아보아요...저녁에 집에서 컴을 안켜거든요...눈이 피곤해서요... 선생님의 말씀이 그렇게 슬슬 기대가 되여버렸어요...ㅎㅎ
山子   - 2008/06/12 09:22:59  
제 이름 삼행시 정말 좋습니다. 제 조용한 성격을 알고 계시는것 같애요...자수목걸이 목에 걸고 임오시는 발걸음소리...참 좋네요..이 시구를 읽으니 거 중국 고전작품 <공작동남비>가 생각납니다. 거기서 <주사를 머금은듯한> 이런 구절이 있엇던걸로 기억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향연님만 편애하시는줄 알았는데 ...^^
요즘에는 침을 맞느라 중약 먹느라 사우나 못가는데..^^ 저녁엔 밥 해먹고 그냥 책이나 읽어봅니다...
박향연   - 2008/06/12 19:34:00  
정선자님....침두맞구 중약두 드신다 하셨네요..
어디 많이 아프세요?
ㅠㅠㅠ..빨리 나아야겠는데말이죠...
님 빨리빨리 나으세요~~~~
제가 기도드릴꼐요~~~
헤헤헤.........
박향연   - 2008/06/12 19:42:52  
주사말 나오니까..또 이전에 생각 나네요..
제가 어릴적에요..한 여섯살이나?일곱살됐겠죠
그때요..아파서 엄마가 날 데리고 병원갔는데
열이 39도7이나 8된것같아요..
갈때는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병원에 갔죠..
거의 쓰러질정도로 말이에요..
근데요..제가요...주사맞는거 그렇게 무서워한거 있죠..
정신이 오락가락하다가...
갑자기 의사의 말이 생생하게 귀에 들어온거 있죠..
엉뎅이주사맞으라는거에요...
듣자마자...제가 정신없이 냈다뛴거있죠..
열이 그렇게까지 올라갔는데..
무슨 힘으로 병원부터 집까지 뛰여갔는지 모르겠어요..
저의 집에서 병원까지 걸으면 한 15분정도는 걸리거든요..
제가 그렇게 먼길을 정신없이 냈다뛴거있죠...
지금 생각해보면...그때 달리기속도로하면..학교에서
달리기시합을 해도 일등상을 타겠다했어요..ㅠㅠㅠ..
ㅎㅎㅎ
제가 그렇게 주사를 맞는거 싫어했어요.
지금두 주사맞는거 무서워하는건 마찬가지에요..ㅎㅎㅎ
박향연   - 2008/06/12 19:52:37  
글구 산월아저씨..
정선자님한테는 그래도..
기다리는 님이 오셨다는 내용으로 밝은 느낌을 주는 시를
지어주셨는데..
왜 나는 하필 그냥 멍하니 혼자만 누굴 기다리는것처럼
쓸쓸한 느낌이 드는 그런 시를 지어주세요?
ㅠㅠㅠ
박향연   - 2008/06/12 19:56:49  
글구 또 한가지..
아저씨께서 나 이뻐하셔서 불글씨로 시써서 올리시는데..
청설아저씨가 왜 괜찮아 안해요?
괜찮아 안할 이유가 없을것같은데요..
울 청설아저씨도 나 이뻐하시잖아요...헤헤헤...
山月   - 2008/06/12 23:51:14  
그건 나도 몰라야~
아저씨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아저씨는 뭐든 맘 먹으면 열심히 살아가는데
쯧쯧~
山月   - 2008/06/12 23:54:24  
아저씨가 말했잖아,
그냥 시 쓰는 것 하고 이름 석 자 가지고
쓰는 시 하고 다르다꼬!
그럼 아저씨가 다음 주 19일(목요일) 새벽에
집에서 나가야 하니
장춘 가는 비행기 낮 1시 25분발 인천에서 탈려면
대구에서 새벽에 나가서 인천국제공항 가야 하거든
시간이 날지 모르겠으나,다시 한번
삼행시 써 보께
안 되면 장춘 가서 쓰던지~
山月   - 2008/06/12 23:55:27  
山子님께 글 올려줘야 하니,기다려 줘.
山月   - 2008/06/13 00:26:12  
<아주 좋은 수필>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미당 서정주

부디 이 글은, 읽는 당신의 제일 고요한 때에 다시 한번 읽어 주시기.....
될 수 있으면 당신의 제일 조촐하고 고요한 시간에, 될 수 있으면 또 목욕한 뒤의 그런 때에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향기와 촛불을 두고 다시 한번 보아 주시기를.....
그러면 우리가 오래 두고 잊었던 삶이 당신 속에 다시 살아나와 고이 살게 되리니.....

신라 사람 최항에겐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네.
그러나, 부모가 그 속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반대해서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하고 지내다가, 몇 달만에 그만 항은 병이 나서, 이승에 담았던 숨을 거둬가 버리고 말았네. 막혔던 냇물 터져 내닫듯 억세겐 거둬 휘몰아가 버렸네.

죽은 지 여드레가 되던 날.
사랑하던 여자는 항을 만났지. 항이 죽은 줄을 모르고 기다리고 있다가 항을 만났어.
항이 여자를 사랑하듯 항을 사랑하고 있던 여자는 기다리던 나머지에 만나고 말았어.
밤중 이슥할 적에 항은 찾아와서, 여자는 너무 좋아 뛰어나가 그를 맞이하였네.
항은 그전에 만났을 때와 같이 그 검은 머리에 석남꽃 가지를 꽂고 있었네.
그전에 둘이서 석남꽃 수풀을 헤맬 적에 자기가 꺾어서 꽂아주었던 새 향기 그대로 꽂고 있었네.

“이 꽃을 노나서 네게도 주마. 우리 둘이 꽂고 걸어서 가 보자.”
항은 말하고 제 머리에 꽂은 꽃가질 둘로 노나서 여자의 머리에다가도 꽂아 주었네.
“부모도 이젠 우리더러 영구히 같이 살고 지내라 하신다. 이 넓은 하늘과 땅 사이 우리를 말릴 것은 이젠 아무것도 없다. 자 어서 우리 집으로 가자.”
사내는 또 말하고 앞장을 섰었네.

그래, 여자는 항이 죽은 줄을 모르는 여자는 주춤주춤 그 뒤를 따라 항네 집으로 갔네. 참 가 보고 싶던 집엘 머리에 노나꽂은 석남꽃을 달고 주춤주춤 같이 가 보았네.
독자 알아들으시겠지? 이 여자가 항이를 만난 것은, 밤이 이슥해 찾아온 항이를 만난 것은, 또 머리의 석남꽃을 노나꽂은 것은, 노나 꽂고 밤길을 같이 걸어온 것은, 모두 무척 정말인 걸 아시겠지?
알았으면 또 한 꺼풀만 더 고요하게 돼 다음 이야기를 마저 들어 보시기를.....

항은 집 담장 밑까지 오자 여자더러
“여기서 기다려라.”
하고 혼자 담장을 넘어서 들어갔었네.
그럴 일 아닌가? 부모가 말리던 사이였으니..... 그래, 사랑하는 여자는 그 담장 밑에 날이 밝도록 서 또 기다리고 있었지. 그러나, 한번 제집에 들어간 이는 또 날이 새어도 소식이 없었네.

그러자, 날이 환히 밝아서 항이네 집 식구들이 밖에 나가다가 이 우두커니 선 여자를 보고
“어째서 왔느냐?”
고 물었네
“이 댁 항이 아드님하고 같이 왔어요. 날 새기 전 들어가며 기다리라 해, 날 새도록 여기서 서서 기다렸는데 아직도 나오시지 않고 있어요.”
사랑하는 여자는 대답했었다는군.
“항이가 죽은 지가 여드레나 되는데..... 오늘은 바로 그 장삿날인데..... 그것이 무슨 말이냐?”
식구들은 기가 차서 대답했으나, 우두커니 여자는 들은 둥 만 둥 제 머리털의 한 쪽을 손가락질해 가리키며
“보세요. 이 석남꽃 가지는 어젯밤에 그이와 둘이 노나꽂은 거에요. 그분도 한 가지를 꽂고 왔으니 가 보세요. 지금도 꽂고 있어요.”
우겨댈 줄밖에는 더는 몰랐네.

지금 우리 눈에도 이 꽃가지는 조금만 무엇해도 보일만 안 보일만 하느니만큼, 그때라도달랐으면 얼마나 달랐을라고? 그때도 처음 듣고 보는 이들은
“어디에 석남꽃이 꽂혔느냐?”

“어디 네 소원대로 시체 머리까지라도 찾아보자.”
고 죽은 항을 담아 놓은 관 널뚜껑을 여럿이 모여서서 열어젖혔네.
나무관세음 보살! 저와 저의 독자들에게도 이 석남꽃이 역력히 보이도록 눈을 맑게 하옵서!
ㅡ글쓴이의 기도

관 널뚜껑은 삐거덕 열리고 젊은 항의 누워 있는 시체는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하는 가족의 눈앞에 못 맺은 혼인을 아직도 한하는 듯 드러났네.
“아버지, 어머니 우리 사이는 떼어놓지 못해요. 보세요. 나는 몸은 버렸지만, 내 짝과 나는 영원히 합해지지 않았어요.”
시체는 들릴만큼 말하고 있는 듯 했네.

“그래, 네 말대로 있다던 석남꽃은 어디있느냐?”
형제중의 하나가 관 널 가에 같이선 여자한테 물었네. 아직도 이 사람은 우리 모양 눈이 덜 띄었던 거지.

“밤도 아닌데요.....”
사랑하는 여자는 도리어 이상해라 하였네.
그 모양은 마치 밝게 불 켠 방에서 방 속의 그 꽃을 똑똑히 보고 있는 사람이 밖의 어둠속에서 아직 못 보고
“어디냐?”
고 묻는 사람에게 대답하고 있는 것과 꼭 같았네.
“밤도 아닌데요...... 하는 그 말엔 미쳤다든지 그런 기운은 눈 씻고 보려야 없고
“어떻게 와 보면 안 보일 수도 있느냐?”
는 안타까움만이 무주공산을 비치는 햇빛의 안타까움처럼 그들 둘의 석남꽃을 비치며 부르르 부르르 굽이치고 있었네.

“보인다. 아가, 염려 마라. 내게도 보인다!”
마침내 이렇게 소리치며 두 번째로 이 꽃을 보신 이는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네.
“옳지! 우리 놈의 이것은 어젯밤 너와 같이 맞은 밤중의 찬 이슬! 옳지! 여기 보이는 것은 우리놈이 어젯밤에 신고 갔던 신발!”
두 부부는 번갈아 가며 그 뵈는 걸 주워 세기 시작했네.
그러고는 혼인식도 없이 온 이 영원의 신부를 불렀네.
“아가, 인제는 벌써 늦을 것도 없구나. 네 소원대로 네 낭군하고 둘이 영원히 살아라!”

그러나, 시체의 머리에 어젯밤의 석남꽃은 뵌다 해도 이건 시체인 걸 어찌하리요. 신부는 쓰러져서 비로소 땅을 쳐 통곡하기 시작했네. 그러더니 이 신부의 눈앞에 또 역력히 신랑은 살아나 일어서 와서 그 뒤 이 신부는 삼십년 동안을 같이 살다가 갔다고 하네.

ㅡ서정주 대표에세이집 <하느님의 에누리>에서.
山月   - 2008/06/13 00:38:21  
**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라는 이 수필은 서정주시인만이 쓸 수 있는 특유의 문체로 보여집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수필로 쓴 것이지요. 詩로도 쓴게 있습니다. 대단하지요.
山子   - 2008/06/13 13:07:24  
선생님...또 올려주셨네요...매번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수필 올려줘서... 정말 특유한 문체이군요... 마음에 잔잔한 감정이 이네요...다 저장해두겟습니다.
박향연님, 기도해주신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요...^^ 고마워요...
山月   - 2008/06/15 03:02:40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굉장한 수필이지요.
누가 그렇게 유도해서 맛깔스럽게 써겠나요,
한국에서는 문인들도 공부 많이 한 나(?) 말고는 이런 글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고요.
내가 오늘 경북 군위 인각사 <일연문학제>에 참석해 축시를 낭독하고
이렇게 밤늦게 돌아왔는데(대구에서는 1시간 30분 거리)
바로, 보각국사 일연스님께서 저술한 우리 조선민족 5천년 역사를 기술한
그 <삼국유사>에 들어 있는 내용을 가지고 미당 서정주시인이 수필로
재구성한 것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이지요.
山月   - 2008/06/15 03:03:07  
또한 서정주시인은 만주에 가서 지내기도 했는데
만주 가 있을 때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듣고
시로 쓴게 <신부>이지요. 그러니 보세요
대단하잖아요. 머리속에 감도는 느낌만 가지고 글을 쓰는게 아니라
보고 듣고 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시로도 쓰고 수필로도 쓰시니
누가 따라가겠나요. 그러니 책도 많이 보고 공부를 해야......
남다른 안목과 실력으로 유장한 작품이 나오는거죠, 뭐!
山月   - 2008/06/15 03:04:26  
▶山子님, http://poemtree21.net/ 에서 퍼 온 글입니다.
연변텔레비 제1프로에서 보름동안 심예란시인 시 방영!!

연길에서 혜성같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연변공산당위원회에 근무하는 심예란시인이
중국 <연변의 노벨문학상>이라 부르는「지용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시를 열심히 하다보면 절로 이루어지는 영예이지요.
지난 해 여름 한국 서지월선생님이 연변시인협회 초청으로
연변시협 시총서 <시향만리> 출간식에 참여해 만났는데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석화시인이 시를 올바로 하려면
서지월선생님 문하생이 되어라고 추천해
대구시인학교 회원이 되었으며 서지월선생님께서 승락해
최선을 다해 정성껏 올바른 시창작의 길로 인도한 걸로 전해고 있습니다.

서지월선생님과의 만남이 1년도 채 안 되어
중국 연변 최고의 문학상인「지용문학상」(한국에서 수여함) 에
당당히 뽑힌 화제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지금 연변텔레비 제1프로에서
매일 아침 뉴스가 끝 나면 바로 심예란시인의 시가
보름동안 계속 매일 방송영되고 있으며
방송된 심예란시인 시를 보고 연길시선전부에서 꾸리는
잡지사에서도 방송되고 있는 시를 수록하겠다는 등
주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잘 되면 부모의 영광이요
제자가 잘 되면 스승의 영광이기도 한데
멀리 만주땅에서 시를 쓰는 심예란시인이
대구시인학교의 정기를 이어받아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이
한국에서도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거듭 축하를 드립니다.

지금, 연길애서는 한국 서지월선생님께서 장춘 국제세미나
참석 후, 연길로 가시기로 돼있다고 합니다.
장미화   - 2012/06/17 03:07:40  
사랑은 또다른 아픔을 읽구 가요
읽기좋은 짤막한 글이면서도 사람의 맘을 울리는 글이에요
남 설화   - 2012/06/18 10:42:15  
장선자님:
벌써 몇번째 읽고 가는지 모릅니다. 전에 글 읽고 댓글 작성한것이 사라져버렸네요.

니카작품중 최고입니다.

오늘도 남다른 소감을 얻고 한번 더 읽고 갑니다.

언제 다시 새로운 글이 나옵니까?
박은화   - 2012/06/26 23:44:25  
장선자님의 사랑은 또다른 아픔에는 사랑함에는 수억가지 우주만큼 큰 사랑들이 있는것 같아요.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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