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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의 산문문학
피안   Hit : 17990 , Vote : 372        [2007/09/24]




나는 여자의 심장소리가 툭툭 뛰지 않고 쿵쿵 뛴다는 것을 안다.
그것도 최근 어느 한차례 섹스 도중에 알게 되었던 일이다. 일설에 ‘날라리’들은 봄에 연애를 하고 여름에는 섹스를 하고,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다 하더니, 벌써 가을을 맞으면서 낙엽이 되어가는 내 젊음의 노트 위에 마지막 눈감은 새의 흰 눈꺼풀마냥 혼이 빠져나가다시피 되어버린 내 여자, 이 노처녀가 글쎄 갑자기 추석을 하루 앞두고 허둥지둥 나에게로 달려온 것이 아니겠는가!

봄에 만나 여름 한 철 내내 연애에만 골몰하면서도 죽어라고 몸은 주지 않던 여자가 갑자기 가을과 함께 나에게로 달려와서, 다짜고짜로 나의 손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벌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처럼 나이 서른을 넘어 먹도록 시집가지 않고 고향에서 열심히 회사 다니던 사촌언니가 추석을 앞두고 갑자기 죽었다고 하면서, 어쩌면 자기도 언니처럼 죽게 될지 모른다고 슬픔에 잠기는 것이었다.

사촌언니가 죽은 병명은 언니를 염장할 때 곁에서 장의사 사람들을 시중들었던 할머니만 혼자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몰래 여자에게 알려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게 무슨 병이었더냐 캐물었더니, 쥐의 귀가 삐죽이 나왔더라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말씀인즉, 그때쯤 되면 여자는 벌써 죽을 때라 오라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글쎄 오늘 목욕을 하다가 나도 깜짝 놀란 거 있죠. 나한테서도 쥐의 귀가 쬐끔 나오기 시작했더란 말이에요! 그러니 나 어떡해요? 나 정말 죽기는 싫단 말이에요! 아직 시집도 못가고 이렇게 죽기는 싫단 말이에요!”

여자의 심장소리가 툭툭 뛰지 않고, 쿵쿵하고 뛰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바로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이었다. 벌써 죽은 쥐의 귓바퀴가 절반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겁에 질린 노처녀와의 첫날밤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심장이 뛰어서 이러다가 하는 도중에 혹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여자는 나를 잡아당겨 자기의 가슴에다가 귀를 대보게 하였다. 심장이 얼마나 급하게, 그리고 얼마나 세차게 뛰는지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짜 어디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무슨 소리인지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나는 심장은 툭툭하고 뛰지 쿵쿵하고 뛰는 것은 아닐 텐데,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다만 허둥지둥 여자의 허리 아랫도리를 벗기기에만 급했더니, 웬걸, 바지에 허리띠는 없었지만 어디에 또 숨은 단추가 하나 있어서 잘 내려오지 않았다. 한참 뒤지는 도중에 여자가 슬쩍 엉덩이를 들어주면서 단추가 허리 뒤춤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단추를 풀고도 바지가 잘 내려오지 않아서 이번에는 또 옆구리 쪽에서 반 뼘 남짓한 길이의 지퍼를 하나 찾아냈다.

단추는 그냥 가볍게 살짝 튕겨도 잘 빠져나오는데 지퍼는 좀 애를 먹였다. 마치도 무엇을 뜻하는 인간의 언어마냥, 이 가을을 속삭여주는 인간만의 속성을 뜻하는 같아서, 여자랑 한 몸이 되어 가을을 뒹굴어간다는 것이 어느새 나의 몸은 쿵쿵거리는 그 부름소리와 함께 언덕너머 마을 산길로, 또 그다음에는 가로수 그늘진 도시의 신작로로, 다시 쿵쿵거리고 부르는 소리가 하늘을 흔드는 나루터에서, 혹은 시골 역에서 나는 무슨 부름 같은 것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죽은 쥐의 귀가 위도 아니고 한가운데 나온 노처녀는, 정말 이대로 섹스 도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절체절명絶體絶命하는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였고, 이미 달아오르기 시작한 여자의 몸은 곧장 뻗은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들을 지나 아득한 지평선으로 넘어가듯이 푸른 산골짜기로 꼬불꼬불 도는 하얀 길이 내 몸 밑에 깔려있었다. 이미 그것은 가을을 타는 내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 내 발에 활기를 주는 손짓이 되었다. 나는 그 희망을 찾아 그 손짓을 따라 이 가을을 넘어 겨울에서 봄으로 계속 드팀없이 가야겠다는 즐거운 유혹에 빠져있었다.

계속 쿵쿵하고 들려오는 노처녀의 심장소리가, 여자는 나의 삶을 부풀게 하는 그리움이었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그리움의 부름을 따라가는, 황혼에 물들어가는 한 마을의 논길과도 같은 여자의 몸은, 지금 막 버스가 오며가며 먼지를 피우고 지나가는 신작로가 되는가 하면, 또 산언덕을 넘어 내려오며 엽초를 태우는 아버지와, 친정을 찾아오는 딸과, 이웃마을에서 친구를 보러 오는 동무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희망을 따라 떠나라 부르면서도, 그리움을 간직한 채 여자는 다시 꼭 돌아와야 한다고 말해주듯이, 끝없이 쿵쿵거리고 이 가을에도 울려오고 있는 계절의 맥박처럼…….




이목월   - 2007/09/24 15:46:40  
허허 오늘은 가을철과 함께 좋은 발상을 가지시고 좋은글 올리셨군요....

우선 깊은밤중 애써 창작하는 수고스러움에 감사를 드리고, 글을 읽다가 약간 야설이 아닐가라는
유작가님의 정체성을 의심했습니다.
개의치 말아주십시오...제 마음에 있는 말을 솔찍히 쓴것뿐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심장소리를 통해 이소리는 가을이 오는소리로 그리고 바람과 함께
딩구는 낙엽의 소리라고 이해하겠습니다.

글의 은유법과 의인법을 표현하여 순리롭게 잘 이루어집니다.
와중 섹스에 관해 서투룬 작가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서툰 모습이 아니라는것....

분명 문학에 대한 작가님의 마음가집도 바로 그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심에 격정을 금하지 못해 글이 솟아오를때 그 미침 말입니다.

글에서 이부분이 고조에 달한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죽은 쥐의 귀가 위쪽에도 아니고 한가운데 나와있는 노처녀는, 정말 이대로 섹스도중에 죽을수도 있다는 절체절명(絶體絶命)하는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였고, 이미 달아오르기 시작한 여자의 몸은 곧장 뻗은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들을 지나 아득한 지평선으로 넘어가듯이 푸른 산골짜기로 꼬불꼬불 도는 하얀길이 내 몸 밑에 깔려있었다.

한참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다가 웃다가 깊은 사색을 자아내게끔 하는 좋은글입니다.
유작가님의 글중에 한편의 좋은글이라는 평을 내리고 싶습니다.

이만 적습니다.

건필하시길 바라면서...
주성호   - 2007/09/24 16:12:27  
우선 소설로 읽어야 할지 수필로 읽어야할지 오리무중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한 글을 쓴것만은 사실이군요.
김경훈   - 2007/09/24 16:43:43  
이상한 글을 쓴것같다는데 주성호님과 동감입니다. 이 글은 분명 소설은 아닙니다.
이 글을 어떻게 터득할것인가?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논리의 전개방법으로 이 수필이 질탈의 내용과 질탈의 성격을 펼쳐가고 있는가에 대해 심층으로 분석을 진행하기가 간단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다만 질탈이란 의학적으로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성기부분의 병증상임을 알고보면 작중의 화자는 질탈을 앓고 있는 여자의 몸에서 나름대로 삶의 희로애락, 희망과 좌절, 활기와 실의로 점철되는 인간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그동안 일관하게 자신이 떠나왔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상징적인 은유수법에서 항상 여자와 섹스가 등장했던 작품들(례하면 내가 사랑하는 조선족의 정조 나의 순애보 내 여자의 얼굴을 사계절)을 돌이켜보면 이번 작품도 한 사회에 따라 한 문화에 따라 그리고 한 시대에 따라 애절한 노래일수도 있고 눈물의 서정시가 될수도 있겠지만 보다는 섹스라는 삶의 원초적인 생명을 노래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것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박준   - 2007/09/24 16:58:21  
루 살로메의 시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삶이여!
지금 있는 힘을 다해
그대를 안습니다.
그대의 불꽃으로
나를 태워주십시오.
투쟁의 불길 속에서
그대 아득한 본질의
수수께끼를 풀게 해 주십시오.
수천 년에 걸친 존재와 사고를
그대의 두 팔 안에 간직하게 해 주십시오.
설사 그대가 더 이상 내게 줄
행복을 가지지 않았어도
그래도 좋습니다.
그대는 아직도 내게 줄 고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경훈   - 2007/09/24 17:05:35  
조선족문단에서 도저히 남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선생님만의 특유필법에서 수필로 분류할수 있는 쟝르의 여러편 글들을 읽으면서 몇가지 의문점들은 지금까지도 풀수없는 수수께끼입니다. 무엇보다도 수필은 지성과 감성의 배합이다, 자기 고백적이며 방관자적인 고찰을 갖추어야 한다는데서 유선생님의 수필들은 거의 완미의 수준이라고 보아도 될것이지만 수필은 무형식적이며 전문적인 사람만 쓰는 것은 아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이런 리론과 유선생님이 오늘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일련의 수필들은 일치하는지, 그 둘 사이에 어떤 갭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할것인지는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게될 과제일지 모릅니다.
수희   - 2007/09/24 17:50:39  
오늘 따라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특이하게도 이채를 띄여주는 글에 경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의 지조를 잃지 않으려고 천평은 언제나 몸부림을 쳐도 인간의 본능어린 삶은 막을수 없죠.

봄바람에 못지 않게 가을 바람이 불어 싸늘하게 느껴지고 번지 없는 여느 방에서 울려오는 여느 가느다란 웨침소리에 귀를 귀울리시고 주저없이 그것에 "동정"의 눈길을 보내시고 가을바람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시는 작가님의 내심세계는 참으로 대통으로 열린 가슴의 넓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노처녀의 심장 역시 본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에 어울리는 "대가"는 치르려고 발버둥칠 임박일것입니다. 노처녀가 내숭만 떨면 무엇하랴! 한번 가는 인생인데 마음껏 여유작작 즐기고 사는 인생으로 작식할것을 호소하려는 뉘앙스가 작가님의 글에서 풍겨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간만에 작가님의 이방색채가 다분하고 인간미가 줄줄 발산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드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알사탕   - 2007/09/24 20:27:19  
글은 이해가 가는만큼 읽고 깊이 연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단 이목월님의 플을 읽으면서 풉~ 하고 웃으면서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멋있는 글에 멋있는 플들...
머무는동안 알듯말듯하게 그 어떤 수확이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추석 둥근 달 바라보며 소원 빌면 이루어 진다는데 모든 소원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두견화   - 2007/09/25 00:10:15  
유작가님의 글을 읽고 가을이 더욱 유혹스럽게 느껴지네요~~ㅎㅎ
선영이   - 2007/09/25 00:20:11  
박준선생님 루 살로메의 <<삶의 껴안으며>>를 잘 읽었습니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도 있지요. 시가 하도 좋아 명시모음을 찾아보았답니다.

삶이여/
의문 투성이 삶이여/
그대가 나를 환희에/
혹은 슬픔에 떨게 하건/
행복과 고통을 가져다주건/
상관없이 사랑하겠습니다/

(중략)
선영이   - 2007/09/25 00:32:24  
다음 유선생님의 글에 대한 저의 인상담을 부탁하셨는데 시간상 관계로 일일이 설명은 못 드리겠구요 다만 다른 독자분들이 이 글을 터득하는데 이해의 도움을 드릴가는 마음에서 몇자만 적어보겠습니다. 이번 수필에서도 유선생님만의 지성적인 면과 은근하면서 수식이나 과장 없이 솔직한 인품이 잘 나타나는 아주 독특하며 재치를 과시하는 좋은 수필이였다는 점은 넉넉하게 수긍이가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몇편의 수필들과 함께 연관시켜보면 이것이 곧 유선생님만의 수필세계라고 단정할수 있지요. 그러나 적지않은 부분에서 지성과 감성의 조화가 어긋나는 부분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감성적인 데에 괴리를 느끼게 만드는 부분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박선생님이 미여니는 유작가님의 감성은 뜨겁고 강렬하고 웅변적으로 나가는데 그것이 작품 속에서 지성과 조화를 이루어내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론하겠지요.
저는 제 나름대로 그 원인을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유작가님은 최근에 몇편 글들에서 이데올로기나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에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수단으로 접근한 흔적이 자주 보여지고 있지요. 다시말하자면 지식으로 받아들인 것을 충분히 소화한 상태가 되어야 관조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유선생님은 그렇지 못한데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이것은 자족(自足)이지 지족(知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메시지를 너무 강하게 신랄한 표현을 써서 남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이상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때 저는 이분이 내세운 수필 이론과 이분의 작품, 즉 실질적인 것에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박준   - 2007/09/25 00:43:11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것은 수필문학의 영역에서 수필은 무엇이나 담을 수 있는 용기라는 사실이며 유작가님은 이것을 잘 보여주셨지요. 그동안 보여주셨던 대부분의 수필들이 무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유선생님은 무엇이나 다룰 수 있고, 어디에서든 끌어들여서 할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영이   - 2007/09/25 00:52:12  
일반적으로 동양의 수필이 서정적인 것이 많다고 한다면 전통적으로 서양의 에세이는 메시지가 있다고나 할까요. 철학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 많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에서 서구문명과 함께 지낸 유선생님으로써는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수는 없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리순녀   - 2007/09/25 04:53:05  
잘 탐독하고 갑니다 시든 수필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고 무엇때문에 이렇게 썼는지 연구하면 좋은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유작가님 고맙습니다 수고 하셌습니다
선영이   - 2007/09/25 05:21:46  
이론적으로 유선생님의 글을 어느 장르의 글로 확실하게 구분해야 할지도 고민중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수 없는 것은 essay와 수필의 정의에서 많은 학자들이 혼란을 겪고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조선족 동포작가분들의 이 방면에서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재작년에 제가 palisadepark 고교에서 3개월가량 essay 창작론을 가르친적 있었습니다. 주로 동양계 학생들이 혼돈을 많이 겪었으며 질문해오군 했었습니다. 어떤 것을 에세이라 하고, 어떤 것을 수필이라고 하는가,
결국은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간단하게 수필은 동양적인 essay이고, essay는 서구적인 수필이라고 바꿔놓고 말했던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하게 설명하면 옳지는 못한거겠지요. 이론적으로 분명한 것은 수필은 <자기 삶의 이야기>라는 것이며 따라서 동.서양 삶의 생활도 다르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도, 성품도 차이가 나는 것이 정설이라고 보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선생님의 essay-저는 그래도 essay이라고 표현하고싶습니다-는 절대로 자신의 삶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번 essay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마지막 2개의 단락을 보면 질탈(주인공 여자는 실제의 질탈이 아니고 상상속의 질탈을 의심하는 여자입니다)을 앓는 여자와의 섹스도중에 그냥 쥐의 귀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매듭을 일종의 유머로 끝낼수 있엇음에도 불구하고 질탈을 앓고 이미 죽었거나 또는 질탈을 의심하고 있는 여자의 몸을 한데 통털어 삶의 내음이 묻어나는 고향의 산천을 재현시켜 놓은 것입니다. 여자의 몸을 가리켜 <곧장 뻗은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들을 지나 아득한 지평선으로 넘어가듯이 푸른 산골짜기로 꼬불꼬불 도는 하얀길>이라고 표현했는가면 <황혼에 물들어가는 한 마을의 논길과도 같은 여자의 몸은, 지금 막 버스가 오며가며 먼지를 피우고 지나가는 신작로가 되는가면, 또 산언덕을 넘어 내려오며 엽초를 태우는 아버지와, 친정을 찾아오는 딸과, 이웃마을에서 친구보러 오는 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설명이 성립되는것은 질탈을 앓는 여자는 질탈이라는 병의 색소침체가 깊어가고 있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황스러움이며 그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과정을 섹스로 표현해낸 것이라고 볼수도 있지않겠는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처럼 형상성재치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부분을 서구문학에서는 Informal essay라고 할수도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섹스도중에 색소침체를 일으키고있는 여자의 질을 가리켜 쥐의 귀가 나왔다는 어마어마한 표현을 해놓았으면서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고 정서와 기쁨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지요. 이것은 한국문학에서 경수필(輕隨筆), 또는 서정수필, 연수필(軟隨筆) 이라고 말할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구문학으로 분류하면 반드시 Informal essay라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informal이란 말은 正格이 아니라는 말인데, 내용에 있어서 객관적 진리와 무게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독자를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늦추게 하는 글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즉 논문처럼 무엇을 증명하거나 어떤 결론에 도달하여 작자의 주장을 독자에게 설명 설득하려고 굳이 고집하지는 않는 것이 유작가님의 최근 창작하고 계신 소설같은 Informal essay에서 보여주고 있는 일관한 창작수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김상경   - 2007/09/25 10:46:08  
여느 수필보단 쉽게 알아들을수 있는 어구였어요..
그래서 그만큼 많이 놀란거 같아요..이목월님처럼 야설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되는것두 아마 아저씨의 너무 리얼한 묘사땜인거 같아요..

그속에서 다른한층 더 깊은 의미를 터득하려고 반복해서 읽어보았구
선영이님의 댓글이 많이 이해에 도움되었어요..
아저씨는 분명 다른뭔가 더 깊은걸 보여줄려고 한거 같은데..
솔직히 그 뭔가를 제대로 다 보여주지 못한거 같아요..
형상성묘사가 차지하는 비중땜에 오해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네요



윤화금   - 2007/09/25 11:11:52  
아무리 바도
선생님적인
그 깊은 뜻이란 ...ㅋㅋ

잘 보구 갑니다 .
화이팅 .^^!
춘화   - 2007/09/25 11:37:47  
와 ~아저씨 이렇게나 길게 .........쓰셧네요 .근데 대체 무슨 뜻인지 ..ㅋㅋ
어떻게 봐도 아저씨가 젤 멋져요 ^^
항상 이렇게 쭈욱 ~~글을 많이 올려주세요 ~
김상경   - 2007/09/25 12:17:46  
선영이님, 고마워요..

님의 해석에 제가 아저씨를 오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멋진 해석이었어요 ^0^
불새   - 2007/09/25 12:42:46  
어기적 허툰걸음 추억으로
새처럼 쪼르르 날아가버리지만

하얗게 살다가 보면
파란단장하고 돌아올날 있기에

뚫린 가슴에 그대 심장소리 넣어
휑한 만추의 정을 날아예고 오리라...





미여니   - 2007/09/26 17:37:02  
감추는 것만큼 벗겨보고 싶고, 눌리는 것만큼 튕겨보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심상이 ‘질탈'이라는 이 경악할만큼이나 충격적인 제목속에 귿로 투사되어 있다고 했으면 좋을거 같아요. ...
-소중함을 전하며-
김경훈   - 2007/09/26 17:46:49  
이수나선생님 오늘 주고받은 대화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저에게는 많은 배움의 기회였다고 표현하고 싶군요. 솔직이 메신저에서 이처럼 심도깊은 대화를 나눠보는 일이 흔치않다고 생각합니다. 메신저내리고 다시 들어와 유선생님의 <질탈>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수나선생님의 보신대로 깊은 의미를 부가하려고 했던 마음을 바꿨습니다. 철학적인 수필로 보려고 했던 저의 견해가 틀렸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가능하면 가볍게 경건하게 읽는 멋이 좋지요.

김경훈   - 2007/09/26 17:54:52  
그리하여 저도 형상적으로 표현하면 가을을 맞는 여자에게서 느끼는 혀끝의 감칠맛이라고 하지요. 여자의 심장소리를 드텨주는 섹스는 맛있었다. 그러나 만약 음식은 혀끝에서 느낄수 있는 진수성찬이더라도 이 글의 의미는 그저 몸에서 느끼는 맛임을 떠나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밭에서 농사일을 끝내고 맛보는 음식의 맛이라고 하면 좋겠지요. 네. 그때 음식이 고추장이에 보리밥이면 어떠하고 한그릇의 국수이면 또 어떠하리오. 이 글에서 받은 저의 감상을 그냥 이쯤에서 접을가 합니다. 오늘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주신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중국 연변에서.
姜美蘭   - 2007/09/26 18:11:28  
선영이님과 김경훈선생님의 좋은 해석 정말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유작가님의 이번 글이 그렇게 깊게 와닿지 않았었어요.
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의 해석을 읽어 보고 나니 어쩐지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더군요.
LISA   - 2007/09/27 09:41:47  
우의 선영이님이랑 멋있게 평론을 하셨습니다만 저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뭐 문맹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작가님, 왜 이런 수상한 글을 쓰시는지..
담에는 좀 잼있는 글 써 주세요...
띰띰   - 2007/09/27 11:20:23  
순호오빠 오랫만~~^_^오빤 항상 내가상상못할 뭔가갓고있다는걸 ㅎㅎㅎ 근데 이번글은 좀 징르럽네~~~ ㅋㅋㅋ그럼 담글도 기대할께요~! 화이팅!!!
이슬비   - 2007/09/27 11:37:21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더군요....누군가....ㅎㅎㅎ

하지만....가을 역시 여자의 계절이라고 생각됩니다.

북경향산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낙엽들이 울긋불긋 아름다운 가을을 수놓고 있답니다.

물론 지금쯤 고향의 가을도 역시 알록달록 아름다운 낙엽으로 옷단장했을거예요..

아름다운 계절에 높고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노라면

남자든....여자든....

가을은 정말 아름답구나~~!!하고 감탄사를 아끼지 않죠..

하지만.....유작가님은 아름다운 가을만 되면....

가을은 아름다워~~~라~~~

사랑도 아름다워~~~~라~~~

섹스도 아름다워~~~~라~~~라~~~~~~~~~~~~~~~~~~~

.............


성은 아름다운 거죠..

사랑의 아름다움의 경지는 성이니까..

적라라한 섹스장면인듯싶지만..

성해방을 부르짖는 멋진 글이였습니다.



때묻은 사고방식에서 해탈되기를 바라면서..

성해방을 부르짖는 유작가님의 멋진 글 .....

재미작가님다운 글이였습니다.

중국에 계시는 작가님들 세속에 빠져

마음속깊은 곳에서 밤마다 부르짖는 성해방이지만...

감히 섹스라는 단어 하나 온전히 올리지 못하시는 분들의

질투를 자아낼만한 글이기도 하구요..





유감스러운건 .....

유작가님 진짜로 정열적인 로맨틱한 사랑을 못해보셨는지?

아니면 사랑의 최고경지인 정열적인 섹스를 상상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셨는지?

섹스장면 너무 편면적이라는 느낌이네요..ㅎㅎ

여자의 성적 고조를 노래하는 부분이 어쩌면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산골짜기나 오불꼬불 산길이나 신작로밖에 안되나요????

성적인 고조를 우주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자유의 여신으로 노래할수 없을가요?

작가님꼐서 노래하고저하는 성해방의 경지가 결코 산골짜기나 오불꼬불 산길이나..

쭉~~뻗어나간 지평선이 보이질 않는 신작로밖에 안되나요?

성해방의 경지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우주속에서 자유로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롭기를 바라는 맘이 아닐가 싶네요..ㅎㅎ

그리고...유작가님은 남자인만큼 남자의 성적 향수를 ....성적인 고조를 더욱더 아름답게 노래해야죠..

성은 결코 여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성은 여자와 남자의 결합이고 함께 손잡고 즐기는 과정이니까..


..............


그리고 마지막 구절이 유작가님답지 않은 마무림법이군요..

글에 군더더기가 많아졌네요..

글귀가 매끈하고 거침없는 맛이 잃어졌다는..--,--;;

다시한번 검토바라겠습니다.


멋진 글 구상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복받으세요...많이많이....^^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리겟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성호   - 2007/09/27 12:10:20  
이슬비님께 한표 보냅니다. 동감입니다.
소망   - 2007/10/05 11:51:57  
소설?야설?ㅎㅎ
읽어는 밧는데 이해가 안대네요 제머리로는 ㅎㅎ
그 병이름이 궁금해요 <쥐의 귀가 기여나옷다는>이거요...
마음의 소리   - 2007/12/21 06:07:23  
노처녀의 悲歌인 듯 싶다.

'봄에 연애를 하고 여름에는 섹스를 하고,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로다' 그럼 당연히 겨울에는 숨지는 것이 아닐까? 봄에 태어나고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무르익고 겨울에 죽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 인생이 아닌 가 싶다. 불쌍하기만 한 노쳐녀다. 인생을 즐길줄도 모르고 인생끝에 와서 마지막 남은 그 인생의 옷자락을 잡고 즐기고 싶다고. 일년사시절 봄으로부터 가을까지 계속 순환하지만 다시 오는 봄은 원래의 봄이 아니다. 지나간 봄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봄에 만나 여름한철 내내 연애에만 골몰하면서도 죽어라고 몸은 주지않던 여자', 인생을 즐길줄 모르고 무언가 지키려고 지나간 그 나날, 후회한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가는 가을의 옷자락을 잡고 살려달라고 단추 벗기에도 서투렀던 '나'에게 애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히려 미련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 지나간 인생에 대한 弥补가 아닐까!

쿵쿵 뛰는 심장소리, 인생의 절주가 아닐까! 소리 하나에 인생의 한 발자국이다. 쿵쿵하는 소리도 날이 갈 수록 약해질 것이다. 인생길도 한 걸음 나아가면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고 그 쿵쿵소리만 헤아릴 수 없다. 내 인생이 얼마 남았는가고. 누구나 후회없는 일생을 살기엔 다만 그 내디디는 한발자국 마다에 충실하게 열심히 내디디여야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미 그것은 가을을 타는 내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 내 발에 활기를 주는 손짓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 희망을 찾아 그 손짓을 따라 이 가을을 넘어 겨울에서 봄으로 계속 드팀없이 가야겠다는 즐거운 유혹에 빠져있었다.' --- 유혹은 유혹일따름이다. 희망은 희망일따름이고. 여자한테서 새 희망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다 죽어가는 여자한테서 무슨 희망을. '나'나 여자나 불쌍한 인간의 삶이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장석준   - 2014/04/19 14:02:34  
상당히 재미나게 읽은 수필입니다. 그러나 평가말씀은 삼가하려고 합니다.
keli   - 2014/04/19 14:10:56  
완전 쑈크예요 ~~
이목월   - 2014/04/20 02:22:36  
오..유작가님 한편의 아름다운 산문을 그 때 제 미숙한 필치로 단 댓글 너그러이 봐주시죠.

몇년이 지난 뒤 이글에서는 작가가 여자에 대한 몸의 탐닉을 또 다른 시각에서 볼수 있습니다.
제명에 살지 못하고 죽음을 두려워 했음은 문학의 또 다른 여정이 아닐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단순히 섹스를 벗어난 차원에서 인간과 문학의 관계를 심사숙고 하게 하는 것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가득한 사고를 홀로 가슴에.품고 죽어가는 사람과도 같은것이겠지요.

소중한 글이였습니다.


글에서 필자는 문학의 관계를 열어주는
양춘백설   - 2014/04/22 13:19:37  
수필 《脫膣》도 이 부류의 작품으로 연구할만한 작품이다.

이 글은 좀 리해하기 힘든 글임에 틀림없다. 우선 제목의 질탈이란 두 글자가 잘 리해되지 않는다. 말그대로라면 사전에는 없지만 아마도 여자의 질이 밖으로 내밀어졌다는 말일것인데 여성의 성기부분에서 발생하는 병증상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는것 같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원문에서 쥐가 나왔다는 말도 전혀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로서 아마 녀자의 질이 밖으로 내민것을 가리키는가보다.

그렇다면 작자가 하자는 말은 무엇일까?
몇번 읽어본 다음 느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양춘백설   - 2014/04/22 13:19:56  
이 수필에 접근함에 있어서 읽는이들은 구조적으로 말하면 두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조합시키고 있다는 이 특점에 충분한 주의를 돌려야 할것 같다. 그 하나는 로처녀의 자기의 질이 밖으로 내민데 대한 공포증과 이것을 하나의 병증이라고 생각하는 의심증의 발로이다.

다른 하나는 화자 즉《나》의 섹스과정에 대한 묘사이다. 예민한 독자들은 감지하였겠지만 이 로처녀는 언니의 죽음에 대한 할머니의 외곡된 판단으로부터 자기도 죽지 않기 위하여 섹스를 하여야 되겠다는 욕망으로 불타오르게 되며 드디여 《나》를 찾아오게 된다. 여기서 읽는이들은 그 원인을 딱히 모르지만 섹스를 하고싶은 로처녀의 대상으로 《나》가 선택되였다.

여기서 우리의 사색은 누가 선정되였는가에 중점을 둘것이 아니라 이 로처녀의 섹스에 대한 갈망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명에 대한 갈망과 완전히 밀착되여있다는것이다.
양춘백설   - 2014/04/22 13:20:18  
여기에는 작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의식을 암시하고있는데 그것은 즉 사람은 섹스를 하지 못하면 죽는다는것이다. 그 아래의 글은 이 로처녀의 심리와 행동과는 관계없이 화자 즉 《나》와 로처녀의 섹스 과정에 대한 생생한 재현에 필묵을 바치고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즉 《첫날밤》이라는 단어이다.

총명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 로처녀에게 있어서는 첫날밤이 옳지만 《나》에게도 첫날밤일가? 하는 생각을 하여보게 될것이데 생각이 여기에 이른 다음에 계속 글발을 읽어가는 우리에게 잇따르는 생각은 정말 말그대로 첫날밤을 치르는 로처녀는 완전히 무시되고 화자의 동작과 심태에 대한 묘사에 열중한 작자의 동기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대목은 이 글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일단 작업을 시작하였으므로 필자는 어쩔수 없이 계속 론술을 펴나가지 않을수 없다.

사실 이 글의 후반부는 화자의 로처녀와의 섹스과정을 쓴것외에 다른것이 없는것 같다.
그러나 잘 읽어보면 좀더 심각한것이 없지 않다는 결론에 이를수 있다.

양춘백설   - 2014/04/22 13:20:36  
여기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첫째, 《툭툭》과 《쿵쿵》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

언어학자라면 이 문제를 놓고도 길다란 문장을 지을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재간이 없고 그저 이 두 단어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한다면 전자는 보다 자연스러운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의성어(擬聲語)이고 후자는 보다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를 표현하는 의성어이고 따라서 처음으로 섹스에 임하는 로처녀의 긴장한 심태를 잘 나타낼수 있다는것이다. 사실 이 단어 하나로써 작자는 생명에 대한 약동과 섹스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는 로처녀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하고있는것이다.

양춘백설   - 2014/04/22 13:20:54  
둘째, 섹스 과정에서 화자, 즉 《나》의 아주 서투른 동작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것은 한방면으로 화자의 약간 긴장한 심태를 보여주고있으며 이것은 또 새것에 임한 화자의 극락의 경지에 이르는 격정을 재치있게 암시하여주고있다. 그 아래의 글에서 작자는 오르가즘(orgasme)에 이른 화자의 상태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육체의 동작에 대한 묘사에 중점을 두고있는것이 아니라 줄곧 정신상태에 대한 조명에 중점을 두고있음을 쉽게 보아낼수 있다. 읽는이들은 이 수필의 마지막 몇단락을 잘 읽어보면 마치 시에서처럼 오르가즘상태에 이른 화자의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가 그려져져있으며 또 상상적이미지가 생생하게게 표현되여있음을 보아낼수 있다.
양춘백설   - 2014/04/22 13:21:11  
여기서 필자가 힘주어 내세우고싶은것은 청각적이미지든 시각적이미지든 상상적이미지든 아무튼 모두 리얼하고 풋풋하고 기상천외로 대담하게 창조되고있다는것이다.

섹스를 하면서 들려오는 쿵쿵 여자의 심장소리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같이 들리며 그 여자의 몸으로부터 꼬불꼬불 도는 하얀 길을 련상해보기도 하며 심지어는 그 여자의 몸은 버스가 오며가며 먼지를 피우고 지나가는 신작로, 산언덕을 내려오면서 엽초를 태우는 아버지, 친정을 찾아오는 딸, 친구 보러오는 동무로 상상되기도 한다.

여기에 우리가 특히 빠뜨리지 말아야 할 화자의 말 한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즉 쿵쿵하고 들려오는 처녀의 심장소리가《여자는 나의 삶을 부풀게 하는 그리움이였음을 일깨워주고있는 같았다.》는 한마디 말이다.
양춘백설   - 2014/04/22 13:21:32  
이 한마디 말은 전편의 수필에서 바로 죽기 싫어서 섹스를 하여야겠다는 로처녀의 생각과 호응되면서 전편 글의 두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주고있으며 은근하게 수필의 주제를 암시하고있다.

그렇지 않을가? 살기 위하여 섹스를 하여야 하겠다는 로처녀와 여자는 삶을 부풀게 하는 그리움이였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민났으니 오르가즘에 쉽게 도달할수 있을것이며 또 그 오르가즘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아직도 더 긴 분석이 필요되는가? 여기서 작자는 대담하게 섹스의 리상적인 경지를 추구하고있는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틈이 없는 결합, 육신과 령혼의 완전한 결합, 모든 리념과 의식형태 속박에서의 완전한 해탈 이것이야말로 류순호씨가 추구하는 섹스의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양춘백설   - 2014/04/22 13:21:46  
셋째, 그러나 류순호씨의 섹스에 대한 상상은 상상일뿐 완전한 현실이 아니다.

오르가즘에 도달한 상태에서 화자의 머리에 떠오르는것은 천당의 황홀한 광경이 아니며 명승지의 절승경개가 아니며 또 많은 사람들이 섹스의 오르가즘상태에서 체험한다는 절세의 미녀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다는 환각이 아니며 미국사람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도시 뉴욕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농경문화적인 풍경 즉 작자가 멀리 고향에 두고온 그러한 풍경이며 촌냄새가 풀풀 풍기는 고향사람들이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에서 이 수필의 주제를 확대하는 작용을 하고있는바 작자에게 있어서 섹스의 오르가즘처럼 아름답고 황홀한 정신경지는 언제나 짙은 향수(鄕愁)와 끈끈하게 련결되여있다는것에 대한 암시로 읽을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이 작품에서 작자가 노린 기본 주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향의 농경문화적인 풍경이나 고향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 모두 우선 섹스 현장에 대한 문학적인 재현이고 오르가즘에 도달한 화자의 육신과 정신의 원상태에 대한 리얼한 재현이기 때문이다.

????   - 2014/04/30 23:00:31  
두번째 읽고보니 처음에 읽을 때의 화화끈함과 짜릿함은 사라지고... ㅠㅠ
꿈 꾸는 대지   - 2014/04/30 23:34:43  
정말 오래만에 와서보네요.
싸이트주소 기억하지못하여 선생님 이름 검색했죠 ㅋㅋ
선생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겠죠?
근데 어떻게되여 세월은 선생님 비껴가시나봐요.
저는 벌써 애 키우는 엄마가 되였답니다.
언제나 멋지신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 부탁합니다.
련희가 중국 할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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