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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자,서울대 현대문학
피안   Hit : 9290 , Vote : 790        [2008/05/05]


  "니카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세계 조선족 네트워크 신문화 운동에 적극 뛰어들겠다"...


   21세기 새로운 문학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994년 중국 대륙에 인터넷이 처음 들어온 뒤로 첫 싸이트문학홈페지가 세워졌던 1995년에서부터 어느덧 2008년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중국의 네티즌은 이미 1억을 훨씬 돌파하였고 각종 홈페지만 69만 4천개나 된다. 이러한 전산산업을 기초로 중국의 싸이트문학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 전문 문학싸이트만 241개, 문학원창(原創) 작품만 발표하는 홈페지가 268개 되는 때에 이미 다수의 중견작가들과 학자, 교수, 연구생, 대학생들이 분분히 이 네트워크 문학창작 행렬에 함께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마음의 소리’라는 닉네임으로 조선족의 네티워크 문학창작 대오에 합류하여 함께 활약하고 있는 길림성(吉林省) 동풍(東豊)현 출신 조선족 처녀 류경자, 그녀는 연변대학 중문학부에서 석사연구생으로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한국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과정에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은 읽기 좋아했습니다. 아무 책이든 재미가 없는 책이라도 손에 들기만 하면 놓을 줄 몰랐습니다. 사범학교에 간 후로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하였고 중국문학작품이나 세계명작들을 잡히는대로 읽어보군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문학에 대한 흥취를 키우게 되었는데 대학교에 진학한 후부터는 체계적으로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읽은 책들이 바로 내가 지금 문학공부를 하는데 있어서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중국에서 석사학위 받은 후 계속 중국 대학에서 박사공부까지 하려다가 조선족으로써 우리 글 문학을 외면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면 우리 글 문학분야의 최고 대학인 한국 서울대에 와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서울대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다. 또 환경을 바꿔 공부를 하게 되면 다른 나라의 학술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도 알 수 있게 되고 더 좋은 사유방식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대학원 2학기째인 그녀는 앞으로 박사논문은 한국현대소설로 계획을 세워놓고 비단 한국현대문학 뿐만 아니라 조선족의 문학작품들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탐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족문학작품을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경로가 바로 네트워크로써 작품을 검색하던 도중에 우연하게 니카와 접속하게 되었던 그녀는 니카에서 너무나도 좋은 작품들을 발견하게 되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니카와 비슷한 유형의 대형문화 내지 문학 전문 싸이트가 조선족에는 아마 유일하지 않을가 싶지만 중국대륙의 경우 1997년에 성립된 《榕樹下》같은 중문문학원창작품홈페지에서는 매일 1500편 좌우의 원창작품을 발표하는데 2001년 8월까지 이미 62만여부(편)의 문학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처럼 중국 대륙의 네트워크 문학창작 현황에 비하면 조선족의 네트워크문학은 체계적으로 확립되지 않고 가끔씩 서로 다른 유형의 싸이트 안에서 문학전문 폐지정도로 존재해왔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니카가 이와 같은 공백을 메워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 조선족문단의 연령대가 40- 50대 사이와 젊은 20-30대 사이의 벌어진 공백을 메워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냈다.

   더욱 공감을 느끼면서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게 된 것은 현재 니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적지 않은 문학네티즌들의 분포범위가 중국내 각 성과 세계 각국 여러 나라에 널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전세계를 향하여 퍼져가고 있는 조선족의 문학 청년들이 이 니카라는 문화대광장을 媒介로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역시 이 대오속의 한 분자로써 어쩔 수 없이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니카에서 새로운 꿈을 발견하였다.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는 조선족 문화시장의 좁아진 폭안에서 작가들이 글을 자유롭게 쓸 수도 없거니와 특히 문학지들이 분분히 도태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와 격식을 타파하는 젊은 새일대 사이버 작가군이 니카라는 사이버 문화대광장을 통하여 발굴되고 세계를 향하여 뻗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조선족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거대한 작업이라고 확신한다.

   일찍 2000년 4월에 중국의 싸이트문학평론가 元辰은 싸이트문학평론가와 전통문학평론가의 구별을 론하면서 싸이트문학평론가는 반드시 싸이트문학창작에도 참가하고 싸이트문학을 열독도 하는 네티즌이여야 하며 싸이트문학의 자각적인 주체로 되어야지 근근히 평론만 하는 사람으로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적어도 삼개월이상의 싸이트문학창작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그동안 니카에서 수편의 평론을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찬양일변도로만 흘러오고 있었던 니카의 댓글에 과감한 문학비판을 진행하여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사이버 문학전문 평론가로도 자리매겨지고 있는 류경자씨, 그녀는 니카의 젊은 문학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도 있다고 했다.

   “니카뿐만 아니라 문학페지를 개설하여 놓고 있는 여타 조선족 싸이트들에서 발견한 조선족 네트워크 창작경향은 주로 순수문학을 고취하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깊이가 얕을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참여의식과 현실비판의 문학원칙을 근본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들이 궁극적으로 사이버 문학작품의 질적 수준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없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니카에서 만나 읽어오고 있는 인터넷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대형 평론도 진행해볼 것이라며 니카의 사이버작가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흠모를 내비치는 그녀는 니카와 함께 문화가 앞장에서 선도하는 세계 조선족 네트워크 신문화 운동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고 다짐한다.



박준   - 2008/05/05 22:23:40  
너무 훌륭하세요.
세계 조선족 네트워크 신문화 결성의 가능성을 짐작케합니다.
姜美蘭   - 2008/05/05 22:48:24  
기사속에서 마음의 소리님이 주고계신 메시지가 너무 좋네요.
우리 사이버작가들이 반드시 사고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결국 사회문제 참여의식과 현실비판의 문학원칙이 하나도 없다면
사이버문학은 글장난에 멈추고 말게 될 것이 아니겠나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다행스럽게도 니카는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진행된 백일장만 봐도 그렇고
한편한편의 작품들이 모두 강렬한 사회참여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님의 평론들을 좋아하구요
꼭 성공하셔서 우리 민족의 세계화에 앞장서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두견화   - 2008/05/05 23:07:06  
마음의 소리님 안녕하세요.
뉴욕의 두견화가 인사드립니다.
우리 뉴욕니카에서 마음의 소리님을 만나보게 된지도
꽤나 오래 시간이 되였지요.
친구들께랑 집에 아들한테랑 니카에 대하여 자랑할때면
언제나 마음의 소리님같으신 분도 니카에 와서 우리 네티진들과
대화도 나누구 서로 의견도 교환한다고 말해주군했답니다.
우리민족에게 님같은분이 계셔서 어디가도 자랑을 할수있어
행복했답니다.

제가 일하는 가게주인님도 제가 너무 님의 자랑을 해서
다 알고있답니다.
제같이 별볼것이 없는 화룡아줌마에게 님같은 분이랑
계셔서 우리 민족에 대하여 자랑할수있다는것이 너무 행복했답니다.
항상 와서 님을 응원하여 드릴것이랍니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아미산월   - 2008/05/05 23:29:41  
좋은 기사,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희망찹니다.
걸어가는 문학의 길이 험난할지라도 투지와 열정, 인고가 없으면 찬란한 내일이 없겠지요.
나는 학문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학문과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기울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길은 바르게 놓여있는 법이니 그 길을 가는 것이지요.

나는 지난 주 비슬산 오현스님 시비제막식 가서 한국에서는 문학작품평 잘 하기로 이름난
중앙일보 이경철대기자 만나 내 고향 명산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고함지르며 내가 언쟁을 걸어
목소리를 높혔지요. 심한 말까지 했는데,이경철대기자 왈,
ㅡ'서지월선생이 있으니 그래도 한국문단이 유지되는거 아니냐'고 하데요.
그래도 나는 더 화가 나서,
ㅡ'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성토를 했습니다만
중앙일보 이경철 문학전문대기자도 얼마전 국문학전공 대학의 박사과정을 다 마쳤거든요.
문학작품평 잘 쓰기로 이름난 또 한 사람의 기자는 한국일보 문학담당 기자였던 김훈씨인데
그 인기 많은 기자 때려치우고 소설가로 변신해 <칼의 노래> 즉 <불멸의 이순신>으로 입신에 성공했지요.
다들 열심한 이들이지요.
나하고 20년지기이며 미당 서정주시인 일에 한번도 안 빠지고 혼신을 다한 한국의 두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이경철대기자(아주 권위있는 문예지「문예중앙」주간 역임,지금은 중앙일보 렌덤하우스 주간)하고
나였지요.
그만큼 열심히 변함없이 지내온 사이지만 할 말은 다해버리는 내 성격이었던 거죠.

류경자님도 한국에 와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며 그 길을 가고 있듯,열심히 해서
과거 세대 사람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썩어빠진 낡은 사고의 과거 케케묵은 지식인은 밀어내고, 정의로운 입장에서서 문학을 숭상하며
휴메니즘을 존중하며 나아가는 길이 인간답게 사는 문학의 길이듯이,
남들에게 작품으로 감동을 주며 인격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그런 세대가 되시길 바랍니다.
좋지 않은 모습들을 연출한 기성세대들은 자멸의 길을 갈 것이며
태양은 새롭게 떠오르는 법이지요.
오늘은 시를 쓰는 영남일보 문화부기자가 내「시산방」에 찾아와 함께 열띤 문학토론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학의 길은 도덕적이며 창의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아미산월   - 2008/05/06 00:49:22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조선족 학계를 넘어서서 한국학계에서도 명실공히 공존하는
그런 학문과 비평계를 넘나들기 바랍니다. 나는 후견인으로 향수하겠습니다.
한국학계는 학문과 문학비평 겸해 입신하는 경우가 선호돼요.
그래야 문학평론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거지요,서울대 국문과 교수들은 거의 대부분
문학평론가로도 명성이 대단하지요,권영민교수님이 더욱 그러하고요.
권영민교수님이 바로 비슬산에 이번 시비 세워진 조오현스님께서 제정한
<만해상>을 받은 거여요.백담사 만해마을에서 말에요.
내가 떠들석하게 조오현스님과 만해마을 언급한 것도 다 맥락이 있어서죠,
더러 어리둥절했을 겁니다만, 나는 늘 글을 쓸 때 연관을 지어 쓰거든요
그리고, 시와 소설도 겸해 문단의 비평활동 하는 성향도 짙습니다,
도움이 되는 말일지는 몰라도요..... 나중에 수입도 좋고요

.....영남일보 문화부 이춘호기자에게 니카 싸이트 열어
연변대학 종소리문학회 전은주양 시 <밤비>를 보여줬더니
그 기자도 탄복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서정시가
한 수준 끌어올리는데 공헌한 것은 마자막 연 <소낙비>의 이미지라면서 함께 공감했습니다.
박문희   - 2008/05/06 01:01:26  
세계 조선족 네트워크 신문화 운동,
사회문제 참여의식과 현실비판의 문학원칙.
중요한 구호이고, 그 실천의 선두에 니카가 서있다고 봅니다.
류경자씨를 비롯한 신인들이 또한 실천의 선두주자겠지요.

글로벌 시대 우리 문화의 새 지평을 여는 성스러운 작업에
젊은이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과감하게 떨쳐나서기 바랍니다.
봄소리   - 2008/05/06 11:24:47  
니카라는 문화광장을 통하여 더 많은 마음의 소리님 같으신
훌륭한 분들이 우리 조선족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데 앞장서주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합니다.
주성호   - 2008/05/06 12:20:14  
좋은 인물기사에서 받는 문학의 비판정신이 어떻게 우리 문학의 정신을 발견하고 규정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지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새로운 문학혁명을 꿈꾸는 나젊은 새일대 문학 신인들의 작품이 보다 더 무게있고 깊이있게 나아가야 하는 방법과 좋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류경자님같으신 분들이 더 많이 앞장에서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성호   - 2008/05/06 12:22:33  
류경자님께서 꼭 성공하시는 모습으로 니카와 함꼐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니카를 떠나지 않을거니까요.
쉽게 떠나가신 분들도 언제인가는 하등에 소용없는 알량한 객기같은것들들 다 버리고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어맞이않구요.
좋은 기사를 써주신 피안님께도 감사합니다.
김경훈   - 2008/05/06 12:42:43  
기사속에서 마음의 소리님이 주고 계신 좋은 메시지에 추천 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고싶은 말씀도 있습니다.
김경훈   - 2008/05/06 12:47:06  
니카와 만난 이래로 제가 니카에서 느껴왔던 가장 안타까웠던 점을 마음의 소리님이 말씀해주었습니다.
바로 니카의 문학신인들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깊이와 무게에 있어서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쳐있는것이 무엇인가는 고민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부분을 좀 말씀해달라는 유선생님의 부탁도 여러번 받았지만
후에 이 한계를 도전하는 몇분들 례를 들면 해빛아래님이나 이시은님 같은 분들의 몇편 글이 돋보였습니다.
틀림없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세우고 한편한편의 수필들을 멋지게 써갔던 유선생님의 영향이 아니였나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계안에서 배회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었지요.

김경훈   - 2008/05/06 12:50:16  
과거 금풍교수님이 백웅걸씨의 글을 읽으면서 댓글로 많이 귀띰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화려한 미사려구로 아름다운 미문을 만들줄 아는 재능있는 청년 문학도인 백웅걸씨의 글이 이 방면에서 그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무던히도 고민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에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더는 나타나지 않더군요. 젊은 나이와 사회경력에 제한이 드러나는것을 보면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김경훈   - 2008/05/06 12:57:17  
이렇게 실명을 직접 거론하여 옳겠는지 모르겠지만 진지한 문학자세로써 겸허하게 배우고 과감하게 탈피하는 계기가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례를 들면 니카에서 그동안 읽어왔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이 이목월님의 적지않은 분량의 수필들과 장해성님, 주매화님 등 몇분의 수필들입니다.
순수문학을 고취하는 이분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망연감이 문학과 사회는 언뜻 생각하기에도 무척 가까운 관계에 있는것이 아니라 아주 멀리에 떨어져 서로 다른 세계를 마주보는듯한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분들의 글들은 사회로의 진입구가 꽉 막혀있거나 또는 근본상에서 그쪽으로 향하려고도 하지않는 자취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이런것들이 결국 이분들의 글이 부딪친 한계가 아니였나싶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사회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글들은 대부분이 개성이 살아있고 숨결이 뛰는 맥박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것이 전은주님의 글들인데 갑자기 제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상해에 갔다가 만난 상해의 로인들을 보면서 연변의 로인들이 손주순녀들을 키우면서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진다는 묘사를 읽었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는 작품은 이렇게 잊어지지 않습니다.
김경훈   - 2008/05/06 12:59:45  
아시다싶이 문학은 사회의 의사 소통 수단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언어는 사회로의 의사소통수단이지 결코 문학이라는 쟝르를 빌어 혼자 자취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또 자취하여 혼자 읽어보는 문학은 결국 죽은 문학입니다.
진정한 문학은 독자라는 사회를 상대로 하는것입니다.
때문에 문학가는 사회의 일원임에 틀림없습니다. 더더구나 문학은 사회상을 반영해야 합니다.
문학이 즐겨 말하는 인생이란 결국 사회 생활이 아니겠습니까?

김경훈   - 2008/05/06 13:03:29  
니카라는 문화광장이 사회에 대두된 가장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고 여기에 동참하여
1백여개도 훨씬 넘는 댓글이 달리는것을 보면서 진정한 문학은 바로 사회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성숙하고 발전한다는것을 이 자리를 빌어 말해주고 싶었던것입니다.
이런것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면서 문학을 위한 문학만을 고취하는 분들은 결국 문학을 못합니다.
문학을 배울수도 없거니와 문학을 흉내내여 쓰는 글들속에 어떤 정신적인 령혼이나 사상의 세계를 구축할수가 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문학에서 다루는 가족 관계 교우 관계, 련애와 결혼, 전쟁, 죽음 등은 모두 사회 생 활의 양상들이기 때문에 이런 양상들을 기피하면서 아름다운 글만 쓰겠다는것은 실현불가능할 일일수밖에 없는것입니다.
김경훈   - 2008/05/06 13:07:08  
때문에 우리 글을 사랑하고 우리 말을 사랑하고 우리말과 우리 글로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쓴다고 합시다.
우리 삶의 희로애락은 어디에서 오나요?
바로 사회에서 옵니다. 때문에 사회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것이 첫째가는 과업인것입니다.
결국 사회가 작가를 완전히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절대적 결정론은 사실과 다르므로 다는 옳다고 말할수 없겠지만, 사회의 환경, 즉 교육, 즉 교육, 종교, 사회 제도, 심지어는 작가라는 직업, 출판업계의 상황, 생활 근거지 등이 작가의 문제 선택과 그 해석에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작가는 사회를 여실히 반영하다는 말을 하는것입니다.
김경훈   - 2008/05/06 13:11:44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 제가 마저 한마디 하고싶은것은 니카에서 무엇때문에 선별적으로 사회의 민감한 문제와 직접 부딪치는 뉴스를 헤드라인뉴스에 올리고 문학청년들의 적극적인 론쟁을 독려하는가 하는것입니다.
여기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 몇분이 니카를 떠난다고 소동을 일으킨것도 보았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으면서도 이 자체가 바로 그분들이 스스로 처하여 있는 한계를 드러낸것이라고 보지않을수가 없는것입니다.
김경훈   - 2008/05/06 13:16:34  
그렇다고 문학과 사회의 관계는 그렇게 명백하게 직접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도 말씀드립다.
니카가 사회문제를 거론하는것은 좋아하는 문학을 하기 위하여 모여든 문학청년들이 사회를 보는 의식을 키워줌과 동시에 사회속에서 민감하게 선택하고 아름답게 자각하자는것이 그 목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적어도 사회비판의식을 키우는것이 문학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요건이 아닐가는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사회의 어느 층에 속하며, 또한 그 층에 속하는 도덕률이나 인습(因習)을 견지하고, 그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로 말미암아 사회 생활에 어떤 특수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두며, 거기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내리기도 할수밖에요.
김경훈   - 2008/05/06 13:22:00  
그리하여 사회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글은 대하는 독자의 층이 한정될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사회에서 오고 사회에로 가야하는 사회참여의식을 가진 작품도
독자층이 한정될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순수 문학을 고취하는 작가들의 수준이 아직 한계를 돌파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래 교육 정도가 낮은 층이나 로년층은 상대하지 않는것이 특징인 순수문학작품을 만들어낸다는것은 말도 되지않는것입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마디 한다면 문학신인은들은 순문학을 고취하기 어렵습니다.
순문학을 배우기 위한 발판도 사회에로의 참여와 사회에서의 배움이 첫째이며 사회에서 건져올려
다시 사회에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회에서 만난 독자들을 통하여 사회에 영향을 끼치여야 하는것입니다.
김경훈   - 2008/05/06 13:24:52  
사회라는 이 망망한 바다와 하나로 어어져있는 사이버세계에서
사회를 외면한 순수문학만 한다며 꽃이나 외우고 시냇물소리나 외우는 문학은 이미 죽은 문학을 하고
죽을 글장난을 하는것이라고 말해주고싶습니다.
이상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것 같습니다.
좋은 인물기사였습니다. 기사속에서 마음의 소리님이 니카의 문학청년들 나아가 조선족 사이버세계에서
활약중인 문학신인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너무나도 시급적절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시은   - 2008/05/06 15:31:28  
먼저 마음언니...
제가 하고싶은 말들 윗분들이 훨씬 더 멋있게 다 말씀해드렸으니... 전 한마디만 할게요.
화이팅~!! ^^

김경훈님:
민감한 문제자체를 거론하기 싫어서가 아니라는점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아직도 관점들을 거두어들이지 않습니다. 아래의 헤드라인뉴스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달.통.이 되지 않는점들을 다 반.박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구제불능"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니카를 떠난다고 소동을 일으켰던" 장본인입니다. "한계"를 느끼고 다시 왔습니다. 그럼,, 좋은 댓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배울점이 많음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아미산월   - 2008/05/06 19:52:22  

**류경자님 이름, 3행시입니다.

수(流水)는 어디로 향해 길 떠나는가
이로운 듯 바람도 함께 길 떠나는데
운산(紫雲山)은 그 자리에서 천년침묵에 들었다

강물이 흐르는 것은 세월의 흐름 다름 아니며
바람이 불고가는 것은 처해진 현재상황일 게다
그러나 자운산은 끄덕도 않고 사상가가 되는 것이다.

청설   - 2008/05/06 20:07:22  
김경훈선생님 좋은 말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회민감문제에 대한 니카 부분 중진들이 일으킨 거부반응에 대하여
전면적인 해석을 주었다고 믿습니다.
청설   - 2008/05/06 20:09:48  
이 역시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바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처음 '백일장'을 시작할때,
세계 정치쟁점의 중심에 있는 세분 대통령과의 대화를 글제로 내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본질을 뒤바꿔놓으려거나
또는 순수문학보다 참여문학을 더 우선시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청설   - 2008/05/06 20:11:41  
그때 벌써 이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끝까지 참여를 거부해오는 적지않은 중진들에게 못내 실망스럽기도 했었지만
다행히도 소기했던 목적에 도달할수 있었습니다.
김상경 김혁 한국화 림현호 등 회원들이 사회문제에 있어서 과감하게 직시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대견했었습니다.
청설   - 2008/05/06 20:14:22  
우리는 제2회 백일장에서 한층 더 비약하였습니다.
잃어버린 안식처라는 글제에서
우리 삶의 정신적인 안식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우리를 개변시켜가고 있는 사회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쳐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림매화와 박은실 안향자 세분의 작품이 투표와 상관없이
이 문제에서 가장 선명하게 개성을 드러내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청설   - 2008/05/06 20:16:11  
이렇게 하는 목적은 바로 류경자씨가 말씀하신것 처럼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문학의 깊이와 무게가 자신의
한도를 드러내고 거기에서 더 이상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목적성적인 시도였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청설   - 2008/05/06 20:19:51  
서울성화봉송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을
헤드라인 톱기사로 다르구 나도 연속 2편의 칼럼(시사논평)을 썼습니다.
목적은 역시 우리 니카 문학청년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 문제를 빌어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사고방식을
키워주려고 함이었습니다.
이것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들에게도 놀랐지만
근본 이런것에 염증을 느끼면서 니카에 들어와보기도 싫어지기 시작한다고 하던
회원들도 적지않았습니다.
논쟁은 어떻게든지 다 좋습니다.
논쟁과정에서 보여지는 논쟁참가자들의 민족관 내지 조국관
이어서 드러나는 인생관은 많은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계기였습니다.
청설   - 2008/05/06 20:25:41  
나도 남의 인물기사자리를 빌어 쓸데없는 말을 널어놓는 같은데,
문제는 이렇습니다.
이와같은 사회의 민감문제를 탑기사로 올리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책이라도 있을가는 모색같은 것은 절대 하지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가 아니니까요.
다만 나는 이런 방편을 통하여 문학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즐기는 우리의 니카 문인들에게
'문학 본질과 사명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고민을 시켜보고 싶은 것입니다.
예하면 김경훈선생님께서 위에서 거론했던 몇분들,
이목월님이나 과거 니카에서 활약했던 낙화류수님,
외에도 백웅걸님이나 해빛아래님이나 장해성님 주매화님 같은 분들이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 가치와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향으로 잡아가기까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시민적 책임과 진실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기 위한 참여적 기능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청설   - 2008/05/06 20:29:04  
그러나 같은 대학생들로써 나이도 어리고 사회생활이 많지못한
전은주씨나 박은실씨 같은 분들은 용케도 이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와 개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아, 이런것은 결코 나이와 자신이 처한 객관적인 사회환경에다만 밀어버릴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박은실의 잃어버린 안식처에서 그려진 사회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일상에서 오고가는 사회의 한 부분과 부딪쳤을 때
그 자신이 어떤 사회적인 책임감과 비판적인 의식으로 문제에 도전하는가는
자세가 이럴 때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때문에 백일장 1등으로는 가장 잘 부응했다고 볼수도 있는 것입니다.
청설   - 2008/05/06 20:31:42  
말이 길어지는군요. 간략해서 하고싶은 말을 마치겠습니다.
한국의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박사연구생의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널어놓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현대문학은 역시 벌써 1960년대에 벌써 이 두 시각을 가지고 일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논쟁은 문제 자체의 대립적 성격으로 인해 평론가들 사이에서
서로 팽팽하게 전개되었으나,
결론적인 해결은 예술성과 현실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는 논법은 잘못된 것이라는 시각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말았습니다.

청설   - 2008/05/06 20:33:27  
작금의 중국 조선족문단에서 시의 사회참여를 두고 벌어졌던(벌어지고 있는)
김관웅 연변대 교수와 최룡관, 최삼룡, 한춘 등 시인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쟁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청설   - 2008/05/06 20:38:11  
서정주의 신봉자인 서지월 시인님의 여러 말씀들을,
니카 여기저기에서 배독하고 있다만은, 서정주의 시도 좋지만
'孔子曰詩可以怨(공자왈시가이원 : 공자님께서, “시로써 원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當怨而不得怨聖人方且憂之(당원이부득원성인방차우지) : 사람들이 당연히 원망해야 하는데도 원망하지 않으니 성현이 근심하셨다 ...는 말씀도 모름직이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청설   - 2008/05/06 20:38:32  

어디 그뿐입니까!
한국의 대 성현 다산 정약용도 '不虞國非詩也'라고 하셨습니다.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시가 시냐는 질문입니다.
꽃과 시냇물도 좋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시를 지어라는 뜻은
즉 시의 사회참여정신을 호소했던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청설   - 2008/05/06 20:41:37  
다행히 우리 니카의 시인들은 박은실 한룡운 홍순범 최금성 등 분들이 창작하고 있는 시들에서
적극적인 사회참여의식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결국 문학이란 사회의 유추적(類推的) 반영(反映)이라는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취(자기절로 취하고 혼자 취하는)하는 문학은 절대로
문학을 배우는 신인들이 취할바가 아닙니다.
청설   - 2008/05/06 20:44:38  
그러나 그렇다고 문학이 사회 그 자체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本性)을 찾아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도
상당하게 주요합니다. 이를테면 비교, 예시, 반증(反證)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명쾌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요.
그리하여 사회문제를 직시하자는 것은 결과적으로 순수문학 고취자들과
어긋나는 문학관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와 당당하게 부딪쳐야 하며,
결국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내는 데에 어떤 방식으로 목표를 두느냐는,
방법의 차잇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설   - 2008/05/06 20:46:11  
우리가 헤드라인뉴스에 선별적으로 사회민감문제를 가끔 다루는 것과
문학은 삶을 소재로 삼지만, 그 사회의 언어에 의해 표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다룰 수 있되,
결국 문학은 사회 전체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선별된 사회 양상을 다시 형상화하는 것이나
무슨 다를바가 있겠습니까!
청설   - 2008/05/06 20:49:41  
류경자씨가 네트워크세계의 사이버작가들이
자신의 함양도와 깊이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하여서는
사회문제를 직시하며 비판의식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문학이 사회에 참여하는 근본적이고도 진정한 의미는,
바로 독자로 하여금 '개연성 있는 허구'의 새로운 가치 세계를 체험케하여
격조 높은 인간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결국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은 모순되는것도 아니며 서로 배척하고 대립하는것도 아니며
참여가 없는 순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미산월   - 2008/05/06 22:11:35  
*****청설작가님께, 한마디!!!!!<1>

-'예술성과 현실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는 논법은 잘못된 것이라는 시각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말았다'는
청설작가님의 말은 공감하며 잘 본 견해라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극에 달했던 순수냐 참여냐 하는 것이었지요
즉, 순수문학이냐 참여문학이냐는 것이었는데,소련이 붕괴된 후로
무의미하게 되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 쟁점이 사라졌다고 봐야 옳을 겁니다.
시로 말하면, 민중시-참여시(노동문학 포함),통일지향시 같은 용어인데 사라졌지요.
한춘선생이 말하신 것 직접 듣기도 했는데 우선은 대단한 충격 같아도
새 이론을 접해보지 않은 상태에서의 충격인지는 몰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이미 끝난 흐름이지요.
지금은 한국문단에서 소설이면 소설이고 시이면 시이지 여기에 갈래를 규명하지 않습니다
임진각에 가서 피켓을 들고 휴전선 넘어가자며 통일시 낭독하는 시위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무얼 의미할까요?
작품자체의 완결성 또는 공감을 읨한다고 봅니다.주제도 자유자제로 선택하되
문학성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위에서 말한 예술성과 연관이 있겠지요.
참여난 목적이나 통일이나 시대적 이슈 등은 개인의 몫이라는 것이지요.
쉽게 말하면 전제를 하지 않고 좋은 적품 쓰면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미산월   - 2008/05/06 22:30:01  
*****청설작가님께, 한마디!!!!!<2>

나를 두고, 서정주의 신봉자라 했는데 반가운 말이 아니라 여겨짐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나는 서정주의 신봉자가 아닙니다,서정주 시의 신봉자입니다.
서정주 시의 신봉자는 같은 성씨인 나만이 아니고,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시를 쓰는 대부분이
서정주 시의 신봉자일 것입니다. 통계학적으로 규명짓는 건무리가 다르겠지만
간간히 중앙일보-조선일보 등 설문에 의하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내가 한국의 원로부터 신진시인까지 한국시인들 거의 다 알기에 유추해도 쉬이 짐작이 되지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또는 개성에 따라 서정주 시의 신봉자가 아닌 사람도 있겠지요
그리 많지는 않은 걸로 압니다. 대부분 서정주의 시에 대해서는 우러러 봅니다. 흠모합니다.
왜,흠모할까요? 서정주가 시를 잘 쓰기 때문이고 시가 좋기 때문이라는게 답이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문학을 합니까?
왜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문학을 왜 합니까?
아니, 왜 문학공부를 합니까? 왜 소설공부를 하며 시공부를 합니까?
여기서 공부라는 말은 대학이나 어디서 배운다는 개념 보다는
스스로 좋은 작품 쓰려고 노력하는 개념쪽에 가깝겠지요
즉, 자신이 문학하며 좋은 소설, 좋은 시를 쓰려고 다들 열심히 할 줄로 압니다.
문학평론도 마찬가질 겝니다.
그게 정답 아닐까요? 자장면가게를 을 왜 차렸느냐고 물으면 많이 팔아 돈 벌어 먹고 살려고
판다고 할 것입니다. 그 이전 더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겠지요.
역시 문학도 좋은 작품 쓰려고 하는 작업이니 남들보다 더 좋은 글 쓰려는 자세나 각오는
마음속에서 이미 내재되어있는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내가 이런 데에 시간 허비할 여유 없는데......)
아미산월   - 2008/05/06 22:36:15  
*****청설작가님께, 한마디!!!!!<3>

청설작가님은 서정주 시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대변할 줄로 압니다만
골자를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좋은 시를 내보이는 일인데
서정주의 시 말고 좋은 시도 한국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그만큼한 수준에 닿아있지 않다는 통설도 설득력이 있거든요
좋은 시를 말하기 위해 작자를 말하다 보니 서정주시인 이름이 거론된 것이지
내가 서정주를 신봉해서 서정주 선전하기 위해서 한 행위는 아닌데요!!
아미산월   - 2008/05/06 23:03:49  
*****청설작가님께, 한마디!!!!!<4>

이 말도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그러나 한국시에 대해 깊이 인식하다면 직접적으로 시를 쓰는 시인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대학에서 국문학이든 외국문학이든 전공한 교수들 내지는 평론들 대체로
서정주의 시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견해에 따라 그렇게 안 보는 경우 있을 수 있고
그러면 그렇지요. 방정식처럼 공식을 내놓고 디미는게 아니니까요)
문단이나 학계에서 한국현대시사 100년 지나오며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게 일반적 견해이지요

단, 백낙청교수는 동아일보에서 고은시인이 서정주시인 못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피력할 수 있지요,그건 자유니까요
유종호교수와 이남호교수는 반대입장이지요,어쩨겠습니까,그대로 두어야요
문인 각기 판단에 맡기면 되는 것이지요.
(남영전과 김관웅도 궤를 같이 한다고 봅니다,논리를 펴려면 논리를 펴는 장에 가서
펴든지 역설하든지 해야지,왜 니카에서 그 논리를 합리화 하려드는지,아무리 옳은 논리라 해도.....
해석이 옳든 판단이 그르든 문학하는 사람 각자 스스로 인식하는 여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보다 못해 선거유세해 표 많이 얻으려고 선동하나?라는 말을 썼지요)

니카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백낙청의 편이라면,서정주를 마구 들고까는 헤드라인뉴스
만들어 올리겠지요, 유종호 편이라면 고은 들고가는 헤드라인 뉴스 만들어 올리겠고요.
(이런 건 아주 잘목된 메체역할이지요만,역시 어쩌겠습니까)

내가 말하는 골자는 다음에 있습니다.
청설작가님이 나를
ㅡ서정주의 신봉자라 언급하시며
ㅡ서정주의 시도 좋지만
'孔子曰詩可以怨(공자왈시가이원 : 공자님께서, “시로써 원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當怨而不得怨聖人方且憂之(당원이부득원성인방차우지) : 사람들이 당연히 원망해야 하는데도 원망하지 않으니 성현이 근심하셨다 ...는 말씀도 모름직이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라고 장구하게 말씀 하셨는데 답을 바로 내리면 그걸 모른 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모르고 말할 나도 아니고 그런 것 쯤 모르고 어떻게 문학을 해나가겠습니까.
신봉자라는 말은 자짓하면 이유나 조건없이 따른다는 아주 위험한 말이거든요.
내가 몰라서 꼭 가르침 받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청설작가님이 언급한 것처럼 성현이 근심하였다 했는데
그럼,서정주의 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배급을 하지 말아야합니까? 읽지 말야야 합니까?
한국 문단일각에서는 친일시를 썼으니 교과서에도 수록되면 안돼며
타도해야 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시가 제일 좋다는 평가가 자자하고 그 아성은 무너지지도 않고
무너뜨리려 했는데 무너지 않았거든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청설작가님이 소설을 쓰니까 물어보겠는데
이광수는 어찌 하렵니까? 김동인은 어찌 하렵니까?
한국문단에서는 이광수나 김동인이나 싹쓸이 해야 된다고 난리를 쳤거든요
역시 일부세력이었지만 (그들의 예술성까지 묵살해버리는 행위거든요)
딴은,이광주 빼고 김동인 빼면 한국소설문학사를 얘기 할 수 없다고 하는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시, 시장르에서도 서정주를 빼고는 한국시를 얘기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미산월   - 2008/05/06 23:04:13  
*****청설작가님께, 한마디!!!!!<5>

이번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알 것입니다.
친일명단 자성된 것 가지고 책을 낸다고 하지요.
편찬위원도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선생이 비록 친일은 했지만
안익태선생 예술작품까지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각기 반응이 다르거든요,당연하지요
문제는 총체적 개념으로 풀어나가야 하겠지요.

음악도 그러하듯,문학작품도 마찬가지 성격이지요.
그럼,서정주는 다 알다시피 친일시 몇 편을 당시 국민문학 주간인
최재서선생이 같이 살자고 청탁해 써주었거든요,그리고는 직접적인 친일행위를
서정주는 하지 않았습니다.
확대해석이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마구 친일행각 일삼은 것같이 유포되었습니다.
어쨋든 한국에 대표적인 시인이 친일시를 썼으니 당연이 지탄의 대상은 됐지요
마는, 그렇다고 예술적으로 빛나는 서정주의 일생일대의 시를
휴지 사르듯 소각해 없애버려야 하는가 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우리는 좋은 작품이 우리 문학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며
위대한 스승이라 보는데, 그런 것과 작품과 어떤 선상에 놓고 임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 나가야 되는가 말입니다.
또는 내가 서정주를 거론한게 아니고 서정주 시를 가지고 거론했거든요, 분명히!!
아미산월   - 2008/05/06 23:16:30  
*****청설작가님께, 한마디!!!!!<6>

특히,류경자님이 서울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으니
서울대 국문과 교수들께 알아보시면 유익할 겁니다.
내가 지금 밝히고 있는 견해들이 온당한 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내 도선적 사고에서 내뱉는 강요 비슷한 행위인지를!
검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검증해 보지 않아도 박사과장 다 하고 나면 절로
판단이 설 겁니다만......

**좀 쉬었다가 마지막 [청설작가님께, 한마디!!!!!<7>]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미산월   - 2008/05/06 23:22:21  
*****청설작가님께, 한마디!!!!!<7>

ㅡ조심스럽게 폅니다. 실상은 조심스럽지 않아도 된다 봅니다만ㅡ

사실은 자주는 아니었지요,중국 만주땅을 간간히 갔었습니다.
한번씩 가는 것도 쉽지가 않더라구요. 어찌하였든간에 좌우지간
현금까지 니카에 정 들었듯이, 만주땅에 정이 들었었는데
내 뇌리에 뭔가 잡히는게 있었습니다.뭐냐하며는
그간 만주 가서 시인들은 서정주 시 이야기 하는 시인 한번도 못봤거든요
윤동주-정지용-김소월이더러구요.백석시인 이름도 안나오데요.
(백석,이용악도 시를 탁월하게 잘 쓰는 시인이지요.
어떤 이는 한국 최고의 시를 서정주가 아니라 백석을 말하는 경우도 있고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박씨봉방>이라 주장하는 시인들도 있습니다.)
나는 이래서는 좋은 시 못 쓰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시라는 개념을 두 가지 시각으로 나는 봅니다.
음미해서 좋은 애송시 부류의 시와 문학적 고도한 표현어법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는 쪽의 시로 분류합니다(나의 경우가 되겠습니다)
시가 좋아서 음미하는 쪽의 기호와
진자 좋은 시를 써서 좋은 시인으로 평가 받고자 하는 경우는 다르다고 봅니다.
후지의 경우, 문학적 고도한 표현어법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은 시를 대해야
자신도 깨달아 질좋은 시를 쓸수가 있겠지요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게지요

그래서 만주땅 몇몇시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당신들은 좋은 시를 써서 좋은 시인이 되고픈 건 누구에게나 희망사항인데
서정주 시에 대해서나 서정주시인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 없는냐고!
아직 파급이 안잘 안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정주가 한국땅에서 위대한 시인이며 대단한 평가를 받은 건 알지만
그간 서정주의 진정한 시를 접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아쉬워했던 부분이 이것입니다.
결론은 좋은 시를 쓰러면 뛰어난 좋은 시가 최고의 스승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정주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말고도 한국시인들이 많습니다만,
서정주와 궤를 달리하며 자신의 스승인 박목월과도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한양대 국문과 이승훈교수는
ㅡ나(이승훈시인)도 미당같이 접신(接神)의 경지에 들어 시가 쓰여졌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던 것처럼.......

끝으로, 서정주의 시를 두고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접신(接神)>인데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아미산월   - 2008/05/06 23:36:36  
*****청설작가님께, 한마디!!!!!<8>

<마지막 변명>

내가 니카에 올린 서정주의 시는 <동천>과 <상리과원>이 대표적입니다.
서정주를 신봉해서 올린 건 더더욱 아니며(문학하는 사람이 실력으로 맞서고,
판단을 확고히 해 그 작가나 작품을 높이 평가해야지 안그러면 자신이 우스운 꼴 되지요.
나는 그런 우매한 행위의 문학은 안해왔다고 봅니다만)

이미 <동천>은 서정주 측근시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시인들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최고로 평가하기로, 좋은 작품이니 선뵈였으며
역시 <상리과원>도 산문시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가 과거에 많아서
내가 좋은 시가 제일 좋은 스승 다름 아니니 읽어놓으면 도움 되지 않을까 해서
올린 겁니다. 다소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고 감지는 했지요. 내가누굽니까.
그러나 내가 기울어진 생각 아닌 바른 생각으로 하면 되는거지 하고 자신하며
올린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서정주 포함 다른 뛰어난 시인들 시작품이 무수히 있으나
공급을 못하는게 잘 알다시피 내가 돈주고 매입한 땅도 아닌데,
내가 마구 고랑을 타서 아무리 품질 좋은 볍씨라 해도 마구 심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서정주로 시작해서 서정주로 끝난 겁니다.
청설   - 2008/05/07 01:31:17  
서지월선생님! 서정주의 시의 신봉자이신 서지월선생님을 서정주의 신봉자로
잘못 표현한데 대하여 사과합니다. 이건 진짜 다시 생각하기에 따르면 엄청난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서정주의 시는 대단한 것이지만 서정주 인간은
일제침략자들에게 아부했던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청설   - 2008/05/07 01:35:58  
서지월선생님의 말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제가 시를 잘 볼줄 모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역시 서정주의 인간됨은 시인으로써 윤동주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시인은 시로 보아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서정주의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꽃처럼 붉은 밤새 울었다"는 서정주의 시에 반해
백번을 읽었습니다. (과장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애독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는 그 제목을 따다가 수필도 한편 썼던바구요.
청설   - 2008/05/07 01:49:45  
다음 몇마디 보충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서정주로 시작해서 서정주로 끝나고자는 시인"들도 많겠지만,
제가 아는 한국의 시학도들 내지 적지않은 기성시인들도
"윤동주로 시작해서 윤동주로 끝나는 시인"이 되고자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잠간 서지월선생님의 말씀속에 정정을 권고드리고 싶은 말씀은,
"서정주의 시로 시작해서 서정주의 시로 끝나고 싶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윤동주를 사랑하는 많은 시인들은
"윤동주의 시와 윤동주의 인격"을 다 함께 노래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물론 서지월선생님이 훨씬 더 잘 아시겠지만)
장장 반세기이상동안 윤동주의 서시가 한국민이 애창하는 시의
순번 제1위였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다가 서지월선생님의 소개로 이제는 서정주가 최고가 되었다고 하지만,
서정주의 시속에 윤동주의 서시와 어깨를 겨룰만한 시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설해서 서정주의 인격을 윤동주에게 비긴다면
하나는 반딧불이요 하나는 하늘에 휘영청 떠있는 밝은 달입니다.
하나는 까마귀라면 하나는 봉황새에 비길 것입니다.

문학을 배우는 신인들이 누구를 더 우러러야 할것이고
누구의 시에서 먼저 시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으신지요?
청설   - 2008/05/07 02:01:44  
다음 보충할 말씀은 친일파와 친일파들의 문학내지 문예작품에 대한 견해는
서지월선생님께서 보신 바와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안익태의 애국가뿐만 아닙니다.
한국민이 모두 애창하는 "선구자의 노래"도 최근에 연변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 노래를 지은 작사자가 친일파였을 뿐만 아니라 노래속의 선구자도 역시 우리의 독립지사가 아닌
우리의 고구려 옛 강토였던 만주벌을 짓밟고 다녔던 일제침략자들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이미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사회적인 통념상에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 민족의 독립투사들에 대한 송가로
인식하고 불러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끝없이 애창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고민입니다.
전국민적인 공감대와 사회적인 통념을 무시못한다는 것이 그래서 하는 말씀이 되겠고,
마찬가지로 서정주의 인격보다 윤동주의 인격을 더 숭배하고
서정주의 시보다 윤동주의 서시를 더 사랑하는 우리 조선족 문학 신인들의
사회적인 통념과 역사적인 공감대가 하루 아침에 서정주시인의 숭배자으로 하여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설   - 2008/05/07 02:13:32  
그러나 서정주의 시를 읽으면서 시를 배워야 함에는 아무런 이의도 없으며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 서지월선생님의 서정주의 시에 대한 우상화가 서정주의 인격적인 문제점을 숨기는 경지에 까지 왔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왕왕 문학신인들은 시를 좋아하고 시를 숭배하면 시인의 인격개체에까지 빠지는 경우가
푸술하게 많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서지월선생님은 포함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윤동주의 시에 빠지고 윤동주의 인격개체에 빠지는 것이
더욱 좋으며 더욱 얻는바가 많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서정주에 대하여 그의 시를 소개함과 아울러 이런 시가 창작되기 까지 서정주 시인이
겪어왔던 시대적인 상황과 배경, 그리고 서정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라는 것도 조목조목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오히려 더욱 서정주의 시를 빛나게 하는 것이며, 서정주 시인의 정말 좋은 시가 서정주 시인의 불미스러웠던
역사적인 행보로하여 함께 매몰되지 않을수도 있을 것이 아닐가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서지월선생님께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코스모스   - 2008/05/07 10:59:58  
마음의 소리님 정말 멋지세요.
훌륭한 분이 니카에 계셔서 니카가 더 빛나는것 같아요.

글구 좋은 댓글 달아주신 우리 아저씨두 멋지세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아저씨 열성왕팬 코스모스가 다녀갑니다!
****************************************************
니가 사랑합니다 !
코스모스   - 2008/05/07 11:08:49  
서지월 선생님도 멋지십니다!
존경합니다!
************************************
니카 사랑합니다!
아미산월   - 2008/05/07 11:42:03  
*****청설작가님께, 첨언<1>!!!!!

지금 다른 할 일이 많은데 변론을 안 할 수도 없고 큰일이구먼요.
진정한 시인은 시를 우선 잘 써야하겠지만 시만 잘 쓰면 안되지요
돌아가는 사회상황에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해야 되겠지요
나는 그만큼한 실력은 못 됩니다만, 처음부터 알몸으로 시를 썼기에
모든게 체험 그리고 현장성(백문불여일견)의 체취로 좀 언급하는 거밖에는 안되지만
정확한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내가 <선구자>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도 아니지요,한국에서도 난리났지요
경남에 있는 조두남작곡가의 기념관을 파손하는 등 난동도 있었고
청설작가님이 언급한 그 배경 등도 이미 한국에서는 다 알고 있지요

내가 말하는 것은 문학창작을 말하는 것이며 작품의 질적 우수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에 대한 것은 창작을 전문으로하는 내가 자꾸 나서서 피력할 게 아니라
그 부분은 고증하고 검증하고 비판하고 정립하는 쪽이 있지요
나는 창작품에 대해 우수성과 그렇지 못함을 가려서 다가오는 세대들에게
좋은 작가, 좋은 시인의 길로 가는데 자신의 실력을 쌓으라는 취지밖에 더 있겠나요
누구처럼 자신의 논리나 주장에 동의하라,박수쳐라,동조하라! 이런게 아니지요.
(청설작가님도 우리세대는 올곧게 나갑시다. 과거 비겁한 세력에 동조하시 맙시다)

내가 서정주에 대해 동조하라! 존경하라! 서정주 편에 서라!는게 아니잖습니까?
청설작가님이 나를 두고 위에[서 처음에 <서정주신봉자>라 언급해 버리니 내가 괴롭더라고요.
내가 뭐 <니카>들어와서 서정주를 선전하는 것처럼......굉장히 쇼크 받았지요
나는 원래 부드러운 거 따뜻한 거, 사랑스런 거,인간다운 거...........
이런 거를 선호하는 사람인데, 내 시를 보면 다 따뜻하고 정감 간다고 한 것처럼
...........................
나는 원래 절대 목소리 높이는 시람이 아니었거든요(영남일보 이춘호기자가 잘 알지요만)
세상은 더러 나를 격분시키데요

지난 비슬산 일연선사-조오현스님 시비제막을 댓글에 소개한 것도
중국조선족민족들은 모택동은 알아도 <삼국유사>를 쓴 일연선사를 모르고 있는 경우 더 많을 것 같아서
내가 상기시켜 주어 우리 민족정신사가 거기에 있음을 전해준 취지이지죠.
(한국은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세종대왕-이순신부터 배웠으니까요
나중 가서는 정몽주-일연선사 등 역사에서 배웠고요)
그때 서울에서 와 만난 이가 중앙일보 문학담당 대기자 이경철씨인데
이경철씨와 내가 미당 서정주 사후 지금까지 미당 관련 일에 한번도 빠지지 읺고
최선을 다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겁니다.
그래서 의리라 하는지 불변의 뚝심이라 하는지 좋은 소리를 들었다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시는지 모르겠네요,청설작가님!

서정주가 친일시를 몇 편 썼다 해서 사후에도 가깝던 사람들이 얼굴도 안 내밀고
특히,수많은 그의 제자시인들,스승의 작품은 다 인정하면서도..........
자신에게 우선 불리할까 모습을 바꾼 이들도 참 많아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외다
이건 한국문단에서 많이 거론되었던 이야깁니다.
특히 경희대학교 문학평론가 김재홍교수가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이 언급했으며
이경철기자와 나를 아주 좋게 평하지요.서정주 행사라면 그 문학적 위상을 기리는데
주로 안 빠진 문인이 이경철-나-김재홍-이근배-문정희-김남조 시인 등이지요

위에서도 장구하게 내가 말했는데,거의 대부분 내 개인 주장이나 내 개인 생각을 적은게 아니올시다
내 나름대로는 수많은 세월 문학해 오며 체득한 걸 말한것이 되리라 봅니다.
서정주와 윤동주 시에 대해서 견해의 차이가 큰데,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미산월   - 2008/05/07 12:10:19  
*****청설작가님께, 첨언<2>!!!!!

아무리 황순원의 <소나기>가 유명해도
김동리의 <무녀도>가 문학성에서 보면 우수성이나 소설이 갖는 무게 또는 사상성이 더 대단하지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황순원 보다 평생업적으로 봐서도 김동리가 더 대단하지요
(물론, 내 개인 생각일 수도 있고,달리본다면 하는 수없고,달리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그처럼 윤동주의 <서시>와 김춘수의 <꽃>이 아무리 유명해도
서정주의 <동천>을 못미친다는 건 일반독자 통계가 아니라 문학전문인들의
평가가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니 나는 중량감을 말한 겁니다.
고려대 이남호 교수가 쓴 평론이 있는데 언제 한번 보시면 설득이 갈 겁니다.
고은시인이 김소월과 서정주 시를 비교했듯이
김소월-김영랑-윤동주 등은 수준이 서정주 대에 못 미치는 전시대 시인들이지요.
(이것도 내 생각만이 아닌 한국시단 전문문학인들의 많은 언급속에 근거한 말임)

<사람의 아들>이문열과 <인간시장>김홍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는지요
<한반도>를 쓴 긴진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겠는지요.
분명 이문열과 다르지요. 감이 잡히시는지 모르겠네요.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나는 해방 이후 한국 소설계에 가장 큰 파급을 준 소설가는
이문열과 황석영이라 봅니다,지금 현재까지 말이외다. 그 이전엔 김동인 김동리가 있었고
최인훈 이청춘 김주영 김원일 등 한국소설계의 훌륭한 작품을 썼지만,지금까지 이어져 오며
이문열과 황성역의 작품의 위상과 보법이 넓게 펴져 있지요(순전히 내 개인 견해임)

나는 수많이 작품성을 두고 시인을 시를 논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구체적으로 여러 대안을 말씀드리지요.
나는 논객도 아니고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나
그 흐름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단지 내가 시를 직접 창작하는 시인으로써
미래의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가 보여줄게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며 그러다 보니 서정주의 시가 선두에 나온 겁니다.
서정주를 옹호하는 것과는 변별적이지요

위에서 청설작가님이 윤동주에 대해서 장구하게 말씀하셨는데
나도 윤동주의 시정신이나 시인으로 걸어간 삶에 대해 존경합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세대 시인들이 그때 상황에 처했다면
윤동주처럼 살다 갔겠느냐 하는 것도 의문이지요
그러나 일설에는 한국에서 일제치하에 일본감옥에서 생을 마감했기에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 되었지 윤동주가 남긴 시가 질적 우수성에서나
뭐 그리 대단한 시인이 아니라는 평가도 한국에서는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내가 체득한 것으로는 나는 아직까지 윤동주나 김소월이나 김영랑이나 두고 볼때
시를 잘 쓰는 시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이는 평론가들도 그러리라 봅니다.
(오히려 부쪽 시인으로는 백석-이용악이 시를 잘 쓰지요.)
그러나 서정주 정지용 고은 황동규 박재삼 등은 시를 아주 잘 쓰는 시인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고 그렇게 평가하고 있고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는 일반 시애호가나 여론이 아니라 실제 시를 창작하거나 문학평론을 전문적으로 하는
문학전문인에 의해 내려진 언급이라 보면 옳을 겁니다

내가 말한 행간의 의미를 좀 잘 파악해 보셨으면 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미산월   - 2008/05/07 12:29:16  
*****청설작가님께, 첨언<3>!!!!!

한국시단에서 많이 거론되는 게 이겁니다

1ㅡ작품의 질적 우수성
2ㅡ인간적 의리

그게 지켜져애 한다고 합니다.
아미산월   - 2008/05/07 13:07:13  
*****청설작가님께, 첨언<4>!!!!!

[시사저널](1991.10.31)

한국 현대시의 큰 산맥

서정주 시인의 시와 언어/“발명적․독창적인 部族 방언의 요술사”

柳宗鎬(문학평론가․연세대 석좌교수)


시인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우리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터줏말 혹은 모국어와 평생고질로 사랑놀이를 계속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도 하나의 가능한 접근법이다.

말에 반해서 터줏말과 죽자사자하는 사람이 곧 시인이다. 따라서 뛰어난 시인은 자기 ‘部族의 方言’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마련이다. 모국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우수한 시인은 뛰어난 언어의 연금술사인 것이다.

그러나 그릇 큰 시인은 부족 언어에 대한 기여만으로는 되지 못한다. 뭣인가 삶의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특한 생각의 갈피를 보여주어야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분량의 시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권의 얄팍한 시집이 우수한 시인됨이나 독특한 지혜를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언어구사에 있어서 창의성있는 기여와 본보기,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을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우리 시인 가운데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 좋게 구비한 이로 未堂 徐廷柱 詞伯을 드는 데 반대할 사람을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되는 경지에 이른 미당은 정히 부조방언의 요술사이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신선하고도 대담한 선포에서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라는 공자의 襲用에 이르기까지 미당의 말씨는 독창적이고 발명적이다. 그리고 손본 글귀가 높낮이 없이 두루 시에 도달해 있다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미당의 말씨와 말버릇은 소재에 따라 층하를 두는 법이 없다. 그리하여 이룩한 시 수백은 우리 시의 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金聖佑문화칼럼이 상기시켜준 ‘花蛇集 이후 50년’ 동안의 미당 詩歷은 조금씩 변모하면서 일저한 수준을 견지한다는 연속성을 보여준다. 물론 시세계의 변화는 지속적이다.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능구렝이 같은 길로/님은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와 같은 강렬한 관능의 세계, “등잔불 벌서 키어지는데/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엇구나”와 같은 ‘저주받은 시인’의 옆모습, “애비를 잊어버려/에미를 잊어버려/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아프리카로 가라는 부정은 격정적이고 현시적인 것이었다.

미당의 문학적 기원이 서구적이라는 평가를 얻은 것은 이러한 격정성과 강렬한 관능성과 ‘저주받은 시인’의 풍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초기에 있어서도 미당의 말씨가 크게는 터줏말에 의지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고향을 떠나가면서도 고향의 말씨를 버리지 못하였다.

짤막한 청년기를 보내고 이내 미당은 동양의 하늘 아래로 돌아온다. 그것은 <귀촉도>와 <木花>와 <국화 옆에서> 의 세계이다. 젊은 시절 잊어버리자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긍정과 새로운 발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수백왕조의 몰락을 겪고도 오히려 늙지 않는 저 물같이 맑은 소리”에 귀기울이고 “물같이 구기잖게 살아간” 백결 선생을 기리기도 한다.

긍정과 화해를 지향하면서 미당은 신라와 불교적 초월의 세계를 그리기도 한다. 선덕여왕을 기리고 노인헌화가를 재구성해보기도 한다. 달관과 체념과 만유인연설의 세계를 눈짓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시적 노력이 항시 터줏말의 새 가능성 탐구로 연결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시의 과제는 미당 넘어서는 것

무엇이라도 시로 올려놓을 수 있는 탁월한 솜씨는 <질마재 神話>에서 고향의 재발견으로 맺어지고 <안 잊히는 일들>에서 시로 쓴 자서전으로 맺어진다. 그것은 뒷날 세계 기행시로 이어진다. 이들 근작시에서 미당은 대담한 산문에의 접근을 시도한다. 분명히 우리 시의 기준 속에서도 산문시에 속하는 이들 작품에서 미당은 의젓한 지혜의 눈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토박이 터줏말을 줍고 갈고 닦아서 새 옥돌로 만드는 데 있어 미당이 발휘한 정성과 안목은 외경에 가깝다. 그 전에 정지용이라는 선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집 두 권으로 끝난 정지용의 시력을 짧았고 또 초행길이었다.

미당이 남긴 부족 언어에의 흔적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그것을 요약하기는 힘들다. 미당의 시는 이제 우리 터전을 지키는 큰 산이 되었다. 그 산그늘에 가리어 좀처럼 다른 시들이 햇볕을 못 받을 정도다. 한국시의 과제는 이제 미당이란 큰 산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Gihun   - 2008/05/07 14:08:27  
이 기사와 다른 하나의 문제를 제기해도 되는지요?

김경훈님은 대체 연대의 김경훈교수님이 옳으신지?

듣는 말에 의하면 이전에 니카의 김경훈은 연대의 교수 김경훈이 아니라고 공지사항으로 올렸다고 하는데
많은 곳에서는 교수로 불리우네...
미여니   - 2008/05/07 14:28:39  
현임 연변대학교 조선-한국학 학원 김경훈 교수님의 요청에 의하여, 현재 니카에서 활약하고 있는 네티즌 김경훈님과 김경훈 교수님은 동명이인의 별개인임을 밝혀드립니다. 이상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소중함을 전하며-
청설   - 2008/05/07 15:20:19  
서지월선생님의 첨언 1-3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시는 제가 문외한이라서...
서지월선생님 말씀 잘 새겨듣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청설   - 2008/05/07 15:21:29  
서지월선생님께서 계속 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조만간에 한번 시간을 내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미산월   - 2008/05/07 16:42:06  
*****청설작가님께, 첨언<5>!!!!!

그래요, 나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오로지 문학창작 그 자체만으로 해 온 사람이나
이 땅에 몸을 담아 살아왔으니 당연히 또 문학흐름이라든가 시각, 평가들도 두루 듣고 보고 느끼고
체득해 것이지요.

오히려 이론에 밝은 서울대 오세영선생님의 경우도 이론에 너무 밝다 보니
서정주 같은 감동적인 문장이 안 나온다 했지요
박재삼-송수권시인 경우, 한국 서정시 쪽에서 아주 시를 절묘하게 잘 쓰는 건 누구나 공인하는데
그분들도 배운게 별로 없지요,이론도 잘 모르고요,그러나 시 하나만큼은 잘 빚어내지요
물론,송수권시인 경우 일개 중학교 교사에 불구했으나 대한민국 어느 국문학전공 문학평론가나
국문학전공 교수이면서 시인인 사람 갖다붙여놓으면 이론적으로도 못 당해낼 정도지요
왜냐하면 체험적 시쓰기에 온몸 바쳐 시창작해 온 사람과 대학에서 이론 전공하며
시창작이 어떻니 하며 잣대재며 말해봤자 차이가 커지요.
서울 직접 가 보고 와서 말하는 사람과 서울 직접 가지는 않고 사잔 자료나 소개한 이론 보고
말하는 것 차이 다름 아니라 봅니다.

시도 소설도 대중가요도 한 두 개 가지고 널리 알려진 사람 있는데
그렇게 한두 개 로 이름 두루 널리 알려진 문인이나 가수들과는 차이가 크지요
여담 하나 하까요,
한국에서 대중가요계에 아주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른 가수 김정구이야깁니다. <눈물젖은 두만강>이라면
한국민이 모르는 사람 없을 정도인데 딱 한 곡 히트송입니다,
(물론 <수박타령>, <비단장수 왕서방>도 있긴 하지만)
그런데 대단하게 알려진 가수이니까요.
문학에서 시에서도 그런 경우 있지요, 명시 한두 편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 더러 있는데
문학을 본격적으로 해가는 우리가 봤을 땐 그게 약하다는 거지요,
다시 말하면 大家, 즉 一家를 이룬 큰 시인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 걸 사람들은 잘 모르고 다 유명하다 하지요, 유명하긴 하나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 큰 시인이냐
아니면 단편적으로 유명한 시인이냐의 차이점에 봐서도
서정주가 어떻게 자리매김 되느냐는 것이지요
친일시를 썼고 하는 건 위에서 말했듯이 따로 이야기가 되어야 할 부분이라 보는 것이지요

한국에는 많은 뛰어난 소설가가 있고 최인호 박범신 등도 있으나 물론 소설 잘 쓰는 작가들이지요만
내가 보기엔(이건 순전히 내 생각임) 이문열-황석영 같이 한 시대를 반영하는 대가적인
작품을 썼는가 하는데는 생각해 봐야하지 않느냐는 견해입니다.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삼포 가는 길>의 경우 그냥 잘 쓴 소설이며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에 자리매김 되는게 아니라 그 이상의 세계관을 보여준 대작들이라는 것이지요

시에서 말하자면 서정주(이건 내 생각만 그런게 아님)시인의 경우,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시인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단군이래 최고의 시인이니 아직도 서정주를 능가하는
시인이 안 나오고 있다느니 말하는 것입니다.
내 개인 미당숭배주의에서 나온 말이 절대 아니고요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간 내가 <니카>에서 한 일이란, 물론 서정주 시 소개하다 말았지만
서정주라는 시인이나 서정주 시를 선전하거나 독자 끌여들이려고 한 행위가 아니라
좋은 시는 공부해 두어야 자신이 더 투철하며 열린 안목을 키워
좋은 시를 쓰는 실력배양이 되니 서정주의 시를 운운한 것이지요

내가 연변대 전은주양 시<밤비> 해설을 할 때 뒷부분에 넋두리 같이 한 말이 많은데
시를 해 나가는 사람은 꼭히 알아두어야 한다고 보기에 장황하게 말했는데
그런 것도 옳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ㅡ서정주시인을 자꾸 거론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에 말하는데 잘 받아들이기 바란다. 문학평론가인 연세대 유종호교수는 '미당의 머릿속에 들어가면 시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까지 피력했고 보면 말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시를 잘 쓰야 하고 소설가는 소설을 평론가는 평론을 수필가는 수필을 잘 쓰야 하지 않는가. 그게 이름에 값는 첫번째 이유인 것이리라. 그리고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하고 농사꾼은 농사를 잘 지어야 하며, 붕어빵 장수는 검게 타지 않도록 노릇노릇하게 붕어방을 잘 구워야지. 어머니는 밥도 잘 하고 빨래도 잘 하고 자식을 잘 키우는게 본분이듯이 말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돈을 잘 벌어와야 하겠구먼. 그런데 나는 전업시인으로 20년 넘게 글만 쓰며 살아왔으니 전혀 그렇지 못한데 큰일이다만..... 시인은 시를 잘 써야 옳은 일! 이해가 될지 모르겠구먼! 그럼 학생은 공부를 잘 해야 되는가? 맞는지. **니카시단,전은주 시 해설에서,
아미산월   - 2008/05/07 16:53:20  
류경자님, 좀 들어와 봐요.
나 넘, 너무 힘들었소이다. 컴퓨터도 잘 못하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워드 친다는 것, 완전 땡볕에 노가다입니다.
말로 토론하면 그나마 수월한데 글로써 한다는게 여러가지로 신경도 쓰이기도 하고요.
박문희   - 2008/05/07 20:11:03  
서지월시인님,ㅎㅎㅎ서지월님 진정한 시인이심을 또 한번 증명하셨습니다.
너무 진지하면 힘드십니다. 아주 힘드심에도 마냥 진지하시니까 더욱 존경스러워질 밖에요.
덕분에 곁에서 저도 돈 안내고 시공부 많이 했습니다.

글구요, 청설님 두손 바짝 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공부를 하겠다고 하셨으니 인젠
더 "잡아패지" 마세요.ㅎㅎ 이제 더 잡아 패시면 약을 발라야 합니다.
그럼 시인님 약값을 대셔야 합니다.ㅎㅎ

문정희 여사의 시를 많이 못봤지만 그분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는 제가 굉장히 좋아합니다.
시인님께서 문정희님 너무 잘 알고계시나 보네요?

lili   - 2008/05/07 20:38:56  
여기 시간을 내여 천천히 터득하고 싶은 플들이 참으로 많네요. 니카의 매력은 역시 이런 솔찍하고 성의 많은 회원님들의 댓글에서도 많이 오는것 같읍니다.

류경자님의 어린 나이임에도 지니고 있는 위대한 포부와 지식범위에 항상 탄복하고 있고 또한 많이 배우고 있는 바입니다. 다음날 늦게라도 윗분들의 댓글들을 자세히 읽고 저의 감수도 한번 꼭 적어보리라 다짐합니다.

문학에 대해 항상 막연하게만 느껴지는지라...
마음의 소리   - 2008/05/07 20:58:09  
김경훈님, 청설님, 아미산월님 세 분의 토론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니카가 바로 학교인 것 같습니다.
세 선생님의 진지한 토론이 바로 저같은 새 세대 젊은이들에게 보여주신 좋은 토론의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토론의 과정이 바로 결론이 아닐까요! 간접적인 토론의 형식을 통한 지식의 전달.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서 견해가 다를 수 있으니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선생님들의 깊은 마음쓰심(良苦用心)에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를 써주신 피안님, 삼행시를 써주신 아미산월님(시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저에게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싶습니다.

한마디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성호   - 2008/05/07 20:58:55  
서지월님의 말씀에 추천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좋은 말씀에 모두 추천드립니다.
참으로 배울것이 많은 니카에...점점 빠지게 되는 매럭앞에 황홀할 뿐입니다.
아미산월   - 2008/05/08 00:22:15  
박문희선생님,반갑습니다.

저를 니카에 들어와 글 안 쓰고는 못 배기게 하는 <니카>가 무슨 마력을 지닌 듯합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초연하려 해도 안 되고 뭐든 말하게 하니 <니카>가 평범한 사이트는 아닌가 봅니다.
시인 문정희선생님은 아주 잘 아는 사이입니다. 바로 미당의 수제자가 문정희시인입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미당 사후 가장 스승에 대해 최선을 다한 시인중 한사람입니다.
사실은 미당 서정주시인의 수제자는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산맥인 <창작과 비평>쪽의 고은시인
<문학과지성>쪽의 황동규시인이지요. 제 직접적인 스승이신 고 박재삼시인과 함께 이분들이
미당의 수제자이지요. 그냥 제자가 아니고 대단했던 수제자들(1950년대)입니다.
여기서 수제자란 시만 잘 쓰는게 아니고 가장 스승 서정주 가까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 세대가 이근배시인 소설가 김원일선생 등(1960년대)이며 그 다음 세대가
문정희 송수권시인 등(1970년대)이며, 그다음 세대가 1980년대로 저희들 세대입니다.
미당 사후 수많은 이름있는 시인제자가 많으나 유독히 스승을 기리는 일에 최선을 보여준 시인이
문정희시인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중앙일보 이경철대기자 저,그리고 동국대 윤재웅교수인데
시인은 저밖에 없을 정도 였으니,미당을 기리는 행사에서는 저와 이경철 윤재웅 교수
3인방은 빠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간적 면모를 보여줬기에 한국시단에서도 참으로 놀랍다고 한 것이며
제가 미당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닌데도 미당의 제자 다름아니게 인식된 것이지요.

물론 저는 미당 생전에도 미당께서 저더러 <아들보다 낫다!>고 했으며 이런 것도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미당이 친일시 몇 편 썼다해서 제자들마저 스승을
가까이 안했는데 그건 잘못됐죠. 스승이 친일시 몇 편썼어도 스승은 스승이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문단현실이었던 것이지요.이런 상황에 저하고 이경철기자 윤재웅교수는
빠지지 않았으며 이근배 문정희시인 경희대 김재홍교수도 미당을 추모하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었던 분들이지요.

여기서 깜짝 놀랄만한 사건은, 미당 장례식때인데 묘소에서 하관을 하는데
김남조선생까지도 서울에서 이 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장지까지 왔었는데
아들과 같은 수제자였던 고은-황동규선생 모습은 뵈지 않았으니 저는 굉장히 서운했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에 아들은 안 오고 손자들이 온 격이 됐으니까요)
한번 가면 영원히 오지 못하는게 장례식 아닙니까, 여기에 누가 나타났는가 하면
미당이 친일시 썼다고 비판한 세력인 민중시 쪽인 김용택-안도현 두시인이 나타나
내 곁에서 마지막 가시는 미당에게 삽으로 흙을 떠서 얹었다는 사실입니다.
보십시요, 이게 문학하는 사람의 바른 자세이며 인간적인 면모 아닙니까.
비록 미당이 친일시를 써서 지탄을 받고 상대적으로 미당을 지탄한 세력들인데 찾아와
미당이 마지막 흙속에 영원히 잠드시는데 삽으로 흙을 떠서 얹어주었다는 겁니다.
이런 풍경을 두고 미당을 추종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겁니다. 김용택 안도현 두 시인이
미당을 추종하는 시인들은 아니지요, 인간적 도리를 한 거라 봅니다. 이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미당 생전이나 사후나 한결같이 그러했다고 봅니다. 이걸 잘못 해석해서
미당 추종세력이니 미당 신봉자니 하는 말은 맞지 않다고 제가 청설작가님께
역설한 부분이지요. 추종이나 신봉이라는 말뜻은 맹목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요.
종교에서나 독재정권에 걸맞는 말이라 봅니다. 그러니 함부로 쓰면 안되는
굉장히 워험한 말이지요

만약, 박문희선생님이나 저를 남영전시인 추종세력이니 신봉자라 하면 저는 열 받아서
가만 있질 못합니다.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서 자신의 입장을 떳떳이 밝히는 것을 가지고
편든다니 추종자니 신봉자니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이단자이겠지요
저는 그걸 설파한 것이라 봅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미당 서정주가 친일시를 썼든 어쨌든 미당의 시에 매료되지 않았던 시인
한 사람도 없을 정도라는 말이 한국문단에서 있듯이, 그만큼 미당의 시가 위대하다는 거지요
한국문단에서는 이게 통설처럼 되어있습니다.
그럼, 민중시의 중견이 되는 김용택과 안도현시인이 그토록 미당을 비판하는 세력에 함깨 해
미당을 못살게 굴었던 좌파세력인 민족문학작가 멤머이며 한국에서 유명세도 가장 많이 타는 현역시인들인데
왜 보기도 싫을 건데, 미당 서정주시인 장례식에 와서 수제자들도 얼굴 나타내지 않았는데
와서 마지막 가는 미당에게 흙을 얹져 주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역시 제일가는 시인으로 미당의 시는 꺾을 수 없었던게 아닐까요
미당이 무명시인이었다면 왔겠습니까, 시적 감동 없으면 쳐다 보겠습니까?

김용택 안도현은 저와 같이 1980년 시인군입니다. 저는 서정시 계열이고
그들은 민중시계열입니다. 민중시가 1980년대 득세하면서 많은 인기와 명예를 누린 것에 비해
(물론 좋은 시를 쓴 시인들임엔 분명했고요)
전통시 또는 서정시를 써온 제겐 시대적인 이슈가 없었으며 물살의 흐름을 안 타서 별 유명세 없이
밋밋하게 지나온 그 차이지요. 한국에서는 일반 독자층에서도 김용택과 안도현 모르는 사람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 한몸에 안은 대단한 시인들입니다.

저는 대중시인은 못 되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알려진 시인도 아니지요.
그러나 한결같이 민족서정시로 일관된 자세로 보여온 것이 제 밑천의 모두라 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진정한 문학은 대중성을 두고 작품을 쓰거나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미당 서정주시인이나 시에 대해서도 인간적 도리와 작품의 우수성에 대해
누가 뭐라든 저는 제 가치관은 흔들림없이 임하며 소신껏 문학해 온 게 전부일 따름입니다
아미산월   - 2008/05/08 00:33:19  
박문희선생님,
문정희시인을 아주 좋아한다니 제가 문정희시인에 대해 쓴 시 한 편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1회 미당문학제> 다녀와서

[즉흥시]

울었다고 한다

서 지 월

울었다고 한다 이 가을날
국화꽃 만발한 질마재 미당묘소에서
문정희시인이
누워계시는 스승을 찾아와

그때 나는 '미당백일장' 심사를
총지휘하고 있었는데
미당묘소에 갔다가 황금을 발견한 듯
그 풍경을 보고 돌아온 내 애제자
김삼경시인이 내 곁에 와 들려주는 말,

요즘같이 눈물이 마른 시대에
그래도 눈물은 남아 있어 한 소녀시인이
스승의 묘소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눈에는 안보이는 스승이 자꾸 떠올라
옥토에 눈물을 떨구며

눈밝은 스승은 모를 리가 없지
'울기는..... 자, 일어나
우리 질마재나 넘어나 볼까' 하시겠지만

그러나 그게 아니지
세상은 삭막해질 대로 삭막해져
다들 기러기처럼 떠서 어디론가 흘러가
제 목소리만 높이고 있겠지만

생전 특유의 너털웃음 잘 퍼내시던
스승 찾아와 눈물을 보여준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제자
암무당시인인 것을!

(2005년 11월 5일 오전 10시 48분)

*암무당:문정희시인의 별명.

** 나는 문정희시인을 존경한다. 문단 선배시인 가운데
존경하는 시인 별로 없는데, 미당의 제자 중에 어느 때나
스승의 일에는 빠짐없는 문정희선배시인을 그래서 존경한다.

그리고, 문정희선배시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가 내 시 <진달래 산천(비슬산 참꽃)>을 표절한 것에 대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은 문정희선배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문정희시인과 내가 '미당백일장' 심사위원을 같이 맡았음.


**니카 사이트에서 연변대 김관웅교수께서 최룡관시인 시가 한국 홍윤기시인 시 표절했다는 것은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소백산에는 사과가 많다>가 제시 <진달래 산천(비슬산 참꽃)>
표절한 것에 비하면 덜하다고 봅니다.
봄소리   - 2008/05/08 01:38:42  
대가님들이 문학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주고받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강의는 정말 아무데서나 받을수가 없을것입니다.
서지월시인님 너무나도 좋은 말슴들을 많이듣고 간니다...
또 올게요....
박문희   - 2008/05/08 02:00:39  
서지월시인님,
진지하고 좋은 말씀에 많이 감동받고있습니다.
사실 서정주 대시인님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 서시인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책을 몇권 봤다고 해도 이처럼
투철하게 알수 없었을것입니다.

제가 서정주의 시가 너무 좋아서 저의 홈피에 몇번 올렸었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
근데 누군지 이상한 리플(모욕적인)을 달아서 상당히 곤혹스러웠던 일이 있습니다.
요즘들어 곤혹이 싹 다 풀렸습니다. 그런 리플을 보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알게 됐습니다.

서시인님의 "울었다고 한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요즘같이 눈물이 마른 시대에
그래도 눈물은 남아 있어 한 소녀시인이
스승의 묘소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눈에는 안보이는 스승이 자꾸 떠올라
옥토에 눈물을 떨구며

참으로 눈시울이 젖게 하는 시입니다.
박문희   - 2008/05/08 02:09:37  
'문학하는 사람의 바른 자세와 인간적인 면모',너무 옳은 말씀입니다.
문학을 하는 모든 분들이 좌우명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속세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박문희   - 2008/05/08 02:34:23  
'진정한 문학은 대중성을 두고 작품을 쓰거나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 말씀 중요한것 같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위에 김경훈님 말씀은 대부분 아주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 즉
"사회에서 오고 사회에로 가야하는 사회참여의식을 가진 작품도 독자층이
한정될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순수 문학을 고취하는 작가들의 수준이 아직 한계를 돌파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래 교육 정도가 낮은 층이나 로년층은 상대하지 않는것이 특징인 순수문학작품을
만들어낸다는것은 말도 되지않는것입니다.때문에 결과적으로 한마디 한다면 문학신인은들은
순문학을 고취하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을 보고 아까 뭔가 말하려다 말았는데요,

서시인님의 말씀을 보고 다시 떠올리지만, 솔직히 김경훈님께서 이른 바 순문학에 대해 어딘가
착각하고계신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물론 문학인의 사회참여의식 제고 문제를 념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순문학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아미산월   - 2008/05/08 03:01:19  
내 소견입니다.문학을 하는 신분으로서 위에서 여러분들이
문학작품에 대해 견해를 밝혔는데,내 주장은 아닙니다.그리고 통설도 아니라 해야 옳겠네요.
내가 밝히는 소견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뜻에서 말하는 겁니다.
혹,시비를 걸어오거나 하면 피곤하니 미안하지만 자제하시고 그냥 흘려들어주세요.
그렇다고 <내 생각이 옳은데 당신들은 틀리게 생각하고 있구먼!> 도 아니올시다.
그러니깐 내 생각이 옳다고 피력하는 말도 더더구나 아니올시다.
단지, 내 견해일 따릅입니다. 문학적 열정은 좋은 거니 내가 그냥 지나치려다
내 손도 포개어 얹어주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해 드리는 말입니다.

문학작품에 있어서 사회참여 또는 사회성을 언급한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이미 거론이 되어 시끄러울 정도였습니다.지금은 끝난 이야깁니다만.
즉, <니가 잘났나 내가 잘 잘났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식의 논쟁이었지요.
일반론적으로 문학작품을 말할 때 예술성(작품완성도)을 맨 위에 놓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진실성(시대를 초월해 그 작품이 주는 감동),또 그 다음엔 사회성이라 보는데
사회성이 반드시 깔려야 한다는 것은 민중계열(한국의 경우) 의 논리입니다.
<지적(知的) 호소>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시에서 가능한 말인데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가 들어있어야 견고한 문학작품이 된다는 뜻으로 압니다.
주지시 계통이지요

쉽게 말하면,시작품에서의 사회성(민중시-참여시)은 고은-신경림시인 같은 부류가 되며
주지시의 경우 황동규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지요.
그리고는 서정시 부류에는 단연 박재삼시인을 들 수 있는데
위에서 보듯 어느 쪽에 있든 우수한 좋은 시, 또는 좋은 시인으로 평가되는 데는
어느 쪽이어야 한다는 것은 없는 경우로 보아집니다.
고은-신경림-황동규-박재삼 모두 한국시단에서는 어쨌든 지워지지 않는 대단한 시인으로
자리매김이 되었고
그분들 작품에 대해서 끊임없는 연구논문이나 평론이 수없이 쏟아졌고요.
한국시단에서는 확고한 시인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이게 문단의 평가이지요.
지금 한국시단이 어떤가 하면, 내가 알기로는 좋은 작품-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면 되지
사회참여를 바탕으로 쓴 시여야 한다든지,머리로 깊이 고뇌하고 사색하여 빚은
주지시이어야 한다든지,서정성을 짙게 깔며 한(恨)을 주정적으로 노래한다든지
어느쪽이어야 한다는 개념은 사라졌거든요.
즉, 소련이 붕괴된 이후로 무용론이 돼버린 현실입니다.
참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예술성 진실성은 나는 같은 맥락이라 보는데
예술성이란 미학적 표현 내지는 감동의 폭을 말하지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봤을 때처럼 얼만큼 감동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실성이란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조금도 탈색되지 않는 작품의 영원성이 되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청바지를 사 입었는데 입고 세탁하고 입고 세탁하고를 거듭할수록
청바지가 빛을 더욱 잘 발하는 것과 같겠지요. 옷감도 닳지 않아야 하고요.
사실 옷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문학작품(예술작품)은 가능하지요.

쉽게 말하면, 200백년전(200년 됐는지 100년이 됐는지 셈해 봐야 하지만) 빠삐용이나 레미제라블,
베토벤의 교향곡 경우, 지금 들어도 감동이 되고 앞으로 수백년 흘러 그때 사람들도 감동받을 만한
즉, 조금도 탈색되거나 감하지 않는 뛰어난 작품성-여기서는 진실성이 가미되어 있어서이겠지요.
여기에서 누가 레미제라블을 당시 프랑스 사회상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라면
나는 틀린 견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근본의 휴머니즘이 장치되어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인간이 지닌 근본속성은 기쁨 슬픔 그리움 이별 만남 환희 탄식 모성애 등 일련의 이런게 기본정서이지요
이런 걸 잘 담으면 불멸의 작품이 되겠지요,여기에 사회성-사회참여라는 건
하나의 도구(수단)가 되는 것이지 꼭 들어가야 하는 항목은 아니라 봅니다.

한국에서는 참 많이 귀가 따갑도록 쟁점이 되어왔던 부분입니다만
예술작품은 예술성이 우선 되지 않으면 감동이 삭감되어 진정한 예술작품이라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꼭 그 시대상황을 반영하여 불러야 한다는 것인가입니다
시대정신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인간의 근본속성을 잘 나타낸 노래가 더욱 감동을 안겨주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으리라 봅니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로 감동의 산물이지 메세지 전달의 도구가 아니거든요.

물론 사회성을 깔고 있는 작품이 위대한 것도 성립이 됩니다.
그 시대정신이라는게 시한부 시대정신 반영이 되면 안되고 영원한 시대정신의 반영이 될 때
위대한 작품이 되리라 봅니다,소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리라 봅니다.

한국의 경우 이렇습니다만,
시의 경우 김소월 윤동주 김영랑의 경우 시대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거든요
그런데도 한국시단에서 없어서는 안될 시인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수박이나 참외 사과 모두 과일의 덕목에서 뺄수 없는 것과 같다고 보면 옳지 않을까 싶네요
다 제나름대로의 목소리 맛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조지훈시인도 대단한 한국시인인데 4.19가 터지고
4.19는 한국현대사에 굉장한 의미를 갖는 민주화의 초석이 된 의거인데
조지훈시인이 4.19의거를 기념하는 시 <비(碑)>를 썼습니다.
즉, 시대반영-사회참여시를 쓴 것이지요. 그런데 그 시는 지금 어디로 갔는지 없고
꼭 흘러간 유행가처럼!~
조지훈하면 대표시로 <승무>가 남아 아직도 심금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나만의 견해가 아니라 그렇게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
이로 볼 때,좋은 작품이란 남는 시란 <비(碑)>가 아니라 <승무>라는 겁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보면 알 수 있지요.
김소월은 개인적인 이별정서를 진달래꽃을 매개로 해 노래했고요
윤동주는 별 헤는 밤 자신의 고독을 노래했는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소월이 가진 개인적인 이별에 대한 설움이나 윤동주 자신의 고독이
우리 모두의 이별, 우리 모두의 고독으로 정서화(情緖化)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예술작품으로서의 성공이 되겠지요
사과다! 배다! 수박이다! 참외다! 가 아니라 어느 것이든 잘 살려내면
만인이 선호하는 과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류경자님이 서울대 국문과에서 배웠다는 오세영선생님 왈,
ㅡ'네거리의 순이'
가 어디로 가고 없다는 겁니다.
사화참여시를 주도했던 1930년대 임화시인의 시는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뀜으로써 지금은 사라진 것 다름아니라 했습니다.
(이 말에 나는 동의합니다만 동의 안하셔도 무관합니다)
즉, 남는 시는 서정시라는 겁니다.서정시가 영원하는 것이지요
(내가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라서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은 절대 아니외다,오해 마시길!)

<부연>

1-일찌기 조지훈시인이
ㅡ詩의 영원한 바탕은 서정시라 했습니다.
2-서정주는
ㅡ머리로 쓰는 시 보다 가슴으로 쓰는 시가 오래 남는다고 했습니다
3-서정주의 제자 고은시인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민중시를 썼습니다
4-서정주의 제자 황동규시인은 머리로 하는 시를 썼습니다
5-서정주의 제자 박재삼시인은 가슴으로 하는 시를 썼습니다
**고은 시인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민중시를 썼는데
그 이전 허무주의를 노래한 <문의마을에 가서>가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시대반영을 한 작품 쓰기 이전에 씌어진 시가 <문의마을에 가서>입니다.

**나는 내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에서 역사성 내지는 민족성이 들어가야 진짜로
그 민족 그 국가에 공헌한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6-황동규시인은 <시는 구체적일 때 진실과 만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꼭 좀 상기해 두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상>
아미산월   - 2008/05/08 03:24:00  
다시 한번, 말씀 드리면

ㅡ'시는 구체적일 때 진실과 만난다' <황동규(시인.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미당 서정주에 의해 고은, 박재삼과 함께 <현대문학>으로 등단.
고은시인은 조지훈시인에 의해 추천 되기도 했음.
아미산월   - 2008/05/08 03:43:27  
박문희선생님,
사실은 문학평론 하시는 분들도 한국의 경우 심한데
석사-박사과장에서 배운, 드나든 문전의 이론을 끌어와서
시를 해설 또는 평할려고 하니 도식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짙고
또 전공이 전부가 아닌 한 시인 내지는 한 작가가 되다보니
두로 섭렵해서 보는 안목 못 따라주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빼어난 평론가가 있기는 합니다만 오류를 많이 법하지요
그래서,평론가를 별로 취급 안하기도 합니다.

송수권시인의 경우,
ㅡ'지가 詩를 직접 써봤어야 남의 시를 옳게 보지? 엉터리가 많아!'
하고,평론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유일하다시피 평론가를
많이 비판해 온 시인이 송수권시인입니다.
시뿐만 아니라 평론도 잘 쓰는 시인입니다.

또, 현장취재 <남도의 맛과 멋>으로 선풍을 불러일으킨 지방시인인데
서울의 유수한 식품영양학과 교수(한국 TV에 나주 나오는 권위있는 교수)도
그 책, <남도의 맛과 멋>을 보고 배우고 공부하며
송수권시인께 전화걸어 물어보고 만나자고 했으니
해박한 지식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이지요.

송수권시인의 대표적인 시가 <山門에 기대어>인데
영문학 전공한 대학교수가 얼마나 무식했으면(한국의 경우입니다만)
송수권시인의 시 <山門에 기대어>를 번역하여 내놓았던 모양인데
<山門>을 <마운틴 게이트>로 직역을 해버렸으니까요,말이 안되지요.
<山門>을 <마운틴 게이트>로 직역하는 건 중학생 수준이 되면 다 할 수 있지요.
학자들이 그게 문제이지요,공부를 안하니까요,자신이 갖고 있는 대안
습득한 지식 그것만 가지고 써먹을려고 하다보니 엄청남 오류를 낳는 것이지요.
<山門>이란 <마운틴 게이트>가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일주문
즉, 절에 들어설 때 처음 들어서는 문이지요,사천왕 상도 조각되어 있는
첫 관문이지요, 그것도 모르고 <마운틴 게이트>라 했으니 말입니다.


아미산월   - 2008/05/08 03:53:57  
산문에 기대어

송 수 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날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조선어(한글)로 좋은 시를 써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은 이 시도 놓치지 말고
꼭 탐독해 놓으면 좋을 겁니다.한국에서는 굉장한 시입니다.
전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교수가 당시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종합문예지의 하나인 <문학사상>을 창간해 인재를 많이 배출해냈는데
바로 1호로 뽑은 시인이 송수권이며 1호로 뽑힌 시가 <산문에 기대어>입니다.
서라벌예술대학 다닐 때 소설가 김원일선생과 함께 미당 서정주시인께 시를 배운 분이지요.

그냥 작품이 좋아서 뽑혀 <문학사상>으로 등단한게 아니고요
낙선됐다가 다시 뽑혀 당선이 된 <문학사상 신인발굴> 당선시입니다.
최종심 두 신인의 시를 두고 경쟁이 됐는데 심사위원인 이어령교수(문학평론가)가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를 낙선시켜 휴지통에 버렸는데
담배를 한 개피 피우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도저히 낙선시키기에 아까워서
이미 당선작으로 뽑아놓은 시를 낙선시키고 이 <산문에 기대어>를
당선시로 뽑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문예지의 권위를 살린다고 오직 한 사람만 당선시켜 뽑았거든요.
요즘은 한번에 5명씩 줄서기식으로 뽑아 여러명 시인으로 등단시키는데
그때는 오직 한 사람만 뽑았지요.(1974년)
그래서 송수권시인은 <휴지통에서 나온 시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으며
2년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풀잎에 누워>가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를 표절해
당선취소 됐던 사건까지 벌어졌엇습니다. 그러니깐 사연 많은 시입니다.

자랑 같습니다만,저의 시 <조선의 눈발>의 경우도 경쟁자가 저 말고도 5명이나 됐는데
다 제치고 제가 유일하게 뽑혀 당선이 됐지요.
저는 당시 소설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조정래씨와 부인인 김초혜시인이 경영하는
종합문예지인 <한국문학>으로 등단했지요.(1986년)
그 당시 조정래씨는 그리 유명 소설가도 아니고 <태백산맥>으로 뜨지 않았을 때이지요.
<태백산맥>을 연재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아미산월   - 2008/05/08 04:26:03  
바로 위의 송수권 시 <山門에 기대어>가 한국문단에서는
사회참여의 민중시가 득세하여 판치던 시대였었는데
전혀 사회 참여,위에서 몇 분이 말한 시대정신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한국적 한을 읊은 시인데 지금까지 이 시 <山門에 기대어>는
한국시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가 됐지요.

그러니 문학작품이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되니 하는 것이
한 때의 이슈로 작용한 것이지 오래 가지 못한 것이지요.
예술성이 우선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입니다.
중국 조선족 문단은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 한국현대시 100선에도 <山門에 기대어> 이 시가 뽑혔습니다.
좋은 시는 어떤 이즘이나 논리나 텍스트가 무용하리라 봅니다
그린가든   - 2008/05/08 12:24:19  
니카에서 활약하시는 모습 보기가 좋습니다.
책을 읽는 모습에서 지성미가 안겨오는군요.
학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따내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주성호   - 2008/05/08 17:32:04  
ㅉㅉ 서정주와 윤동주르 비기다니요...
두분 시인의 자화상을 검색하여 보았더니
인간상이 그대로 쫙 갈라지던에요....
말그대로 하나는 까마귀고 하나는 봉황새인데...
아미산월시인님은 까마귀를 봉황새로 만들고 봉황새를 까마귀로 바꿔보려는셈인간요...
주성호   - 2008/05/08 17:32:53  
그러나 한국시단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참으로 놀랄만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네요.
lisa1004   - 2008/05/08 18:42:21  
마음언니 너무 멋지십니다..^^
이렇게 멋진 언니가 생겨서 참으로 니카에 고맙고 고마운 일이네요..
항상 언니 못지 않게 열심히 하는 천사가 될게요~^^

그리고 열심히 강의를 해주신 분들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라면 저렇게 길게 열정적으로 플을 작성하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ㅠㅠ
역시 니카를 사랑하는 마음과 문학을 사랑하는 불같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옵니다..
좋은 강의 너무 고마웠습니다..^^
박향연   - 2008/05/09 01:12:58  
우리 마음 언니 끝내 헤드라인뉴스에 떴구나...
아침에 뉴스보고 댓글 읽느라고....ㅎㅎ
어찌나 긴지...ㅋㅋ
아미산월아저씨랑 청설아저씨랑 총동원했넹~
그만큼 마음 언니 매력있다는겜다..
우리 마음 언니 파이팅 불러드림다..
토토가 왔다갑니다.
박향연   - 2008/05/09 01:15:08  
그리고 아미산월아저씨!!
방명록에다가 제가 새 사진 올렸거덩요~~
와서 플 달아주세요~~
오지않으면 삐질거예요 ~~
아미산월   - 2008/05/09 03:42:43  
박향연양,
아저씨가 한국 유명시인들 작품성과 그 빈도를 언급했는데
글쓴이의 진의는 전혀 파악 않고 서정주와 윤동주를 비겼다고 바로 직언해 버리니
어쩐담? 무슨 말을 못하겠어.
그렇게 말해버리면 평론가도 시인들 시를 가지고 피력할 수 있겠나?
아저씨 개인 생각을 마구 말한 게 아니고 한국시사에서의 과거시인들 평가를
알려줬을 뿐인데.......
수희   - 2008/05/09 12:47:25  
오늘 다시 들어와보니 우리 니카가 정말 화목한 대 가정으로서
배울거 많은 대학교라는 느낌입니다.

서로가 힘든 일상에서 메말라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켜주기도 하고
위로도 해주면서 배움의 장으로 나감에있어서 많은 보귀한 의견들
과 지도적 언사들을 따뜻하게 느끼고 갑니다.

니카가 있기에 항상 밝게 숨쉬며 살아갈수가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三更   - 2008/05/09 15:32:18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이토록 열정적이며 서로 설득력 있게
주장하지 않으면서 이해가 되게 하는 문학사이트는
처음 발견했습니다. 두로 좋은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三更   - 2008/05/09 15:46:29  
송수권시인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지리산 뻐꾹새도 유명하지요.등꽃 아래서도 좋고
여승도 좋지요
三更   - 2008/05/09 15:48:19  
활기찬 유경자님 학구열이 대단하십니다
좋은 문학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三更   - 2008/05/09 17:45:56  
^^어,
아래 시 속의 '김삼경'이 바로 접니다.
제가 그 현장을 목격했거든요~~~~~

울었다고 한다 이 가을날
국화꽃 만발한 질마재 미당묘소에서
문정희시인이
누워계시는 스승을 찾아와

그때 나는 '미당백일장' 심사를
총지휘하고 있었는데
미당묘소에 갔다가 황금을 발견한 듯
그 풍경을 보고 돌아온 내 애제자
김삼경시인이 내 곁에 와 들려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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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 2008/05/13 08:31:30  
멋진 류경자님께 추천드립니다.
너무 훌륭하세요.
임유화   - 2008/05/14 08:59:09  
류경자님, 대단하십니다.
문학에 있어서 조선족의 등불 하나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주고 받는 리플 글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들고치고 들고까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고 주고받고...^^
뜻 깊은 이야기들이 많아 모니터에 푹 빠졌습니다.
외출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네요. 하지만 이것도 귀한 공부이니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김춘화   - 2008/05/14 14:55:08  
넘넘 멋진 언니세요~~
리순녀   - 2008/05/15 20:20:11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니카에 와계신군요
최정학   - 2008/05/21 03:00:21  
많은것을 배우고갑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니카에 계셔서 너무 좋군요.
조연희   - 2008/08/16 14:07:42  
마음의 소리님 넘 존경스럽네요...
김애화   - 2008/08/20 12:47:46  
추천 드릴게요
정금화   - 2008/10/04 07:00:05  
마음의 소리님. 너무 훌륭하세요.
문학을 잘 몰라 더 깊은 뜻을 말할수는 없지만 정말 인터넷을 통하여 문학을 더 새롭게 하고 풍부하게 한다는것은 너무 좋은것 같아요.
허수옥   - 2008/10/13 15:22:38  
존경스럽습니다.
황성준   - 2009/07/01 01:13:31  
마음의 소리님 오래만에 여기서 또 뵙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안선화   - 2010/06/10 11:53:19  
오래동안 소식없는 분이지만 반갑네요 ~~ ㅠㅠㅜ
마음의 소리님의 평론을 즐겨 읽었는데요.. ㅜㅜ
김성순   - 2010/06/26 17:26:49  
류경자님 ^^ 정말 멋지고 대단해요.

니카와 함께 문화가 앞장에서 선도하는 세계 조선족 네트워크 신문화 운동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고 다짐한다고 하셨죠 ㅎㅎ
저두 한축들어두 되요?

강신아   - 2011/08/22 19:27:03  
류경자님 ^^
잘 계시죠 .
박사과정인 류경자님 화이팅 하셔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리랑 고개   - 2011/08/26 12:02:30  
추천드려요~
정예은   - 2011/09/07 13:43:57  
서울대에 류경자님 멋져요~~~^^
어마나   - 2011/09/07 23:59:40  
서울대에 류경자님, 대단한 분이셔요 박사 과정까지,^^
저는 공부를 별로 잘 못해서 ..
졸업해서, 많은 좋은 활약 바랍니다~
정예은   - 2011/09/08 00:35:21  
류경자님의 이쁜사진이 바뀌여가는것을 다보구 있어요~
박사과정힘내시고 화이팅 하셔요~ 보구계시나요??^^
최미지   - 2011/09/08 10:31:28  
멋진 류경자박사님의 얼굴 보구 가요^^
나나   - 2011/09/17 15:45:42  
보름달처럼 이쁩니다 류경자박사님 어떻게 박사까지! 축하합니다~~~
지켜보는 사람   - 2011/09/18 00:24:26  
이 싸이트에는 멋지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리예화   - 2012/02/09 13:26:49  
서울대에 국어국문학과 박사님 ~~!!!
반갑습니다.
장미화   - 2012/02/13 01:00:49  
류경자님 멋져요! 니카에 박사님들이 많네요 ^^
남 설화   - 2012/02/15 12:16:37  
니카를 알리는 일에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니카의 창작이나 문학수준이 입소문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니카에 수록된 많은 작품들을 선정해서 책으로 출간하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니카가 더욱 널리 퍼지지 아닐가요?

더욱 많은 사람들과 나눔과 교감의 기회가 많아질거 같습니다.

함께 회이팅해요.~
오해련   - 2012/02/19 11:47:10  
훌 륭 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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