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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서울대비교문학박사]
김성희   Hit : 61292 , Vote : 2326        [2009/09/13]


[유순호 수필에서 읽는 포스트 모더니즘] [서사로 펼치는 수필 한마당]


1. 들어가며

유순호의 수필들은 대부분 소설가들이 즐겨 쓰곤 하는 서사수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다른 많은 소설가 출신 작가들이 쏟아내고 있는 수필문학작품들은 그 특성상 자기 체험적 이야기들로 기록되고 있으며 비교적 진실하고 솔직하게 기록되기 때문에, 문학성의 한계 안에서 자칫 읽히는 맛 곧 재미를 잃어오고 있다. 그렇게 익명이나 또는 허구의 내용을 주선으로 설정하고 창작하는 과정에서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수필작품들은 그런 한계와 부담을 안고 실패작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하여 소설가 출신의 작가들이 써내는 수필문학은 당연히 상당히 재미있고 맛깔스럽게 읽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어긋나는 경우가 오히려 수필가가 쓰는 수필작품보다도 더 많은 것 같다. 상식적으로 수필가는 소설을 쓰지 못하지만 소설가는 수필을 아주 쉽게 쓰는데, 바로 그렇게 쉽게 쓰는 수필들에서 오히려 소설을 쓸 때만큼이나 필요로 하는 상당한 기술과 그 기술을 드러내는 문장력 구성 또는 문장 표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만큼의 기술과 표현력 그리고 서사짜임새로 수필작품을 쓴다면 구경 어떤 모양의 작품이 만들어질가 하는 생각을 해봤고 유순호의 다수 수필문학에서 간단없이 그런 작품들과 만나게 되었다. 분명한바 우리가 이때까지 이해하고 있는바 대로라면 소설은 픽션의 이야기며, 수필은 논픽션의 글로 알고 있는데 유순호의 전체 수필작품들은 있을 법한 거짓말의 이야기를 실제 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그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소설로 볼 수 없는 것은 아무도 그것을 거짓말 이야기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작품 안에 흐르고 있는 정리는 다분히 시적인 抒情을 갖고 있으며 빈틈없이 흘러나가는 긴박한 敍述은 결코 수필가 출신의 수필작품들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힘들다. 그러는 가운데서 독자들이 구경 實像인지 虛像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대상으로 써나갈 때 이것이 고백문학인지 자조문학인지 그 성격마저 판단할 수 없는데도 결코 그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토록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은 진솔한 감정의 효과적 표현을 아주 능란하게 완성해내기 때문에, 무릇 유순호의 수필작품을 읽게 되면 어김없이 작품속의 이야기를 통하여 독자들은 관조의 세계에 이르게 되고 감동으로 끝맺는다.

유순호의 수필작품에서 관조의 세계를 감동으로 이어놓는 기술은 또한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으로 다가간다. 서사수필의 보편적인 특성에서 보여주듯이 할 말을 다 하고나면 어찌 보면 여운 따위는 없을 것 같지만, 유순호의 수필들은 대부분 읽고 나면 진한 여운이 남는다. 그 여운은 독자의 몫으로, 유순호가 독자들에게 만들어내는 수필작품의 최고 선물이기도 하다.

수필문학의 새로운 혁명을 꾀하는 소설가 유순호가 소설의 문학기법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써내는 수필작품들은 그가 중국 조선족 문학 내지 나아가 한국 문학의 기본 형태에 갇혀있지 않으며, 한글문화의 폐쇄성 바깥에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창작하는 작가임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족문화 내지 한글문화의 전통이 아닌 서구문화에 대한 향수와 동경 때문에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그의 문학작품 활동에서 각별히 주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은 바로 가장 많은 불확정성(indeterminacy)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수필작품들인 것이다.

2. 불확정성과 반리얼리즘

유순호 수필의 특색 중 하나는 고백문학도 자조문학도 아니며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분간이 안 되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많은 수필작품들에서는 기록극, 고백시, 역사극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양심적 리얼리즘(conscientious realism)과 그에 대조되는 의식적 리얼리즘(conscious realism)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면서도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서로의 개연성을 가지고 혼용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진행되는 제 2의 창조가 새로운 리얼리즘을 성취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내가 사랑하는 조선족의 정조”, “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 “나의 순애보”, “사랑하라, 내일이 없을 것처럼” 등 수필들을 보면 고백문학 같기도 하면서 자조문학 같기도 하고,  서사수필로 시작되었으면서도 구구절절 형태적이고 상징적이면서 또한 토로적이고 가창적이다. 그리하여 형태와 비형태가 함께 출현하고 상징과 대비가 함께 어우러지며, 토로와 서술이 한데 겹쳐질 때에는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수필인지 소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설화적 가창력은 장르까지 붕괴시키고 있다. 이처럼 거의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구경할 수 없는 재현불가능(unrepresentability)한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는데, 한마디로 타인의 모방과 추종을 거부하는 한계에까지 이르러 혼자 소모를 즐기고 예술고유의 양식을 모조리 파괴하고 있다. 때문에 이것은 반리얼리즘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반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이 진행하고 있는 제 2의 창조에는 또한 시의 隱喩를 능가하는 독특한 상징미까지 가미되고 있어, 처음에 한번 읽어내려갈 때에는 평범한 서사가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읽고 나서 아리송하여 다시 읽게 될 때에 이면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과 자신 말고 누구에겐가 보내고 있을지 모를 비밀스런 메시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포착된다. 그럴 때 이미 화자는 이야기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빠져나와 독자들과 함께 자기가 펼쳐온 서사에 대한 구경자가 된 듯이 이야기의 결미는 아주 상징적이면서도 내숭스럽게 마무리 된다. 이러한 것들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조선족의 정조”나 또는 “풀 냄새 나는 애인은 아름답다”, “사랑하라, 내일이 없을 것처럼”과 같은 수필작품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 수필작품 속의 “내가 사랑하는 情調를 가진 조선족의 - 몸을 파는 여자”, 그리고 “입에서 풀 냄새를 풍기는 - 바람 피는 애인”, 또는 “불륜을 저지르고 싶어하는 어린 계집애”와 같은 인물 형상들은 유순호 수필작품들에서 만의 상징미에 흠뻑 젖어 아주 대담하고도 당당하게 독자들 앞으로 다가오군 한다. 그리하여 원래 생명이 없는 것들이 유순호의 수필작품을 통하여 생명을 부여받게 되고, 원래 생명이 있는 것들엔 생명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이러는 과정에 보이는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이 펼쳐내고 있는 종류는 현란하게 다양하다. 적지 않은 수필들이 몽테뉴類 기법을 사용하여 우선은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그러는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통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의 내부 세계를 투시하려고 시도하다가 불과 두 단락을 넘기지 않고 홀연 경험적 귀납법으로 전환하는데, 단락과 단락의 이어짐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재치를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수필서사가 시작에서 마감까지 계속 경수필(informal essay)형태로 전개된다면 결국 ‘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주관적 고백문학으로 끝맺어질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나를 드러내는 개성적 고백의 자조문학에 그치기 십상이고, 우리 한글 문화권에서 범람하듯이 유행을 타고 있는 신변잡기로 떨어져버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은 시작은 몽테뉴類 기법에서 아주 재치 있게 중수필(formal essay)로 전환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소재들은 아무리 ‘나’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것 하나 객관화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객관화되어버렸을 때 예지로 분석되고, ‘너’와 ‘나’ 모두의 실생활과 관계되어 지면서 독자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진리를 펼쳐나간다.

원래 좋은 수필작품들은 지성인다운 품격을 바탕으로 대부분 철학과 사색, 관찰과 판단으로 귀납되는데 이것이 통상적으로 베이컨類 수필이 추구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즉 유순호 수필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나 인물들은 거의 소설작품 속에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호소하기에 바쁜 모든 인물들 이상으로 ‘나’를 비롯한 존재들이 객관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런 이야기들이 다분히 문학적으로 서정화 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의 수필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문학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까지 읽은 다수의수필작품들이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되어 있다.

유순호는 그렇게 형상을 살려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서 서사수필의 어떤 대가에게도 결코 짝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될 때에 거의 모든 언어들은 遊戱를 노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유희를 표현하고 있는 마술사 같은 느낌도 주고 있다. “여자”가 등장하고 “여자와의 성 행위”를 표현하는 상징어들이 등장할 때에, 유순호의 언어유희는 얄미울 정도로 자신을 적나라하게 등장시키지만, 이와 같은 등장을 통하여 참으로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끌어내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수필작품으로 “창녀예찬”과 함께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사계절’이랍니다.”를 들 수 있다. 몸 파는 창녀의 이야기를 통하여, “백천 사내들의 배설물이 적시고 간 창녀들의 몸이 썩지 않고 병들지 않는 섭생법”인즉 “철저하게 콘돔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닌 “사상과 미신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 상태로 작가에게 발견된다. 그리하여 더러운 창녀인데도 창녀는  ‘생리상 썩을 수밖에 없는 전체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민주주의를 빛내는 아름다운 꽃”으로 “예찬”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사계절’이랍니다”에서 유순호가 놀고 있는 언어유희는 말 그대로 언어유희(遊戱)의 마술사(魔術師) 그 이상이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움츠렸던 겨울, 봄 햇살에 젖고 싶어, 언제부터 가슴뿐만 아니라 몸 옆구리와 발끝에 이르기까지의 분홍빛으로 수놓은 막 피어나는 벚꽃 같은 어린 제 여자의 봄 가슴은 벌써...” -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사계절’이랍니다”> 중

“벌써 봄볕은 탱탱하던 가슴에서 몸의 구석구석 알알 샅샅이 신음과 함께 여름을 바라고 질주해옵니다. 신음할줄 아냐구요. 제가 여름이라고 하지 않었나요. 여름의 타는 신음은 그대로 푸른 산과 맑은 계곡, 그리고 시원한 바다가 모두 그립지 않지요.바다에 가면 산이 보고 싶고 산에 가면 바다가 생각나는 바람둥이라도 제 어린 여자의 봄볕을 따라 걸으면서 봄볕 따라 뻗은 몸의 조화를 보게 만듭니다.” -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사계절’이랍니다”> 중

“아름다운 계곡의 비경을 즐기며 더위도 식힐 수 있는 명산유곡과 같은 제 어린 여자의 몸을 넘고, 또 넘어 하늘 따사로운 여름 햇살아래 은빛 꿈 너울대는 가을 억새의 너울거림 속으로 달빛보다 희고, 어린 여자라는 이름으로 받는 느낌보다 수척하고, 하얀 망아지의 혼 같은, 하얀 억새가 되어 한줌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파르르 몸살을 앓듯 밑둥부터 머리까지 서로의 몸을 붙잡고 흔들리는 억새가 되어버린 저의 어린 여자는 어느새 억새풀 평전에 하오의 햇살이 엷게 비칠 때마다 바람 따라 흑흑 느껴 우는 가을의 여자가 되어 나를 보고 자기 전체를 다 잉태(孕胎)해버리라고 지지리도 못살게 굽니다.” -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사계절’이랍니다”> 중

여기서 유순호가 놀고 있는 언어의 유희를 빛내고 있는 단어들을 골라볼 수 있다. “분홍빛으로 수놓은 막 피어나는 - ‘벚꽃’ ”, “벌써 봄볕은 탱탱하던 가슴에서 몸의 구석구석 - ‘알알 샅샅이’”,  “아름다운 계곡의 비경을 즐기며 더위도 식힐 수 있는 ‘명산유곡’과 같은...” 이러한 유순호의 상징은 바로 위에서 잠깐 언급한바 있듯이 얄미울 정도로 직설적이기도 하지만 실은 직설적 자체가 더 큰 의미의 범위 안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이 은유는 훨씬 많은 의미를 포용하며 상생과 조화의 함축된 이미지를 독자의 상상 공간에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이 내재하고 있는 이야기와 이야기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단순 유려한 상징미뿐이 아닌 풍요로운 멋과 달큼한 맛을 동시에 함께 공유하고 있다.

3 탈장르화와 탈경전화(decanonization)

유순호 수필작품들에서 넘실대는 감성적 시적 언어는 마술사에 가까울 정도로 유희를 놀듯이 자유분방하지만, 보다는 언어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의 기상천외한 거대담론이다. 도리대로라면 우리의 경전문화는 문화와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통합적 신화와 같은 것이어야 하는데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 나이 어리지 않아요, 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이랑 술 마시다가 그런 일 경험했어요. 좀 어렴풋하지만 그런 거 할  때 즐거움이 뭐라는 것도 다 알아요, 그런데 이제는 기숙사에서 나오고 싶다고 한다. 자기도 같이 살 수 있게끔 조금만 더 큰 집으로 이사하면 안 되냐고 나를 재촉한다. 입으로는 아빠라고 부르지만 같이 살다보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사랑하라, 내일이 없을 것처럼> 중

여기서 이 수필은 유순호가 모든 수필작품들에서 즐겨 사용하군 하는 몽테뉴類에서 베이컨類 기법으로의 전환을 통하여 귀납처리하는 방법으로 결미를 맺어도 무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펼쳐진다. 인간의 屬性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야성적인 본능을 추출해내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남자인 내가 실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나에게, 계집애는 같이 실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실수하면 미치게 된다고 하는 나에게 계집애는 또 같이 미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렇게 미치면 우리에게 더는 내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니, 그냥 없을 것처럼 미쳐보자고 한다. 미치는 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 <사랑하라, 내일이 없을 것처럼> 중

이렇게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의 문화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과 인간의 기본 근성을 이루는 보편타당한 지식 체계 또는 인간의 윤리와 진리의 틀을 깨부수려고 한다.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적 상황은 유순호의 허다한 수필작품들에서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산에만 가면 사고를 칠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우뚝해서 황홀에 빠진 매화와 벌들과 앙상불이만 봐도 마음을 설레어집니다. 그때도 여기저기서 채집해든 나무이파리들을 손에 들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눈앞에서 실험실 캠퍼스가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제가 스스로 저를 버렸습니다. 지금도 이 숲속에서 누가 와서 나를 콱 가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참회하는 계절> 중

“오늘 밤에 잘해주지 못했던, 내일의 계집에게 '오르가즘'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드리기 위하여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겠다, 젠장, 지금은 달이고 태양이고 그게 다 무슨 소용있나, 민초(民草)들에게는 그럭저럭 죽지 않고 돈만 많이 벌어서 잘 살아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긴 어떻게 잘 사느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 <젠장, 그게 그런거지뭐> 중

“조선족 노처녀들아, 고개를 쳐들고 가슴을 내밀어라! 뭐가 아슴찮으냐! 자유가 있겠다. 돈도 있겠다. 지위도 있겠다. 고단한 처지를 슬퍼하지 말고 비관하지 말어라.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말고 차려진 것에 체념하지도 말어라. 구둣소리 요란하게 딸깍거리고 엉뎅이도 맘껏 흔들어라. 일백번 소개팅하고 이백번 맞선봐도 탁 털고 돌아서면 너희들에게는 영원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냐. 이백번 데이트하고 삼백번 바람피워도 너희들의 체면은 연애라는 명분이 지켜주고 있잖으냐!” - <노처녀 만세> 중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런 모든 포스트모던적 상황이 출연하고 있는 탈경전적 경전문화에 대한 파괴는 어김없이 탈장르화와 장르간의 혼합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수필은 시, 소설, 희곡, 평론 등 문학장르의 모든 속성들을 골고루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장르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문학은 수필이야말로 탈 장르의 근간적 역할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격적인 문학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가장 잘 결합되어 있는 것도 유순호 수필작품의 또 하나의 특성이다.

4. 혼성모방과 포퓰리즘

이상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불확정성과 반리얼리즘, 그리고 탈경전화와 탈장르화의 특성을 조성하고 있는 풍자적, 조롱적 모방을 통하여 또 한 번 장르의식의 붕괴를 꾀하는 최신 수필작품으로 “뽀뽀시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젊은 남녀가 한 몸이 되어 뽀뽀를 하고 있다. 나의 얼굴과는 한 뼘도 되나마나한 거리에 두 남녀의 입술이 마주 붙어 있었다. 그래 당황하여 얼굴을 돌렸는데 돌린 이쪽에서도 또 두 놈이 뻑뻑거리고 뽀뽀를 해댔다. 그래 더는 돌아설 데가 없어 머리를 푹 떨구고 서있으려니까, 뒤에서 픽픽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 <뽀뽀시대> 중

“가까스로 빈자라기 하나 생겨서 제깍 차지하고 앉으니까 곁에서 또 어떤 남녀가 둘이 뽀뽀를 해대는데 흘깃 훔쳐보니 웬걸,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마주 앉아서 뽀뽀를 하고 있지 않는가. 온 얼굴에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것은 물론 입술인 데까지도 깊은 주름이 내리덮였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입과 입을 부딪치면서 뻑뻑하고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I love you”를 내뱉는다.“  - <뽀뽀시대> 중

“그런데 마주 앉아서 샌드위치를 물어뜯기 전에도 두 놈은 또 게사니처럼 앞으로 목을 빼들고 뽀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뽀뽀시대> 중

이 수필작품의 극적반전은 “뽀뽀는 사랑해서 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 “사랑을 잃어버릴 가봐 불안해서 하는 것”이 되는데, 결미에서 “사랑을 제일 많이 표현하고 사랑을 제일 많이 확인하는 사람들이 이혼도 제일 많이 하더라.”는 “아주아주 황당한 이론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하나도 황당하지 않으며 아주 상식적인 이론이지만, 이 이론의 가치와 개념은 기존의 경전문화가 정의하고 있는 최고 가치와 문화의 개념을 가벼운 풍자와 함께 조롱하는 방법으로 가차 없이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혼성모방의 역설적 서술을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게 되는 ‘뽀뽀’라는 행위의 정당성을 보편화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상징을 통한 작가의 마음이 겉으로는 지어 우스운 듯이 느슨하게 풀려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하게 팽창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보편내재성(immensity)이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장 좋은 설명이 되기도 한다.


5. 나가며

미국에서 서구문학을 배우고 있는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에서 보이고 있는 새로운 시대정신, 안식소 또는 패러다임의 개념들은 이론으로 정의하기는 쉽지만 그러한 정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언어들과 형상화된 대상들, 그리고 개성적 표현의 특이성은 결코 간단치만은 않다.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순호만의 개성적인 문체의 확립과 표현에서의 새로운 예술미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의 탈경전적 탈장르화의 제재와 혼성모방의 포퓰리즘을 가미하면 과거 과학 기술과 계몽사상에 근거한 인본적이고 이성적인 삶의 양식이 지배하던 시대에 진행되었던 문학양상과는 판이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과학과 이성으로 특징지어졌던 근대의 문학양상을 탈피하면서 도주하지 않고 마주서서 파괴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이다.
  
이 같은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유순호의 수필문학 형태는 작은 범위에서 문단 내지 문학세계의 기성권력에 대하여 반항하는 것이 될 수 있지만, 큰 범위에서 우리는 근대의 문학형태에 대한 비판과 극복에 대한 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원래 하나의 운동이듯이 말이다.

때문에 운동하는 문학으로써의 유순호의 수필작품들은 작가 개인의 체험적, 기록적 자조문학인 것이 아니라 소설가다운 상상력이야말로 작품의 母胎역을 하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만의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기법이 충일하고, 수필에 투영시키는 상상력과 직관력,  연상력이 뛰어나게 표현되곤 한다. 서구문학의 눈에 한국수필이 고등학교 수준의 작문정도 밖에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순호의 수필문학이 도전하고 있는 서구문학의 치열성이나 미학성, 그리고 주제에서 소재로의 전이라든가 사물의 형상화를 의미화로 연결하여가는 서구수필의 풍격은 말 그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최고봉에 달하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최고봉을 바라고 가는 길에서 지금까지의 유순호의 다수 수필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들은 꼭 정상에 오르려는 목적보다는 소설가 출신의 작가로서 소설문학을 수필문학에 혼용하여 새로운 풍격의 수필혁명을 꾀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혁명의 앞장에서 달리고 있다는 자체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이런 혁명자체가 실험성이 짙은 한 문학형태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여느 사람들이 다 가는 길로 가기보다는 더 힘이 들더라도 자기가 진정으로 가고 싶은 자기만의 길을 원한다는 데서 우리는 그 나름의 자기식 자유로움과 만나게 된다.

이 자유로움 앞에서 우리는 당혹하며 여러 가지 반응을 하고 있다. 특히 경전적 문화의 기존 가치관으로 유순호의 수필작품들과 대면하다가는 그 작품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해박함이 때로 난해하고 생소한 느낌마저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순호 수필문학에서 읽혀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전히 바야흐로 시작일 뿐이다. 아직도 효용론은 불분명한바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랑하지 않다. 여러 가지 미적 쾌락으로 재미, 긴장감, 해방감, 만족감, 충격 등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나아가 상당한 교시 적 기능도 행하고 있는 바다. 이러한 면에서 유순호의 수필문학은 여타 수필대가들의 수필작품들에서와 같이 우리가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학적인 진리만은 아니다. 더 나아가 문학이 사회 비판적 기능으로 확대 변형되고 있는 것은 퍼그나 희망적이다. 그리하여 시대의 기존가치 또는 기존체제를 비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념의 실천을 위해서 유효한 기능도 능력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09. 9. 서울대에서


김성희   - 2009/09/14 00:11:46  
여러분 안녕하세요?
니카 가족, 독자님들께 처음 인사 올립니다.
2년 전에 류경자씨를 통하여 니카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독자로만 지내왔답니다.
유순호 작가님의 수필과 소설에 빠져 니카의 충실한 독자로 지내오면서
평론을 쓰고 싶은 충동을 많이 받아왔었습니다.
드디어 오늘 미숙한 평론으로 여러분들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보다 좋은 문학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정애령   - 2009/09/14 00:23:33  
평론은 잘 모르겠지만 박사언니 너무너무 이뻐요 !!
김동찬   - 2009/09/14 01:11:11  
문학의 향기란 얼마나 아름답고 깊이 있고 인격의 품위를 높여주는 것인지를 느끼였습니다.
서구에서 시작된 새로운 문학혁명-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관이
동구권 이데올리기 문학풍토에서 성장하였던 한 작가의 생각과 의식의 변화를
어떤 식으로 개변시켜왔는지는 유순호선생님의 문학작품을 통하여
가장 잘 알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을 장 정립하여 주셨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들이
수필창작에서 어떤 형태로 표현되였는지에 대하여서도 잘 돌아보았습니다.
처음 뵙는 김성희박사님의 평론 너무 좋았습니다.
김춘림   - 2009/09/14 01:59:58  
또 한분 서울대 박사님이 모습을 나타내주셨네요. 그동안 줄곧 독자로만 계셨나요...? 臥虎藏龍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니카에서 이처럼 수준높은 문학평론을 읽을수 있다는것은 정말 행복인것 같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혁식을 꿈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품속에서 모습을 나타내는지 이번 평론을 통하여 다시한번 유선생님의 수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였습니다.
김춘림   - 2009/09/14 02:00:50  
김성희박사님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넘 이쁘세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지나가다가   - 2009/09/14 03:40:55  
수준급의 대단한 평론입니다.
연변대 교수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알기나 하나 ?
역시 니카는 니카다...
리강   - 2009/09/14 03:48:46  
김성희박사님의 평론을 통하여
서구수필의 풍격이 어떤것이라는것을 알게되였습니다.
솔직히 니카에서 유순호선생의 수필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정말 독특하고 여때까지 중국에서는 그런 풍격을 글을 읽어본적이 없었으므로
무슨 수필이 이럴가고 의심도 했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것은 낡은것은 파괴하고 이미 현대사람들의
생활의식속에 굳건하게 자리접혀있는 전통을 깨버리는것이라고 리해하면 될가요?
추천드립니다.
두견화   - 2009/09/14 08:36:30  
김성희박사님 감사합니다.
너무 수준높은 평론을 써주셔서 내용을 다 리해못하지만
니카에서 이처럼 훌륭하고 멋지신 분들이 문학평론을 써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황홀하고 감동스럽습니다.
류영애   - 2009/09/14 09:19:55  
너무 늦게야 모습을 보여주셨네요 ^^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 니카에
방문하여주셨다는것을 알게되니 너무 희한한것이 있지요.
한글문화의 최고 전당인 서울대학에서 전문 문학을 전공하시는 박사님의
평론은 정말 너무 대단한것 같아요.
유작가님의 서구풍격을 보여주는 수필에 대하여 자세하게 해석하고
설명하여 주셔서 많은 공부가 되였습니다.
감사하구요... 추천드립니다.
韩一井   - 2009/09/14 12:08:42  
평론 참 잘 읽었습니다.이론적인 해설을 통해 무엇이 포스트모더니즘인가를
얼마간 이해할것 같습니다.또한 유순호작가의 수필에 대한 개괄적인 평을
어떻게 해야할것인지도 알것 같기도하고요.이론에 재미를 갖고 있지만
서방의 체계적인 문학사조에대한 요해가 깊지못하다나니 좋으면서도 어떻게
개괄해야할지 어렵던만 박사님이 이렇게 상세히 풀어주니 어느정도 개괄할것 같군요.
앞으로 더욱 좋은 평론들을 많이 갖고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황성준   - 2009/09/14 18:08:54  
조선족 평론가들에게서 쉽게 읽을수 없는 고수준의 평론이 아닐가생각합니다.
리론적으로 설복력도 강하고 대단합니다.
물론 유선생의 수필이 독특하고 매력이 있어서도겠지만
우리 조선족문학계와 학술계의 최고 학자 평자라는 분들이
유선생님의 글들을 놓고 문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접근하면서
제멋대로 <반화작품>이나 <서방제국주의 사상을 주입하려는 반중국경향성을 띤 작품>이니하고
몰아가는 경우와 비교하면 참으로 서방문학의 풍격이 어떻게
동방문학의 풍격과 결합하여 새로운 풍격의 문학작품이 산생하는지에 대하여
리론적으로 잘 설명하여주셨습니다.
김성희박사님 참으로 때맞추워 나타나주셨습니다.
문학도들에게 희망을 주고계십니다. 감사합니다.
황성준   - 2009/09/14 18:12:04  
역시 니카의 문학수준은 자랑하고 싶습니다.
조선족문학의 최고수준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니겟지요?
오늘 읽은 이런 높은 수준의 평론을 어디서 더 읽을수 있는지 아시는 분이 있으면 소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송춘화   - 2009/09/14 22:20:08  
김성희박사님의 평론에 추천드립니다.

근데 놀라운 한구절을 카피해왔어요.
서구문학의 눈에 한국수필이 고등학교 수준의 작문정도 밖에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렇게 서구와 동구문화가 차이가 나는가요?

조명철   - 2009/09/15 01:21:53  
역시 서울대입니다. 대단한 평론이였습니다. 추천 한표 드립니다.
최련화   - 2009/09/15 09:29:15  
그러잖아도 유선생님이 앞서 서울에 오셨을 때 김성희님선생님의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평론 많이 기대했었는데...
최련화   - 2009/09/15 10:39:57  
유선생님의 수필은 고백적, 서정적, 철학적, 사색적, 비평적 등 여러가지의 기능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수필이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결국 가장 인간적인 글이 되지 못한다면 수필로서 의미가 없겠지요. 평론의 마감에서 지적하신바와 같이 문학의 쾌락적인 기능과 교시적인 기능을 유기적, 종합적으로 펴 나갈 때 수필문학의 진정한 가치가 전달되는 것이라고 봐요. 유선생님의 수필이 가장 희망적인 부분을 제대로 밝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최련화   - 2009/09/15 10:43:48  
그런데 평론에서 아쉬운 점도 없지않네요.
(물론 이것은 저의 개인 생각이예요 ^^ 그냥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수필은 논픽션의 글로 알고 있는데 유순호의 전체 수필작품들은 있을 법한 거짓말의 이야기를 실제 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이를테면 일본문학에서는 1인칭 소설로 쓴 것이 한국에 들어와
신변잡지식 수필로 읽혀지군 할 때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의 체험적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고 소개하므로 과연 소설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장편수필로 보아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는거죠.
그 만큼 사소설 자체에 수필로 이해될 약점을 내포하고 있지않을가요?
최련화   - 2009/09/15 10:46:18  
유선생님의 수필(소설?) <엘마 샌즈의 유령과 만나다>을 읽었을때 그런 느낌을 받았었거던요.
최삼룡선생님의 평론에서도 이 부분이 언급되였던 바구요..
이 글도 그랬어요. 유선생님은 실제 체험한 얘기를 글로 다루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재구성한 자신의 얘기를 ‘나’라는 인물을 통해 들려줄때 독자들은 얼떨떨해졌습니다.
유령과의 만남은 결국 각색한 얘기요, 꾸며진 허구의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허구화된 ‘나’인지?
실질적인 ‘나’인지 분간할 방법이 없는것이 아니고 뭐나요.

최련화   - 2009/09/15 10:49:04  
때문에 결국 이럴 때는 작가가 소설이라고 하면 소설이 되고,
수필이라고 하면 수필이 될 수 밖에 없지않을가요?
다만, 작가는 자기의 사사로운 체험을 내용으로 하여 글을 쓸 때,
수필로 쓸 것인가 소설로 쓸 것인가 하는 확실한 방향 설정이 먼저 필요하겠지만 말이예요...
이런 부분은 정말 어떻게 판단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이런 고민을 평론의 3 탈장르화와 탈경전화(decanonization)에서
자세하게 언급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습니다.
이상은 그냥 평론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바램이랍니다...
김경훈   - 2009/09/15 11:27:07  
평론을 잘 읽었습니다.
평론과 같이 유순호작가의 수필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들을 많이 읽을수가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사회적, 인식론적 종합을 거부하는것이 유순호작가의 수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것도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에 최련화님이 제출하신 사소설의 경우와 비슷한 례를 든다면...
저는 이런 현상을 그렇게 좋게 보고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자세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일종의 작가로서의 개인주의라고 해야할지?
이렇게 작가가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고,
자가의 체험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현상은 작가들로 하여금 작품이 예술 지상주의,
자신의 내면에 빠지게 되기 쉬우니까요.
지성   - 2009/09/15 13:51:14  
니카에서만 읽을수 있는 수준높은 평론들을 다시 읽을수 있게 되였다는것은 참으로 감동입니다.
수준높은 댓글들도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최련화님 김경훈님 (혹시 연변대학의 그 김경훈교수님은 아닌지요? ) 등 분들의 리플도 배움의 가치가 있습니다.
조선녀   - 2009/09/15 13:58:44  
평론을 읽으면서 유순호선생님의 수필의 참뜻을 다시 배웁니다.
김성희박사님 감사합니다.
강철   - 2009/09/15 20:48:06  
추천입니다. 평론이 너무 좋습니다.
최정학   - 2009/09/16 01:45:53  
유선생님에게서 소개들었습니다.
김성희박사님의 언니도 소설가이고 서울대학에서 박사를 나오신 분이라면서요?
정말 니카는 와호장룡이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 실감납니다.
평론도 너무 훌륭하십니다.
이런 수준높은 평론들은 연변의 조선족 평론가들에게서는 구경하기가 쉽지않겠지요.
아름다운 문학향이 풍겨오는 이 가을의 최고선물이였습니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이 선경   - 2009/09/16 02:02:53  
평론 정말 좋네요 .. 추천드립니다 ..
LISA   - 2009/09/16 03:15:33  
평론을 읽으면서 유작가님의 글을 처음 읽으면서 놀라고 신기하기만 히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글이 정말 좋고 새로운 맛이 나는것은 이처럼 다른사람들의 풍격과 완전히 다른 풍격으로 창작하였기 때문인가봐요.
김성희박사님 너무 좋은 평론을 써주셔서 유작가님의 글을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현영   - 2009/09/16 03:23:09  
박사언니 넘넘 이쁘세요 ^^ 평론두 짱 ~~

아저씨 좋겠당 ~


현영   - 2009/09/16 03:25:52  
근데 포스트모더니즘......

과학과 이성으로 특징지어졌던 근대의 문학양상을 탈피하면서 도주하지 않고 마주서서 파괴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이다. (혁명하는것인가여?)

모든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는것? (그렇게 리해해야 하남?)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원래 하나의 운동이듯 (시대의 문화조류...그런거져?)

현영   - 2009/09/16 03:26:48  
새롭고 독특하고 과거의 다른 수필들과 완전히 다른 풍격은 그럼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해야하나요? ( ㅋㅋ ㅇ ㅜ ㅅ ㅈ ㅣ ㅁ ㅏ ㅅ ㅏ ㅁ )

선영이   - 2009/09/16 03:36:45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는 작가의 수준과 독자의 수준이 꼭 같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자주 하였습니다.
유작가님의 수필은 말그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란한 기법들이 남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게끔 해주고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설수 있게 해결해 주는 것이 평론이라고 봐야합니다.
유작가님의 수필들은 대부분 자기라는 '나'를 많이 등장시키면서 진행되기에 진실하고 솔직하며, 간결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칠맛도 있었습니다.
경전을 파괴하는 사상과 주의주장에 있어서도 걸림이 없고,
보다 구체적이며 확실하여 말하려는 바가 정확히 전달되었고, 진실하고 솔직하였습니다.
이때 표현되군 하였던 기교는 말그대로 기교와 테크놀 그 자체였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기교와 테크놀과는 별개의 사상과 의식이였다고 봐야 합니다.
전송철   - 2009/09/16 09:09:28  
참으로 수준높은 문학평론을 읽었습니다.
김성희박사님 존경스럽습니다.
여정미   - 2009/09/16 09:23:12  
서사수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제가 읽어온 유선생님의 수필들은 지극히 서정적인 것이 주류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서정 속에는 서사가 넘치고 있는거죠.
서사가 서정 속에 녹아있는 수필, 그게 유선생님의 수필의 맛일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습니다.
즉 유선생님만의 소리와 빛깔과 향기가 있다는 것인데..
기회가 될 때 꼭 한번 자세하게 탐색해보고 싶네요.
수필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들울 잘 포착하여 주셨습니다..
평론에 추천드려요..
방만옥   - 2009/09/16 10:57:48  
수준높은 평론 잘 읽고 갑니다.
다는 리해못하지만 정말 감동됩니다.
김성희   - 2009/09/16 23:03:16  
미숙한 저의 평론을 읽어 주시고,
아낌없는 찬사까지 보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학문정진의 길에서 동력으로 삼고, 제기된 의견들도 참고하여,
보다 좋은 평론과 논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미옥   - 2009/09/16 23:18:37  
그때 뵜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ㅋ
다음에 캠퍼스에서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되면 방갑게 인사해요~
유학생활 다 같이 힘내구요... ^^
허수옥   - 2009/09/17 00:26:49  
김성희박사님 늦게와서 플 답니다.
처음 뵙지만 오랜 구면같이 느껴지는것은 무엇때문일가요...
평론 너무 좋았어요...
닌카에서는 너무 수준높은 평론들을 읽으면서 배울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감사해요.
박철수   - 2009/09/17 00:42:01  
김성희박사님 첨 뵙니다. 평론 정말 좋네요. 이런 수준높은 평론들은 니카뿐만 아니라 전중국조선족문단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것 같습니다. 조선족 평론가들 학자들 모두 수준높은 평론을 배우고 평론을 쓸수있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이 평론을 통하여 무엇이 포스트모더니즘이고 어떻게 쓰는것이 그런 경지에 와있는것인지 얼마쯤 알것같습니다. 추천드립니다.
김선   - 2009/09/17 03:07:01  
평론 너무 좋네요. 많은것을 배웁니다. 김성희선생님 감사합니다.
리순녀   - 2009/09/17 04:20:17  
처음 뵙는 김성희박사님의 수준높은 평론을 읽으며 니카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였습니다.
유순호선생님의 수필을 배우는데서 도움이 되는 평론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shanghaitan   - 2009/09/17 06:06:29  
인터넷에서 이처럼 수준높은 평론을 읽을수 있다는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것이 니카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리해가는 점이 한두가지 아닙니다.
니카 만세입니다!
전원주   - 2009/09/17 09:17:51  
김성희선생님의 평론을 읽고...
평론속에서 나오는 수필들을 다시 찾아서 읽어보며
참으로 많은 면에서 감탄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모든 경전적인것에서 탈피하는 과감한 파격의 멋...
이런 수필을 써보고 싶습니다.
비반복적인것...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것...
정말 너무 멋진 수필공부 다시 하였습니다.
김성희선생님의 수준높은 평론 많은 공부가 되였습니다.
김성희   - 2009/09/17 12:57:25  
아, 이미옥씨 방가워요^^
여태 만나서 이야기 한번 나눠보지 못해 유감이네요.
그래요~ 언제 시간 날 때 함 캠퍼스에서 뵈요^^

그리고 그사이 리플 달아주신 위의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 전해 드리고요,
더 좋은 문학으로 여러분과 만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윤승남   - 2009/09/17 20:57:07  
너무 수준높은 평론이라 잘 알수없지만 어쨌던 대단합니다.
추천드리고 김성희박사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수준높은 평론들이 많이 나와야 문학이 발전하는것이라고 보지요.
리원길   - 2009/09/18 05:00:12  
다양한 시각을 가진 평론가들이 다양한 소리를 낼 때 독자들이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은거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좋은 비평과 해석 잘 읽었습니다
미여니   - 2009/09/18 05:27:09  
The poem is born, not made."
"상상력이야말로 도덕적 善의 훌륭한 방편이다."(셸리)
"상상력이란 것은 죽어가는 열정을 되살리기 위하여 살(肉)을 잡아두는 불사의 神을 말하는 것이다."(키츠)
미여니   - 2009/09/18 05:30:54  
이 평론 흥미롭게 읽었어요..
근데 제각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수필이나 소설이나 할 것 없이 문학의 가치는..
절대로 객관적인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읽은 허다한 수필들은 많은 작가들이 수필장르를 빌어
허구의 세계를 아주 그럴듯하게 그리되 '진실'을 추구하는 멋이 너무 독특했습니다.

미여니   - 2009/09/18 05:32:42  
여기서 제가 말씀하는 '그럴듯하게'란?
보다 비평적인 용어를 써 설명하면 구체성·사실성·개연성 같은 것이겠지요.
문학이 설득력과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럴듯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겠나요.
수필을 고백문학이나 자조문학이니 하고 가르는 시대는 이미 지난 세대의 이야기랍니다..
자기가 체험한 것을 정직하게만 그려서는 안 되며,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거짓 요소가 가미되어야 작품이 되는 것이지요.
수필도, 소설도 다 같은 맥락과 도리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미여니   - 2009/09/18 05:34:40  
이 점에서 유순호선생님의 수필작품들에서 만날수 있는 포스트모던적 문학풍격은 이의가 없구요..
근본적으로 유선생님의 문학은 수필이나 소설의 장르를 떠나 모든 형태에서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혼합을 지향합니다.
사실인 것도 같고 만들어낸 이야기인 것도 같고 잘 분간이 안 가는 데 문학의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가요?

오래만에 플 답니다. 생각하는 바를 잠깐 말씀드려봐요..
미여니   - 2009/09/18 05:35:24  
김성희박사님는 좋은 평론 고맙게 읽었습니다.
박상욱   - 2009/09/18 07:07:17  
생 텍쥐페리
2차대전 당시 정찰비행 도중 격추당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소설가 가운데 다소 특이한 체험을 했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면 -
헤밍웨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그 유명한 <<무기여 잘 있거라>>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스페인내란 중 스페인을 여러 차례 찾아가 취재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런 유명한 작품들이 과연 빛을 볼 수 있었을가요?

박상욱   - 2009/09/18 07:09:50  
그러나 체험의 영역에 상상력을 가미한다는 것은 문학의 기본과 근간이라고 해야겠지요.
체험과 상상의 결합체가 문학이라는 미여니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수필 소설 장르와 관계없이 모든 문학은 체험과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문학이론가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포스트모더니즘도 그 시점에서 자기의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가는 생각...
박상욱   - 2009/09/18 07:11:39  
예를 들면 박경리는 <<토지>>를 쓸 때 해란강에 와보지 못했대요.
다 쓰고나서 해란강을 가보고 하셨다는 말 한마디 전해들었습니다.
<<내가 해란강에 먼저 와보고 토지를 썼더라면...>>

<<토지>>속의 해란강이 그렇게 아름다웁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박상욱   - 2009/09/18 07:15:39  
그러나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스티븐 크레인은 남북전쟁 체험을 전혀 한 적이 없었으면서도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붉무공훈장>>을 써냈습니다.
간접체험의 중요성은 이렇게 주요한 것입니다.
꼭 등반 경험이 있어야만 산악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조업 체험이 있어야만 해양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사람을 만나고, 직접 가서 취재를 한 것도 다 체험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유순호작가님이 지난 19세기 30년대의 항일투쟁사를 배경으로 하는
<<만주항일파르티진>>을 써낼수 있었듯이..

박상욱   - 2009/09/18 07:17:49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문학은 체험과 상상의 결과물이라는 주장.
꼭 수필은 체험과 고백문학이여야 한다는 이런 규제와 틀은 이미 없어요..
수필을 포함한 모든 문학은 체험과 상상..직접과 간접의 지식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살고 있어요.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활 패턴, 양식, 문화, 교육 어느 것 하나라도 포스트 모던적이지 않은 것이 없지않을가요..
미여니   - 2009/09/18 07:23:14  
박상욱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nbc에서 선생님을 소개하는 뉴스 봤던 기억 있어요..
글구 선생님 무용도 봤구요..
문학에 대한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도 놀랍게 읽었습니다..
문학에서의 상상력에 대한 선생님의 주장 동의합니다..
Francis Bacon 이 한 말씀이 있잖어요..
역사는 기억에, 문학은 상상에, 철학은 이성에 직결된다는..
수필, 소설 모든 장르를 다 포함하여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주는 대목이 아니겠나요..
여정미   - 2009/09/18 09:30:29  
위에 박상욱선생님의 리플에서 생텍쥐페리의 이름이 잠깐 비쳐서 한마디 하고 갑니다.
맞어요. 생텍쥐페리도 비행기 조종을 해본 적이 없었다면
아마도 "남방우편기",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같은 작품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정미   - 2009/09/18 09:32:05  
그러나 체험도 주요하지만 상상력은 더 주요하다고 하겠어요.
상상력만이 작가로하여금 사실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들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사실보다 더 아름답게, 또는 더 추악하게,
더 진실되게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닐가요. 그리고 진실보다도 더 거짓되게도 말씀입니다.
체험과 상상력의 관계. 위에 분들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미여니   - 2009/09/18 09:37:37  
여정미선생님 지금 접속중인가봐요..
방가워요..
유선생님게서 소개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교편잡고 계신다면서요 ^^
연세대 저의 모교인데요..
미여니   - 2009/09/18 09:40:16  
그럼 오후에 리플 달다가 채 하지 못한 말을 마저 맺을께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결코 어떤 규제나 법칙이 있다기보다는
한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라고 해야하지 않을가요.
pâtissier가 손에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어요.
빵을 굽든 밀국수를 만들든 어떻게든 다 만들어낼수 있어요.
문학은 바로 그러합니다.
문학의 밀가루는 체험과 상상력이 얼마나 절묘하게 반죽되느냐에 따라서
빵도 되고 짜장면도 될수 있어요.
때문에 수필도 문학의 한 장르,
수필을 다시 세분화하여 장르로 경전으로 규제하는 것은 서구에 비해 한발 떨어진
아시아권 문화의 사고입니다.
진정한 문학에는 장르가 없어요.. (혹시 맹복적인 발언은 아닐지 ^^)
미여니   - 2009/09/18 09:44:05  
결국 제가 하고싶은 말씀은 이런거에요..
수필은 꼭 어떤 것이여야 하고 어떤 형식이여야 한다는 경전을 파괴한 것..
이것은 유선생님의 수필의 매력이라고 하겠지만..
이미 서구문학에서의 수필은 상상이라는 이 허구의 진실..
그리고 문학적 진정성을 추구해온지가 얼마나 유행을 타고 있는지 몰라요..
수필이 체험을 능가하고 거의 상상력을 필수가결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서구에서 판타지가 유행하면서
판타지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상상력은
과연 황당무계한 공상인가..
아니면 진정한 문학적 상상인가..
그것은 문학적인 향기로 다가오는가 아니면 혹세무민하는 망상으로 다가가는가...
이런 고민을 해올 때부터였고..

미여니   - 2009/09/18 09:46:46  
결국 서구문학의 경전은 자신의 자존심을 뒤로 하고 16세기 영국의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가 주장하였뎐 -
"상상력이란 것은 우리들이 전에 경험했던 것을 기억케 하며..
그것을 어떤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라고 했던 말씀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미여니   - 2009/09/18 09:47:15  
William Blake ! 그가 뭐라고 하였던가요..
상상은 영혼의 감각이다!!!
미여니   - 2009/09/18 09:50:08  
다시 말씀드린다면 저의 주장은 영혼의 감각을 재현할수 없는 수필은 좋은 수필이 될수 없다는 것이구요..
유선생님의 수필은 이러한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나 해야할지..
실제로 적지않은 수필들은 이미 이런 감각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지않나 싶어요..
이를테면 "사랑하라, 내일이 없을 것 처럼" "참회하는 계절" ...
여정미   - 2009/09/18 10:04:47  
우리에게 전달하고자는 작가의 영혼과 감각..
저는 "참회하는 계절"쪽에 추천표 던지고 싶어요..
이 수필은 참으로 잘 씌여진 수필이고 이름으로 간단하게 말할수 있는 영혼의 감각이란..
구경 수필속의 이야기를 통하여 어떻게 독자들에게러 다가서는지를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닐가 싶습니다.
위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신 것 처럼 작가 본인이 소설이라면 소실이 되고
수필이라면 수필이 되는..
체험과 상상력의 가장 절묘한 결합을 보여주는 소설같은 수필..
또는 수필 같은 소설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여정미   - 2009/09/18 10:06:24  
참회하는 계절

[劉順浩 著, 朴雪梅 譯]
[朴雪梅: 1984年出生 就读于黑龙江大学社会学系, 現延邊大學比較文學碩士硏究生]


나는 평소 못난 자기 주제는 모른채로, 시시한 여자들과 만나서 나름대로 시시하다는 판단이 서게 될 때에, 그런 여자들을 무섭게 경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그런 시시한 여자들이 울게 되면, 그때는 또 혼자서 아프게 참회한다. 아픈 여자들을 울려서는 안되지 하는 신념 비슷한 이상이 자기도 모르게 어그러질 때마다 나는 이렇게 참회와 후회의 고통을 자주자주 맛보는 것이다.

尽管自己也不过是食五谷杂粮的一介凡夫俗子,却也自不量力地鄙视着那群咋看起来不过如此的庸脂俗粉们。但当这群庸脂俗粉饮泣的时候,就会忏悔自己的所作所为。不应该惹伤心的女人落泪,仿佛成了我心中的一种似理念一样的东西,每当望见落泪的女子就会悔恨交加,伤痛万分。

그런데 아픈 여자들은 누구나 다 우는 것이 아니다. 근본 울지라는 것을 않으면서 행복해보이는척 하는데, 가서 어렵사리 속을 들여다보면 아픈것들이 무수하게 많이 숨어있다. 그런 아픈것들을 알아내기에 말 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에게서는 쉽게 드러날지 모르나 말하기 싫어하는 여자들에게서는 어디를 뜯어봐도 잘 알수가 없다. 그렇게 알수없는 여자들과 사귀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가까이에서 여자를 필요로 하는 남자들한테 자주 말해주군 한다. 그럴때에도 나의 마음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슬프며, 슬프다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아픈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꽃이 필 때에 꽃가루 앨러지 때문에 매일같이 콧물을 풀럭거리고 부은 눈을 부벼대는 나를 보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자기를 따라 함께 산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산에 가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但并不是所有心怀伤心往事的女子都会选择哭诉,还会有那么一些女子,尽管表面看起来幸福不已,光彩照人,仿佛不会懂得伤痛与眼泪,但却已是千疮百孔。其中爱说话的女子,想要探知她们的故事并不是很难,但有一部分女子,她们的世界仿佛笼罩着一层用铁作的帷幕,让人猜不透,琢磨不明白。于是我时常对周围急于找女朋友的男子们说;千万不要找让你摸不着头绪的女子。说着这样的话,其实心里是万分痛苦的,可我可爱的恋人,不知是否了解我心中这份伤感,不知是否瞧见了我因为春季花粉过敏而狼狈不堪的模样,总是问我陪她上山,这让我着实想不明白,上山,上山,上山做什么?

휴가도 아닌 봄철에 금싸락같은 시간을 빼내서 저를 보러온 나를 손바닥만큼한 학교 기숙사 방에 혼자 처박혀있게 하고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연구실의 선배들과 함께 산으로 표본 채집하러 간다고 나가버리군 한다. 이것이 혹시나 내가 싫어져서 자기절로 눈치를 차리고 알아서 떠나라는 암시일가고 나는 가끔씩 저녁시간을 타서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그런데 커피를 타다가 나의 손에 쥐여주고는 하루 내내 산에서 헤매다가 무슨 플잎같은 것을 한웅큼씩 뜯어 서류철 갈피같은데다가 끼여서 가지고 돌아온 것들을 연구실에서 쓰게될 표본들이랍시고 다시 꺼내놓고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또 무엇이라고 주절주절 설명을 들이댄다.

我大老远的跑到这里又不是闲来无事,消磨时光,而是专程来探望她的,但也不知道她是否晓得我的这分良苦用心,天天把我一个人扔在自己巴掌大的宿舍里,和同学们一起上山采集什么植物标本。有时候我就想,这是不是在暗示我知难而退呀?于是我总想找个机会好好聊一聊。可到了夜晚,她总是把咖啡捧到我的手上,然后翻着那厚厚地夹着采集来的一堆植物标本的书,给我一一讲述……

어딘지에 그런 이상한 말이 되지않는 말로 덤덤한 공백을 메우려고 허둥대다싶이 하는 여자일지 모른다. 풀잎들도 모두 내가 들어본적 없는 이상한 것들이다. 무슨 솔부꽃이며, 광대수염이며, 뱀딸기며, 큰개별이며 하는 것들외에도 무슨, 뫼제비, 꽃남산, 미나리아재미 홀아비꽃 벌깨덩굴에다가 나아가 한약초 이름 비슷한 것들도 있었다. 여자는 이건 금낭화고, 저것은 천남성인동초라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도중에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는 꽃이름도 나왔으니 이것은 민들레고, 저것은 할미꽃이고, 또 이것은 씀바귀고 할때에 나는 손을 뻗혀 이것저것 잡아서 눈앞에 가져다가 보다가는 다시 내려놓기도 했다.

以至于,我想这个可能是为了避开领人难堪的沉默而没话找话呢吧,但也不好讲出来,只好装着认真样,听她说明。她采集来的植物标本,都是一些希奇古怪的东东,有好些是我闻所未闻的。还有一些是象韩药材类的东东,很偶尔也会有我能认出来的,但甚少;

이것이 혹시 내가 저를 건드리기전의 그 당황함을 덮어감추려는 제스츄어같은 것은 아닐가 하고 몇 번 그의 손가락을 넌지시 건드려보았다. 그럴 때에 나의 情을 알아라도 주듯이 가만 손을 내 맡긴다면 나 역시 가만히 여자의 머리를 당겨다가 내 가슴에 기댔을 것이다. 벌써 내일모레가 서른살이 되는 여자가 아닌가. 여자는 나에게 몸을 줄까, 몸이나 맘이나 그렇게 신비하게 아름답게 생긴 여자가 자기 말로는 그 속에 간직한 모든 빛과 향기와 힘을 한번도 누구한테 펴본적이 없다고 그러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않을수 있단말인가. 나와 만날 때에 한번도 남자랑 경험한적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몸을 가진 여자의 손은 너무나도 산에만 올라가서 풀잎을 뜯고다니는 여자답지 않게 자그마하고 부드럽게 마치도 나를 안을수 있게 있는 것이요, 그의 긴다리와 선명한 허리와 빼여난 몸매는 분명하게 아직까지 남자랑 경험하지 못한 여자인생의 슬픈 부끄러움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쁨만을 줄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望着她认真的摸样,我就想,这是不是为了掩盖与我一起的紧张,兴许也可能是暗示吧;于是我装着拿过标本,仿佛不经意似的,碰了一下她的手指,她不作躲闪,我便把她整个的小手握在了我的手里,顺势将她纳入到了我的怀里。毕竟是奔三十的女人了!如此美丽神秘的女子,她竟说在我之前从未经历过男子,仿佛那含苞待放的花骨朵,把那神秘而又美丽的香与光,深埋心间……她的手不象天天上山采集标本的手,很软,而且很娇小,她细长的美腿与美丽的水蛇腰是让我如此消魂……

그리고 이것이 봄에 여자를 만나러 갔던 한 남자의 愚癡일지도 모르거니와 내게 있어서 이것은 결코 환상은 아니였다. 나는 별로 남자랑 경험있건 없건 그런것을 그렇게 호들갑떠는 유형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과 내일만 주요할뿐 어제에 대하여서는 흥취가 없다. 그냥 오늘 가지고 내일을 함께 하면 된다. 오늘부터 시작이고 오늘부터 가장 깨끗한 인생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맘이 즐거워질뿐만 아니라 맘이 든든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兴许你会想这不过是一个愚者的怀春之情,但对于我来说,到也不是十分重要,我不是那种爱拿“女子的贞节”作文章的人,昨日即已成往事,那就让他过去吧,今天和明天才是最重要的,不管昨天如何,只要今天能把昨日整理清楚,那又何尝不是一个崭新的快乐的开始呢,不是么?

그러나 그렇게 맨날 바라고 가는 산속에서, 맨날 쫓아다니는 연구실의 선배란 놈한테 그것도 산속에서 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런 솔직한 고백을 들을 때 나의 가슴은 무거운 바윗돌로 지지내리눌리는듯 했다.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남한테 몸을 주어버렸다고 하고, 강박으로 당한것도 아닌데 그냥 달라는대로 주어버렸다고 하고, 주어버리고나서 후회도 하지않고 아프지도 하지않고, 그냥 쬐꼼 억울했을 뿐이라고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좀 좋다고까지하며 살며시 웃어버린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선배놈이 쫓아다닌 것이 아니고 저가 따라다녔을 뿐이고, 달래서 준것이 아니고 가져달라고 원했던 모양이었다.

只是让我意想不到,她居然是在山里失了贞,而且还是和她的前辈;听罢,我心里真不是个滋味,没有爱情的性,而且还不是被迫,只是没有拒绝对方的请求;说什么没怎么后悔,也没有留下什么伤害之类的,只是觉得有些委屈,但那也是过去的事情了,现在反而感到一些愉快之类的……说着这样的话,她居然笑得很开心,让我不知所措。事后我才知道那个前辈,并没有追过她,也没有要求过性关系,失贞一事,纯属女子一厢情愿。

당한것이라면 여자는 죄가 없지만 원해서 준것이라니까 남자인 나는 죄가 많다. 하고 내 죄의 벌을 어떻게 씻어낼 방법은 하나도 없고 그냥 함께 도망이라도 가듯이 이제는 이만 미국으로 가서 살자고 권고한다. 그때도 여자는, 요즘같이 바쁜 세상살이에 자신의 관심사에 포함되지 않으면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눈에 들어올것 같지 않은, 그것도 봄 보다는 가을을 더 사랑하는 나를 앞에 놓고서도 풀 이야기로 온 얼굴에 꽃을 피운다. 거기다가 내가 미국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주로 이파리가 크고 넓적하기로 이름 있는 미국산 꽃들을 가져다가 스스럼없이 화제에 올리면서까지도 자랑은 여전히 자기가 사는 한국의 봄산에 피는 풀과 꽃과 바람을 더 많이 이야기 한다.

如果是被迫失贞,那是无权问罪于女子的,但如果是自愿,我想这应该归罪于作为男子的我,为了洗刷我的罪与过,我建议女子,要不我们一同离开这里,和我一起到美国生活吧。但不知道这个女子有没有听进去,兴许她也如现世众人,除有关自己生存之事,一概不闻不问。望着我这么一个爱秋胜过春的男子,兴致勃勃地讲述的都是盛开在这春季里的花花草草。偶尔倒也顾及来自美国的我,讲到以宽叶著称的美国产花草,但那也不过是为了与韩国产的花草作以比较。

확실히 한국산야에서 자라는 봄풀들은 미국이나 서양꽃들에 비해 크지는 않고 화려함도 덜할지 모르지만 짙은 향과 앙증맞은 크기와 섬세함은 이 지구 여느 나라의 꽃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나다. 특히나 사계절이 분명하고 봄을 사이에 두고 가을과 겨울이 함께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길지않은 봄에 꽃을 피워 여름에 열매를 맺히는 일도 가을에 가서 얼마나 충실하게 씨앗이 열리느냐에 달려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가을을 사랑하는 나는 함부로 봄을 좋아하는 여자를 무시하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 결국 여자 데릴러 한국으로 갔다가 그 여자로부터,

盛开在这韩国漫山遍野的春草与西欧和美国的花草相比,逊几分华丽与大方,但其奇特的香味与细致的视觉美感却绝对不输于任何一个国家的花草。尤其是在这四季分明,熬过慢冬才能再迎春的韩国,短暂的春季,决定着夏日的果实,秋季的丰收;由此我从来不敢小看热爱春季的女子……末了,此女对着为接她过去,千里迢迢赶赴韩国的我,说

여자를 좋아한다는 남자가 뭔 꽃을 이리도 싫어합니까. 라는 대답을 한마디 얻어들었다. 얼마나 꽃에 집착이 심하고 꽃이 피는 봄을 사랑하면 봄에 콧물을 떨구고 앨러지 때문에 눈이 딩딩 부어서 쩔쩔매는 나를 거절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랴. 사람이 한해두해 나이 먹어가는데 그렇게 맘처럼 계속 봄에서 살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하고 나도 스스럼없이 맞대답을 하면서도 더는 여자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봄을 사랑하고 봄 산에서 봄 풀을 채집하기 즐겨하는 여자의 봄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나는 가을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같이 산에 다니는 연구실 선배놈을 한탄도 했다. 왜 남 과년한 처녀를 아주 가지지도 않으면서 건드려놓고는 다 가버린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이 사계절에서 봄 밖에 모르는 악착같은 여자로 만들어놓게 하였느냐. 아직 시집도 가지않은 불쌍한 것을.

“一个爱女色之人,怎么会如此讨厌花草呢?”兴许,她对花草的执着只能让她为了那分执着放弃,我这个用花粉过敏来迎接春季的狼狈男吧!尽管对这女子已经死了心,末了我还是说了一句:“人总是要变老的,你不可能永远活在春季里不是么?”兴许我对秋日的爱,并没有她对春季的爱那般强烈吧。而对那个前辈,心中也不无“恨”意。既然不会负责到底,为何要诱惑其身,将她变成一个只知春季,不闻时间流逝的女子。

이렇게 나의 가장 심각한 참회가 노처녀가 돼가지고 몸까지 다 잃어버린 주제에도 봄자락을 부둥켜안고 봄을 떠나지 않으려는 여자를 만날 때에 어김없이 온다. 한국에로 여자를 만나러 갔다가 헛물만 켜고 미국으로 돌아오니 여자로부터 보내온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每当遇到这样失了贞仍把自己的时间锁在春日的老女人,我都止不住这份忏悔之情。尽管此次韩国之行,未能说服我的爱人与我一同归来,却留下了她的信函。

선생님. 붉게 타는 가을에서 산다고 가버린 봄자락을 붙잡고 못 떠나는 나를 시시한 여자라고 비웃지 마십시오. 제가 봄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언제인가는 다시 올 봄을 기다려서가 아니입니다. 오라지않으면 서리가 오게될 이 가을 한철에도 풀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나는 그것들의 입장에서 살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풀이 다시 피어나고 꽃이 만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번식을 위하고, 생존을 위하는 전략투구와 같은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신 다음 날에도 또 산으로 갑니다. 산에만 가면 사고를 칠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우뚝해서 황홀에 빠진 매화와 벌들과 앙상불이만 봐도 마음을 설레여집니다. 그때도 여기저기서 채집해든 나무이파리들을 손에 들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눈앞에서 실험실 캠버스를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제가 스스로 저를 버렸습니다. 지금도 이 숲속에서 누가 와서 나를 콱 가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先生,请勿笑我滞留春季,不肯离去,我的这份执着绝非是怀春之情,等待着下一个春季的到来。站在这要迎秋日寒霜的季节口,爱花爱草之心,让我不由的站在花草的立场,仿佛我也挤身其中。花开花落,春去春回,那是我们某求生存的战甲,那是我们不可避免的宿命;您走后,我依然上山采集着标本,依然怀着那样的心情……望着这沐浴爱河的,这漫山遍野的花草,我每每都抑制不住这种心境,无法阻止那份冲动……以至于现在捧着植物标本,坐在校车上饶过那山脚时,抑制不住这份渴望,是呀!我把自己丢弃在了那个山脚,渴望着有谁在那个草丛中把我带走


[劉順浩 著, 朴雪梅 譯]
[朴雪梅: 1984年出生 就读于黑龙江大学社会学系, 現延邊大學比較文學碩士硏究生]


여정미   - 2009/09/18 10:09:35  
작가 본인은 수필이라고 분류했지만 만약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잖어요.
상당하게 잘 짜이어졌고..
자신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나..
자신의 주장, 주의, 세계, 발견, 명상, 습관, 체취 등등 모든 개성파 수필의 요소들이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거든요..
여정미   - 2009/09/18 10:17:11  
저는 이 수필을 유순호선생님의 수필작품속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자신만의 독자성과 체험의 세계, 정서의 세계가 너무 잘 펼쳐져있고..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사랑도 하지않으면서 대학선배에 자기의 몸을 주고..
봄이 가고 있는 산자락에서 대학 캠퍼스를 바라보며 자기자신을 버리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감각(영혼)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았습니다..
그래서 구경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자세한 해석을 여기서 일일이 진행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상상적 재치를 보여주는 수필작품을 만들어낸 유선생님은 이미 충분하게
방관자적 자세에서 가능한 관조와 달관에서의 멋과 재치를 표현하여 냈습니다.




여정미   - 2009/09/18 10:19:07  
솔직히 저는 유순호선생님과 만나기 이전에..
이런 멋과 재치의 수필을 읽어본적이 없었거든요..
아래 이 부분 말씀을 돌아봐요..

선생님. 붉게 타는 가을에서 산다고 가버린 봄자락을 붙잡고 못 떠나는 나를 시시한 여자라고 비웃지 마십시오. 제가 봄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언제인가는 다시 올 봄을 기다려서가 아니입니다. 오라지않으면 서리가 오게될 이 가을 한철에도 풀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나는 그것들의 입장에서 살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풀이 다시 피어나고 꽃이 만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번식을 위하고, 생존을 위하는 전략투구와 같은 것입니다.
여정미   - 2009/09/18 10:21:37  
김성희님의 평론에서 -

수필작품 안에 흐르고 있는 정리는 다분히 시적인 抒情을 갖고 있으며 빈틈없이 흘러나가는 긴박한 敍述..

얼마나 멋진 말씀이나요..

- 다시 피어나고 꽃이 만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번식을 위하고, 생존을 위하는 전략투구와 같은 것입니다.

김시인   - 2009/09/18 11:34:09  
포스트모더니즘에도 불구하고 절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뒤틀고,
나의 머릿속엔 게임같이 물음표 ...
오호!
박상욱   - 2009/09/19 00:42:47  
여정미선생님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이 수필은 저도 읽어봤습니다.
읽고난 여운이 개운하지는 않아도 긴 여운으로 남았던 수필이였습니다..
지금도 주인공 여대생의 모습을 보는 같으네요..
SK 투어   - 2009/09/19 02:46:15  
역시 서울대는 서울대입니다.
한일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글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수준높은 문학평론은 저는 아직 조선족 문학잡지나 교과서에서도 읽어본적 없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6적도 들어와서 보고 문학공부를 다시 하였으면 하고 바랍니다.
몇십년전 어느 왕년에 배워두었던 지식을 가지고 지금도 써먹는다는것은 창피한 일이지요.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얼마나 많은 새로운 젊은 지식인들이 우후죽순마냥 성장하고 있습니까.
SK 투어   - 2009/09/19 02:46:56  
김성희박사님 평론 너무 멋지십니다.
추천드립니다.
정연   - 2009/09/19 05:52:27  
새로 뵙는 분이네요...
근데 평론 정말 넘 수준높아요.
글구 넘 이쁘세요...
니카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학을 배우고 좋아하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shanghaitan   - 2010/01/07 20:04:18  
제 리플이 왜 사라졌지요?
남호   - 2010/04/03 01:27:13  
처음 뵙습니다.
김성희선생님의 평론을 잘 읽었습니다.
조동연   - 2010/05/03 09:18:34  
평론을 읽고나서 유작가의 글들을 한편한편 찾아읽기 시작했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김성순   - 2010/06/07 00:44:15  
김성희선생님 평론이 넘 멋져요~~
신지   - 2010/07/04 17:11:20  
^^ 잘 읽고가용

수현   - 2010/07/25 16:00:12  
대단한 평론 읽구가요
^^
신지   - 2010/08/11 00:34:54  
평론 또다시 읽구 갑니다
한글자 한글자.. 이젠 읽었던 글들두 많구.. 기억나는 작품들도 김성희선생님 평론에 아주많이 등장하여서..
정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글짜 빠짐없이.. 김성희님의 평론에 동의하구 동감합니다.
김성희님도 대단하셔요..
유순호 작가님을 다 꿰뚤어 본든한 느낌입니다.
그거를 이 평론을 읽구 알수 있고 또한번의 재미를 느끼고 간다는것이
너무 행복한 일이라 생각해요
강성희님..
대단하십니다 ^^
shanghaitan   - 2010/08/13 09:01:49  
작년 이때쯤 읽었던 수필평론 다시 읽고 갑니다.
이처럼 리론성이 풍부하고 수준높은 평론을 중국 조선족 문학잡지들에서
한번도 읽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햇살이   - 2010/09/06 12:36:18  
이 평론 오늘에야 읽는데요........... ㅠㅠ
작가님의 수필 읽고 싶어졌어요^^
경천   - 2010/11/10 03:24:16  
수준높은 평론을 읽고 갑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려수니   - 2010/11/20 21:53:21  
김선희선생님 이 평론을 통하에 수필에 대한 많은 공부가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려수니   - 2010/12/03 10:52:03  
오늘 또 읽고 갑니다. 그리고 김선희 선생님 넘 이뻐요~~
주정규   - 2011/01/31 15:22:24  
김성희 선생님 - 유순호 작가 선생의 수필을 평론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유순호작가가 신출귀몰하거든요. 그런데 훌륭한 평론 논문감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유 작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문학 평론을 통해서 유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워졌습니다. 김성희 선생께 감사를 드립니다. 서울에서 주정규 드림
나나   - 2011/03/09 20:01:34  
김성희님의 평론을 잘읽구갑니다~
^^
공평저울   - 2011/07/18 22:51:05  
서울대학의 박사님 평론이 확실히 다릅니다.
한정남   - 2011/08/31 12:25:11  
꿔뚫러보는 눈이 따로있나 봅니다.
대단한 평론이였습니다.
서울대 김성희 박사님 평론을 추천드립니다.
정예은   - 2011/09/08 00:31:59  
니카에 멋진분들이 너무 많아서, 박사연구생님들의 멋진모습을 보면 저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몰라요.
그러나 이런 멋진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글들을 공감하고있다는일이 자랑스럽고 기뻐요
~
김성희박사님도 종종 얼굴 보이세요~
응원하고있을꺼에요^^
희망의 향기   - 2012/03/23 23:24:37  
서울대 비교문학박사님 !!! 와,,, 대단한 분입니다. 니카에서 서울대 비교문학박사님을 만날수있다는것이 영광입니다.
니카에서 다시또 김성희 박사님의 멋진글, 평론들, 김성희박사님의 글을 보고싶은데...
언젠가 꼭 니카에서 만나뵙길 바랍니다.
멋진 모습도 보고싶구요.
대단합니다.!!!

여자인데.. 늘 대단한분이시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3월 거의 2년만에 들리는데. 처음 들렸을때는 알게 모르게 들렸었는데
평론 다시 잘 읽구갑니다.

니카에서 만나서 넘 반가운 맘입니당~~^^
희망의 향기   - 2012/03/23 23:27:03  
예전에 청설작가님의 글에선가 김성희라는 댓글로 만나뵌적 있느데 김성희 박사님 맞으시죠?

음,, 어쩐지 어딘선가 지금도 지켜보구 있다는 느낌 ?? ㅋㅋㅋㅋ 제멋대로 ^^ 생각하다 갑니당~~~

즐거운 주말,, 날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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