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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옥 문학평론] 봉녀를 통한 여성성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
피안   Hit : 22787 , Vote : 548        [2008/11/17]




이미옥, 서울대 현대문학 박사연구생

  


   “봉녀”는 “바퀴벌레”에 이어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년의 첫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왕벌 같기도 하고 “대단한 여인” 같기도 한 그녀와의 결합을 통해서 소년에서 한 남성으로 변환되어 간다는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삶의 단면들과 봉녀의 다양한 면모는 거친 사회를 살아내는 여성성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1. 인간사회와 “무한경쟁”  

   인간집단의 모습은 종종 개미에 비유되어 왔지만 “벌”에 비유하여 이해할 수 있음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몇 가지 측면에서 그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에 따라서 엄격히 분화되어 있다는 것, 노동을 해야 하는 벌과 애기를 생산해야 하는 벌과 여왕벌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비록 “민주시대”로 전화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질서”를 갖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일면을 보인다. 게으르고 뚱뚱해도 난자가 있어서 잘난 체 하는 말벌 같은 인간(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에 비유된다.)도 존재하고 말없이 일만 하다 결국 가는 불쌍한 인간들도 득실하게 존재하는 게 인간사회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인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국가, 인종, 부, 외모, 지위 등에 의해 한계 지워지며 그 패러다임 안에서 평생 고투하는 모습은 “벌”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둘째는 “여왕벌”이 되기 위한 “생사결투의 현장”인데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벌들의 집단에서 여왕벌은 단 한 마리만 존재하며 혹 로열젤리를 잘못 먹여서 두 마리가 여왕벌이 되는 경우에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현상이 일어난다.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우리의 역사의 대부분이 왕권통치의 시대였고 “패권”에 대한 열망은 다른 이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살벌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성적 욕망 다음으로 가장 큰 것으로, 인간은 늘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타인을 짓밟고 이용 하는가 가하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온갖 제도와 규율, 심지어 자신의 “권위”로 타인에게 말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마르크스 사상과 혁명은 이러한 체제를 뒤엎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인류 역사의 최대의 도전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패러다임에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힘”이 있어야 하고, 국가든 개인이든 삶의 1차적 목적인 바로 “생존”을 위해서는 “힘”을 기르는 일에 전력을 다 하게 된다. 노예시대-봉건사회-자본사회-사회주의 실패를 거쳐 민주주의 시대에까지 이르렀지만 “통치하기 위한” 전략은 교묘해지고, 무한경쟁과 고도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2. 생존을 위한 소년의 “통과의례”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어린 소년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세상은 편하고 공평할 것.”이라는 환상을 깨는 일이다. 소년은 아직 세상의 살벌함을 모르며 남성으로서의 여성과의 결합에 대한 경험도 전후하다. 봉녀와의 만남을 통해서 소년은 최초로 말벌과 경쟁하게 되고 말벌이 주는 독침으로 고통 받게 되며 봉녀의 보살핌으로 구원받게 되고 그녀와의 결합을 통해 남성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자궁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현장을 은밀하게 스케치한 것 같이 은유적으로 묘사되었다. 즉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기 위해서는 수억 마리의 정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나 그 중에서 살아남아 수정이 되는 건 단 한 마리뿐이다. 소년이 죽지 않았던 건, “사랑의 힘”보다도 그 자신이 다른 말벌과의 전쟁에서 (다른 수컷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수억 마리의 정자 중, 살아남은 한 마리의 정자처럼 소년 또한 치열한 “경쟁”에서 봉녀의 선택을 받아 살아갈 힘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니 “살아남는 다는 건”, 사랑이냐 행복이냐를 떠나서 “전쟁”이다. 그렇게 수억 마리의 경쟁을 거쳐서 태어나서도 여전히 우리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 던져져 있다. 사랑이니 도덕이니 하는 건 어쩌면 “위선”일 수도 있음을 작가는 당당히 제기하고 있다. 삶을 한 꺼풀 벗겨보면 누구나 “신음소리”-마치 철없는 소년이 벌을 건드려서 생채기가 난 것처럼 온통 힘들게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년은 살아남았고 무사히 사회에 귀환했으며 이제는 스스로 기회가 된다면 “양봉”을 하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봉녀와의 경험을 통해서 소년 또한 기르고 창조하는 삶을 긍정하게 되고 자신 또한 그러한 역할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3.  왜 봉녀인가, 봉녀에 내재된 두 가지 속성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봉녀의 1차적 상징은 “여왕벌”로 비유되는 강력한 통치체제를 바탕으로 한 일인자의 상징이며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고 “이기적으로” 경쟁력을 축적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표상이다. 소설 속 봉녀는 자신만의 “냄새”로 자신의 권위를 부여 받고 꽃 수건을 두르는 등의 방법을 통해 벌들을 유인한다. 말벌의 독액을 빼내기 위해서는 가슴을 살짝살짝 건드릴 뿐 “직접” 죽이지는 않는다. 또한 말벌들과 대화하고 달콤한 속삭임으로 그들을 설득시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이처럼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노련한 “기법”에서 새로운 통치의 전략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둘째는 이런 이기적인 리더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봉녀는 또 자신의 수하(수컷들과 애기벌들로 비유되는 남자와 어린이들)들을 살뜰히 돌보는 모성본능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독액을 빼낸 말벌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며 소년을 살려주고 어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조력자”로서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작가가 이처럼 “여왕벌”을 신선한 통치 체계를 통해 새로운 리더의 조건을 제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리더가 필요한 사회라면 남을 짓밟고 분열된 양상을 보이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보다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화합하고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수평적 관계로서의 새로운 상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4. 또 하나, “진보적 여성-페미니즘의 문제”

   소설 속 봉녀의 이미지는 거침없고 솔직하며 과감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남자를 기다린다.”는 벌들과의 속삭임에서 간과할 수 없는 봉녀의 “요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사실 모든 여자가 봉녀 같은 건 아니다. 모든 여자가 다 여왕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욕망의 크기가 다른 것처럼 봉녀는 유난히 큰 욕망과 힘을 가진 생명력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숫한 벌들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을 양산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봉녀는, 자신의 힘으로 왕국을 건설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적 존재이기도 하다. 봉녀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창조”이다.
  
   그것을 위해 봉녀는 남자와의 “육체적 화합”을 통한 “힘의 축적”을 시도한다. 단지 애기벌들 뿐만 아니라 수컷들도 잘 다스리는 등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봉녀는 보수적이고 수줍음 많은 “전통적 여성”에 비견되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이다. “일부일처제”와 같은 제도에 얽매여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냄새로 향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봉녀의 목적은 한 남자를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수컷으로부터 “교미”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한껏 확대시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팜므파탈의 이미지와도 유사한 듯 보이나 결정적으로 보면 남자를 파멸시키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팜프파탈과는 다르다. 단지 “유혹”으로 보이는 여성의 존재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남자의 그늘에 서 있는 여성들의 욕망에 의해 오히려 세상이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자들이 추구하는 성공도 아름다운 여자의 선택을 얻기 위한, 그리하여 더욱 우수한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해소하고 난 후, 오히려 남자는 엄청난 허무와 허탈감에 빠지지만 여자는 그것이 잉태로 이어져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 더 큰 욕망으로 재생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자의 생명력은 남자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왕벌과의 교접에서 실패하고 죽어가는 말벌들의 모습은 어쩌면 남자의 쓸쓸한 역할과 허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좌절이나 한계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들의 시체는 또 다른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공급되고 그렇게 생명은 끊임없이 순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러한 “진보적인 여성상”-여왕벌 봉녀의 강한 생명력과 그 생명력에 기대어 한 소년이 남자가 되고, 거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경험한 “통과의례”를 보여준 것이고, 좀 더 확장한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한 힘의 원천(여자의 욕망이라는 것)과 그 힘을 인정하고 전면에 드러내려 하는 작가의 “급진적” 사고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5. 전략적 기법에 대한 소고(小考)

   위에서 살핀 것처럼 봉녀는 이기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모성본능을 갖고 있으며 또한 요부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이러한 겹 층의 이미지는 분명 한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로 읽어내기에는 조금 다른 속성 때문에 독자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사람들은 “인지부조화의 원리”로 모순된 측면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이미지는, 이기적이고 전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온전히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 읽어 내려는 독자들은 다소 길을 헤매기도 한다.

   또한 기법적인 측면에서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상징 대상물과 화자와의 동일시는 이번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봉녀와의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나는 사라지고 벌로 대체되어, 관계를 한 것이 벌인지 인간인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는 보통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감한 소재를 빌어 와 가감 없이 인간의 실상을 파헤치는 작가의 단 하나의 “위장”이며 유일한 “방패”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는 “죄”로 인식되는 “성”의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데 있어, 아담 또한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는 맨 처음으로 자신의 “성기”를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려야 했다.
  
   작가 또한 인간의 성적 욕구의 본성을 거침없이 표현하는데 있어 이러한 “죄”와 “수치”의 문제를 완전히 피해가는 대신 동물로 환원시키는 장치를 선택한 것이다.


                                                                                 2008년 11월20일, 서울에서.


shanghaitan   - 2008/11/17 16:45:50  
재미도 있고 정말 충격적인 장면들도 죽여주군요.
그런데 유감스럽습니다.
통 뭐를 쓴 소설인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아볼수 있어야말이 아닙니까.
에로소설로 읽을수도 없고...
shanghaitan   - 2008/11/17 16:46:52  
소설속의 봉녀는 도대체 사람입니까? 아니면 벌입니까?
shanghaitan   - 2008/11/17 16:48:30  
제가 여기에 카피해오기도 구차스러운 장면은 구경 사람이 했다는겁니까?
아니면 말벌이 했다는겁니까?
황성준   - 2008/11/17 16:57:21  
허허. 저도 상해탄님과 동감입니다.
여러모로 무엇을 말하려는것일가고 생각하고 짐작하고 해보았지만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문학이라고 해도 너무 도를 벗어난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니카의 어린 녀회원들이 모두 기겁하고 도망가라고 이런 소설을 쓴것 같기도 하군요.
정말 너무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재미는 무섭게 재밌는데 무슨 소설인지 알수 없어서 유감스럽습니다.
그냥 재미 절반 충격 절반 읽고 갑니다.
추천은 못 드리겠습니다.
리혜선   - 2008/11/17 17:08:09  
니카에서 서울대 연구생 류경자님의 평론 한편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론의 제목이 <인간의 탄생과 순환, 그리고 변화와 발전>이였습니다.
딱히 무엇을 쓴 소설인지 일시 판단이 되지않지만 련상되는 작품들도 몇편 없는것은 아닙니다.
최서해의 <연주창과 독사>라는 수필도 떠올랐습니다.
서국화   - 2008/11/17 19:17:43  
ㅎㅎㅎ, Shanghaitan님과 동감입니다. 참 뭘 쓰려고 하는건지 알아보지 못하겠네요.
김명희   - 2008/11/17 20:15:58  
소설이 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도통 알수가 없네요...
바퀴벌레처럼 상징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건 같기도 하고...
이미옥   - 2008/11/17 20:58:06  
낼모레, 발표 논문을 열심히 쓰다가
유순호 작가님의 “봉녀 이야기”가 또 제 발길을 멈추게 했네요...^^

여왕벌의 이야기라,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왕벌의 생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벌들의 집단에서 여왕벌은 단 한 마리만 존재하며 혹 로열젤리를 잘못 먹여서 두 마리가 여왕벌이 되는 경우에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웁니다.
사실 인간들의 집단도 이와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역사의 대부분이 그러니까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이 통치하는 체제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지요.
게으르고 뚱뚱해도 난자가 있어서 잘난 체 하는 말벌 같은 인간(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에 비유되지요.)도 존재하고 말없이 일만 하다 결국 가는 불쌍한 인간들도 득실하게 존재하는 게 인간사회의 실상이니깐요.

그러나 인간사회에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여기서 여왕벌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접근해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냥 벌이 아니라 여왕벌이어야 하며, 왜 소년은 봉녀를 만나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의 의미 같은 것 같은 것들입니다.

역사의 무대에는 항상 남자들이 서왔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들입니다.
소설 속 화자도 “양봉을 함에 있어 꼭 여자와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그러니 “성공한 남자 뒤에는 위대한 여자가 있다.”는 말처럼 역사는 진짜 여왕벌 같은 여자들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추구하는 성공도 결국에는 아름다운 여자의 선택을 얻기 위한, 그리하여 더욱 우수한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것 일테구요.
우리의 삶이라는 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되어 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이라는 엄청난 시스템 안에서 마치 “매트릭스”처럼 움직여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봐서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그 역사적 사명을 위한 남, 여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됩니다.
욕망을 해소하고 난 후(정확히 말하면 성적인 결합 후) 남자는 엄청난 허무와 허탈감에 빠지지만 여자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잉태로 이어져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 더 큰 욕망으로 재생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생명력은 남자에 비할 수 없이 더 큰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죽어가는 말벌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남자의 쓸쓸한 역할과 허무에 대해서도 담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좌절이나 한계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저번 소설에서도 느꼈지만 유순호 작가는 인간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추함과 연약함 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그러한 적나라함은 인간 자체를 비판하는 듯 보이고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가만히 더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그러한 삶을 살아 내려는 생명력이 꿈틀 거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16살 소년은 소위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의 남성을 찾고, 경쟁에서도 살아남아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결코 쉬운 건 아니었지요. 육체적인 고통과 봉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수치심도 겪어내야 했으니까요. 어쨌든 소년은 봉녀를 통해서 “부활”했고 그랬기 때문에 더 강하게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든 여자가 봉녀 같은 건 아니지요. 모든 여자가 다 여왕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봉녀 같은 여자는 대단한 힘 즉 욕망을 가진 생명력의 상징이지요. 수컷들을 키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을 양산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하여 자신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진정 “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봉녀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창조”입니다. 단지 애기벌들 뿐만 아니라 수컷들도 잘 다스려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니깐요.
그러니 봉녀는 보수적이고 수줍음 많은 여자가 아니라 대단히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입니다. “일부일처제” 같은 것에 얶매여 있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냄새” -“향기”를 내뿜을 지도 아는 여자이지요. 봉녀의 목적은 한 남자를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수컷으로부터 “교미”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한껏~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보다보니 얼마 전에 극장에서 봤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뱀”처럼 요염하고 예쁜 주인공 손예진이 결혼을 하고도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지요? 그러나 묘하게 영화는 손예진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 갑니다. 손예진의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만으로 설득력을 얻어 내는 것이지요.
이건 변혁이지요. 사랑을 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 즉 서로 한사람만 볼 것을 암묵적으로 약속합니다. 그것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지요. 물론 생태적으로 “난 한 사람이면 족하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겠지만, 또 충분히 생리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결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 같습니다. 더 매력적인 상대를 보면 마음을 빼앗기고, 더 좋은 유전자를 갖기 위한 욕망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때 꽤 인기였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도 생각이 나는군요.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사회의 법도 도덕도 아니며 결국 우리의 유전자라는 것을 역설한 내용이었지요.

다시 소설로 돌아와 본다면,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러한 “진보적인 여성상”-여왕벌 봉녀의 강한 생명력과 그 생명력에 기대어 한 소년이 남자가 되고, 거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경험한 “통과의례”를 보여준 것이고, 좀 더 확장한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한 힘의 원천(여자의 욕망이라는 것)과 그 힘을 인정하고 전면에 드러내려 하는 작가의 “급진적” 사고가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대변했다고나 할까요, 대찬성입니다. (^^)
如然   - 2008/11/17 23:44:32  
왕벌은 비행시합을 통해 배우자를 택하며 이것을 婚飛擇偶라고 합니다.
승자는 왕벌과 교배를 한 후 수컷의 생식기가 왕벌의 생식기 속에 탈락되면서 죽어 버리고 패자는 그후론 먹기만 하고 채밀도 안하며 게으름만 부리다가 나중에는 工蜂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죠.
근데 그 중에서 살아 남았다….?ㅋㅋㅋ

벌의 사회를 ‘모계사회’라고 할 수 있죠.
왕벌은 후대를 번식하고 대가족을 이끄는 ‘통치’자…

인류사회에서 유일한 모계사회인 摩梭族이 기억나네요.
일부일처제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走婚’하는 민족…

역시 작가님은 대단하셔.
벌의 지식으로 이런 소설을 써내고…
비록 작가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사람은 자연을 떠나선 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황성준   - 2008/11/18 00:03:02  
다시 와서 여러분들의 리플을 읽어봅니다.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한둘이 아니군요.
리혜선님의 리플을 읽고 최서해의 수필을 찾아읽어보았습니다.
연주창환자는 독이 있어서 뱀이 물면 뱀이 되려 죽는다는 이야기던데
이 소설과 어울리는 같기도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던데요.
말벌에게 쏘인 독을 말벌독으로 치료하는것은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미옥님의 해석을 듣고 그럼 이 소설은 녀성의 해방을 노래하는 소설처럼 들리는데
그런건가요?
황성준   - 2008/11/18 00:07:32  
저는 녀성의 해방을 노래한 청설작가의 작품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조선족의 정조>라는 수필을 감동깊게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평론가 최삼룡선생님이 평론한것을 보니 이 수필은 바로 조선족의 녀성들이
현재상태에서 탈피하고 다른 상태의 녀자로 태여나야한다고 호소한것이라고 하였더군요.
이미옥님의 평론대로라면 이 소설도 녀자가 숱한 남자와 관계를 발생하고
죽일수도 있고(남자들은 너무 하찮은 존재로 되여있군요. 생명이 녀자의 손아귀에 쥐여있지않습니까?)
남자는 벌통이나 등에 지고 녀자의 뒤를 따라다니는 신세밖에...
그것도 무슨 약속대로라는것(방학동안 녀자를 따라다니느 대가로 녀자가 관계해주는것이 아닌가요...) 조건부가 딸려있군요.
이렇게 남자는 녀자의 몸을 갖기 위하여 가련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여있는 소설입니다.

황성준   - 2008/11/18 00:09:20  
마치도 모계시대의 이야기를 읽은같기도하고....??
이렇게 남자가 비참하고 성에 있어서 녀자의 앞에서 하잘것없는
송충이처럼 묘사된것이 과연 녀자의 해방과 성의 자유를 부르짖는것이라고 보아야하겠는지....
도무지 오리무중입니다. 통 갈래가 잡히지않습니다.
황성준   - 2008/11/18 00:11:13  
그럼에도 소설이 정말 재미있다는것은 승인합니다.
봉녀라는 녀자(저는 솔직이 녀자인지 벌인지 분간이 안되군요)가
벌통안에 대고 벌들과 이야기하는 대화를 읽으면 동화같은 감도 주는데요...
그런데 대화도 재밌게 하고 성에 관한한 묘사도 정말 이렇게 직설적이면서
몸서리가 돋게하는 소설은 처음 읽어봅니다.
이렇게해도 되는건가요?
helen   - 2008/11/18 00:43:13  
이미옥님 글 보니깐 이해가는것 같기도 하고
암튼 더 많은 평론이 있었으면 좋겟습니다
주정규   - 2008/11/18 01:06:10  
순호동생 한편한편 충격일세. 동생의 성애론이라고해야할지..
마광수교수의 '즐거운 사라'보다 십배 더 하네. 뺨치고 가겠네..
  - 2008/11/18 07:03:35  
소설만 읽으면 저 역시 다른 독자분들이나 하나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리벙벙합니다.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고 봉녀의 형상상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류순호선생님이 최근에 창작하고 계신 여러편의 단편소설들(<빵순이는 즐겁단다>(주인공 빵순이) <완두꽃을 먹는 녀자>(누나))에서도 봉녀 비슷한 형상들이 련상되였습니다. 이미옥님의 판단하신대로 <진보적 녀성의 견강한 생명력>이라고 공감하게 되지만 보다 생명력의 깊은 안에는 녀성의 야욕과 음심같은것이 느껴집니다. 야욕과 음심을 바로잡을수 있는 사랑과의 갈등이라고 해야할지..............어쨌던 녀성은 해방되였다고하지만 정치적 인권차원에서의 해방과 남녀평등이고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하여 더욱 주목하게되는것은 인간의 원욕에있어서 녀성들은 모계시대를 잃어버린뒤로부터 수천년동안 녀성특유의 야성까지도 모조리 짓밟혀왔던것이며 작가는 그런것에 대한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것이나 아닐가요??? 야성이 구체적으로 어떤것인지 전문가들이 표현하기에 따라 여러가지형태로 많이 존재하겠지만 작가는 이 소설에서 남자가 녀자의 음모속에다가 <코와 입술을 박았다>는 묘사로 표현했군요. 도덕적규범과 사회적인 통념관습상에서 보면 지금 시대에 성경험을 갖고 있는 남녀가 오렐섹스하는것은 정상적인 보편화된 현상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클린턴)까지도 오렐섹스추문으로 국가 청문회에 나서야했던 과거사도 있었지요. 마광수의 <성애론>도 오렐섹스에 대하여 상당히 깊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아마 서방문학에서는 스스럼없이 류행하고있지않나 싶은데 우리 조선족문학내지 중국문학권은 아마 아직은 아닌듯 싶군요. 그런데 제가 감탄하는것은 꿀벌의 동물계에서는 남자벌이 녀자 왕벌의 성기속에 삽입한뒤 빼내지 못하고 모두 죽는 과학적인 사실은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냈고 벌을 키우는 젊은 녀자와 있었던 밤의 정사를 통하여 묘사는 벌이 녀자와 한것처럼 만들어놓고 아침에 그것은 바로 소년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살짝 밝혀놓은것이 정말 기묘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여러번 읽으면서 꿈이야기를 썼는가 아니면 정말 벌이 녀자의 성기속에 들어가는것철머 환각이 일어나게 만든것이였나 판단하느라 했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얼떨떨하지만 우에서 如然님이 이것은 왕벌들의 세계에서 비행시합을 통해 배우자를 택하는 <<婚飛擇偶>>라는 표현을 읽고는 정말 이것은 의심할바 없는 한편의 독특한 예술이구나고 생각했습니다.
  - 2008/11/18 07:14:38  
본인도 문학을 깊은 흥취를 가지고 중외 문학작품들을 많이 읽어왔다고 자부하지만 서방문학의 차원은 확실히 동방문학과 다른 경지에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절감하였습니다.
특히 독자들을 철학적인 사색의 깊이에로 끌어들여가는 매력은 언제나 신선합니다. 제일 힘든것이 처음 읽었을 때 잘 터득이되지 않아 얼떨떨한것입니다. 외국영화를 볼때면 계속 졸음이와서 졸다졸다 다시 또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실마리가 풀리면서 작품의 내재적의미를 터득하게 되여가는 과정은 너무 행복합니다. 이미옥님이 봉녀는 <진보적녀성의 신형상>이라는 말씀을 해주셨기때문에 저는 금방 이 소설을 쓰신 작가의 의도를 터득할수 있었습니다. 신형상이 수립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느때의 시점을 기준으로하는지 모르지만 녀왕벌의 동물세계에서 모계씨족사회가 지금도 류행하고 있고 한번도 몇천년동안 흔들림이 없이 그대로 류행하고 있는 모습에서 저는 이 소설이 발표되는 오늘을 시작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봉녀의 어제는 모두 낡은 인습속에서 녀성의 야망이 짓밟혀왔다고 해야 하는것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인습과 낡은 제도 모두에 대하여 강력한 도전을 선포하는것이라고 해도 됩니까? 남자가 항상 한마리의 벌레처럼이나 녀성에 대하여 성노래기 아기출산도구 영원히 남자에게 종속한 노예 비슷한 이미지로 간주되는 어제까지의 <짓밟힌 녀성의 야욕>에 대하여 해방을 호소하였고 이런 해방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 2008/11/18 07:24:12  
때문에 남들은 입에 담기도 거북스러워하는 묘사(생략하겠습니다)야말로 녀성의 야욕을 짓밟은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으로 여겨지며 그런 비판을 실천함에 있어서 모두 봉녀와 섹스를 하였던 모든 숫벌들이 죽어버리는데 주인공 소년은 살게됩니다. 살게되는 원인은 사랑의 힘이 작동했다고 봐야되겠습니다. 말벌에 쏘인 코를 치료해주기 위하여 벌의 독을 채집하는 장명이라던가 베개삼아 무릎을 베고 봉녀의 허리를 부둥켜안을때도 그렇게 정답게 소년을 안아주는 봉녀의 모습은 사랑외에 다른것은 아무것도 없지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소설은 녀성의 해방은 여전히 사랑으로 죽음을 이기고 사랑으로 인간의 야욕을 정화시킬수 있다는것으로 리해합니다. 그런데 봉녀는 여전히 혼자 산속에 남아서 계속 다른 남자들과 살을 섞고 지낸다고 했군요.(........나는 또 새 놈이랑 만나서 대 여섯 차례 더 관계를 가져볼 거야. 몇 주가 지나 6월이 되면 나의 질에는 더 많은 정액이 쌓이게 되고 나는 수만 개의 알을 낳게 될지 몰라. 그것을 몽땅 너희들 봉 방에 선물할 테니까. 너희들은 섭섭하지 말아줘. 난 그래서 저애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는 거야......) 이런 장면은 정말 리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봉녀는 색마비슷하게 되여버린것 같습니다. <변강쇠>에서 나오는 옹녀와 흡사한데가 있는 녀성입니다. 옹녀는 변강쇠를 만나 더는 남자들을 잡아먹지 않고 변강쇠와 사랑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무엇때문에 봉녀는 그렇게 산속에서 사라지게 만듭니까? 나는 왜 또 산속으로 가야하는지....이런 결말에 대하여 리해할수가 없습니다. 봉녀의 형상을 생각하면 양봉하는 산이 신비로와지고 꿀을 마실 때도 봉녀의 생각이 떠오를것 같습니다.
종소리   - 2008/11/18 07:39:11  
니카시대라고 불린다는 싸이트 정말 대단합니다.
니카의 대표라는 작자분이 앞장에서 이처럼 음탕한 에로스를 설파하는군요.
할말이 없습니다.
두견화   - 2008/11/18 08:17:40  
유작가님은 수필도 알아보지 못하게 쓰고 소설도 알아보지못하게 쓰시네요..
수필들은 지금 다시 읽어보면 조금씩 뜻이 알리는데 소설은 아무래도 저의 능력으로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재미는 있어요 ㅋㅋ
문학이라는게 참 신비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들도 다 써낼수 있다는것이 희한합니다.
韓一井   - 2008/11/18 10:28:16  
소설의 내용을 떠나 소설 구성에 발목이 잡혀 읽는 중에 이해를 섯갈리게 만든다.그래도 끝까지 읽었다.하지만 아래의 댓글을 읽어보니 이야기 구성의 난해가 본인 뿐이 아님을 긍정하게 되였다.

소설에서 봉녀와의 관계를 두고 구경 내가 벌인지 벌이 나인지 분간키 어렵게 만든다.결국 벌이 한짓이 아니라 자신이 한짓이라고 한다.다시말해 내가 한짓을 벌이했다고 쓰지만 기실은 그때의 벌이 진짜의 벌이 아니라 진짜인 나를 벌의 행위로 대신해 묘사했을 뿐이다.이것이 이해되면 이 기초에서만이 소설내용을 파 볼 의미가 있다.

만약 이런 수법을 기교로 활용하였다면 수선 먼저 이 기법의 타당성이 긍정되여야 한다.하지만 처음으로 이런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어쩌면 이런 수법은 의식류소설 수법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게 보인다.왜냐하면 의식류의 소설을 읽음에 무질서한 의식의 흐름중에 질서를 찾는 노력이 있지만 이 소설의 구성은 사건 발전에 따라 진해되다 의식류적인 내용인 나와벌을 함께 반죽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수법이 타당하다면 읽는이들에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읽는이들에게 내용을 떠나 오리무중에 빠지게 하기 쉽다.또한 이런 수법이 재래식의 소설에선 환각정도로 나타났을 뿐으로 이해엔 지장이 없었다.
류영애   - 2008/11/18 11:28:03  
이글을 읽은뒤 너무 충격적이여서 속이 막 울렁거려요.

이미옥님의 평론으로 많은 이해가 가는데 女人时代가 도래하고있음을 느꼈습니다.
김동석   - 2008/11/18 11:36:42  
바퀴벌레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쉽게 터득했습니다.
봉녀는 상징성도 대표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주장하고 말하려는 하나의 상관물에 지나지않지만
지극히나 기발하고 意外性 깊은 독특한 기법으로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생각합니다.
꿀벌세계에서 여왕벌의 이야기는 세상에 다 알려져있는 사실인데
소설화하여 직접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였습니다.
읽는 도중에 많이 헷갈리였지만 그래도 이번 소설은 비교적 차분하게
해석도 잘해주셨습니다.

김동석   - 2008/11/18 11:41:02  
이미옥님의 평론에도 또 추천드립니다.
이번에도 또 고맙군요. 소설을 터득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春님께서 남기신 의문에도 함께 공감합니다.
이해되면서도 하나하나의 의문이 다 풀리기에는 어려움이 많군요.
허수옥   - 2008/11/18 13:40:03  
어떻게 작가님은 번마디 이런 소설을 쓰시는지 리해가 잘 안되네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현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련관되여있는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가장 감동적인 소설로 <빵순이는 즐겁단다> 한편을 제외하고 다른 소설들은
도저히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오늘읽은 소설로 말미암아 많은 실망을 받게 되였음을 고백하고 싶군요.
성란   - 2008/11/18 14:06:57  
아저씨 왔다가요~

아름다운 수필 많이 써주세요~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 사계절...이런거랑 다 좋은데요~

소설은 이제는 싫어용~

저뚜 빵순이는 좋던데~ㅋㅋ
성란   - 2008/11/18 14:07:40  
그치만 성란이는 언제나 어저씨 편이라는... ^^
주성호   - 2008/11/18 14:19:32  
이번에도 이미옥님의 평론이 아니였으면 저희 수준으로는 이 소설을 리해할수가 없습니다.
읽는 도중에 다른 사람들이 보고 뭐라할가봐 눈치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야말로 넌센스입니다.
문학도 현실생활에서 구상하고 생활속의 삶을 모체로 하지 않습니까.
이런 상상은 어떻게 하시는지 참으로 리해가 안되군요.
이미옥님과 春님의 글평을 읽으면서 많이 터득되고 감탄하게도 되지만
만약 이런분들의 평론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될가요?
일반 독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게될지 짐작할수 있는것이 아닙니까.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시간상관계로 이만 쓰겠습니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소설에는 정말 뭐라 태도를 표시하기가 어렵습니다.
박준   - 2008/11/18 21:46:05  
모계씨족사회를 경험하는 기분..
세계사를 보면 모든 변화의 갈피에 여자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야욕이라고 해야겠지요.
때로 이런 야욕들이 역사를 바꾸어놓는 경우도 푸술했구요..
여왕벌의 세계는 매력적인데가 있습니다.
왕위를 다투는 일인자들의 사투를 연상시킵니다.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박준   - 2008/11/18 21:48:17  
봉녀가 벌들과 주고받는 대화, 봉녀가 소년과 주고받는 대화가 명문입니다.
그렇게 생동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말그대로 대화의 예술입니다..
조화를 이루듯한..
희정이   - 2008/11/18 21:59:19  
유순선생님...추천드리고 갑니다. ^^.

저도 찬성입니다...
이미옥   - 2008/11/19 00:38:22  
이 소설은 표면으로 봉녀와의 “섹스”를 다루었지만 마치
자궁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현장을 은밀하게 스케치한 느낌도 듭니다.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기 위해서는
수억 마리의 정자가 치열하게, 아주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 중에서 살아남아 수정이 되는 건 단 한 마리뿐이죠.

“살아남는 다는 건”, 뭐 사랑이냐 행복이냐를 떠나서 “전쟁”입니다.
그렇게 수억 마리의 경쟁을 거쳐서 태어나서도 여전히 우리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정글”과도 사회에 던져져 있습니다.
즉 “사랑”을 논하기 전에는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1차과제입니다.
그리고 그 “살아” 남기 위해서 남들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길이죠.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싸워왔습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요, 또한 이러한 삶의 욕구가 팽창되면
“패권”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져 인간은 다른 이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적 욕망 다음으로 가장 큰 욕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남자의 세계에선 말이죠, 오죽하면 인류역사에서 왕권사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봉녀는 단지 여자에만 한계 짓을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기적으로”, 경쟁력을 축적하는 모든
인간의 또 다른 단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봉녀는 우두머리니까 특별히 우수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이긴 합니다.

사랑이니 도덕이니 하는 건 어쩌면 “위선”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작가는 당당히 제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을 한꺼풀 벗겨보면 누구나 “신음소리”-마치 철없는 소년이
벌을 건드려서 생채기가 난 것처럼 온통 힘들게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소년이 죽지 않았던 건, “사랑의 힘”보다도
그 자신이 다른 말벌과의 전쟁에서 (다른 수컷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지요.
마치 수억 마리의 정자 중, 살아남은 한 마리의 정자처럼
소년 또한 치열한 “경쟁”에서 선택되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받은 것이지요.
그것이 힘이든 매력이든 뭐든 말입니다.

그러니까 봉녀의 이야기는 두 가지를 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봉녀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벌들의 군상”-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투하는 사회의 일면, 인간의 싸움 본능”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의 “여자의 거침없는 욕망과 생명력”도 분명히 다루어져 있다고 봐야지요.

소설 속 봉녀는 두 가지 모습으로 환원됩니다.
1) 강력한 통치권을 갖고 있는 우수한 유전자-이기적인 리더의 모습도 있고
2) 또 자신의 수하-수컷들과 애기벌들로 비유되는 남자와 어린이들-들을 살뜰히 돌보는
모성본능도 갖고 있지요.

두 가지는 분명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만 하나로 읽어내기에는
조금 다른 속성 때문에 독자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특히 여성의 이미지는, 이기적이고 전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존의 상식을 뒤덮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소설 안에 두어 가지를 다 그 이상으로 담아내려 했기에
소설을 온전히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 읽어 내려는 독자들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쨌든 작가가 제기한 문제들,
벌집으로 비유된 인간 사회의 실체라든가 -
인간의 생존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든가 -
여성상의 진보적 제시상이라든가 -
하는 것들은 분명,
엄청난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너무 거대해서 사실,
표현으로도 벅찬!
(^^)
조연희   - 2008/11/19 00:57:49  
와~ 역시 이미옥님의 평론만 아니면 이 소설은 모르겠어요...
저는 소설보다 이미옥님의 평론글을 읽는 재미가 더 좋은 같애요..^^
유작가님께는 좀 죄송 ^^
어떤 장면은 너무 징그러워서...근데 평론을 읽고나면 다 이해가 갑니다.
생명에 대한 노래라고해야하나요...
근데 정말 감탄이에요...
조연희   - 2008/11/19 00:58:35  
전 미옥님 팬이되어버린같아요..
평론이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ㅋㅋ
정말 멋지세요....
강추!!
리련희   - 2008/11/19 00:58:49  

선생님...이 글은 많이 어렵네요.
글속 내용이 충격적이기도 하면서 웬지 모르게 끌리는 부분도 있고...
위에분들 리플을 읽어보면 뭔가 또 알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저로썬 잘 이해가 안되고 어려운 글이네요. ^^
김선   - 2008/11/19 01:21:13  
세상은 녀자의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유작가님의 소설과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고 받는 감상이 너무 많아서
딱히 어느쪽으로 갈피를 잡았으면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녀성과 생명에 대한 찬가라고 해야합니까?
김희옥   - 2008/11/19 02:49:06  
잘 읽고 갑니다.
문장을 이해하는데는 이미옥님의 댓글 도움이 많았습니다.
리처드   - 2008/11/19 03:21:44  
grotesque short story !!!
정연   - 2008/11/19 04:31:45  
성관계하는 장면에서 봉녀는 여왕벌로 변하고 소년은 수벌로 변하여-
평소에는 여왕벌과 관계하면 수벌은 무조건 죽게 될것이라는
무서울 지경으로 잔인하고 음탕스럽게 그려진 부분을 읽고난뒤에-
봉녀는 그렇게 말하게 하였습니다. 사랑의 기적...??
그런에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으니 사랑은 아닌것 같네요.
단순한 육욕 혹은 이성과 이성의 교미에만 그치는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그게 아니네요...

정연   - 2008/11/19 04:33:53  
이렇게 모르고보면 정말 리해할수 없는 소설인데~
이처럼 풀이할수 있는 이미옥님이 너무 신비스럽게 생각되네요 ..
문학전공 연구생들은 전문 이런것을 풀이하는 공부를 배우는것인가요?
저는 소설을 읽다가 내려와서 또 먼저 평론부터 읽고 ^^
아무튼 리해가 되였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공부가 되네요...
山子   - 2008/11/19 16:15:11  
충격을 주는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현영   - 2008/11/20 02:53:10  
아저씨 정말 이상해 ......................
전번에는 바퀴벌레구...글구 이번에는 꿀벌...ㅋㅋ
왜 이렇게 다 쪼꼬만 벌레들하구 섹스하는 이야기징...
현영   - 2008/11/20 02:54:11  
이미옥님 평론 읽으면 알것같기도 하지만 그래두 모르겠썽~~
징그러...
선영이   - 2008/11/20 06:39:16  
봉녀라는 여자의 형상을 통하여 새로운 여성세계를 생성하려는 작가의 강렬한 의지가 진부하게 안겨옵니다. 뛰어난 문학적 은유와 인간야성의 피상성 및 그 깊이에까지 갈대로 간 작품입니다. 유선생님 존경합니다.
김춘림   - 2008/11/20 07:53:25  
한국대학의 어떤 교수가 전문 여자의 성에 대하여 쓰다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법적제재까지 받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요.:::
유선생님은 미국에서 사시는 작가니까 누가 제재까지는 하지못하겠지만
눈총을 많이 받으리라는 각오는 해야될것같습니다.
어쩌면 존경의 대상이 될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ㅠㅠ
저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인간의 성애에 대하여 이처럼 변태적 사도마조히즘으로 묘사해도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어쨌던 선생님은 대단하신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선생님같으신 작가는 물론 작품도 니카를 알게되면서 평생 처음이니까요..
선생님 또 봐요~
리혜선   - 2008/11/20 08:03:52  
이미옥님의 댓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소설 속 리얼한 성묘사 부분이 잘 리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여왕벌과 관계한 수벌들의 운명에 대하여 말하는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닐지...
류순호선생님의 다른 일부 소설들에서도 보면 이와같이 기괴한
변택적 성행위를 볼수가 있는데 저는 줄곧 이런 행위에 대한 묘술을 통하여
세상의 위선적인 도덕과 금기, 권력, 억압 등 이런 관습을 찌르거나 또는 무너뜨리려는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봉녀에서는 이미옥님의 댓글을 통하여 그 자체를 사랑이 아니다고 보게되니
이러한 성행위의 너머에서 다른 무엇을 꿈꾸는 색다른 리상같은것은 도무지 발견이 안되군요.
이것이 저의 의문부분입니다.
이미옥님의 댓글을 통하여 기본상에서 리해가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희   - 2008/11/20 10:40:48  
또 한번의 놀라움
대글도 다 읽어도 아직도 아리숭..
잘 읽고 갑니다..
코스모스   - 2008/11/20 11:42:49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시는지요?
통 이해가 안 가네요~
윗분들의 플 다 읽어봤는데두...이해가 안가네요~
우~~~~~~~~~~~~~~~
코스모스   - 2008/11/20 11:44:08  
다음 부터 이런소설 말구요 ...좀 동화스러운 소설 많이 써주셨으면..합니다..
코스모스   - 2008/11/20 11:51:40  
이러다가 사람들이 아저씰 싸이코라고 잘못 생각하시면 어쩌죠??
샘터   - 2008/11/20 14:47:02  
이 글은 인간의 <七宗罪 Seven deadly sins> 를 말하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예전에 본 니콜라스 캐츠가 주연인 영화 七宗罪 가 떠오릅니다
어느 도시와 멀리 떨어진 섬에서 살고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벌을 토템처럼 숭배하는데
모든 면에서 벌하고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여왕처럼 모든걸 지배하고 매년마다 마을에서 제일 순수하고 총명한 여자아이 한명을 뽑아서 남자하고 치례를 치릅니다. 그냥 후대양식을 위한 치례라고 할가요.그리고 나서 선택된 남자를 죽이고 하는 내용입니다...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는데 엄청 공포적입니다.
인테넷에서 찾아보면 칠종죄는 성경,단떼의 신곡에서 나옵니다.

여왕벌한테는 인간의 모든죄행 칠종죄가 전부 존재합니다
1.색욕- 이 글을 음란하다고 표현한만큼 글에서도 칠종죄중에서도 색욕이 처음순위. 여왕벌은 모든 수펄을 차지
2.탐식- 여왕벌은 로얄젤리밖에 안먹는다.
3.탐욕- 여왕벌이 되려는 탐욕
4.게으름- 여왕벌은 누워서 해주는대로 받는다.
5.질투- 시기하고 질투하던 끝에 죽을때까지 싸운다
6.분노- 애벌레까지 죽인다
7.교오자만- 마지막에 봉녀가 한 말
이 칠종죄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 악마라고 합니다.
이글은 봉녀를 여왕벌에 비유하여 인간의 칠종죄를 말하려한것 같습니다
헌데 응당 죽어야 할, 죽여야 할 나를 살려서 돌려보냈다는것은 칠종죄를 전부 갖춘 여왕벌 같은 봉녀한테 악마가 아닌 인간의 순한 마음이 있다는것을 말하려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왕벌이 칠종죄를 모두 갖고 있는 악마일지라도 수많은 벌을 잉태하여 벌을 사회를 형성시키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서 여왕의로서 모든 죄가 용서될수 있다?

늦은시간이여서 그냥 두서없이 제가 이해한대로 적어봅니다. 틀렸다면 많이 지적해주길 바랍니다.
조연희   - 2008/11/21 01:56:53  
샘터님의 리플까지 읽고 비로서^^

어쨌던 유작가님은 정말 대단하셔여 ㅠㅠ

너무 우러러보입니다...

이미옥님 春님 샘터님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가르침이였어요 ~
shanghaitan   - 2008/11/21 04:22:22  
샘터님의 말씀에 설복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작가님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소설 만들었는지 리해가 가군요.
ㅋㅋ 우에 유작가님을 싸이코라고 의심하는 분도 계시네요 ....
저도 처음에는 동감이였습니다.
shanghaitan   - 2008/11/21 04:23:03  
이번에 정말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문학이고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성준   - 2008/11/21 04:54:00  
이미옥님과 샘터님께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였습니다.
황성준   - 2008/11/21 04:59:25  
아직까지 국내외 어떤 문학작품들에서도 읽어본적이 없는 독특한 작품인것을 승인합니다.
이런 뛰여난 작품이 중국의 조선말 잡지에서 발표될수 없는것이 조선족문학의 수준과 현주소가 어디에 와있는지 가늠하는것이 아닐가요?
솔직히 <장백산>잡지나 <도라지> <연변문학>같은 전문 문학지의 편집님들의 수준도 의심되구요.
어쩌면 그분들의 작품을 보는 수준이 조선족문학의 앞길의 여느냐 가로막느냐는 관건일수도 있는것입니다. 저는 유순호작가님의 작품이 중국의 조선말 잡지들에서 보통 발표되지 못한다고들었습니다.
우리 민족문학의 비극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해야할지 잘 판단이 안섭니다.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참으로 좋은 문학강연을 받은 기분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문학이고 진정한 예술인가/?
가을   - 2008/11/21 08:09:12  
평론글이 아니였으면 오해할번했네요 ^^

정말 너무 진부한 표현은 몸서리까지 돋을지경이였답니다.... ㅠㅠ

가을   - 2008/11/21 08:10:32  
어쨌던 못 말려. ㅋ 싸이코란 소리까지 다 듣구..ㅋㅋ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이 수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수필 좋아하는데..
김재이   - 2008/11/21 09:53:42  
작가님 오랜만에 단편 소설 한편 올리더니 이렇게 음탕한 글을 가지고 오실줄이야.ㅠㅠ
처음에는 좀 괜찮았는데 마감에 와서 기분을 몽땅 버렸습니다... ㅜㅜ
빵순이가 그립습니다.
최정학   - 2008/11/22 00:29:43  
정말 대단하십니다.
근데 이 소설은 누가 평론을 안쓰나보죠?
전번 카크로치이야기보다훨씬 더 충격적인데 말입니다.
ㅋㅋ
최정학   - 2008/11/22 00:30:43  
역시 이미옥님의 평론이 마음에 듭니다.
정말 옳은 같습니다.
김철호   - 2008/11/22 01:08:16  
류순호씨가 우리 조선족출신 작가인것을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우리 문학에 이런 작품이 나올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 문학의 진정한 현주소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있다.
진심으로 경탄과 감사를 드린다.
김선   - 2008/11/22 05:47:55  
성묘사가 이처럼 진부하게 진행된 소설을 보았던 기억이 없네요.
다는 알지못하지만 국내외 작품들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내용의 의미는 서울대 연구생분도 이미 자세하게 해주셨고 리해할것 같습니다.
진정한 작품이라는데 동의하지만 꼭 이렇게 음란물에 가까울정도로 성묘사를 진행한
의도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이 소설이 정말 잘된 소설로 인정받지 못할수도 있지않을가요?
그렇게된다면 너무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김선   - 2008/11/22 05:49:02  
어쩄던 평생 처음 읽는 대단한 소설이였다는것은 숨기지않습니다.
니카와 유순호작가님을 알게된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계속 많은것을 배우고싶습니다.
박철수   - 2008/11/22 08:15:15  
이 정도 성묘사를 가지고 전례가 없는것이라고 보는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성묘사 부분에서 이 작품을 진정한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기묘한 표현법입니까!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SK 투어   - 2008/11/23 07:20:30  
조선족작가들과 조선족문학작품에서 가장 선구자적인 작가와 작품이 될것같습니다.
지금 잠시는 제대로 된 평가와 긍정받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음란물로 볼수있는 오해의 소지가 너무 강하니까요.
그런데 우에 부분 독자님들이 말씀하신것처럼 진정한 예술이고 진정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백프로 찬성입니다.
SK 투어   - 2008/11/23 07:23:30  
중국 조선족의 문학사회가 이런 작품을 넉넉하게 수용할수 있을때면
조선족문학도 변두리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착하게 될것입니다.
이런 수준에까지 닿아있는 정말 대단한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채미화   - 2008/11/23 12:35:11  
벌둥지에서 녀왕벌과 그리고 봉녀와 그리고 주인공 본인사이에,
둘러싸인 한달간의 벌들의 콕콕 찌르는 번식과정을 통하여
주인공님이 행운스럽게 녀왕벌의 독특한 총애를 입고 난 뒤 지금도
그때 정경을 잊을 수 없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잘 읽고 갑니다......
정연   - 2008/11/23 23:31:05  
봐도 후회하고 안봐도 후회할만큼 충격적인 소설을 읽고 갑니다 ~
신선한 충격이였습니다 ~
빈술잔   - 2008/11/24 02:03:40  
단편소설 "봉녀"의 일부 구절과 단락들의 <표달방식>이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极品이라 해도 될만큼!
너무 적나라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의 구미를 잔뜩 돋구어주는 성에 대한 묘사라던가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펼쳐나가는데 대찬성입니다.

하지만, 유작가님이 일전에 쓰신 <바퀴벌레의 이야기>에서보다는 그 상징물이 이끌어나가는 여운의 깊이와 폭이 뒤진다는 느낌입니다.

암튼, 이런 소재와 이런 표달방식으로 글 지어내시는것에 탄복합니다.
스마일   - 2008/11/24 14:16:35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감수 적을렵니다.
지금 사회는 여자들도 자립하고 남자들 못지않게 여러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는 관념과 사상이 변하고 남자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봅니다.
남자들 또한 한번쯤 아픈 상처를 겪어야만 크게 되고 목표가 명확해 진다고 봅니다.
부족한 20대 올립니다.
서국화   - 2008/11/24 16:37:59  
방금 최삼룡선생님의 평론을 보고 여기에 들렸는데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글에 대하여 평론하셨네요. 다들 참 대단하시네요. 전 평론 보고두 알듯 말듯 한데 다들 이렇게 심오한 글 내용을 알기 쉽게 해석해주시다니요.. 참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김경희   - 2008/11/25 11:04:58  
최삼룡선생님과는 좀 다른 품격의 평론
이미옥님 좋은 평론 감사합니다..
류영애   - 2008/11/25 14:39:46  
역시 감탄이 나가는 평론입니다.
유작가님의 글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있도록 이처럼 세부적인 평론을 해주셨군요.
많이 배우고갑니다.
金楓   - 2008/11/25 15:49:32  
이미옥씨의 두번째 평론문을 읽었다. 소설 <<봉녀와>> 맞먹는 평론이다. 이 소설에 대한 나 자신의 자세한 견해는 삼가하겠다. 다만 평론을 읽으면서 참으로 <<後生可畏>>함을 느낀다. 소설 <<봉녀>>는 이미옥씨가 밝혔다싶이 분명 매력적인 한편의 아주 기괴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이 매력의 깊이를 아주 감명깊게 파헤친 이미옥씨는 큰 평론가로 성장할수 있는 남다른 재능과 소질을 구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金楓   - 2008/11/25 15:50:17  
정진을 기대한다!
정연   - 2008/11/25 16:15:44  
이미옥님 추천드려요!!!
이번 평론두 넘 멋진 같애요...
shanghaitan   - 2008/11/25 21:59:32  
김풍교수님의 말씀에 <소설 봉녀와 맞먹는 평론이다>는 표현이 적격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교수님은 <봉녀>에 대하여 그렇게 썩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같아도 보이는데 궁금하네요.
이미옥님 추천드립니다.
님의 평론은 정말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게 끝나니깐요. ㅋ
허수옥   - 2008/11/26 01:25:35  
두번째 읽는 평론 더 좋네요. 근데 소설은 먼저 읽은 <바퀴벌레>가 훨씬 더좋은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의 개인 한 사람의견이 아니고 저의 집 식구 모두가 함께 읽었답니다. 니카에 빠져지내고 이미옥님께도 빠졌네요 ~학업을 성공하셔서 훌륭한 평론가 되세요.
현영   - 2008/11/26 01:55:28  
울 순호아저씨 소설 평론해주시고 오해도 풀게해주셔서 넘넘 고마워요 ~

이미옥님께 추천드립니다
김선   - 2008/11/26 03:58:19  
이미옥님의 이번 평론도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무엇을 말하는 소설인지 리해되지 않던것이 지금은 환하게 알립니다.
감사합니다.
리련희   - 2008/11/26 13:42:08  

좋은 평론 잘 읽고 갑니다.
최삼룡선생님의 평론을 읽고 이미옥님의 평론까지 읽고나니
유선생님의 글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더 가까이 다가간듯한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평론 부탁드립니다~
이미옥   - 2008/11/26 14:57:37  
소설 읽고
두 편 평론 다 읽으시고 이렇게 댓글까지 달아주셔
제가 오히려 힘을 얻고 갑니다. ^^
저 또한 작가님 소설과 최삼룡 선생님들과 그리고 읽고
솔직하고 긍정적으로 평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상당한 공부가 되고 자극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은 좁고 좁은 대학원 강의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인의 오래된 책갈피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가는 곳, 내 시선이 머무르는 곳곳에-
지금처럼 뭔가 고민하고 삶에 대해서 성찰하는
순간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또 화이팅합시당
^^
김철호   - 2008/11/26 15:24:37  
읽다보니 자기도모르게 감탄이 쏟아져나옵니다.
주로 연변대교수들의 평론을 많이 읽어왔던 저희들은 연변대교수들의 고루함과
깨지못한 의식의 틀안에 갇혀지내고 있습니다.
그 틀안에서 틀밖을 내다보는 감흥을 한두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이미옥님 멋지십니다.
주성호   - 2008/11/26 15:43:19  
이미옥님의 지금 수준의 평론을 읽으면서 한 10년 쯤 뒤에는 어떤 모습의 이미옥님이 되여있을가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진정한 문학발전은 진정한 평론가의 문학평론과 갈라놓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에 김철호님의 말씀에 동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연변대 평론가들의 고루하고 깨지못한 의식으로는 조선족문단에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것입니다.
정말 새일대 문학 평론가들이 많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될것입니다.
주성호   - 2008/11/26 15:45:07  
니카에서 최삼룡선생님과 서울대의 마음의 소리님 이미옥님 등 분들의 평론을 읽은 뒤로부터
지금은 조선족잡지들에 매기마다 한두편씩 나오는 연변대 교수출신 평론가들의 평론은 도저히 읽지못하겠습니다. 이미옥님의 이런 평론 이런것이 진짜 평론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철수   - 2008/11/27 01:04:32  
이미옥님의 이번 평론까지 읽으면서 제가 발견한 매력은 다음과 같은것입니다.
대학교수들의 평론(주로 우리 중국 조선족 교수들)은 자기 말을 많이 하지못합니다.
평론들마다 모두 세계 어느 석학은 어떻게 말했다.
한국 중국의 어느 학자는 이렇게말했다
고로-------- 여기에 기준하면 이러이러하는것이 옳다.
이런식이 대부분이거던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몇분 교수출신 평론가들은 지어 자신의 평론에 대하여
무게와 권위성을 호소하기 위하여서인지
문학가가 아닌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이름까지 들어가면서
엥겔스는 어쨌다 레닌은 어쨌다......
그런 기준으로보면 이 작품은 어떻다...이런식 평론에 많이 습관되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옥님의 평론은 정말 생신하고 독창적이며
마디마디 모두 이미옥님의 견해와 생각이란말입니다.
또한 견해와 생각들이 모두 설복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누구의 관점과 견해를
빌어와서 자신의 견해와 관점을 보다 더 긍정해줄 필요가 없는것입니다.



박철수   - 2008/11/27 01:06:45  
읽고나서 무더운 여름철에 너무 맛있고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신 기분이였습니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계속 더 좋은 평론을 부탁합니다.
최련화   - 2008/11/27 03:59:35  
새시대 신식맛을 느끼게하는 평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드립니다.
두견화   - 2008/11/27 04:27:52  
유작가님이 무슨 글 한편 쓴다하면 금방 이미옥님의 평론글을 기다리게된답니다.
작가님의 생각하는 사상을 몽땅 다 알아맞추시니깐요.
정말 서울대 문학연구생은 보통 대학과 다르다는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어렵게 써서 전에는 아무리 읽어도 뜻을 알수없었는데 지금은 어려운 글을
리해하고 알게되는 과정이 더 흐뭇하고 재미납니다.
문학에 대하여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도 이렇게 문학에 빠져들수있다는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여정미   - 2008/11/27 06:48:42  
저번 읽었던 '바퀴벌레' 평론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참으로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이때로부터 작품의 의미는 평론가의 몫이고 읽는 사람의 몫이 된다는 말이 옳은 같습니다. 평자가 어떻게 평론하고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 임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여정미   - 2008/11/27 06:51:24  
작가를 완전 배제시킨 독립적인 문학사고에 깊이 동감합니다.
(작가를 배제시켰다는 말씀은 이 작품에 작가의 기질론과 시대적 상황론을 하나도 연계시키지않았다는데서 잘 드러납니다) 추천합니다.
여정미   - 2008/11/27 06:58:49  
그러나 제가 보충하고싶은 말씀은 '봉녀의 이야기'에서 보아낼수 있듯이
작가는 철저하게 딜레탕티슴(Dile-ttantisme)을 반대하는 작가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가는 이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편의 작품들에서 문학을 단지 향락과 문취, 즉 문학 자체를 즐기고 거기서 홍취를 느끼는 것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숭상하는 어떤 지조와 신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화하는 작가입니다.
때문에 작가의 기질론과 이 작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론을 전부 배제한다는 의미에서는 이 작품평은 문학사적인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시대적 사명감을 호소하는 면에서 순수한 작품해석에 지나지 않는 아쉬움을 동반한다고 말할수도 있지않을런지..
여정미   - 2008/11/27 06:59:08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주홍매   - 2008/11/28 01:07:02  
이 미 옥 님 잘 읽 었 습 니 다.
추 천 드 려 요 .
리순녀   - 2008/11/28 14:53:53  
정말 대단하네요~
서울대학교 연구생이 확실히 다라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멋있어요.
리처드   - 2008/11/29 02:32:45  
이 평론에 추천드립니다.
계미화   - 2008/11/29 03:04:55  
이미옥님 정말 넘 멋지세요~
글에서 이미옥님의 성격이랑 알리는것 같아요.
저 이런 글 좋아해요~
姜美蘭   - 2008/11/30 01:09:27  
오늘까지 두번째 읽는 이미옥님의 평론입니다.
여전히 이렇게 깔끔하고 빈틈이라고 없는것 같아요...
유작가님의 난해한 글을 금방금방 파악하는 센스~
넘 부러워요...
姜美蘭   - 2008/11/30 01:10:08  
앞으로도 자주 와주셔서 저희들에게 많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추천드려요...
lili   - 2008/12/04 21:30:49  
전번 바퀴벌레에 비해 이번글은 서운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미옥님 열심히 분석하시고 평을 하셨지만, 웬지 거부감이 드네요.(죄송하지만 ㅋㅋ)
글 자체에 거부감이 아니라 이미옥님 평이 솔찍히 맘에 안들었어요.

저의 짧은 소견으로써는 작가님이 알리고자 하는 뜻이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교배용의 수펄은 있지만 노동벌은 교배를 안하지요).

오직 벌의 여왕이 하나다는 점으로부터 수많은 벌들이 하나밖에 없는 여왕을 쟁취하려는 치렬한 전투를 보여준다는것도 어딘가 무리인것 같고(사랑이 없는 성적욕구가 그렇게 생존에 필요한것일가 의문???),

봉녀의 행위로부터 여인의 권위를 일으켜준다는것도 어쩐지 설득력이 없어보이네요(남남녀녀가 살아가는 세상 절대적인 그어떤 권위를 보장해야할 이유가???).

그리고 <나>는 벌이 아니여서 강하기에 살아 남았다(??).

진짜로 진짜로 전 이글에 내포된 작가의 뜻을 알수없는데 이미옥님의 평을 보면 이미옥씨도 제대로 포착못하고 평을 썼다는 느낌이 드네요.. .

아 글구 샘터님의 플 의견에도 설득되지 않았어요. ㅋㅋㅋ..
아이구,~~이런 완고통이라구야..ㅎㅎㅎ

작가님과 이미옥님, 샘터님 미안해유~~~
이미옥   - 2008/12/05 01:21:30  
미안할 게 뭐 있나요...
평론 또한 작품을 읽고 향유하기 위한 방법의 연장선일 뿐
정답은 아니지요.

저 또한 저만의 방식으로 읽어낸 것이고
다만, 작품 속의 상징성에 주목하여 그것이
의미없는 파편이 아니라, 하나하나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유기체고
작가가 제기한 문제의식이 우리의 현실과 인간의 본질에 얼만큼
맞닿아 있는 지를 추적하여 재구성하였고
맨 몸뚱아리의 작품에 처음으로 옷을 입힌 것 뿐입니다.

읽고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남의 의견에 동조할 필요는 전혀, 없지요.
안그런가요? ^^; 리리님~
주홍매   - 2008/12/06 05:12:34  
추천합니다. 소설 읽고 좀 너무 그런것아닌가 생각했지만 님의 평론을 읽고 리해할수 있습니다.
소설이 재밌는것은 사실이예요. 깊은 뜻도 있으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리성진   - 2008/12/12 12:58:38  
처음에 잘 리해할수 없었던 작품을 평론을 통하여 터득할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잘 알수 없던 작품에서 의외의 기쁨을 얻게 되였습니다.
빵순이   - 2008/12/19 11:07:33  
성란님 성란님 ㅋㅋ 님아님아 저두 빵순이가 좋던데요 웬지 텔레파시가 통하는 느낌 너무 좋은데요
이제 제가 미국간다면 언제한번 꼭 만나고 싶은데염 ㅋㅋ
가기전까지 니카에서 자주 뵙길 바라겟습니댱 ^0^;
미여니   - 2009/09/21 07:40:26  
평론도 좋았고..

평론과 소설이 함꼐 어우러져 독특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확실한 자기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어요..

자연과 생명의 근원인 여성의 몸을 강렬하고도 풍요로운 설화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성숙한 문학 세계를 자랑하고 있는 같어요..

-소중함을 전하며-
빨간인형   - 2009/09/22 09:52:04  
추천드리고가요^^
희망의 향기   - 2011/05/17 01:54:02  
봉녀에대한 문학 평론을 잘 읽구갑니다.
유작가님의 글에 봉녀의 이 소설에도 그냥 내용뿐이 재밌었던것이 아니라, 이많은 의미가 내재되여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재밌었던것 같습니다.

“살아남는 다는 건”, 사랑이냐 행복이냐를 떠나서 “전쟁”이다.

좋은말들도 배우구 갑니다~
이미옥 선생님
좋은 평론 종종 많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한정남   - 2011/08/31 12:19:38  
나이어린분들의 대단한 평론을 잘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정예은   - 2011/09/08 00:29:38  
친구의 소개로 유순호 작가님의 소설집에서 이미옥님이랑 청설님의 사진도잘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유작가님의 책을 하나 마련했거든요.
책 첫페이지에 사진 넘 멋졌습니다.
좋은평론을 앞으로도 많이 해주시고, 좋은 소식들, 많이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남 설화   - 2011/10/25 09:24:37  
이미옥님, 안녕하세요. 청설님의 한국에서 출판된 문학선집에서 이미옥님의 서평을 보았습니다.
서평으로 인해 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난해하지가 않았습니다.
학위를 끝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defence가 있기를 빕니다.
희망의 향기   - 2012/01/06 01:44:15  
저두 물론 보았죠 ^^ 이미옥님 지금은 어디서뭘하셔요? 왜 니카에서 저는 볼수없는가요?
혼자보고계시는건 아니겠죠~
방명록에도 얼굴뵜으면 좋겟습니다~~~
희망의 향기   - 2012/03/20 23:37:02  
이미옥박사님은 니카 보구 있어요??
이렇게 훌륭한 분.. 정말 짠~! 하구 나타나서 니카에서
함께~해씅 좋겟슴다.~~~~~

책에서두 얼굴 봤는데.. 니카에는 다녀간 흔적을 통 몰라서~~~
박민규   - 2013/11/27 06:33:19  
소설도 평론도 모두 너무 좋습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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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徐芝月 에세이]만주벌판과 민족정신-내 만주기행의 의미     아미산월 2008/06/05 4174 229
공지  [공지]한국 시전문지「詩와 詩人」에 <니카시선> 특집 게재!!     아미산월 2008/06/02 4814 306
공지  [길림신문]<문화예술>"니카문학특집"을 선보이며     [길림신문] 2008/05/23 4955 613
공지  #[공지]니카문학 시창작강좌(강의 텍스트 자료모음)   [2]  아미산월 2008/05/18 4559 244
공지  #[공지]전세계 중국 조선족 인터넷 지상시창작 마당   [1]  아미산월 2008/05/17 4056 226
공지  #[공지]'니카문학 시창작교실' 오픈 취지!!     아미산월 2008/05/17 4255 314
 [이미옥 문학평론] 봉녀를 통한 여성성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    [114]
No : Date : 2008/11/17 Hit : 22787 Vote : 548 Name :  피안
이미옥, 서울대 현대문학 박사연구생

  


   “봉녀”는 “바퀴벌레”에 이어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년의 첫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왕벌 같기도 하고 “대단한 여인” 같기도 한 그녀와...
 [이미옥 문학평론] 역사의 가면과 소외된 자의 슬픔, 그리고 전복    [109]
No : 46 Date : 2008/09/17 Hit : 17597 Vote : 576 Name :  피안
■ 李美玉文學評論 ■ 이미옥,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
  

   유순호 작가의 “엘마 샌즈의 유령과 만나다.”는 얼핏 보면 재미있는 귀신체험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장치와, 장치 속에는 웅크린 자의 슬픔이 ...
 [최삼룡 문학평론] 유순호의 단편소설 "봉녀"를 평함    [117]
No : 45 Date : 2008/11/17 Hit : 39111 Vote : 396 Name :  최삼룡
최삼룡, 평론가, 전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들어가는 말

   최근 니카에 발표된 류순호의 단편소설《봉녀(蜂女)》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있다.

   ...
 이미옥 문학평론    [68]
No : 44 Date : 2009/01/12 Hit : 18254 Vote : 344 Name :  피안
  새로 발표된 유순호 작가의 “불랑카와 이자벨”은 복잡한 서사 전개나 모호한 서술, 늘 문제시 되어왔던 “성”에 대한 충격적인 장면이 없다. 오히려 평이한 문체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짤막하게 서술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그래서?”라는 반문이 생길 것 같은 “쥐와 고양...
 [이미옥 문학평론] 경계의 소멸을 꿈 꾸는 경계자들의 이야기    [165]
No : 43 Date : 2008/10/19 Hit : 18735 Vote : 678 Name :  피안
   1. 바퀴 벌레로 상정된 이민자의 삶

   가장 어두운데 있지만 오히려 그 어떤 생물보다 왕성한 생명력을 꿈꾸는 바퀴벌레는 그 남자가 꿈꾸는 욕망의 대상이자 그 남자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바퀴벌레는 두 가지 측면에...
 [이미옥 문학평론] 문학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창조의 즐거움    [106]
No : 42 Date : 2009/09/16 Hit : 11617 Vote : 373 Name :  이미옥
   어느 날 뉴욕에서 재미있는 메시지가 한통 날아왔다.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아직은 낯선,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번 듣지 못한 중년의 작가가 그에 비해 한참 어린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해왔다.  

   “얘, 내 문집 서문 좀 써...
 [최삼룡 니카문학평론] 류순호수필에서의 섹스, 사랑, 여자 (2)    [24]
No : 41 Date : 2008/02/18 Hit : 5838 Vote : 306 Name :  최삼룡
   우리는 상편에서 류순호의 수필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류순호의 대부분 수필들이 작자의 어떤 리념이나 정신존재를 표현하는 상관물로 창조되였다는 결론을 내리였다. 물론 그의 수필중에는 인성을 탐구하는 시각에서 인간의 섹스, 사랑, 녀자를 취급한 작품도 소수 있다. 이제 하편에서 우...
 [최삼룡 니카문학평론] 류순호수필에서의 섹스, 사랑, 여자 (3)    [20]
No : 40 Date : 2008/02/21 Hit : 7158 Vote : 459 Name :  최삼룡
   우리는 우에서 류순호 수필문학의 한갈래로  볼수 있는 섹스, 사랑 , 여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한 작품들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nb...
  수필의 創作化와 文學化, 藝術化에 대하여    [60]
No : 39 Date : 2011/05/23 Hit : 20564 Vote : 591 Name :  김성희
   [김성희, 서울대 비교문학 박사 졸업] [技巧와 技術의 文學]

   유순호의 ‘겨울 妖精’과 ‘살구꽃이 필 때’를 중심으로
   김성희 서울대 비교문학 박사과정



   들...
  봉녀를 통한 여성성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    [108]
No : 38 Date : 2008/11/17 Hit : 17039 Vote : 323 Name :  이미옥
     [이미옥 문학평론] [이미옥,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과정]  


   “봉녀”는 “바퀴벌레”에 이어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년의 첫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왕벌 같기도 ...
  행복에 대한 청춘들의 담론    [12]
No : 37 Date : 2008/03/03 Hit : 4919 Vote : 287 Name :  최삼룡
  [최삼룡, 평론가, 전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행복해지고싶은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가장 원초적인 생명욕구이다.  하기에  행복의 개념, 행복의 척도,  ...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던져온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해준 사람은 없다...    [75]
No : 36 Date : 2009/11/24 Hit : 7121 Vote : 247 Name :  이미옥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운명 지워 진 존재일까. 모든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마지 않은 물음표지만 대부분“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어정쩡한 말로 대신한다. 없다고 하기에도 있다고 하기에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애매모호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이미옥 단편소설] 비상하고 싶은 그녀의 하늘    [22]
No : 35 Date : 2008/12/23 Hit : 5236 Vote : 225 Name :  이미옥
   그날도 오늘처럼 파란 하늘이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읽은 “빨간 머리 앤”이 처음으로 애본리 마을에 도착했을 때 느꼈을 것 같은 그 초조함, 현실과 공상이 뒤죽박죽이 되고 과거와 미래가 전부 하얗게 얼어버릴 것 같은 그 순간이 오...
 [조선족 좋은 詩] 작은 여자이고 싶었습니다!    [23]
No : 34 Date : 2006/10/16 Hit : 11982 Vote : 268 Name :  삶의 향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려앉는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나를 품어 안습니다.
내 가슴으로 밀고 들어와
나를 작은 여자(小女人)로 만들어놓는군요.

아무리 밀치려해도
떠나지 않는 나의 소녀시절의 꿈은
바로 작은 여자...
 [조선족 좋은 詩] [2] 리문호 詩-'자야(子夜)의 골목길'    [1]
No : 33 Date : 2008/06/18 Hit : 4480 Vote : 461 Name :  아미산월
[조선족 좋은 詩][2]

자야(子夜) 의 골목길

리 문 호

희미한 가로등, 등불 끈 창문
고요할수록 쓸쓸함은 외로워지겠지

꿈이 없어 꿈속으로 가지 못하는
너, 행방없이 떠도는 유령같은 시인아 ...
 [韓國의 좋은 詩][3]김세웅 詩-'봉지 안의 잠'    [1]
No : 32 Date : 2008/06/18 Hit : 4795 Vote : 193 Name :  아미산월
[韓國의 좋은 詩][3]

봉지 안의 잠

김 세 웅

새우깡을 먹다가 잠이 든다
다리와 허리를 구부린, 봉지 안의 잠이다
봉지 안의 은박에 눈이 부신
잠 속에선
옆의 새우깡이 꿈...
 [韓國의 좋은 詩][2]김명인 詩-'바다의 아코디언'    [5]
No : 31 Date : 2008/06/16 Hit : 5040 Vote : 214 Name :  아미산월
[韓國의 좋은 詩][2]

바다의 아코디언

김 명 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
 [動靜]韓國 徐芝月詩人 6월 20일, 중국장춘 국제세미나 참석    [1]
No : 30 Date : 2008/06/16 Hit : 6650 Vote : 214 Name :  [문학통신]


남달리 민족기상을 노래해 왔으며, 제 7차에 걸친 만주기행과
중국「장백산문학상」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장백산문학상 수상시집인『 백도라지꽃의 노래』(, 료녕민족출판사 간)를
한국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에서 ...
 [동정]徐芝月詩人,「三國遺事」一然文學祭,祝詩 낭송!    [5]
No : 29 Date : 2008/06/14 Hit : 4095 Vote : 218 Name :  아미산월
▶군위 인각사「삼국유사 일연문학제」徐芝月詩人 축시-'一然禪師 행사하시네' 낭송!

-보각국사 일연선사와 '삼국유사' 재조명을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주체사상을 찾기 위해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서 2008년 6월 14일(토) 오후 4시, 일연선사의 열반 719주기 추모제로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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