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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옥 문학평론] 에로티시즘을 통한 좀비의 사랑과 죽음의 변주곡
피안   Hit : 6058 , Vote : 60        [2019/07/28]







에로티시즘을 통한 좀비의 본능과 죽음의 변주곡
이미옥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이 소설은 이민자이자 망명 작가인 내가, 외롭고 고단한 미국 생활 속에서 만난 여인들, 루시, 채희 그리고 그 전 과정을 함께하는 샹샹을 통해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무엇인가?” “에로티시즘을 통한 구원은 가능한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성과 사랑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를 일차적으로 던지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뉴욕좀비”이지만 소설에 진짜로 좀비가 된 인간은 등장하지않는다. 그레고리 보내트가 루시의 아버지 EJ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예술작품 “좀비”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이민자 집단은 미국 사회에서(사실상 많은 하층계급이 그러하듯이) 좀비와다름없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1. 추락한 좀비와 생성된 좀비

“영혼 없는 인간”으로서의 좀비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있는 괴물과 같은 존재이다. 소설 어디에도 진짜 좀비는 존재하지 않지만 좀비의 그림자는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루시의 아버지 EJ와 그레고리는 모두 몰락한 예술가로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삶을 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한때는 촉망받는 예술가로, 빛나는 육체와 정신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영향력을 끼치며 산 적이 있었으나, 우연치 않은 욕망의 개입으로 삶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좀비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레고리는 “좀비”라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좀비화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한다.

“하지만 이런 고난의 굴레가 나 혼자만의 굴레가 아닌 것 같아. 당신 아버지 EJ도 나와 같은 고난에 빠진 건 아닐까?”

“…좀비와 빛을, 또 좀비와 틈을 오버랩시켜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형상화하려는 좀비에 대한 정의를 여전히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때로 그 좀비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레고리는 자신에게 운명 지워진 하반신 장애의 고난을 민족도 처지도 다르지만 같은 예술가라는 점에서 EJ의 고난과 동일시하고 있다. 누가 주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측면에서 한순간 삶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육체의 건강함을 잃었고 EJ는 교수직 박탈과 함께 모든 명예를 상실했다. 그레고리는 더욱 유명해지고 싶다는 공명심때문에 자신의 젊음으로 도박을 걸었고 EJ는 자신의 유약함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주류(主流)로서 쉽게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지만, 세상은 추락한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않았다. 이는 곧 사회와의 건강한 소통 단절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전의를 상실한 인간은 절망, 불안, 공포에 시달리며 자신 혹은 세상을 리셋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좀비는 죽음 욕망과 결부되지만 또 한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민자들의 삶, 그들의 육체성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된 샹샹이 멕시코 국경을 밀입국할 때 총을 쏘는 미국 군인을 뒤로하고 깜깜한 땅굴에서 정신없이 도망가는 모습이나, 채희가 서너 달에 한 번씩 겨우 쉬면서 밤낮없이 미친 듯이 마사지 일로 빚을 갚아가는 모습은 기관 없는 좀비가 움직이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역으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좀비의 특성 때문에 이들은 좀비의 육체성을 통해 오히려 경계를 초월한다. 샹샹은 두 발로 국경을 넘었고 채희는 몸을 팔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좀비가 된 육체는 모든 금기에서 벗어나 끝없이 탈주한다. 이들은 처벌받지도 않았지만 보호받지도 못했고, 구원받지도 않았지만 죽음에 이르지도 않았다. 좀비가 되어 다만 존재할 뿐이다.

추락하여 좀비된 자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존을 위해 좀비된 자들, 소설 속에서 좀비가 아닌 사람은 없다. “나” 또한 폐차장쥐동네 하우스의 다락방에서 좀비와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조금만 시야를 확장해 보면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부단히 왕래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좀비 집단에 속하고 싶은 소망이 있으며 이는 융합 상태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다. 문제는 좀비가 아니라 좀비로 분류 짓는 자들이다. 이민자, 창녀, 장애인 등은 그렇지 않은 주류 인간들에 의해서 하층계급인 “좀비”로 분류되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좀비가 아닌 자들이 좀비와 무관하게 구분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가장 근원적인 성에 대한 욕구는, “좀비”의 저렴한 육체를 통해 소모되고 해소된다.

“퀸즈 지역 중국인 사회의 매매춘 성 산업 규모가 연간 1억달러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성을 파는 사람보다 성을 사는 사람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성을 파는 좀비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통계가 아니라, 성을 사는 “익명의 좀비”가 많다는 사실을 시사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성을 사는 자나 파는 자나 구분이 없는 “좀비”임에도 불구하고, 성을 파는 사람만을 좀비로 보는 “구분된 시선”에 의해 혐오의 대상으로서의 좀비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자인 나 또한 이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로서 좀비의 육체성과 정신성 사이에서 끝없이 왕래하며 길찾기를 시도한다.

2. 루시와 채희를 통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역학관계

루시와 채희는 내가 “사랑”한 대표적인 두 대상으로서의 나의 극단적 욕망이 잘 투사된 인물이다. 루시는 금발의 미국인 예술가로 이민자인 내가 추구하는 욕망의 중요한 요건을 갖춘(그녀가 유부녀이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그녀와 나 사이에 절대적인 거리를 만들어 그녀를 이상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상향에 가까운 존재로, 루시와의 결합은 이민자인 내가 근원적으로 가진 사회 신분의 결핍에 대한 보상이 된다. 그에 비해 채희는 이민자의 현실을 철저히 보여주며 나의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같은 고향 출신에 동생 후배라는 관계의 친근성을 제외하고라도 나는 그녀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모두 촉망받는 재원이었으나 쫓기듯이 고향을 떠나왔으며 미국에서는 “매문(賣文)” “매춘(賣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2차원 수준으로 취급하고 동정하면서도 무시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이지만 그녀는 사실 이민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혐오와 연민을 거울처럼 그대로 밝혀준다.

루시와 채희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 육체성과 정신성을 대변하지만 또 한편 내 안에 있는 천사와 악마, 죽음과 에로티시즘을 대변하기도 한다. 상이군인인 남편 그레고리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지는 루시는 천사와 같은 존재이다. 신부마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 건, 그녀의 금발이나 수수한 듯 돋보이는 그녀의 외양 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희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그녀의 순수성과 숭고성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채희는 굳이 팜므 파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순수한 루시와는 분명한 대척점에서 타락한 존재로서 위치해 있다. 그녀는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 남자를 이용하고 경멸도 하고 사랑도 요구한다. 자신을 두고 바람피운 남편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게에 들어온 거지는 가차 없이 쫓아내는 냉정함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존재로서의 채희가 고상한 루시에 비해 더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가진 왕성한 에로티시즘 지향성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성적 본능인 에로스(Eros)와 죽음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로 구분했다. 성적 충동인 에로스를 통해인간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는 활동력을 얻게 된다면 죽음 충동인 타나토스를 통해서는 소멸로 향해가는 자기 파괴적 양상을 보인다. 빵을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채희는 자신의 불운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 발붙이고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생존력을 보여준다. 몸을 팔아 빚을 갚고 위조문서로 난민 신청에 통
과하였으며 딸도 미국으로 데려온다. 미니멀리즘을 소화하고 워커 할아버지에게 영어를 배우며 나를 통해 2차원에서 4차원으로나아가고자 한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몸뚱어리로 세상과 끊임없이 만나고 거래한다. 그녀를 끌고 가는 가장 강력한 본능은 에로스이다.

“하루 열댓 번씩 하다가 갑자기 끊을 수는 없잖아.”  “이 일을 하는 여자들도 진짜 남자가 그립단 말이야.”

육신이 좀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에서 그녀의 왕성한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이에 비해 루시의 욕망은 죽음의 충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자신을 좀비와 동일한 존재로 규정하고 필생의 과제로 좀비를 만드는 그레고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이혼이 흉이 되지 않는 자유로운 미국 사회에서 자녀도 없는 루시가 그레고리 옆을 지키는 것은 사회통념과는 무관한 온전한 그녀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 또한 그레고리와 같은 좀비의 정신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괴벽하고 까다로운 그레고리는 열심히 생존하려고 애쓰지만 사람들과 단절되고 점점 쇠약해지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 루시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타나토스적 욕망이 더 강렬하여 그레고리와 정신적 사랑으로만 관계를 유지해 가며 그레고리의 채찍으로 육체의 욕망을 억압해왔다. 신부와의 합일을 몰래 시도하고 나와의 섹스를 통해 보여준 폭발적인 에로티시즘조차도 육체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근원적 부재(EJ가 자신의 친부가 아님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폭력성, 사랑하는 사람의 장애와 같은 현실에서의 결핍이 자유로운 예술성향과 결부되어 자기 소멸에 대한 강한 죽음 충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소설 말미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루시는 채희처럼 사회 구조, 타자의 시선, 집단 무의식에 의해서 생성된 사회적 좀비가 아니라 마조히즘적 에고가 팽창된 자발적 좀비에 가깝다. 이들의 특성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초월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통해 현실 탈출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루시가 그레고리와 좀비 정체성을 공유하듯이 나 또한 루시를 통해서 그녀의 좀비성을 공유하며, 이는 내 안에 내재된 죽음 충동을 이끌어낸다. 나 또한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된 것 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 정신성과 육체성, 에로스와 죽음 충동 사이에서 끊임없이 길항하는 존재이다.

3. 구원과 “진짜” 사랑의 문제

삶의 가장 어두운 터널에서 만난 그녀들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었는가. 나의 불완전함은 루시와 채희, 그리고 샹샹까지도 끌어당겼지만 또한 불완전함 때문에 그 누구도 선택하지 못하였다. 나는 루시를 끝없이 동경하고 채희를 동정하고 샹샹1한테는 무한한 가족애를 느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들한테 안주하지 못하였다. 그녀들 또한 마찬가지다. 루시는 남편 그레고리한테 돌아가고, 워커 할아버지를 통해 시민권을 꿈꾸던 채희는 딸과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으며, 샹샹은 잠시나마 기중과의 동거를 택했던 것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탈출구가 되었을지언정 구원 자체가 되지는 못했다.

“루시와 채희라는 나뭇잎 두 장이 노랗게 말라갈 때, 사회 전체가 알면서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만약 내가 죄인이라면, 나 같은 모든 남자에게 숨겨진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나.”

나는 그녀들을 구원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숨겨진 의지”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루시와 채희에 대한 욕망이 결코 순도높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에고의 발현, 욕망의 투사였음을 알 수 있다. 온전히 사랑에 이르지 못한 나는 “길 찾기”에 실패를 한 것인가. 금기의 위반으로서 에로티시즘은 우리의 일상을 가로질러 강렬한 흔적을 남기지만,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 정신과 육체 사이를 끝없이 왕복 운동해야 하는 개체에게 있어 환희와 초월의 순
간만으로는 일상의 견고함을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그녀들로부터 구원을 얻지 못했던 것처럼 그녀들도 누군가에 의해서 구원될 수 없는, 인간은 서로에 의해 구원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있는 “숨겨진 의지”를 통찰했다는 것에서 나의 길 찾기는 실마리를 보인다. 그 가능성은 샹샹을 통해 다시 한 번 제기된다. 샹샹도 좀비와 같은 육체성을 가지고 국경을 넘고 생계를 유지하고 심지어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김기중과의 동거를 선택했지만, 루시와 채희처럼 “말라버린 나뭇 잎”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낯선 미국 땅에서 몸도 마음도 견고하게 뿌리내리며 자신의 삶을 구축해 간다. 채희와 다를 바 없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채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샹샹은 사랑의 대상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관찰하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근데 아저씨는 진짜 왜 사랑을 안 해?”
“채희 언니도 할 수 없이 그렇게 돈을 벌기는 했지.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어. 다른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도대체 우리가 미국에 왜 왔는지 모르겠어.”

샹샹은 이민 생활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두 가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의 이민목적은 무엇이며, 모든 이가 그렇게 찾아 헤매는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가장 근원적인 존재의 질문과 같다. 기관 없는 좀비에서 질문을 던지는 좀비가 된 것이다. 관찰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무의식에 잠재된 양심을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샹샹은 나의 또 다른 초자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샹샹은 진짜 사랑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서 “왜 사랑을 안 해”라고 물었지만, 좀비 세상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진짜 사랑은 가능한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 던질 수밖에 없다. 사랑은 너무 많은 순간에 있지만 더 많은 순간에 흘러가 버리거나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했던 순간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이 영원의 시간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생명의 연속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라 하더라도 영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사랑의 태도를 달리하게 만든다. 사랑의 순간을 확장시킬 것인가 부재의 순간을 확장시킬 것인가. 작가는 답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 해답은 독자들 몫으로 고스란히 돌려야 할 것이다.

4. 슌하오 리우와 우리의 좀비 세계

슌하오 리우, 한국명 유순호는 이미 30년 넘게 소설을 써온 베테랑 소설가이지만 아직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예작가와 다름없다. 그의 이력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독특하다. 연변의 작은 마을에서 출생하여 열여섯 살에 이미 소설가가 되었으며, 18년 동안 도보 답사를 통한 역사 연구와 자료 수집을 통해 《비운의 장군》, 《만주항일 파르티잔》과 같은 역사 소설을 출간했고 그런 노력을 밑거름 삼아 《김일성 평전》 작업을 했다(《김일성 평전》은 곧 출간될 예정이다). 이런 결과물을 보고 그를 역사 소설가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슌하오 리우는 삶의 모든 순간을 소설화시킬 수 있는 서사 구성 능력을 갖춘 스토리텔링에 뛰어난 작가다. 《뉴욕좀비》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에 가깝지만 자극적인 소재 때문에 허구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인 유부녀 화가와 사랑에 빠지고, 게다가 창녀와의 연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사실인지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허구와 사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더 깊숙이 다가오기때문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뉴욕이기에 우리는 망명 작가인 슌하오 리우가 뉴욕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하다. 뉴욕의 플러싱은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동시에 뉴욕 중심부로 상징되는 맨해튼과 연결된 공간이다. 플러싱에서 차이니즈 코리안으로 불리는 조선족이 접하는 세상은 굉장히 좁은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계층과 연결되어 있다. 세계 문화 중심부인 그 세계에서 그는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은
더더욱 아닌, 철저히 외부자인 동시에 모든 경험의 주체(내부자)가 되어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를 통해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내밀한 감정과 욕망의 이면을 한층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축소시켜 보면 미국 플러싱 이민 사회에서 벌어지는 “좀비들”의 사랑 이야기지만, 확대시켜 본다면 그곳이 뉴욕이든 서울이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공간을 넘나드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현대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넓은 의미에서의 디아스포라이고 좀비이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종로에서, 이태원에서, 대림에서 수많은 좀비 무리가 양산되고 있다. 너와 나를 구분 짓고 서로 다른 것으로 분류하는 사고방식은 좀비들이 서식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좀비가 되어 스스로를 어둠에 가두고 사는 자들이나 좀비를 좀비로 바라보는 자들이나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모두가 잠재적 좀비들로 언제든 호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소멸한 지점에 다시 경계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뉴욕좀비》는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박상철   - 2019/07/29 06:19:16  
대학민국 최고의 학부 서울대학의 문학박사 평론이 정말 다르긴 다르군요.
작품도 평론도 최고였고 일품이였습니다.
박정금   - 2019/07/30 23:58:18  
평론을 왜 마저 다 올리지 않고 멈추고 있나요?
오늘만도 벌써 몇번이나 들어와보는데 여전히 이대로 절반만 있네요?
????   - 2019/07/31 12:24:27  
진짜로 대단하다는.

이 책은 오히려 김일성평전보다도 더 호기심을 돋군다.

보고싶어도 중국에서는 구입할 방법이 없어서 답답하군.

ㅠㅠㅠㅠ
윤승남   - 2019/08/02 13:55:03  
너무 훌륭하시고 수준높은 평론을 읽었습니다.
류순호작가님의 장편소설 뉴욕좀비를 아직 읽어보지 못하여
소설의 내용도 제대로 알지못하고 평론도 제대로 다 리해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한마디로 우리 중국 조선족의 문학에서는
구경할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문학수준이라고 보여집니다.
박사님의 평론은 참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철   - 2019/08/04 14:31:50  
평론 정말 너무 좋은데요.
가혜   - 2019/08/12 17:39:01  
넘 멋지고 이쁘세요~
피안   - 2020/05/18 20:06:44  
그러고 나서 그녀의 페이스북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 관계를 재설정할 때가 되었음을 벌써 자각했고, 지혜로운 그녀는 리모델링이 미처 끝나지 않은 스튜디오로 돌아가 버린 그날부터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집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겨우 20여 일 동안 루시와 함께 지내면서 다락방에 올라오면 두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으로 얼마나 많이 섹스했는지 떠올리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다이어리 오브 어 섹스 어딕트》* 이야기까지 주고받았을까. 글로만 읽었던 성욕이상항진증(sex drive abnormalities)이 무엇인지 이때 처음 실감했다. 그런데 루시는 더 황당했다. 나는 욕구는 계속 왕성했지만 점점 질이 떨어지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님포마니아**의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두 증상의 끝을 ‘탈진’으로 결론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화 상상어(想像語)가 존재한다.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성욕이 증대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욕이 감퇴함으로써 당신은 ‘삶의 모든 욕망을 잃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겪은 님포마니아는 환상과 같은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뒤바뀌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런 순간들은 우리가 체위를 바꿔가면서 시도할 때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발생했다.

<뉴욕좀비> , 162~163 쪽



* Diary of a Sex Addict. 스페인 영화. 2008년. 우리나라에선 《S 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 nymphomania. 여성의 비정상적인 성욕 항진증을 가리키는 말.
[출처] <뉴욕좀비> 리우와 루시|작성자 서울셀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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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시즘을 통한 좀비의 본능과 죽음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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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녀”는 “바퀴벌레”에 이어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년의 첫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왕벌 같기도 하고 “대단한 여인” 같기도 한 그녀와...
 [이미옥 문학평론] 역사의 가면과 소외된 자의 슬픔, 그리고 전복    [109]
No : 46 Date : 2008/09/17 Hit : 17868 Vote : 578 Name :  피안
■ 李美玉文學評論 ■
이미옥,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


유순호 작가의 “엘마 샌즈의 유령과 만나다.”는 얼핏 보면 재미있는 귀신체험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장치와, 장치 속에는 웅크린 자의 슬픔이 들어 있다. 그 슬픔의 알레고...
 [최삼룡 문학평론] 유순호의 단편소설 "봉녀"를 평함    [117]
No : 45 Date : 2008/11/17 Hit : 39501 Vote : 407 Name :  최삼룡
최삼룡, 평론가, 전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들어가는 말

   최근 니카에 발표된 류순호의 단편소설《봉녀(蜂女)》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있다.

   ...
 몰락하는 세계와 욕망의 전복    [68]
No : 44 Date : 2009/01/12 Hit : 18486 Vote : 351 Name :  피안
[이미옥 문학평론]
몰락하는 세계와 욕망의 전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

새로 발표된 유순호 작가의 “불랑카와 이자벨”은 복잡한 서사 전개나 모호한 서술, 늘 문제시 되어왔던 “성”에 대한 충격적인 장면이 없다. 오히려 평이한 문체로 동화 같은 이야기를 ...
 [이미옥 문학평론] 경계의 소멸을 꿈 꾸는 경계자들의 이야기    [165]
No : 43 Date : 2008/10/19 Hit : 18957 Vote : 689 Name :  피안
   1. 바퀴 벌레로 상정된 이민자의 삶

   가장 어두운데 있지만 오히려 그 어떤 생물보다 왕성한 생명력을 꿈꾸는 바퀴벌레는 그 남자가 꿈꾸는 욕망의 대상이자 그 남자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바퀴벌레는 두 가지 측면에...
 [이미옥 문학평론] 문학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창조의 즐거움    [106]
No : 42 Date : 2009/09/16 Hit : 11792 Vote : 375 Name :  이미옥
   어느 날 뉴욕에서 재미있는 메시지가 한통 날아왔다.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아직은 낯선,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번 듣지 못한 중년의 작가가 그에 비해 한참 어린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해왔다.  

   “얘, 내 문집 서문 좀 써...
 [최삼룡 니카문학평론] 류순호수필에서의 섹스, 사랑, 여자 (2)    [24]
No : 41 Date : 2008/02/18 Hit : 5927 Vote : 313 Name :  최삼룡
   우리는 상편에서 류순호의 수필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류순호의 대부분 수필들이 작자의 어떤 리념이나 정신존재를 표현하는 상관물로 창조되였다는 결론을 내리였다. 물론 그의 수필중에는 인성을 탐구하는 시각에서 인간의 섹스, 사랑, 녀자를 취급한 작품도 소수 있다. 이제 하편에서 우...
 [최삼룡 니카문학평론] 류순호수필에서의 섹스, 사랑, 여자 (3)    [20]
No : 40 Date : 2008/02/21 Hit : 7255 Vote : 465 Name :  최삼룡
   우리는 우에서 류순호 수필문학의 한갈래로  볼수 있는 섹스, 사랑 , 여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한 작품들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nb...
  수필의 創作化와 文學化, 藝術化에 대하여    [60]
No : 39 Date : 2011/05/23 Hit : 20815 Vote : 598 Name :  김성희
   [김성희, 서울대 비교문학 박사 졸업] [技巧와 技術의 文學]

   유순호의 ‘겨울 妖精’과 ‘살구꽃이 필 때’를 중심으로
   김성희 서울대 비교문학 박사과정



   들...
  봉녀를 통한 여성성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    [108]
No : 38 Date : 2008/11/17 Hit : 17102 Vote : 330 Name :  이미옥
     [이미옥 문학평론] [이미옥,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과정]  


   “봉녀”는 “바퀴벌레”에 이어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년의 첫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왕벌 같기도 ...
  행복에 대한 청춘들의 담론    [12]
No : 37 Date : 2008/03/03 Hit : 4983 Vote : 290 Name :  최삼룡
  [최삼룡, 평론가, 전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행복해지고싶은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가장 원초적인 생명욕구이다.  하기에  행복의 개념, 행복의 척도,  ...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던져온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해준 사람은 없다...    [75]
No : 36 Date : 2009/11/24 Hit : 7199 Vote : 251 Name :  이미옥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운명 지워 진 존재일까. 모든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마지 않은 물음표지만 대부분“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어정쩡한 말로 대신한다. 없다고 하기에도 있다고 하기에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애매모호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이미옥 단편소설] 비상하고 싶은 그녀의 하늘    [22]
No : 35 Date : 2008/12/23 Hit : 5346 Vote : 232 Name :  이미옥
   그날도 오늘처럼 파란 하늘이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읽은 “빨간 머리 앤”이 처음으로 애본리 마을에 도착했을 때 느꼈을 것 같은 그 초조함, 현실과 공상이 뒤죽박죽이 되고 과거와 미래가 전부 하얗게 얼어버릴 것 같은 그 순간이 오...
 [조선족 좋은 詩] 작은 여자이고 싶었습니다!    [23]
No : 34 Date : 2006/10/16 Hit : 12057 Vote : 273 Name :  삶의 향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려앉는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나를 품어 안습니다.
내 가슴으로 밀고 들어와
나를 작은 여자(小女人)로 만들어놓는군요.

아무리 밀치려해도
떠나지 않는 나의 소녀시절의 꿈은
바로 작은 여자...
 [조선족 좋은 詩] [2] 리문호 詩-'자야(子夜)의 골목길'    [1]
No : 33 Date : 2008/06/18 Hit : 4560 Vote : 466 Name :  아미산월
[조선족 좋은 詩][2]

자야(子夜) 의 골목길

리 문 호

희미한 가로등, 등불 끈 창문
고요할수록 쓸쓸함은 외로워지겠지

꿈이 없어 꿈속으로 가지 못하는
너, 행방없이 떠도는 유령같은 시인아 ...
 [韓國의 좋은 詩][3]김세웅 詩-'봉지 안의 잠'    [1]
No : 32 Date : 2008/06/18 Hit : 4878 Vote : 200 Name :  아미산월
[韓國의 좋은 詩][3]

봉지 안의 잠

김 세 웅

새우깡을 먹다가 잠이 든다
다리와 허리를 구부린, 봉지 안의 잠이다
봉지 안의 은박에 눈이 부신
잠 속에선
옆의 새우깡이 꿈...
 [韓國의 좋은 詩][2]김명인 詩-'바다의 아코디언'    [5]
No : 31 Date : 2008/06/16 Hit : 5137 Vote : 220 Name :  아미산월
[韓國의 좋은 詩][2]

바다의 아코디언

김 명 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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