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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옥 문학평론] 상실의 아픔과 치유의 서사
피안   Hit : 8358 , Vote : 417        [2008/12/23]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사고로 갑자기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한 남자를 사랑해 온 여인으로서 그리고 강열한 모성을 가진 어머니로서 인간이 그 슬픔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슬픔의 정점에서 여인은 자신의 모든 생명과 사랑의 물을 얼음으로 냉각시켜 꽃을 만들고, 그 얼음 꽃은 영원한 안식과 구원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데, 그러한 “내면의식”의 흐름을 섬세하고도 파격적인 기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  “남자”-죽음을 지향한 그녀의 “아니무스”

   소설 속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녀, 즉 스카알렛을 따라다니는 “나” 즉 남자가 존재한다. 이 남자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안개가 되기도 하며 어느 순간 샤워 부스 안의 미세한 김이라는 입자가 되기도 한다. 또 빅 폴의 이미지를 가진 멋진 남성으로 형상화되어 그녀가 늘 꿈꿔온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고 결산하고 구부정한 허리에 중절모자를 꾹 눌러쓰고 스팍스 스테이크하우스에 드나들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스카알렛의 연인으로 부상되어 스탠포드호텔에서 스카알렛의 딸 비비안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봤을 때 “청정한 공기와 맑은 햇빛”으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고 소리 없는 실체로 그녀의 마음에도 그녀의 꿈에도 마음 안으로 끊임없이 스며들고 잠복한다. 그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으며 정작 비행기속의 그녀를 이끌고 앨러스카 빙하 속, 세계로 데리고 간 것도 “남자”이다. 소설 속에서 줄곧 일인칭으로 등장하여, 주인공으로 착각되기도 하고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 즉 남자는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인물이 아닌 그녀 즉 스카알렛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 마치 거울과도 같은 그녀의 또 다른 분신이며 깊은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그녀의 “아니무스”이다.  
  
    아니마가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이라면 아니무스는 여성 속에 있는 남성성이다. 이것은 곧 존재 안에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공재(共在)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존재는 궁극적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결합에서만 “완전”해 진다는 융의 “아니마” 이론이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자아와 자기를 이어주는 중간 다리와 같지만 때로는 심혼의 원형으로서 자기원형과 구분할 수 없는 기능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신화에서 신의 사자(使者)는 신과 동일한 권능을 가지거나 신 그 자체의 모습이듯이 ‘자기’는 정신의 모든 측면이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혼은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때로는 ‘자기’의 한 면을 대변하기 때문에 흔히 둘의 특성을 현상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아니마나 아니무스는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는 어떤 고리로서 묘사되는데 융은 그것을 인간의 심층적 무의식의 인격화(a personification of the unconscious)로 간주하기도 한다. 야생적이면서도 남성적인 빅 폴과 너무 흡사하면서도 부드럽고 착하고 어진 남자는 그녀에게는 완벽한 남편으로, 딸 비비안 리에게는 최고의 아버지가 되어줄 그녀 마음속의 완전한 “아니무스”였다. 또한 전남편과 딸을 잃은 충격으로 모든 정신적 힘을 상실한 스카알렛에게 손을 내민 영혼의 마지막 층위이기도 했다.

    2. 여인의 고독한 삶과 “아니무스”가 결핍된 자의식

    물은 생명의 상징이자 여성에게 있어서 끝없는 모성과도 같은 원천이다. 그 모성은 따뜻한 자궁에서 흘러나와 생명을 기르게 하고 다시 스스로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샘 같은 것이다. 그 샘은 방향성을 갖고 있고 늘 흘러야 만이 비로소 주체성과 생기를 가지게 되나 어느 순간 방향성을 잃으면 마치 고인 물처럼 썩어가게 되고 결국 여인의 삶도 건조한 자궁과 같이 말라버리게 된다.

    소설 속 스카알렛은 끔찍한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충분히 상처를 지니고 있는 여자였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젖먹이인 딸과 그녀를 버려두고 멀고 먼 나라로 떠났으며 나중에 성공을 하고 나서는 훨씬 젊고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젖먹이와 홀로 남겨진 “배신의 아픔”은 모든 영화와 소설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사랑의 상처”가 한 인간에게 주는 상실감과 아픔은 실로 큰 것이지만 특히 결혼까지 한 여인에게 있어 “이혼”은 더욱 큰 상처의 굴레가 되어 그 삶에 길고도 큰 그늘을 드리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카알렛은 결코 전 남편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 사이에 생겨버린 자식, 비비안 리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빠를 사랑하는 딸은 미국으로 유학하고 그녀 또한 딸을 따라 미국에 와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천재 화가로 성공하여 너무 유명해진 남편과 학비를 지원해 줄 정도로 딸을 예뻐하는 젊은 부인에 대한 소식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녀는 줄곧 홀로 딸을 키우면서 결코 어떤 남자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는데 이는 전 남편에 대한 미련의 여부를 떠나서 그녀의 “아니무스”가 여전히 큰 상처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남자를 받아드리려 하지 않는 태도는 현실에서 자신을 채워줄 수 있는 “반쪽 찾기”를 포기했다는 의미기도 하며, 그녀의 완벽한 “아니무스”는 현실이 아닌 그녀의 깊은 심연에서만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한 남자의 여인으로서의 삶에는 빈자리가 생겼지만 그녀는 뜨거운 모성으로 자신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비비안 리를 사랑하고 양육해 왔으며 그것으로 그녀의 “사랑”과 “생명”은 비록 한 줄기나마 길을 찾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고로 딸이 죽고 설상가상으로 전남편의 죽음마저 확인되자 그녀의 마음에서 흐르고 있었던 단 한줄기의 생명줄은 순간 갈 길을 잃게 된다. 결핍된 “아니무스”까지 채워주었던 딸의 존재감은 무엇보다 컸으므로 그 부재는 결국 그녀의 모든 마음을 동결시키고 그녀를 빙하와도 같은 차가운 무의식의 세계로 데려간다.  
  
    이제 모든 것을 잃은 그녀, “아내”라는 역할은 지워진 지 오래지만 단 하나 그녀를 따뜻하게 했던 “어머니”의 옷마저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춥고 추운 앨러스카의 빙하 얼음장 위에서 모든 인연의 옷을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서 있어야 하는 그녀는 스스로 얼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물이 얼음 꽃이 되는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무의식의 세계로 깊이 침잠하게 된다.  

    3. 빙하, 그녀의 무의식의 공간

    의식을 피부와 같은 표피에 비유한다면 무의식은 그 표피 밑에 있는 미지의 영역 전체를 일컫는다. 평소에 우리의 관심과 감각은 모두 의식에로 집중되어 있지만, 깨어있는 의식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대면하는 순간 외부로 향하고 있던 눈은 결국 내부를 향하게 된다.
  
    이미 현실적인 감정을 모두 동결시킨 그녀의 의식세계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침묵 속에서, 끝없는 침잠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무의식과 대화하게 되고 그 무의식의 세계로 잘 묘사된 것은 바로 빙하이다. 조금의 온기도 없이 꽁꽁 얼어붙은 빙하는 그녀의 한 점 온기도 없는 내면세계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무의식의 세계로 데려간 것은 그녀의 심혼이며 아니무스의 존재인 “남자”이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아니무스인 “남자”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진지하게 말을 건다.

    “어떤 때는 당신 생각을 하다가 잠들면 이상하게 내가 당신이 되어버린 때가 자주 있었어요. 꿈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  
  
    “제가 거의 20년 가깝게 지켜온 신조라는 것은 당신을 만나면서부터 매일 밤마다 혼자서 열 백번도 버리고 또 버리는 헌신짝 같은 신조였어요.…”

   줄곧 외면하고 억압하고 있었던 “아니무스”에 대한 욕망과 마주한 그녀는 그제야 수줍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20년 넘게 지켜온 정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으며 “남자”를 향한 자신의 욕망이 사실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그러나 그녀가 한 번도 그 욕망에 충실하지 않았던 것은 상처 받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딸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음이 드러난다. 연어를 통해서 딸과 소통하게 된 그녀가 딸의 허락을 조심스럽게 받아내는 장면에서 그녀가 딸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딸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럼 엄마 진짜 그렇게 해도 괜찮을 거니?
    여자가 물었다.
    ―응. 허락할게“

    남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은 흔적도 없이 접어두고, “어머니”로서의 삶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녀는 딸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 깊이 곳을 돌아보고, 자신을 지탱해 줄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된 것이다.    
  
    에마 융은 “남성이 아니마의 분화와 통합을 통해서 육체적, 낭만적 애욕의 수준으로부터 종교적으로 순화된 자비로운 사랑을 거쳐 지혜의 경지에 도달하듯이 여성은 아니무스의 통합을 통하여 본능적인 힘의 충동에서 진취적인 행동과 의미 있는 말의 힘을 계발하여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지혜를 매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비록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잃었지만, 의식을 마비시킬 정도의 엄청난 상실에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이 죽음이든 부활이든, 그녀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고 “남자”와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소설 속 그녀가 실제로 앨러스카의 빙하 속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것도 신빙성이 없는 독해가 아니지만, 빙하 속의 모든 대화와 “남자”와의 만남이 현실이 아닌 그녀의 무의식 속의 하나의 치유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여자의 몸은 그대로 비행기 의자에 머물러 있으며, 눈을 감고 레시바를 꽂는 등 고통스런 현실을 차단한 채 다만 죽음만을 생각하는 그녀의 무의식이 결국 그녀를 깊은 빙하의 세계로 잠입하게 한 것이다.  
  
    또한 3일 동안 사흗날 밤을 혼미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던 여자가 내뱉은 유일한 첫 마디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는 점은, 그녀는 여전히 “삶의 욕망”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난 아직도 예뻐. 그런데.

    4. “아니무스”와의 합일을 통한 죽음 또는 부활

   “성교”란 결국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합일되는 체험이라 말할 수 있다. 남성 속에도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있으며 여성 속에도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있기 때문에 이성지합이란 서로가 서로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발견하는 것이다.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그녀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얼음이 되어버린 자신을 살아 있는 봄눈으로 녹이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융용점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은 자신의 거대한 빙하의 끝에서 선택한 “아니무스”와의 합일이었다.
 
    그 끝이 어떤 형태로든 죽음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녀는 분명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또 새로운 부활을 가능성이기도 하다. “남자”와의 뜨거운 합일을 통해서 융해된 그녀는 더 이상 얼음으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의 무의식 속에서 그녀는 오래도록 억압해오던 “아니무스”를 대면하고 그와의 합일을 통해서 그녀는 또 다른 구원을 확보해 두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구원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 받은 “여성성”과 더 이상 치유할 길 없는 “모성의 상실”을 한편 빙하 속 “죽음”과도 같은 “얼음 꽃”으로 영원히 냉각시키고 한편 “아니무스”와의 결합을 통해 물로 융해시키고 있다.

    “나의 머리를 적시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대로 여자의 얼굴과 콧등에서 뒹굴어 다니다가 종당에는 눈으로 괴여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눈물까지 수물수물 괴여 오르기 시작한 여자의 얼굴이 웨치고 있었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죽음의 이미지”가 좀 더 강하게 드러나 “부활의 암시”는 말 그대로 독자의 몫이 된다.

    여자는 이를 악물며 얼음장에 얼어붙어있는 머리칼을 뜯었다. 그리고는 조금 가로 누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원한의 毒婦가 되리라. 남들은 사랑이 이렇게 이슬로 잠깐 빛나다가 서리로 얼어버리는 것을 무서워하겠지만 여자는 얼음 꽃이 다시 이슬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사랑은 절대 이렇게 이슬이 서리가 되는 아픔으로 남지 않게 할 것이다. 더욱 서리가 이슬이 되는 그리움으로 남지 않게 할 것이다.  

   한 인간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을 때 죽음을 택하는 것,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몸이 힘들면 정신이 그 버팀이 되어주고 정신이 힘들면 영혼이 버팀이 되어준다는 말이 있다. 엄청난 정신적인 외상으로 인한 여자가 선택하는 길이 흔히 “고통에서의 해방”인 죽음이긴 하나, 그녀를 죽음에서 어루만져 주는 단 하나의 존재- 그 녀 마음 속 깊은 심혼의 존재 -바로 “나”로 등장하는 아니무스는 그녀를 붙들어 주는 마지막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삶의 모든 생명력이 동결된 그녀의 마음으로 찾아든 마지막 영혼의 불빛과의 결합을 통해서 그녀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 또는 그녀와 같은 처지와 슬픔에 놓여 있는 모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최소한 소망일지 모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진입하기 위한 문이 되기 때문이다.    

    5. 소설 속 구조적 특징

    그 남자는 분명 그 여자의 내부의 한 모습, 즉 아니무스지만 소설 속에는 마치 또 다른 인격을 가진 것처럼 “나”로 지칭된다. 오히려 주인공인 그녀에 비해서 훨씬 명료한 의식과 목소리를 가지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스카알렛의 모습은 “나”를 통해서는 전달되고 드러나며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내”가 그녀와 사실은 동일 인물의 다른 내면이라는 사실이 쉽게 포착되지 못한다.
  
    이는 그녀 의식과 무의식이 지나친 충격으로 분리된 채, 자신의 의식은 오히려 통제를 잃은 채 무의식이 그녀를 끌고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분열과 통합을 아니무스 즉 무의식의 상징인 나-“남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신비하게” 끌어가고 있음으로 구조적인 분열을 꾀하고 있다.  
  
    또한 “스카알렛”이나 “비비안 리”, “빅 폴”과 같은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부여됨으로 상호텍스트적인 연상 및 환기를 끌어낸다. 이는 그들이 지향하는 “가면” 즉 외적인 페르소나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인공 스카알렛처럼 모진 고난 앞에서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고 낙관하고 결국 사랑은 성취하지 못했지만 강한 삶의 의욕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딸은 어머니의 주인공 스칼렛을 연기하는 배우 “비비안 리”의 이름을 가짐으로 어머니와 분리되지 않은 생명의 연속성 즉 “스카알렛”의 분신과 같은 정체성을 가졌으며 “빅 폴”은 무엇보다 멋지고 착한 이상향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으므로 그녀 즉 “스카알렛”의 완벽한 “아니무스”가 된다.

    이처럼 소설은 한 여인의 상처 받은 내면과 치유를 신비한 “아니무스”의 등장과 함께 이끌어나감으로 주인공의 직접적 “독백”이나 평면적 사건의 전개보다 한층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런 “무의식의 흐름”을 몽타주 기법으로 섬세하게 연결시켜 “상실의 슬픔”을 극대화 시킨다.

                            

                                                                             2008년 12월28일 서울에서


빵순이   - 2008/12/26 15:45:04  
ㅋㅋㅋ 섹스의 아름다움... 그 미묘한 맛,,, 형상,,, ㅋㅋ 너무 아름다워용 글이 ...
근데 아주 완전 소화한건 아니예요... 이제 댓글을 통해서 또 더 요해해야할것 같아요...
아무튼 아저씨글은 맛갈스럽고 구수하고 향기롭고 짱이얌 ...

근데 또 궁금한게 ,,,나는,,,사람인가요?
아님 남자라고 하면서,,,얼음같기두하구 바람이 같기두 하고,,, ㅋㅋ
최련화   - 2008/12/26 15:58:39  
와!! 유선생님. 또 한편의 뛰어난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독특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물하여주셨네요.
정말 너무 멋지십니다. 저도 역시 이 소설에 함축되여있는 사상을 완전히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한순간에 내리읽었습니다. 너무나도 독특합니다.
최련화   - 2008/12/26 16:03:42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이런 것들의 환상적인 결합이라고 이해해도 될가요?
이상하게도 인간은 삶의 욕망을 내재하고 있다는데 반해 선생님은 꼭 반대론을 펴십니다.
이 소설은 마치도 죽음의 욕망이네요.
여자의 내부에 감춰진 성에 대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마음의 늪이 빙하였던건가요?
<나>라는 빙벽-빙산-안개-바람- 얼음장에 실려 떠내려가는 죽은 여자의 유일한 증언자를 내세워
섹스를 하고싶어하는 여자의 본능적 욕망교ㅘ 이지적 판단 사이에서 생기는 틈새를
건너띄게 했다고 했으면 좋을지? 아니면 틈새를 열어보여주었다고 했으면 좋을지?
아무튼 일반인들이 상상할수없는 그런거네요 .......
황성준   - 2008/12/26 16:17:19  
혹시 테러를 반대하는 소설은 아닙니까?
녀자는 <9.11>사건에서 리혼한 남편과 딸을 잃어버렸군요.
그후로부터 혼자 살면서 녀자는 매일과 같이 섹스하는 상상을 하군요.
남편과 아이가 죽은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기후때문에 알라스카에서 내렸는데 녀자는 알라스카의 빙하에 빠져 자살했다는것이
이 소설의 스케줄같습니다. 라체로 얼음장에 실려가는 녀자의 죽엄을 놓고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얼음산이 온갖 상상을 다하는것이 아닙니까?
아름답기도 하고 상상도 뛰여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상당히 예리하고 섬뜩해나기까지 합니다.
이 소설에 녀자가 상상하는 성-섹스는 삶에 대한 욕구를 의미합니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욕망을 의미하는겁니까?
눈속에서 하는 섹스는 녀자의 상상인가요?
아니면 녀자를 지켜보고있는 말못하는 얼음-빙벽의 상상인가요?
어떻게되여 연어들까지 물안에서 말하는지...?
ㅋㅋ


황성준   - 2008/12/26 16:18:12  
아무튼 추천드립니다.
녀자의 운명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결국 녀자는 자살하였네요 ~
종소리   - 2008/12/26 16:25:50  
의문:
내가 남자나 사람이 아니라면 녀자는 누구와 섹스하고 있는것이지?
숱한 섹스하는 장면들은 녀자의 상상인가?
아니면 나라는 바람이란 물건의 상상인가?

판단:
알다가도 모르겠음.
빈술잔   - 2008/12/26 20:08:58  
ㅎㅎ, 유작가님의 소설을 읽느라면 꼭 수수께끼 맞추러 들어온듯한 기분입니다.
제1회 열독후 독후감:

미국으로 온 한국여자 "스카일렛"은 세상을 들썽케했던 2001년 纽约世贸中心 911테러사건에서 사랑하는 딸 비비안 리.를 잃는다.

이 글의 주인공 <여자>는 딸 잃은 비통을 주체할길 없어서 발설의 돌파구를 찾는다.
그 발설이 결국에는 죽음이지만, 섹스와 사랑을 갈망하는것으로 표현된다.

글에서의 <나>는 얼음이다.
이 얼음이 때로는 물로, 안개로, 이슬로, 서리로, 얼음으로 변환되여간다.
이렇게 함은 <여자>를 남김없이 표현해내기 위해서이다.
때로는 여자의 몸속으로, 때로는 마음속으로, 생각속으로, 때로는 그녀의 곁에서 맴돈다.

물은 살아숨쉬는 삶이다, 얼음은 경직된 삶이다, 얼음꽃은 경직된 삶(즉, 죽음)을 초월하는 삶의 혼이다.
글에서 <저 얼음 꽃보다도 더 찬란하게 빛나는 섹스를 하고 싶었어요! 섹스하면서 이대로 영영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영 깨어나지 않아도 좋을 깊은 잠을 오래도록 자고 싶었어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처럼 오래오래.>
<여자>는 아픔도 그리움도 미련도 없는 세상으로 가게 된다.

허수옥   - 2008/12/26 22:17:17  
추천드립니다.
자살할때는 대부분 원한의 毒婦가 되는가봐요.
슬픔보다는 원한때문에 죽는걸가요?
사랑과 행복을 그리워하는 한 여자에게 이 원한을 가져다준
테러에 대한 반항이라고 해야할지요.
감동적이였습니다.
허수옥   - 2008/12/26 22:19:17  
딸과 연어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퍽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결국 눈속에서의 섹스장면은 모두 상상의 산물인건가요?
알몸으로 빙하에 뛰어드는 녀자를 보며 증인으로써 얼음이 하였던 상상이라면
리해가 될것 같습니다. 소설이라 참으로...
정연   - 2008/12/27 02:02:03  
이건 비극이네요.
빈술잔님의 말씀이 쏙 들어옵니다.
리해도 되였구요.
현영   - 2008/12/27 06:49:17  
아저씨 !! 왔다갑니당 ...

죽음에뚜 욕망이 있다는 말 잘 모르겠네 ㅜㅜ

근데 스카일렛 오하라...정말 너무 슬프네요...

얼음장에 실려가는 여자 모습 보는 같애여 ~



김경훈   - 2008/12/27 07:15:20  
이 소설의 기저에 깔려있는 슬픔에서 죽음에 이르러가는 한 녀자의 비극적인 운명이 시사하는 바가 만만치 않군요. 9.11이라는 이미지 모티브와 이미지 표현특징을 발단으로 외롭고 고독한 녀자의 자결에로 가는 운명은 전통적 인습에 대한 파괴의 형식을 도입하므로하여 색다른 미학을 유출해 낼수 있어 보입니다. 저항과 녀자 인습의 파괴같은 그런것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살이란 또 다른 탈출행위를 표현하는것이라고 해야할지. 여러가지로 곤혹스럽기도 하군요. 테러에 모든것을 잃어버린 피해자이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있는 미국을 탈출하는 여자는 안에서 밖으로의 탈출일 수도, 밖에서 안으로의 탈출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탈출을 위한 장치가 만들어져 있는 소설입니다. 왜서 이런 소설을 이런 식으로 구상하는지도 흥미롭다고 하지 않을수가 없군요. 바람이 되고 얼음이 되여 한 시대의 종말을 기다리며 저항을 꿈꾸는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제도적인 장치와 틀에서 벗어나 죽음을 욕망하는 슬픈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치려고 하는것인지 여러가지로 많의 의미를 시사하는 소설입니다. 거침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유선생님의 소설들에 흠뻑 빠져지내고 있습니다.
김경훈   - 2008/12/27 07:19:45  
우리 문학의 모든것에 대한 파괴에 따르는 해방을 꿈꾸고 계십니까?
이 소설에서도 그런 해방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구원같은것이 또한 발버둥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한편의 소설들이 모두 인간의 내면과 대화하고 죽음과 대화하고 인간밖의 다른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번에 읽었던 <몬탁괴물>에서도 그렇고.
우리 인간이 싫어했거나 또는 인간을 싫어하는 인간밖의 모든것과 화해를 하기 위하여 손을 내미는 같기도 하고 그렇게하므로써 바로 우리 자신이 먼저 다시 깨끗하게 환생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합니다. 아무튼 또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이 될지 항상 기대혹에서 왔다가 물러갑니다.
빵순이   - 2008/12/27 11:06:02  
황성준님 김경훈님 두분 댓글 감사합니다
두분 댓글에서 이 소설의 뜻을 그나마 알아볼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정미   - 2008/12/27 11:48:18  
나체로 얼음장에 실려내려가면서도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지 얼음장에 얼어붙은 머리카락을
뜯어내면서 하늘을 향하여 누웠던 몸을 모로 가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은 수치심이라는 여성 고유의 본능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의 결말입니다.
삶이 죽음이라는 텅빈 공허에서 나왔다면
이 소설의 죽음은 삶의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의논의 여지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원래 하나의 근원에 맥을 같이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만 죽어가는 사람도 많으며
자기절로 죽음을 선택하여 스스로 자결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소설의 경우에 보면 여자는 죽음의 욕망을 통하여
영원회귀의 길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작가 자신이 '나'라는 얼음도 되고 안개도 되고
또 바람도 되는 상징물을 만들어 과감하게 현실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고의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死의 찬미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런데 죽는 여자의 온갖 나름의 섹스장면을 상상하게 만들어놓고
죽음과 같은 공포에다가도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여자의 나체가 소멸되어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경도되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실제로 경되되는 까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죽음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을
혹시 이룰수도 있지 않을가고 동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정미   - 2008/12/27 12:15:31  
이 소설은 9.11테러가 발생하는 날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기로 되어있었던 아빠
(여자에게는 전 남편이기도 합니다.)
에게로 축하하러 갔던 딸애가 테러로 이 층집에 깔려죽게 됩니다.
유펌에서 딸애가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 사진 넣는 펜던트 안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사진이 나왔을 때 여자는 배신감에 젖기도 하지만,
이내 슬픔이 이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남편은 딸애가 태여나기 바쁘게 미국으로 유학하여 버렸습니다.
딸애가 커서 미국에 유학오자
여자는 딸애의 뒷바라지하러 한국에서 예대교수였던 직장도 버리고
미국에 와서 레스토랑의 웨이츄레스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 빅 폴의 스토리로 유명한 스팍스 스테이크하우스가
바로 이 여자가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이며
여자는 바람과 안개가 되여 여가끼자 찾아온 '나'와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저는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빅 폴의 스토리를 주고받으며 사귀는 남자는 분명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의 딸애와도 만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테러가 발생하는 날에 사고현장으로 달리는 여자의 곁에
함께 보살피며 달려갔던 남자가 나옵니다.
아무리 '나'라는 상징물의 상상이라고 밀어붙여도
저는 분명하게 있었던 것 같고 이 있었던 사실에 대하여
'나' (얼음 바람 안개...)는 마치도 자신이었던 것 처럼 상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여자가 '나'의 발밑에서 흐르고 있는 빙하에 몸을 던졌을 때,
얼음은 여러가지 상상을 하였으며 그것은 눈벌 얼음 꽃 밑에서만의 섹스가 아닙니다.
더 넘어서 이 눈벌속으로 오게되기 전까지의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하여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깢 이 소설은 소설창작의 시점이 모조리 헝클어져버렸습니다.
때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고 바람과 안개가 되어가면서 작가 괄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것도 모자라
이중 시점과 시점의 혼용까지 일어납니다.
여정미   - 2008/12/27 12:24:08  
먼저 소설에서의 거리에 대하여 보죠.
소설에서 거리란 서술자와 등장 인물, 독자와 등장 인물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데,
이러한 소설의 거리는 시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1인칭 시점은 서술자가 '나' 이므로 독자가 친밀감을 가지고 작품을 대할 수 있어
독자와 등장 인물 사이의 거리가 짧지 않아요.
그런데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인물의 시점이 객관성을 띠기 때문에
먼 거리를 내포하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는 작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가까운 거리를 내포할 수도 있고 먼 거리를 내포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을 모조리 타파하고 파괴하는 장치로 이 소설의
화술자는 바람이 되여 국경과 거리 없이 어데고 불어갈수 있고,
안개와 김이 되여 사람의 귀속 머리속 마음속까지도 어렵지 않게 침투합니다.
이렇게 시점이 거침없이 바뀌게 됨에 따라 그 시점하에서 창조되는
형상화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져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저는 자유분방하며 자유자재로운 새로운 창작 방법으로 받아들입니다.


여정미   - 2008/12/27 12:26:25  
여자가 당한 배신감은 여자를 죽음에로 몰아가기에 넉넉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9.11 테러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라고 판단하고 계신
다른 분들의 견해에도 도리가 있지만 여자를 죽음에로 몰아간 또 다른 원인은
얼마던지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딸애의 입을 빌어 소개되어 있다시피
여자의 전 남편은 천재입니다.
딸애가 어렸을 때는 엄마의 눈치 때문에 꺼내놓고 그립다는 말을 못하였지만
항상 마음속에 그리워해왔던 어버이였고
아마 이런 그리움이 딸애가 미국으로 유학오게 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않게 짐작할수 있습니다.
여자는 한국에서 잘 나가는 예술대학의 교수였으나 딸애를 따라
미국으로 왔으며 레스토랑의 웨이츄레스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온지 20여년 되는 여자의 전 남편은 성공하여 돈도 많고
어린 여자와 함께 살고있으며 여자의 딸애에게는 후엄마가 되는 이 여자는
딸애에게 학비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모두 딸애의 입을 통하여 공개되며
여자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다른 남자와 데이트중입니다.
미국으로 유학 온 뒤에 미국식이 되어버린 딸애에게서
받게 되는 여자의 배신감과 서러움은 이루다말할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 것이 여자로하여금 새로 남자를 사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계속 고민하게 되며 딸애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정미   - 2008/12/27 12:48:48  
그런데 딸이 이를 허락하였고 여자는 남자와 사귀어가고 있던 중에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딸애는 물론 딸애가 금목걸이 펜던트에 사진까지 넣고 다닐 지경으로
자랑스러워하였던 여자의 전 남편 - 딸애의 아빠까지 함께 죽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여자가 자살할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게 주어집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자살을 하기까지 여자가 끝없이 섹스의 충동을 느끼는 장면 묘사는
작가의 감각적, 상상적 묘사 기능을 두드러지게 과시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되어 불어올 때에 바람의 뒤에는 서슬푸른 차가운 얼음이 있습니다.
안개가 되어 몰려들 때에 안개속에는 거뭇한 늪이 드러납니다.
이 늪속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허우적거리고 헤어나오기도 하는 감각을
이 여자가 느끼고 있는 섹스하고 싶어하는 충동으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과 충동들이 때로는 시각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청각적으로 묘사되기도 하면서 작품의 분위기가
아주 복합적인 감각으로 한데 뒤엉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늪과 빙하 바람과 안개 그리고 눈바람속에다가 여자를 실한오리 걸치지 않게
발가벗겨놓으므로써 이 작품의 정조를 음습하면서 차가우면서 우울하면서 서슬 푸르게
만드는 역할을 충분하게 해냈였을 뿐만 아니라
젊은 여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통하여 소설의 마감 단락을 읽을 때에
이 소설은 시작부터 이렇게 많은 복선(伏線)이 조밀하게 깔려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김춘화   - 2008/12/27 12:54:31  
아저씨 잘 읽고 갑니다 ~
평론을 써주시는 선생님들때문에 아저씨 소설을 리해할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이 소설도 처음에는 좀 어리버리하였지만
지금은 알수 있습니다.
아저씨 맬맬 건강하시구 좋은 소설 계속 써주세요 ~

여정미   - 2008/12/27 13:37:57  
작가들이 암담한 세계에서 죽음을 노래하고
절망을 아름답게 그리는 등..
이런 경향은 비단 이 소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문학사에 조금만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알수 있는 일입니다.
유선생님의 여럿 작품에서 보아낼수 있듯이 문학에서의 아름다움이란
때로는 악을 포함 할 수도 있지 않을가요?
가난, 질병, 슬픔, 절망, 자살, 이런 것들이 모두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될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소설의 작가가 자살하는 여자의 비극을 언녕부터 간파하게끔 만들어놓고도
지극히나 역설적으로 끝없이 섹스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한마디로 소멸의 미학이고 죽음의 미학이 아닐가 싶습니다.
삶의 상징인 섹스를 죽음의 욕망에 한데 이어놓으므로써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다는 우주의 섭리를 상징시킵니다.
그런데 과거 우리가 많이 접촉하였던 작품들은
이런 죽음을 이기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비극적 인간상의 극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것으로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주력했다면
이 작품은 아주 여자를 발가벗겨 얼음장에 실어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런데도 수치심 때문에 모로 돌아눕게 만드네요.
여자가 아직도 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질수 없는 희망이 절망으로 비칠 때에 아름다워질수 있는 것 처럼
살아갈수 없는 삶을 죽여버림으로써 죽음의 욕망을 통하여 삶의 욕망을
그려내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을가요..


아름다운 인생   - 2008/12/27 20:19:56  
좋은 글 잘읽고갑니다
소설을 보고는 뭔뜻인지알수없었짐나 밑에 플달고 조금이나마 깨닫고 갑니다
새해엔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허수옥   - 2008/12/28 01:54:26  
살아갈수 없는 삶을 죽여버림으로써 죽음의 욕망을 통하여 삶의 욕망을
그려내는 그런 작품?

삶의 상징인 섹스를 죽음의 욕망에 한데 이어놓으므로써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다는 우주의 섭리를 상징?

아직 다는 터득할수 없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수옥   - 2008/12/28 02:01:32  
저의 의문은 이렇습니다.
그러면 <나>라는 사람(사람인지 경물인지?)은
소설에서 시점을 가리키는 1인칭의 <나>가 아니라 3인칭의 한 인물이라고 보아하는가요?
그러면 중간에 남자와 사귀는 그 <남자>의 <나>는 또 누가 됩니까?
한 사람이 3인칭의 나도 되고 1인칭의 나도 되고...?
그런 뜻인가요?
미소^^   - 2008/12/28 03:50:54  
허수옥님과 같은 의문을 갖고 있답니다 ^^ 오라버니 글은 하여튼 희한해요...
카크로치와도 대화하고 꿀벌과도 대화하고 이제는 얼음이랑 바람과 안개와도 대화하네요 .
학교때 제가 배운 지식(얕은 문학지식)에는 소설은 인간학이라고 하잖아요.
인간은 인간들끼리만 대화하지않고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잇는 모든 동물들과도 인간처럼
대화하게 만드는게 오라버니 소설만 그런것 같기도 하고.. ㅋ
바람이나 얼음도 인간처럼 대화하고 사색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게 ...
충격이라면 충격이겠지요. 저같은 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데 기교가 너무 복잡하고 리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추천드리겟어요. 잘 알수는 없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얼음장에 실려가는 녀자가 아직 죽지 않고 움직인다는것도 정말 놀랍고....
다행스럽기도 하고...그러나 녀자는 죽은것이라고 봐도 됩니까?


미소^^   - 2008/12/28 03:51:26  
알라스카의 얼음꽃보다도 더 찬란한 ^^
뭇지세요 오라버니 ...
최정학   - 2008/12/28 04:55:35  
유선생님 요즘은 꼬빡 인터넷을 못했답니다.
미쳐 죽는줄 알았습니다. 어제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읽을 글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습니다.
몬탁 괴물에 달린 리플들을 다 읽고 지금 앨러스카의 얼음꿏을 읽었습니다.
여정미님 대단하시네요 ~
최정학   - 2008/12/28 04:58:22  
제가 어는 기사에서 보았는데 앨러스카에 한국 등산가가
실종되였다가 동사하여 시체가 발견되였던 적이있다고 합니다.
지금 앨러스카에 그 사람의 기념탑도 있다고 하던데...
자세한것은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 얼음덩어리가 되여 시체가 발견될 때면 경찰은
주변에 얼음산을 가리키며 제일 견증자는 얼음산이라고 그런다네요.
얼음산과 대화하는 방법만 있으면 이 시체들이 어떻게 여기서
죽게되였는지 원인규명하는데 어렵지않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원인이 없는 사인이 없을것입니다.
젊은 여자가 죽었고 그것도 라체가 되여 얼음구덩이에서 발견되였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요.
최정학   - 2008/12/28 05:01:21  
유선생님은 빙산이 되고 빙하가 되여 여자가 와서
빙하에 뛰여내려 자살하는것을 보았군요.
그런데 얼음이 바람도 되고 안개도 되여 여자의 과거에 찾아가서
여자가 앨러스카에 오기되기까지 상상해내는것은 좀...
그렇지만 소설이니 다 가능하리라도 생각합니다.
장면장면들이 너무 죽여줍니다.

네잎클로버   - 2008/12/28 06:17:58  
추천드리고가요 ^^!!
리처드   - 2008/12/28 06:41:10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에로스(생명에의 욕망)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점점 아리숭해집니다. 유작가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고의적으로 오도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리처드   - 2008/12/28 06:42:04  
이런 식으로 사랑의 환상을 조롱하고,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파한 것이 잘 된 소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가 막힙니다.
정금화   - 2008/12/28 06:49:31  
소설이 정말 슬프네요.
생존 욕망과 죽음 욕망은 한 몸이라는 말씀이 옳은같아요.
예나   - 2008/12/28 07:02:37  
삼촌 왓다가요 ~
류영애   - 2008/12/28 12:53:54  
제목부터가 얼음꽃이여서 시린 느낌을 받으면서 읽어내려갔습니다.
저로서는 여전히 이해가 어려운 아리송한 글이네요.
제일 마지막 단락이 많은 사색과 긴~여운을 남기네요.
빵순이   - 2008/12/28 15:32:28  
안냐세욤 ^0^ 아저씨 소설에 죽고 못사는 빵순이 ㄱㅣ욥ㄱㅔ 인사올립니댱 ^0^
저한테는 난도있는 소설들이지만 항상 리미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이렇게 설명을 해주시니깐 얼마나 좋은지 모르겟어요
아저씨 소설 더 많이 이해할수 있게 해줘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댱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릴께요
음 ~ 그리고 새해가 금방이니깐 2008년 마무리 잘하시구요 새해에는 더 성숙된 모습으로 계획된 삶에 좋은일들만 가득하길 바랄께요
사랑합니댱 ㅋㅋㅋ ^.^
미소^^   - 2008/12/28 15:51:12  
이미옥님, 안녕하세요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을 잘 이해할수 있도록 좋은 평론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많은 혼동을 일으켰던 부분들이 평론을 보면서 이해가 되였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평론 많이 부탁 드립니다. ^^
류영애   - 2008/12/28 16:25:29  
이미옥님, 여정미님의 평론글을 통하여 아리송했던 부분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진입하기 위한 문이 되기 때문이다.>
이한마디에 동감을 표합니다.
여자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어머니는 사랑을 베풀기를 원한다.
사랑받고싶은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은 한 여자의 극에 다달은 고통을 그린 글.
<얼음꽃> --- 갑자기 너무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김동석   - 2008/12/29 00:20:20  
대단한 평론입니다.
서울대 자랑스럽습니다.
선영이   - 2008/12/29 09:00:59  
이미옥님의 평론 추천드려요..
Anima와 Animus이론으로 이 소설을 해부한거 참 잘 되었다고 봐요..
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으로 여자의 마음속에 내재하여 있는
자의식 내지 무의식의 <나>에 대하여 설명한 것에
진지한 설복력을 느끼었습니다..
이 소설의 파격적인 기법으로 소설의 서술시점이 헝클어진 문제에서도
여정미교수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평론이 너무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련화   - 2008/12/29 09:23:37  
하이. 이미옥님 또 좋은 평론 써주셨네요.
그러잖아도 어제 <얼음꽃>을 읽으면서 특별히 이미옥님은
어떻게 생각할가는 상상도 했었답니다 ^^
저는 솔직하게 고백하면 구스타브 융의 분석심리학까지 생각지 않고.
바람도 되고 안개도 되여 여자와 대화하는 <나>를 통하여
유순호선생님은 혹시 인간의 마음은 초월적 현상이 아니라
아직 알 수없는 자연현상의 연장이고, 앞으로 충분한 과학발달이 이루어지거나....
또는 인간이 자연과 얼마던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입하려는줄 알았습니다.
최련화   - 2008/12/29 10:04:08  
이런 감정과 더불어 <나>에게서 받는 또 다른 느낌이 바로
<평안함>과 <친밀감> 이었습니다. 꼭 무어라 단언할 수 없지만,
<인간이 정말 자연과 대화할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도 하였네요 ....
인간이 동물과의 대화는 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되었지만
자연과도 일종의 언어적인 교감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상상을 너무 멋지게 펼쳐내셨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이미옥님의 평론은 분석심리학적으로 <나>를 여자의 잠재의식속에서
존재하는 <아니무스>로 판단해버렸네요...
평론에서 마감부분에서 < 여자의 몸은 그대로 비행기 의자에 머물러 있으며...>
여기까지 읽었을 때 뒤에 모든 결과는 여자가 마음속에서 또는 무의식속에서
빙하속의 투신자살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데 대하여
여전히 미심한 생각을 금할수가 없네요 ........ㅠㅠ
최련화   - 2008/12/29 10:05:27  
어쨌던 이번에 유선생님의 파격적인 소설에서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제 생각이 이미옥님의 평론으로 말미암아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어요 ^^
다시 생각하겠습니다....
최련화   - 2008/12/29 10:06:31  
어쨌던 이미옥님께는 정말 감탄이에요 ~
꼭 유선생님의 창작세계에서 함께 헤어다니고 있다는 그런 느낌 ㅋ
아 ~ 그런데 정말 혼란이 옵니다...
빈술잔   - 2008/12/29 12:23:18  
이미옥님의 이번 글평에서도 많은걸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유작가님의 소설과 이미옥님의 평론은 이미 니카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진거 같습니다..^^
눈물   - 2008/12/29 13:47:34  
소설을 리해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연   - 2008/12/29 14:21:41  
문학 엘리트들만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난해한 소설들...
솔직히 기분은 나쁩니다. 보통 독자들은 읽고 또 읽어도 리해가 잘 안되니까요.
그러나 읽게 쉽게 해석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파격적인 소설의 독특한 풍격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리플 읽으니문학을 전문 정공하시는 분들도 헛갈리고 판단을 잘 못하고 계시네요.
그러므로 보통 독자들은 더 말해서 알겠나요.....
그리고 여자는 너무 섹스하고 싶은 갈망으로 미치다싶이 한 사람같다는...
아무튼 충격입니다.
김경희   - 2008/12/29 14:37:45  
소설 써주신 작가님
그리고 리해에 도움을 주신 이미옥님
감사합니다..
수희   - 2008/12/29 18:58:25  
이미옥님이 우리니카에 있어서 너무나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문학평논 잘 읽었습니다. 평논에서 소설에 내축된 초월된 인식을 받게 됨으로써
니카에서 더없는 문학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좋은 평 써주신 이미옥님, 수고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김선   - 2008/12/29 23:18:24  
이미옥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읽은 이미옥님의 평론가운에서
정말 수준높은 평론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이번에 작가님의 소설 여러편을 읽으면서 수필과 소설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수필은 아무리 난해하게 써도 그래도 리해가 되였는데.. ㅎ
소설은 읽고나면 이미옥님같으신 전문가분들의
평론을 읽지 않고는 도저히 뜻을 리해할서가 없데요 ~

김선   - 2008/12/29 23:19:58  
소설을 읽을때 그냥 아리숭하면서도 재미있고
충격적이다는 생각으로 끝나는것과
아리숭한것이 다 풀리고 충격적인 의미나 뜻을 다 알게되고
끝나는것은 감상이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이미옥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helen   - 2008/12/30 00:21:45  
이미옥님 이렇게 좋은 평론 써주셔서
저같이 문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는
작가님 글을 이해하는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평론써주셔서 감사할따름입니다.
화이팅이예요 더 좋은 글을 써주세요 ^^
박성옥   - 2008/12/30 00:26:18  
평론 감사합니다. 고맙게 읽었구요...
박철수   - 2008/12/30 00:32:28  
대단한 평론입니다.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솔직히 댓글을 읽다가
최련화님의 말슴에 솔깃해졌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혹시 아닐가요? 이미옥님의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박준   - 2008/12/30 11:20:17  
이야기의 구조 분위기 연쇄적으로 만들어지는 내용, 상상력, 은유 등 무작위로 동원된 아주 파격적이면서 기묘한 소설을 차곡차곡 설복력있게 분석하였고 알아볼수 있게끔 풀이하여서 너무 좋았습니다. 소설을 읽고나서 그냥 놀라고 얼떨떨하다가 평론을 다시 읽고 소설을 생각하였을 때 참으로 묘한 느낌을 가지고 다시 한번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평론을 매력을 느끼였습니다.
韓一井   - 2008/12/30 11:40:12  
모험과 실험과 수용

유순호 작가님의 소설이나 수필은 니카를 접하며 새롭게 발표되는 것이면 거의 모두다 읽다싶이 하였다.특히 소설에 대해 물론 싶도깊이 읽은것이 얼마되지는 않지만 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준것들엔 나름대로의 모색을 해보게 되였다.

그리하여 총체적인 느낌이 생기게 되였는데 한마디로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소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짐작된다.몇일전에 발표한 <얼음꽃>이나 좀 전에 발표한 몇편의 단편소설들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왜서 모험적이며 실험적이라하는가?만약 주제 발굴이 증명되지 않았거나 증명되여야만이 긍정이 갈수 있는 것이라면 모험적이라도 할수는 있으나 그런것이 아니라 주재를 표현함에 이색적이고 그 수법이 모험적인데서 실험적이라 하는것이다.

모험적이고 실험적이라면 증명이 필요하게 된다.다시말해 증명을 통해 긍정이 되여야 한다는것이다.증명되였다하더라도 긍정이 될수없다면 그 수용관계를 유순호 작가님은 스스로 검토해 보며 창작을 시도해보는것이 앞날의 창작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가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증명되였더라도 수용될수 없는 현상이 많고도 많다.례를들어 자연과학에서 유용한 희금속 제련에 있어서 화학적인 반응과정을 통하여 얻을수 있는 과정이 증명되였다하여도 꼭 수용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성본을 따지며 그 과정의 가치정도가 긍정되여야만이 수용될수 있는것이다.

또한 사회현상을 례로 들수 있는데 조선의 핵무기이다.핵무기를 가짐에 있어서 인간사회에서 국가지간은 평등하여야한다는 원칙으로 놓고 볼때 증명될수 있고 조선의 핵무기 소유는 필요한 것이다.하지만 백성의 의식주마저 최악의 상태에 놓인정황에서 수용한다는 것은 긍정될수 없는것이다.그래서 조선의 핵무기는 더 모서험성을 띠고 실험적인것은 아닐가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고 싶은것은 유순호 작가님이 표현수법을 채취함에 너무 지나치지나 않는지하는 위구심도 든다.



韓一井   - 2008/12/30 11:58:23  
이미옥님
잘 읽었습니다.역시 서울대입니다.
金楓   - 2008/12/30 12:33:59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와 이런 실험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통하여 평자는 소설이란 구경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문제들을 아주 잘 천착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고 의미가 크다. 그것은 이 소설이 전통적 심리 분석 소설의 틀을 차용하면서 새로운 형식적 기법들을 실험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독자들은 난해한 것 같으면서 평론이 따라서므로하여 다소 용이하게 접근하면서 새로운 독서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것이 아닐가.

金楓   - 2008/12/30 12:42:46  
이 소설은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비행기가 아직 미국본토를 벗어나지 못한 알라스카의 창공에서 갑자기 이상기후변화로 부득불 더는 비행할수 없게 되어 앵커리지국제공항에 긴급 착륙하게 되었을 때에 귀에 레시바를 꽂은 한 녀인의 시각과 청각, 후각과 촉각을 통해 인지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 이 시간 뒤에 바로 있게 될 알라스카에서의 상상에 대한 묘술, 또 그것들이 실마리가 되어 회상되는 이십여 년에 걸친 이야기들이 이 비행의 결과가 될수도 있는 귀국(미국에서 한국으로) 비행기에서 그 녀인 자신의 삶이 부딪치게 될 운명을 상상하느라 오락가락 하는 생각(상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실마리에 대하여 이미옥씨가 아주 자세하게 심리분석을 진행하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총체적인 내적 탐색의 결과, 결국 나체의 몸으로 얼음장에 실려 빙하에 떠내려 간다는 한 녀자의 이야기이다.

金楓   - 2008/12/30 12:45:48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뒤엉켜 있는 녀자의 인생궤적에 대한 아픈 추억이 한올 한올 풀려져 나감에 따라, 녀자는 자신이 신조마냥 지켜왔으면서도 이 신조를 하루에도 열몇십번씩 헌신짝처럼 버려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그 과정으로, 바로 소설의 전면을 차지하다시피 하는 섹스장면에 대한 서술 과정 그 자체이다.
金楓   - 2008/12/30 12:52:10  
많은 유명 소설가들의 소설이 제목에 의해 예고된 주제는 소설의 서술 과정에서
우연하게 생기는 결과물일때가 많은데 류순호씨의 소설은 거의 치밀한 구성과 계획하에서 한마디한마디 대화마저도 준비있게 진행한다. 우에서 어느 분이 소설의 시점이 파괴되여있다는것에 십분 도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소설속에서 진행되는 인식의 인식의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현재 시제의 사용,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미세한 묘사들, 독자에게 마치 퍼즐 게임을 제안하듯 과거와 미래의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는 얼음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한 상징물의 사용, 즉 소설 창작의 매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허구의 이야기 또한 상당히 독특하게 활용되였다.
金楓   - 2008/12/30 13:46:33  
소설에도 평론에도 기꺼이 추천드린다.
빨간필   - 2008/12/30 18:07:41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행복한 새해 되세요^^
하얀눈   - 2008/12/30 18:23:25  
잘읽고갑니다
새해엔 행복하세요^^
봄소리   - 2008/12/30 18:34:50  
좀 잘 이해하지못했었는데 밑에 선배님들의 플보고 느낀것이 많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곰돌이   - 2008/12/30 18:45:01  
그것이 죽음이든 부활이든, 소설의 주인공 그녀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고 눈속에서 “남자”와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힘있는글 잘읽고갑니다
좋은 글 더 많이 부탁할께요
사과   - 2008/12/30 18:59:09  
좋은글입니다
새해엔 복많이 받으세요
이미옥   - 2008/12/30 20:56:45  
1) 최련화님, 리플들 잘 읽었습니다. ^^
"즉 여자의 몸은 그대로 비행기 의자에 머물러 있으며"
여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평론을 하는 저의 상상이니깐요...^^;
다만, 알래스카의 빙하에 알몸으로 투신자살하는 건 현실적으로 봤을 때
조금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조금 들긴 합니다~
위의 금풍 선생님이 써주신 것처럼, 공항에서 비행기가 멈추어 착륙했을 때
여자가 하는 행동들도 개연성이 있어보이고
설사, 알래스카 빙하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한 들, 틀렸다고 생각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번에 어떤 리플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소설을 읽는 데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론도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것 뿐이고-
"이 길로 가시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거기에 설득이 될 것인가 말 것인자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보아집니다... ^^


2)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소설이어도 다수에게 수용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되는데요, 한일경님^^ 반드시 대중적이고 다수의 비위를 맞추는 소설을
기대한다면 그건 TV에서 시청율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 다름이 아닐까요? ^^;;
"니카"는 뭐 상업을 위한 공간도 아니고, 참여방법도 강제성이 아닌 자발성이기 때문에
충분히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소설을 내 보일 수 있는 "자유론" 공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설님의 이번 소설을 보면서 김기덕의 "비몽"이란 영화가 떠올랐는데요,
김기덕이란 감독 또한 대중적인 작품보다 작가주의적 경향의 강해서
사람들의 찬반논란도 뜨겁고 사실 한국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치만 베니스,베를린 영화제에서 연달아 수상하고
또 유럽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을 보면
그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는 분명 도달할 수 있는 이해의 지평이 있습니다.

실험적인 소설들이 매력적인 이유를, 굳이 제의해 드린다면-
단순 향유에 그치는 글보다 좀 더 많이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일차적으로 텍스트가 바로 흡수될 수 없기 때문에, 곱씹는 과정에 느끼는
독자 역할의 적극적 확대라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실험작이 아니어도 자신만의 삶과 생각을 충분히 담아낸
개성있는 글들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고 "힘차게 독려"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문적인 장르는 아니어도, 니카에 올라온 글들에는..
다른 어디서 볼 수 없는 삶의 진솔하고 소박한 언어들이 물결치고 있으니까요~

아무쪼록 2009년에도 니카가,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길 바라고
답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모무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행복한삶   - 2008/12/30 22:25:11  
08년의 마지막 날 이런 소설을 읽게 되여서 마음어딘가가 충실한 느낌이 드네요^^

이미옥님의 답글을 보구 더한층 글의 매력을 느끼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맞이 하는 09년에는 더 멋있는글 기대할께요^^
김예화   - 2008/12/30 22:50:26  
평론을 통하여 문학이 재창조 될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신금단   - 2008/12/30 23:28:40  
그 슬픔의 정점에서 여인은 자신의 모든 생명과 사랑의 물을 얼음으로 냉각시켜 꽃을 만들고, 그 얼음 꽃은 영원한 안식과 구원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데, 그러한 “내면의식”의 흐름을 섬세하고도 파격적인 기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부분 진짜 마음이 가는 부분입니다 좋은글입니다
새해엔 행복하시구 건강하세요
더좋은글 기대할께요^^
김미화   - 2008/12/31 00:01:24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
Love you   - 2008/12/31 00:21:51  
이제 몇시간만 지나면 새해네요^^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새해엔 더 좋은 글 많이쓰고 사람들한테 많은것을 가르쳐주세요
많은것을 배우고갑니다
韓一井   - 2008/12/31 12:40:21  
이미옥님

이해가 빗나간 것 같군요.그런뜻이 아니고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겠지만 지나친 것은 삼가하는 편이 좋지 않을가하는데서 적어 본 댓글입니다.

례를들어 무의미시라하는 것은 사실 어떤 의미가 있고 예술적인것이지 이해할수 없는것처럼 말입니다.이런 무의미시가 모험적이고 실험적이지만 가치가 있는지?의심이 가는것들이지요.

그렇다고 유순호님의 소설들이 그렇게까지 갔다는 것이 아니고 어느정도 받아들여지는가를 알고 싶을뿐입니다.

사실말하여 본인이 읽어 본 <얼움꽃>은 유순호님의 글에 습관이 돼서인지 큰 충격은 받지 못했습니다.한편의 이미지로 씌여진 긴 시를 읽어보는 기분이 였을 뿐입니다.

전통적인 관념일지는 몰라도 소설은 형상창조가 기본이 돼야지요.유순호님의 소설을 읽고 느껴지는것은 수선적으로 형상으로 다가서는것 보다 관념이 앞서게 되는 느낌이 듭니다.

인물형상에서 스스로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관념이여말로 성공된 인물형상이 아닐는지요?이런 관점으로 <얼움꽃>을 볼때 인물형상이 상대적인 모호성을 갖는것이 치명적인것이나 아닌지?모르겠군요.
윤명화   - 2008/12/31 15:30:00  
멋진 평론 너무 많은 도움이 되였답니다.
유순호작가님의 소설은 어느거든지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안겨옵니다.
감사합니다.
황성준   - 2008/12/31 16:21:23  
저는 오히려 이 소설의 주인공의 형상이 여느 소설들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게 창조되였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군요, 형상 창조로 볼 때 바퀴벌레는 좀 곤난하겠습니다. 봉녀는 형상성이 아주 짙으지만 사람인지 곤충인지 잘 분간이 안되였던 반면에 이 소설에서는 여자의 형상이 참으로 눈물도 피도 있고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고 무수하게 상상하는 상상의 세계도 있고 마디마디 피를 짜는듯한 대화가 너무나 인상속에 남는군요, 이번 소설의 특색은 주요하게 기법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아닌 이야기로 쭉 이러이러 사건으로 어떤 여자가 남편과 딸아이를 잃어버리고 자살하러 간다고 쭉 내리 엮어도 무난했을지 모릅니다. 이번에 읽은 소설이야 말로 무엇을 쓰느냐는것도 주요하지먼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주요하다는것도 말해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황성준   - 2008/12/31 16:21:59  
이미옥님 감사함니다.
희망   - 2008/12/31 23:04:50  
안녕하세요 ~
2008년치고는 마지막으로 남기는 플이네요~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이제 찾아오는 09년엔 더좋은글 부탁할께요~
지우개   - 2008/12/31 23:54:47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새해엔 더 많은글 부탁합니다
태양   - 2009/01/01 00:06:51  
새해엔 더 좋은글 기대합니다
추천합니다
오해월   - 2009/01/01 00:14:51  
좋은글입니다
추천합니다
조연희   - 2009/01/01 15:17:29  
근데 죄송하지만 저는 웬지 이 평론이 유선생님의 소설의 핵심을 리해하기에는 여전히 겉에서 배회하는 같다는 느낌을 금할수 없습니다. 웬지 소설의 핵심에는 뭔가 꼭 다른것이 있을 같기도 한데.... ㅠㅠ
저로는 딱히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
이대훈   - 2009/01/03 08:27:28  
기본적으로 소설이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단편소설이란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소설가란 무엇보다 문장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얼음에 나체를 실어 떠나보내는 장면은 너무 잔혹하게..
삶을 세상에 대한 원망 정도로 이해하게 만들수도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한 이야기를 억지로 하려는 듯한 인상도 없지 못해 주고있다.
독특한 작품인데 뭔가 석연치 않다.
평론이 이런 점에 치중해서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이미옥   - 2009/01/03 11:39:31  
소설이 상식적인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상의 "날개"는 정신병자가 이불속에서 바람피는 아내를
관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청준의 소설에는 온통 병적인 불구를 가진 사람들이
작품마다 등장하기도 하구요-
대부분 소설들은 뭔가 독특한 이력을 가졌거나, 남들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소재면에서는 이상할 것 하나 없습니다.

독특한 작품인데 뭔가 석연치 않다.
뭔가 석연치 않다면 좀 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몸으로 빙하에서 남자와 만나는 부분이라면
현실로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그건 무의식에서
일어난 치유과정이라고 글 전편에 걸쳐 밝히고 있는데-
그것이 이해가 안되시는 지.
이미옥   - 2009/01/03 12:05:24  
그리고 소설에서 1+1=2와 같은 정답을 기대하시는 분들-
소설은 "문제제기"만 할 뿐입니다.
문제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고,
단순 향유에만 그친다고 해도 "소설"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 작가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보통 그 작가의 작품생애가 다 끝난 뒤에야
올곧이 조명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 작가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우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그 첫번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 또한 유순호 작가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합니다.

유순호 작가의 작품을 다 읽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개인적인 대화조차 그 흔한 메신저를 통해 나눈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단지 작품을 통해서 뭔가 더 보이는 부분을 말했을 뿐이지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저 또한 "문학"이라는 것에 발을 들여 놓고..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것에 그치는 작품에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지요.

유순호 작가의 발상이, 단순히 자신이 수용하는 상식의 범위를 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이해가 안되고 비위에 안맞는 것이라면
그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것인지, 이탈하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론 또한 하나의 문학 텍스트에 포괄되는 것으로 상상력과 개성을 요합니다.
정답을 널어놓는 모범답지가 아니지요, 그것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말입니다.
이미옥   - 2009/01/03 12:37:45  
그렇다고 자신의 견해를 함구하라는 얘기도 아닙니다,
이러한 반론들 또한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근거와 설득력을 가지고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지요.^^

저 또한 배우는 사람으로서
아직 가야 할 길 많은 사람으로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건설적인 의견"이라면 기꺼이 수용하겠습니다. ^^

어쨌든, 다들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에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09년에도 더 많은 작품과 평론과 논의와 토론을 통해
니카와 함께 다들 성장하고,
영혼의 키를 한뼘쯤 더 키웁시다!
^^
여정미   - 2009/01/03 12:49:27  
이미옥님의 말씀 동감입니다.. 추천드려요 ..
최련화   - 2009/01/04 03:10:16  
저도 이미옥님 말씀 넘 멋지다고 생각하는데요
소설에서 1+1=2와 같은 정답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옳지 않죠.
1+1=해서 3이 되는 경우도 많고 4가 되는 경우도 많답니다.
부부가 결합하면 바로 3이 되는 것과 비슷한...^^
허수옥   - 2009/01/04 08:46:39  
저도 이미옥님께 추천드립니다.
황성준   - 2009/01/04 09:43:52  
소설이 상식적인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상식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백두호   - 2009/01/06 02:14:41  
이미옥님과 함께 소설에 대하여 배워가는 재미가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9/01/06 14:58:13  
평론 너무 좋습니다 ~
리처드   - 2009/01/07 01:31:42  
상한 영혼들을 돌아보고 치유하라..
상한 영혼들의 아픔과 성츠 그리고 그들의 교통의 소리에 주목해야 하지않을가..
임동욱   - 2009/01/07 06:57:18  
대단한 평론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시는 분 답습니다.
즐거운 마음을 추천드립니다.
碧雲   - 2009/01/07 09:49:26  
勝于原文,感觉相当出色。继续加油!
이미옥   - 2009/01/07 21:02:20  
여정미 선생님, 최련화 선배님, 허수옥님, 격려 아낌없는 황성준님, 이름이 멋진 백두호님, 봄이 기다려지는 춘님ㅋ, 신실하신 리처드님, 큰 칭찬 해주신 임동욱님, 힘 넣어주신 벽운님!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할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을   - 2009/01/08 07:51:01  
평론 수준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순호오빠 소설을 잘 리해하게 되였어요...
감사합니다... 京蘭 より
김춘림   - 2009/01/09 03:54:32  
소설은 개인적으로는 너무 난해해서 소화불능이지만 다행히 이미옥님이 있어 정말 좋으네요..
이선경   - 2009/01/09 07:08:14  
죽음과 사랑의 현실적인 관계..
그리고 사랑을 위한 죽음..이런건가요..
아니면 아픔에도 중독되는건가..중독된 아픔에서 해탈하는 방법같은것??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과 평론이였어요.
고맙습니다.,
심심   - 2009/01/10 05:41:06  
평론 너무 자랑스러워요~ 내심 부럽다는..
박철수   - 2009/01/22 09:59:41  
이미옥님 북경에서 인사드립니다.
이런 좋은 평론들을 인터넷에서만 국한하지 말고
문학잡지들에서 보았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좋은 평론이였습니다.
송춘화   - 2009/09/07 21:57:07  
소설과 평론을 모두 읽었어요. 너무 마음 아프네요. 근데 리해할수없는것은 그러면 소설의 마지막에 얼음에 떠내려가는것은 주인공 여자가 상상하는건가요? 몸은 비행기안에 있고? 이 부분이 좀 어리둥절하더라구요. 이미옥선생님 수준높은 평론 정말 감사합니다.
강철   - 2009/09/15 20:53:35  
소설과 평론을 늦게야 읽었습니다.
아직도 주인공이 실제로 얼음바다에 뛰여들어 자살한것인지
아니면 비행기안에서 상상하고 있는것인지 판단이 잘 안되군요.
평론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선홍   - 2009/10/01 12:54:06  
한편 한편의 평론들이 모두 너무 좋군요. 대단한 실력입니다.
김성순   - 2010/06/14 23:00:54  
평론을 잘 읽고가요

저는 읽으면서 적은 부분의 일들만 알수있었지만

넓은 범위에서평론은 그야말로 평로대로. 멋진 평론이엿어요 ^^
성수니   - 2010/07/26 20:16:17  
또다시 읽구가용.&
나나   - 2011/05/07 20:14:23  
이미옥님 ^^ 멋죠요~~~
허승호   - 2011/05/31 10:29:43  
정말 대단한 평론입니다. 추천 드립니다.
최미지   - 2011/07/25 14:22:04  
멋진평론을 읽고갑니다 추천드립니다.
김애단   - 2011/08/01 23:23:41  
유순호작가님의 소설을 읽을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 ㅠ
지금은 평론을 읽고 소설을 무엇때문에 이렇게 쓰는지 알게될것 같아요.
많은 공부가 되였네요~
김종수   - 2011/08/03 08:56:20  
소설 '얼음 꽃'을 읽고 평론도 읽었습니다.
일상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은 결코 쉽고 편안하게만 읽혀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소설이 어떤 지식인 작가의 경우처럼 난삽한 관념적 사변을 담고 있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완벽성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암시적이고 또한 복합적인 구도와 힘들여 조탁한 듯한 문제의 골격을 갖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실의 아픔과 사랑의 무게를 동시에 일궈내려는 작가적 의도의 소산일지?
때로는 대상을 집요하게 파헤쳐야 한다는 집요함과 꼼꼼함과 날카로움이 있고,
때로는 대상에 대한 모든 표현을 동원하려 하지 않고 절제하는 듯하거나
슬며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도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듯한 침묵의 여운과 암시적인 서술 방법을
아주 능란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왜 그렇게 전개되는지를 이해하려면 힘들여 긴장된 독서가 되게 마련입니다.
두 번째로 그의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사연이 선과 악, 행복이나 불행처럼 단순하게 구분되고 파악되지 않은 채, 암울하고 착잡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삶의 허구, 일상 생활의 범속함과 단조로움, 육체의 한계와 인간의 근원적 고독,
삶의 덧 없음과 인간의 무력함, 삶과 죽음의 의미 등의 문제들이 섬세하면서도 대담하게 천착되어 있어서 감탄하였습니다.
김종수   - 2011/08/03 09:00:07  
만약 '얼음 꽃'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일상적 삶의 진부함을 외면하고
소설 속에서 정서의 휴식을 찾으려 했더라면 크게 실망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얼음 꽃'은 죽음과 사랑 그리고 아픔의 거울같은 그런 묵시적인 메타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거울에는 사회와 거리가 비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이, 혹은 삶의 굴레에 갇힌 권태롭고 암울한 인간의 모습이 비쳐있기도 합니다.
또한 여성의 원초적 본능인 성에로의 강렬한 회귀의식을 드러내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삶의 허구와 절망을 그리면서도, 고통과 광기,
그리고 어두움의 진술을 통해서 끊임없이 진지하고 정직하게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유순호 작가의 소설적 은유성으로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꺼이 추천 한표 드립니다.
신난이   - 2011/08/11 00:05:09  
추천드리구가요~ 멋진평론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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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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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룡, 평론가, 전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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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35 Date : 2008/12/23 Hit : 5323 Vote : 230 Name :  이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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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좋은 詩] 작은 여자이고 싶었습니다!    [23]
No : 34 Date : 2006/10/16 Hit : 12043 Vote : 270 Name :  삶의 향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려앉는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나를 품어 안습니다.
내 가슴으로 밀고 들어와
나를 작은 여자(小女人)로 만들어놓는군요.

아무리 밀치려해도
떠나지 않는 나의 소녀시절의 꿈은
바로 작은 여자...
 [조선족 좋은 詩] [2] 리문호 詩-'자야(子夜)의 골목길'    [1]
No : 33 Date : 2008/06/18 Hit : 4535 Vote : 465 Name :  아미산월
[조선족 좋은 詩][2]

자야(子夜) 의 골목길

리 문 호

희미한 가로등, 등불 끈 창문
고요할수록 쓸쓸함은 외로워지겠지

꿈이 없어 꿈속으로 가지 못하는
너, 행방없이 떠도는 유령같은 시인아 ...
 [韓國의 좋은 詩][3]김세웅 詩-'봉지 안의 잠'    [1]
No : 32 Date : 2008/06/18 Hit : 4859 Vote : 199 Name :  아미산월
[韓國의 좋은 詩][3]

봉지 안의 잠

김 세 웅

새우깡을 먹다가 잠이 든다
다리와 허리를 구부린, 봉지 안의 잠이다
봉지 안의 은박에 눈이 부신
잠 속에선
옆의 새우깡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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