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昆蟲三部曲之三/蟑螂
피안   Hit : 10987 , Vote : 223        [2008/10/19]







   벽에 붙여놓은 카크로치(cock-roach, 바퀴벌레)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다니면서 맨하탄의 부자들이 내다던진 테이블이나 또는 의자 다리를 줏어다가 머리와 어깨부분에 뼈대(bone)붙이기를 시작한 것이 꼬박 3년째 됐다. 작년에 서브프라임 쇼크가 왔다가기전에 갑자기 모기지(mortgage)를 내서 새 집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었는지 겨울이 오니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낡은 기물들을 많이 내다던졌다. 그때 줏어들인 테이블과 의자 다리가 엄청 많았다. 오래 사용하여 많이 다스른데다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테이블과 의자다리, 그리고 팔꿉받치개들을 한손에 하나씩 갈라지고 만지작거리면서 바다를 내다보았다.

   갈색과 황갈색, 청청한 푸른 송림이 적당히 섞인 야트막한 해맑은 언덕이 창문 앞에서 바다풍경을 살짝 가려놓고 있어서 밤이면 바다전경은 아렴풋하게만 내다보이고 그 위로 푸른 대서양이 펼쳐지는 수평선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잘 안되게 아늑하게 시야로 들어왔다.

   "so, the world looks blurring, and it's good. "
  "그래 세상은 어렴풋해서 좋은거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이 슬슬 불어들어오는데 마주 서서 적삼을 벗고 허리띠 고리를 슬쩍 풀어놓은다음 몇 번 심호흡을 하다가 갑자기 아랫배를 훌쩍 들여가면서 옆구리에 걸려있던 바지가 자기절로 스르르 흘러내리게 한다. 손에 들고있는 테이블 다리와 당장 팬티를 뚫고 밖으로 나와버릴것만 같은 삐죽한 것이 눕혀든 병정의 총대같이 바다를 향해 치솟았다.

    "It drives me crazy."
    “아. 미쳐.”

   신부가 그의 허리와 엉덩이쪽을 슬슬 어루만졌던 기억이 난다. 거밋줄같은 무늬가 얼걸설기 어린 유리창밖으로 튤립이 덮이고, 미국에 방금 왔을 때 보테이니컬 가든(botanical garden)에서 있었던 튤립축제를 우연하게 구경하였던 기억이 난다.

   빨간색 튤립만 있는 줄 알았더니, 다양한 무늬와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색깔에 화려함까지 지니고 있는 성당의 푸른 창가에서,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러한 화려함속에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동양적인 이미지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한 아메리카의 세련된 화사함에 취해버리고말았다.

   남자인데도 여자가 시샘이날 만큼이나 아름다웁게 생긴 젊은 신부의 부드러운 손은 사춘기 여자의 여리면서도 탄탄한 살결을 방불케했다. 지극히나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튤립이라는 꽃을 아마도 그때 이쁜 남자신부가 허리띠를 풀지않은채로 바지옆구리로 손을 밀어넣을 때 경험하였던 아찔했던 순간에 눈앞에 떠올리고말았다.

   여름에는 부지런히 서랍고리나 포도주병 마개같은 것들을 주어들고 오다가도 술이 반쯤 담겨있는 포도주병에서 마개를 후벼낼 때도 성당에서 튤립을 보며 눈앞이 아찔해날 지경으로 몸살을 떨었던 순간을 생각했다. 그러면 금방 펑하는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온 마개를 다시 포도주병에 꽂아넣고 한참 비틀다가 다시 천천히 빼내여보기도 했다.

   카크로치모양을 그려놓은 연필선을 따라 뼈대붙이기를 다 마치고나서 살붙이기를 시작하자 테이블이나 의자다리보다는 자그마한 조각무늬들에 더 신경을 썼다. 그럴 때도 간단없이 성기가 화난 모양을 하고 발칵거리고 발기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오면서 누가볼가가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 일어나는 그놈을 꾹 아래로 눌러놓으며 입으로 쉴새없이 "Oh, it kills me."(아. 못살아.)하고 중얼거렸다.
  
   바로 그날 밤에 일이 발생하고말았다. 습관대로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풀숲에 살짝 가리운 흐릿한 바다 지평선을 향하고 서서 바지를 내리고 한참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을 열중하다가 며칠전에 먹다남은 아몬드 쵸코렛 통이 창턱에 놓여있는 것이 눈에 띄어서 왼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어왔다. 한손으로는 계속 아래를 잡은채로 왼손과 입으로 쵸코렛 통을 뜯어내니 종이 각안에 플라스틱 받침대가 떨어졌다. 금박포장을 벗겨내니 안에 또 노란 종이로 포장되어있고 그것까지 벗겨내서야 호두껍질안에 초코렛이 드러났다. 초코렛을 입에 물고 아래서 뿜어져나오는 정액을 쉴새없이 창턱밖에 대고 털어댔다. 머리와 어깨 등허리만 벽에 들어붙어 있던 카크로치가 지는 석양에 비껴 그날따라 마일드 모카를 뒤집어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참지못하고 성당으로 달려가 말도 되지않는 이야기를 꾸며대기 시작했다. 벽에 붙여놓은 카크로치와 성교했다며 시도해 보지도 않은 행위를 이쁘장스럽게 생긴 남자 신부에게 고백하면서 자기절로 허리띠를 끄르고 주섬주섬 바지를 내려놓고 말았다. 신부는 그의 성기를 만지면서 침착하게 웃어보였다.

   “Did you really have sexual intercourse witha cockroach?”
   “형제님, 정말 카크로치와 성교를 하였단말입니까?”

   "Yes, Father."
   “네. 신부님.”

   "It's really hard to believe."
   “믿을수가 없군요.”

   신부는 성기를 만지면서 카크로치가 얼마나 큰 벌레인지 상상했다. 이렇게 큰 물건을 갖고 어떻게 그렇게 작은 벌레와 성교를 할수 있었겠는가! 신부는 몇 번이나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고 다시 물었다.

   "I can't remember. Father."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신부님.”
   "When was the first time?"
   “처음했던 것이 언제였습니까?”
   "It might be three years ago."
   “3년전인 것 같습니다.”

   "Then it was the time when you just came to the United States. Do you still feel the desire for sexual intercourse even 3 years later?"
   “미국에 방금 왔을 때군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3년동안 혼자 지내면서 계속 성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까?”
  
   "No, definitely not. I am so ashamed of myself."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신부는 3년동안이나 벽에 들어붙어서 하루하루 커가고 있는 카크로치가 얼마나 큰 바퀴벌레인지 헤아려낼 도리가 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럼에도 신부는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랬고 실제로도 진실이었기 때문에 고백성사를 진행하였다.

   “당신은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써 스스로 신의 민족을 욕되게 했습니다. 당신은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죄를 지을번했으나 코크로치는 순수한 동물이 아닙니다. 용서받을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당신과 성교를 가졌던 카크로치들을 모조리 쓸어던지도록 하십시오.”

   신부는 다음 주일날 고백성사를 하러 온 한 부자집 아내한테도 똑같은 기도를 하였다. 그 아내는 목욕실에서 빗으로 맥콜리(McCauley, 남편보다도 더 존귀한 애완견의 이름이었다.)의 털을 빗어주다가 맥콜리의 길다랗고 걀쯤하게 생긴 성기가 꼿꼿하게 발기되는 것을 보고 유혹을 참지못하여 간음하였는데 흘러나오는 맥콜리의 정액을 자기의 얼굴과 젖가슴에 발랐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인 것을 신부가 알고있었다. 노년한 남편과 밤마다 성교를 할수 없을 때 그 아내는 신부를 찾아와 이런 식으로 고백성사를 꾸며내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신부는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수간(獸姦)은 혼외정사나 근친상간처럼 무거운 죄의 하나이지만 왠지 덜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도 자신이 여자가 아닌 남자들의 성기를 만지기 즐겨하는 것처럼 수간도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신부는 자기가 모르는 어떤 이민자의 셋방 벽에서 하루하루 코크로치가 무섭게 커가고 있는 사실은 알수가 없었다.

   살(flesh)붙이기를 시작하자 카크로치는 점점 풍만하게 변해갔다. 올 가을에는 카크로치가 꼭 살아서 움직일 것이라는 꿈을 꾸며 이 밤에도 열심히 마스터베이션에 몰입하고 있었다.


                                                                           2008년 10월10일 미국 뉴욕에서.




류영애   - 2008/10/19 16:20:31  
뭐 썼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의 짐작에는 동성애가 자생하는 죄악에 대하여 쓴것 같네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는 참으로 용서가 안되는 일입니다.
인간의 병태적인 심리의 표현이기도 하구요...
山子   - 2008/10/19 17:00:06  
소설을 보면서 빨갛고 걸직한 덩어리가 생각납니다.
남자와여자 , 동물과 인간 등 대립으로 표현되여 있는 세상
모든게 그냥 소설주인공의 시각과 행위로
한 덩어리로 된듯한 기분이...
인간최초 생명인 태아적인 꿈을 꾸는게 아닌가요?
山子   - 2008/10/19 17:01:35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발광머리앤   - 2008/10/19 23:55:33  
최대의 내심성을 발휘하여 이글을 두번 읽었다.

첫번째 읽었을때 도대체 뭐가 먼지를 모르겠더라.

두번째 읽을때는 한구절 한구절 잘기잘기 뜯어씳으며 읽었다.

겨우 글의 주제를 (내 나름대로 )포착했다고 해야할지


변태적? 이상한 사유방식을 가진 신도들의 소위 [고백성사] 를 통해

본인도 자아만족의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젊은 신부의 얘기를 다루신것같은데


가을의 분만이라 잉태하고있는 그 무엇이 세상을 보다???

알뚱말뚱이랑께,

이런걸 두고 상상은 자유라 하는거겠지?
선영이   - 2008/10/20 05:11:48  
끝내 써내셨군요.
cockroach의 이야기는 쓰지않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 cockroach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아마 2년전에 있었던 일 같습니다.
cockroach를 만드는 아티스트에 대하여 소개하여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꾸며지었네요..
자본주의 성(性)에 대한 깊은 의미의 성찰적 기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사회의 일분자로써 자기 민족과 세계와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고난한 삶을 그렸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 민족의 성관념과 뉴욕이라는 서구문명의 최중심에 우뚝 서있는
자본주의 세계가 인류사회의 보편적가치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데서
인간이 느끼지 않을수 없는 긴장감이 향불마냥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선영이   - 2008/10/20 05:29:29  
결국 인간이 반드시 성교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을 통하여
인간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함으로써 인간임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래된 신화와 전설 속에서 인간은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수 없을 때에
근친상간도 가능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수백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인간의 정의에 의하여 자기극복과 초월에 있음을 긍정했었 던것이 지금 선생님께서
써주신 cockroach의 이야기를 통하여 더는 긍정자체를 부정하는 같습니다.
선영이   - 2008/10/20 05:43:13  
그러나 같은 남자로써 남자의 성기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신부에 의하여
기형적인 변태욕구(동성연애)성에 있어서도.........???
선생님은 혹시 통합의 원리와 포용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느끼게 됩니다.
정확하게 선생님은 찬성하시는건가요? 아니면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시는건가요?
우리 나라의 기성작가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서구문화를 접촉할 때
특히 성방면에서 현실은 부정적이며, 인간은 고양된 정신을 얻기까지 너무나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승인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 모두 회피하지 않을수가 없게 됩니다.
동방문화관념이 이를 수용할수 없을 뿐더라 이질감의 충돌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굽히지 않는 의지로 맞서려 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경탄스럽습니다.
물론 작가니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그 속으로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자연을 본으로 삼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여 영혼의 상승을 꿈꾸는 내적 저항을 시도하는 것은,
서구문화를 배우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 아닐가 싶습니다.
선영이   - 2008/10/20 05:44:22  
그 과정에서 자기 초월에 이르려 하는 것은 바로 무위(無爲)와 자연에의 회귀 아닐가 싶습니다.
주성호   - 2008/10/20 06:00:35  
저도 이 글의 뜻을 리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선영이님의 댓글을 읽었어도 여전히 아리숭합니다.
이 글이 무엇을 썼는지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우리 조선족의 문화가 연변이라는 시골에서
마스터베이션하는데 그치지말고
세계를 향하여 눈을 떠야한다면 적어도 이제는
유선생님이 최근에 륙속 쓰고있는 소설들속의 제재에 대하여
회피할것이 아니라 눈길을 돌려야 하며
적극적으로 문학지상에서 공론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대담하게
동성련애에 대하여 쓰고있는것에 감탄합니다.


주성호   - 2008/10/20 06:02:41  
이처럼 속이 섬뜩해나는 글을 우리가 니카를 내놓고 과연 어디서 얻어읽을수 있을지가 의문스럽습니다.
니카가 참 대단하고 유선생님께도 계속 탐구하고 더 높은 상상봉으로 돞아올르시기 바랍니다.
조연희   - 2008/10/20 06:17:41  
저도 발광머리앤님처럼 두번이나 다시 읽어보았지만 뜻을 잘 모르겠네요...
신부와 동성련애하는 그런 뜻인가요?
미국이나 유럽의 종교사회가 성적으로 많이 문란하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자주 보지만 그런 교회들은 대부분 이단이 아닌가요...
동성련애와 근친상간문제는 우리 사회의 암흑속에서 공개적으로 로출되여있지 않을 뿐
아주 깊게 만연하고 있다고 하는 글들을 여러번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근친상간이나 동성련애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솔직히 알고싶은것은 아니지만 궁금증도 없지않았었습니다.
자위하던데로부터 신부에게로 달려가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 놀랍습니다....ㅠㅠㅠㅠ
리해가 잘 안되는것도 너무 많네요..
최삼룡선생님은 어떻게 평론할지 벌써부터 호기심이 생깁니다.
조연희   - 2008/10/20 06:18:50  
어쨌던 유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너무 다재다능한것이 아닌가요...
이제도 또 어떤 류형의 글이 나올지 항상 기대하게만 만드십니다..
김동석   - 2008/10/20 06:34:45  
어제 하루 잠간 니카에 오지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글을 써주셨군요.
오후에 제2부 예배까지 보고 돌아와서 니카에 접속했습니다.
유선생님의 글이라면 난 또 몇번이나 읽어야 합니다. ㅎㅎㅎ
이미옥   - 2008/10/20 06:35:13  
재밌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도 뽑은 아래 글에 있다 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죄를 지을 번했으나 코크로찌는 순수한 동물이 아닙니다. 용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순수한 동물이 아니라서 용서받을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순수한 동물, 또는 인간과 성교했다면 그 죄는 용서하기 힘든 것이라는 얘기도 됩니다. 그 죄가 용서하기 힘든 이유가 되는 것은 무릇 무분별한 성교를 통해 생명이 창조된다는 것. 무엇보다 그렇게 계획 없이 태어난 생명을 양육하고 교육할 만한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그건 죄가 되는 것이지요.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그것이 순수한 동물이든 사람이든 음란한 행동과 생각자체는 죄가 됩니다.(성경의 기준에서 보면) 그러나 신부는 엉뚱하게도 “순수하지 않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그 죄는 용서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신부 또한 인간의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부정하지 못합니다. 신부 또한 은밀한 성적 욕망을 갖고 있고 그건 바로 “남자를 만지기를 즐겨하는” 것으로 표출되지요. 그렇다면 신부는 동성애일까요? 저는 신부의 성적 지향성을 묻는 것이 주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신부는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순수함의 상징인 신부한테 이성과의 섹스는 금기이자 “파멸”과도 같은 것이고, 그런 면에서 신부의 정신적 “성기”는 거세당한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세당했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까지는 거세할 수는 없지요. 왜냐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글 속의 세 주인공들은 모두 섹스 할 상대를 가지지 못했다는 면에서 모두 “거세”당했다(혹은 그 상태를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음)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해소”와 “구원”의 길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바퀴벌레와 애완견을 통해 그리고 그 “죄”를 “심판”해야 하는 신부는 그들을 용서하므로 “구원” 받고 있는 건데 이들과의 관계 또한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성교”와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신부를 은밀히 찾아가서 자신의 “죄”를 확장해서 고백합니다. 꾸며 내기까지 하지요. 그들의 진정한 욕망의 해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신부한테 찾아가 서 이야기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삽입하는 남자의 성기로 대변한다면, 어리고 예쁜 남자신부는 이들의 욕망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여자의 “질”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 역할에 있어서는 “발산”과 “수용”이라는 면에서 조금 다르지만 사실 욕망의 근원에 있어서는 그 본질이 같은 것이고 어찌 보면 공생관계에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음양”의 조화처럼 말이지요.
다만 그들은 모두 금기시하는 “죄”라는 것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시인하고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결국 죄를 짓지 못하는 자들이고 죄를 짓지 않은 자들이요, 다만 억압되고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작가가 마스터베이션의 대상으로 바퀴벌레와 애완견을 선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바퀴벌레의 다산성(?!)과 생산성은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강하고 집요한지 잘 압니다. 지구에서 바퀴벌레만큼 생존력이 강한 동물은 꼽기 힘들 정도니까요. 이민자, 그러니까 아무런 빽도 권력도 재산도 없는 이방인이 마스터베이션 대상으로 바퀴벌레를 생각해 낸 것은 그만큼 바퀴벌레의 “강한 생존력”과 “다산성”을 꿈꾸고 있는 것이지요. 남자는 무엇보다 정착하기를 원하고 성공하여 자신의 자손이 바퀴벌레처럼 미국이라는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강하게 욕망하는 것이지요.
남자의 욕망이 “정액의 흩뿌림”에 있다면, 여자의 욕망은 “사랑 받음”에 있습니다. 이민자와는 달리 이미 정착하고 뿌리 내린 미국여자에게 있어서도 “외롭다.”는 욕망은 그 남자 만큼이나 강한 것입니다. 마스터베이션 상대로 주인을 잘 믿고 따르는 애완견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현대문명의 상징이 된 미국사회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에 있어서는 과연 인간을 충족시키고 있나 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죠.

그러니까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와 이런 신부는 곧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의 욕망은 수많은 제도 속에서, 사회적 틀 속에서, 타인의 시선가운데도 억압하고 억압되어 왔지요.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더 거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억압하지 않으면 사회가 존속되어 갈 수도 없고 인간도 그 사실을 잘 압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인 성욕은 억압되는 대신,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또한 욕구를 지연시키고 확장시킵니다. 법정스님은 “비우라.”고 말했지만 그것 또한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 경지에 대한 욕심이니, 사실 욕구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 하지요. 대신 우리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들을 수도 있고 맞장구를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꿈꾸는 바퀴벌레의 우리 안에도 한 마리씩, 아니 몇 백 마리씩 들어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 바퀴벌레가 정말 성교할 수 있는 거대한 바퀴벌레가 되는 건(그건 아마도 이상의 실현과도 같은 거겠죠. 남자가 꿈꾸는,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문득 아름다운 신부에게 찾아가서 “고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이유가 되겠지요.
김동석   - 2008/10/20 06:36:52  
문학을 잘 알지못하지만 느낌은 숨기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이런 것이 진짜 문학이 아닐가싶습니다.
문학이 아니면 무엇이 감히 동성애에 대하여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선뒤집어엎듯이 보여드릴수 있겠나요.
조연희   - 2008/10/20 06:52:30  
와...이미옥님 정말 너무 대단하세요 ^^!!!
평론글을 읽고나서 이 글에 숨어있는 깊은 의미를 터득하게 되였습니다.
정말 서울대가 달라요...
저희는 근본 이쪽으로 상상도 못했던것 있죠...
그저 얼굴만 화끈거려서 뭔 이런거 이렇게 자세하게 쓰나고 ...
작가님을 탓도 했었는데....
참으로 너무 훌륭하신 평론이예요.
만약 이미옥님만 아니였다면 오늘 유작가님을 많이 오해할번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동석   - 2008/10/20 07:04:49  
댓를 다는 도중에 이미옥님의 평론글이 올라와서 한참 읽었습니다.
정말 깊이 잘 해석하여주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인의 시각과 일반 사회에서의 시각에 차이가 있고
모두 혐오하며 죄악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학은 참으로 포용과 통합하는 자세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존하는 사실자체를 관조하고 성철하는면에서
문학이야말로 인간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김동석   - 2008/10/20 07:05:49  
평론하여주셔서 유작가님의 글을 터득할수 있게해주신 이미옥님께 감사합니다.
서울대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현영   - 2008/10/20 07:24:57  
아저씨 얼굴이 뜨거워져 겨우 읽었어요 ㅠㅠㅠㅠㅠ
소설으 이렇게 써도 되나요?
완전 에로스예요 ^^
리연지   - 2008/10/20 10:40:56  
작가님...글 열심히 읽었어요...무슨 뜻인지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했는데 이미옥님의 플 보고 ...이렇게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을줄이야...많이 배웠습니다...*^^*
류영애   - 2008/10/20 10:43:30  
와~ 이미옥님, 다가가기 어려운 글에 이렇게 상세히 해부하듯이 평론해주셨군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님의 평론을 통하여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shanghaitan   - 2008/10/20 11:05:54  
이미옥님의 평론글이 마음에 듬다.
작가님의 바퀴벌레이야기를 리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의문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교라는 단어 수음하는 동작, 수간하는 이야기도...
글쎄 야동에서는 많이 보지만 소설로도 이렇게 거침없이 쓰면
혹시 미풍량속을 해치는 음서가 되지않습니까?
솔직이 변태적인 성생활에 대한 적라라한 묘사로 유명한 금병매를 읽을때도
오늘같지는 않았습니다.
shanghaitan   - 2008/10/20 11:08:19  
아무리 미국이 대단한 나라라지만 적라라한 묘사자체는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강아지와 수간하는 사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알게함니다.
아므튼 충격적으로 읽었습니다.
이미옥님의 댓글은 독립적인 평론글로 정리하여 따로 올리는게 좋을 같은데요....
韓一井   - 2008/10/20 11:13:45  
작품의 이해는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하기에 배경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읽고 이해할 건 두말 할 필요가 없다.한 이민자로 미국이란 선진국에서 겪은 일상과 성욕의 해소를 다루었는데 그것이 바로 3년째나 되는 버운붙이기와 변태적인 성욕이다.

작금의 과학은 자위행위를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죄의식으로 다루지 않는다.왜냐하면 그 자위행위 자체가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과분한 것이 해롭기에 자위를 긍정하면서도 성욕해소를 정확히 인도해 줄 것을 건의 한다.이렇게 놓고 볼 때 작품중의 자위행위 대상으로서의 바퀴벌레는 사실상 성적흥분의 상대로 될수 없기에 선택대상이 빗 나갔는데 정신질환이 있는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상물이다.

비록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형성된 억압된 욕망으로 볼수는 있지만 정신장애자란 불명예를 뻣기 어렵다고 생각 된다.반면에 성적 흥분을 일으 킬 수 있는 애환견과의 수간이 외려 더욱 정상적인 것이다.하지만 그것도 정상적인 성욕해소가 될수 없는바 욕구불만에 잡혀 성욕의 포로가 되는데 이야기를 꾸며가기까지하며 신부로부터 오르가즘을 맛 본다.대상이 같은 종이기에 비록 죄의식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벌레거나 짐승과의 성행위와는 별개의 차원으로 반인류적일 수는 없다.

그럼 신부는 어떤 인물인가?작품에 부각된 인물을 분석해 보면 량성인간인 듯 하다.하기에 작품에선 동성과 이성의 중재자로 부각되는데 반인류적인 행위가 아니기에 두 남녀를 정신적으로 용서하는 것으로 끝난다.한마디로 성욕변태자들의 세계를 그렸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어떤 억압에 의한 해소로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작품 전체에서 보여주는 분량으로서는 전자가 우세일 듯 하다.

하기에 제기되는 의문으로 이런 작품의 현실적의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에선 조금도 미적 향수를 맛 볼수 없다.마지막으로 외래어를 이해하기 어려워 이해가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한 듯도 한데 많은 량해를 바라며...
이미옥   - 2008/10/20 14:17:07  
아, 자위의 대상물을 바퀴벌레와 애완견이라는 것에서
변태적이라거나 너무 포르노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글의 표피적인 의미보다는 그 표상 밑에 내재화된,
의미에 주목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순호 작가가 설마 발퀴벌레와 애완견과 자위하는 것을
재밌으라고 보여주었을까요?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고 비유입니다.
3년동안 이민자로 셋방살이 하면서 적응해야 했던 남자의 삶을
상상해 보세요.
그 안에 꾹꾹 눌러왔을 경제적 빈곤, 외로움, 두려움들을 생각해보세요.
정말 사랑하고 싶고(물론 섹스도 하고 싶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남자의
우울한 정신과 견딜 수 없는 긴긴 시간들을 상상해 보세요.

작가는 그런 것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가 일전에 썼던 것처럼 "외롭다."는 식으로 다 드러내놓고 있지도 않습니다.
세상에는 표현하는 것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다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이 문학이 아닙니다.
문학은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묘사나 비유로
더 큰 공명을 얻어냅니다.
"나는 외롭다."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내 마음은 낙엽"이라고 하면
독자들은 더 살갑게 와닿는 것이 그런 것이지요.

그리고 두번째는 그렇다면
왜 그토록 "충격적인" 상징을 가져왔느냐 하는 것인데,
그러한 낯설음은 문학의 많은 기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처음 사용하여 정의 내린 개념이기도 한데
일상적인 것들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함으로, 그 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신부님이라 하면 정말 순결하고 완벽한 신의 자제의 모습으로 알고 있지만
소설속에서는 "남자 만지기"를 좋아하는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으므로
"인간"이란 무엇일까, "신부"란 무엇일까 그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작가가 뭐 이상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학적 장치들을 이용해서
결국 얘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필요한 자세일 것 같습니다.
김동석   - 2008/10/20 14:26:19  
이미옥님의 팬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 평론입니다.
추천드립니다.
허수옥   - 2008/10/20 14:37:24  
백락이 없으면 천리마가 소용없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무슨 소설인지 하나도 리해할수 없었는데...
이미옥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김경희   - 2008/10/20 14:48:54  
글도 평론도 한마디로 모두 대단합니다.
이미옥님 속속까지 꿰뚫여 보게해준 평론 감사합니다.
진짜 팬이 되여버리는거 아닌가..

작가님의 드러나지 않은 뜻이 백인 글 추천드립니다..
김경훈   - 2008/10/20 15:02:09  
위기에 처한 인간의 죄악과 고통가운데서 가장 주요한 조성부분이 성이다.
적지않은 사람들의 성이 고독과 저주속에서 존속하고 있으며
문학은 여느 분야와 달리 직접적으로 이 어두운 면을 직시할수 있으며
관조와 성찰의 결과를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하여낼수 있는데
얼마나 잘 형상화하는가는 작가들 나름대로의 기법에 많이 달려있다.
이미옥님이 해석하여주신대로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장치는
이민자로 형상화되는 코크로치-즉 바퀴벌레다.
생존능력과 파생능력에 있어서 쥐를 훨씬 릉가하는 동물이다.
고고학적으로 인류보다 수억년전부터 먼저 생존하였던 동물의 시조라고 한다.
바퀴벌레를 설정하지 않을수 없었던 원인은 이 이야기속의 배경이 미국이라는
바로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이고,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일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하여
가장 활발하게 인권운동을 벌이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가장 이민자들의 인권이 잘 보장되여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작고 순수하지도 않은 바퀴벌레들을 쓸어버리라고 신부는 말하고 있지만.
벽에서 소설속의 주인공이 거리바닥에서 주어들인 테블이나 책상다리들을 주어다가
풀로 붙여서 만들고있는 거대한 바퀴벌레가 얼마나 큰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천만명을 헤아리는 이민자들의 성장과 변혁을 암시하기도 하는 부분은 아닐가?

김경훈   - 2008/10/20 15:10:59  
마스터베이선-자위하는 수음행위는 무엇을 상징하는것일가?
성장하는 바퀴벌레들(이민자)의 자립자존하는 삶을 형상화하였는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이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있다.
불법체류자들은 많은 나라들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불행하고 어려우며 고독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인권을 위하여 벌여가고 있는 투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도 역시
미국이다. 작년 1년동안에만 미국내에서 백여만명을 훨씬 넘는 이민자들이 거의 매달 한번씩
집회를 가지고 데모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많이 보았다.
이들의 삶이 얼마나 불투명하고 어두우며 고독하다는 것을 <바퀴벌레들의 이야기>가
잘 말해주고 있다.
성적으로 자위하는것은 건강에 해로우면서도 의학적으로 유익한 점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다.
그러나 매일과 같이 자위하는것은 필경 유익한 점보다는 심신건강에 해로운 점이 더욱 많을것이라고생각하지않을수 없다.
미국이 자유로운 신앙과 종교가 보장되여있는 국가이고
이민자들이 대부분 종교생활에 빠지게 되는 원인에 대하여서도 이 소설은
회의적인 눈빛을 보내고있는것 같다.
김경훈   - 2008/10/20 15:15:54  
매력적인 인물들과 산뜻한 구성도 읽는 내내 유혹을 느끼게 하였다.
1인칭인지 3인칭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나>인지 <그>인지, <누구>인지 없으며 혹시 작품속의 주인공이 되는
어떤 공간이라는 그림자가 말도하고 행동도하고 자위도하는데...
혹시 벽에다가 만들어붙이고 있는 바퀴벌레가 바로 이 주인공이 되여서
말도하고 자위도 하고 있는것이 아닌지 하는 의혹까지도 불러일으키는것이여서
읽어 나갈수록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함정을 설치했다.


김경훈   - 2008/10/20 15:24:20  
바퀴벌레와 자위하는 한 고독한 인간의 성행위.
그리고 바퀴벌레와 자위하는 행위밖의 모든것들인 맨하탄의 거리와 성당의 신부.
미국이라는 국가와 국가와 바퀴벌레와 함께 공존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거대한 범죄가 성장하고 있다.
애완견과 성교하는 가진 부자들에게는 범죄가 될수 있지만
바퀴벌레들에게는 혁명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결말부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프래시(flesh)-살을 붙인다. 버운(bone)붙이기는 먼저 골격을 만들기다.
테불다리나 책상다리를 주어 골격을 만들어놓은 바퀴벌레의 살붙이기를 자질구레한
조각나무조가리나 또는 맥주병마개들을 가지고 한다.
같은 이민자들인-바퀴벌레-미국의 최초 이민자들이였던 청교도 종교인들이
배를 타고 와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설하였고
역시 같은 이민자들인 바퀴벌레-오늘의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미국을 살찌우고 있다.
그런데 바퀴벌레들의 고달픈 삶을 딛고 애완견과도 성교를 진행하면서 살아가는
부자와 자위하면서 살아가는 바퀴벌레들의 삶은 정신적으로 전혀 다르지않다.
함께 굶주림과 고독에서 방황하고 있음이다.
김경훈   - 2008/10/20 15:27:15  
프래시(flesh)붙이기를 시작하자 코크로치는 점점 풍만하게 변해갔다.
올 가을에는 코크로치가 꼭 살아서 움직일 것이라는 꿈을 꾸며 이 밤에도 열심히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에 몰입하고 있었다.
바퀴벌레에게도 희망은 있다.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력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리해해도 되겠는지 모르겠다.
비교적 터득하기 어려운 글을 이미옥양이 잘 해석하여주었고.
나역시 이미옥양의 해석에서 많은 새로운것을 터득하는 수준이였음을 고백한다.
한편한편 우리 문학사에 기재할만한 독특한 작품들이 륙속 탄생하고 있음에 무한한 감격을 느낀다.
韓一井   - 2008/10/20 15:52:00  
사실 표제에서 작가의 견해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단지 그것이 표제로서 소설내용의 의미를 제시할 뿐으로 내용을 갖고 그것과 상반되는 감수를 받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동성과 이성이 분리된 세계에서,분리된 동성과 이성이 충돌할때,나는 경계의 소멸을 꿈꾼다.>에서 보여주다 싶이 분리의 소멸이 작가의 긍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또한 개개인에게 분리를 갖다주는 환경도 본문에서 교대된것이여 이의는 없다.하지만 이 분리의 소멸도 내용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수도 있음은 웃에서 표명하였고 첫댓글에서도 보여주었다.

단지 왜서 전편의 이야기 흐름에 변태적인 상황을 그려놓았는데 기어코 그 밑에 깔려있는 작가의 적극적인 분리의 소멸만을 긍정하여야하는가가 의문이다.

첫 댓글에서와 같이 변태적 중재자로서 주인공들의 분리를 소멸할수는 없다는 말인가?

곁표면에 흐르는 이야기가 거부반응 혹은 렵기적인 내용이 아닐지라도 얼마든지 매력적인소제를 발굴하여 분리의 소멸을 표현할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한번 천명하고 싶지만 구제적으로 김경훈님의 댓글과 같이 내용이 밑층에 깊이 깔려다하여도 표면에 흐르는 이야기 즉 소재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금화   - 2008/10/20 16:02:54  
어제 저녁에 한번 읽어보구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코크로치, 튤립, 신부, 이민자, 애완견, 부자집 아내...
이러한 단어의 등장의 상호 관계가 무엇인지...

유작가님의 소설과 수필도 이전에 여러번 읽어보면서 느낀거지만은 이 소설도 단순한 표면적인 단어와 묘사들 보다는 그 숨겨있는 뜻을 급급히 알고 싶었습니다.
우에 이미옥, 선영이님, 韓一井님의 댓글을 읽어보구 다시 소설을 읽어본후에 댓글을 읽어밨지만은 아직도 아리숭한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단순이 코크로치, 이민자, 신부, 부자집 부인 말고도 중간에 튤립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이것도 무언가를 상징하는듯 싶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요해가 없다나니 "신부"가 이 문장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라서 첨에 이해가 어려웠던거 같습니다.
마음의 소리님과 최삼룡선생님의 평론이 기대됩니다.
황성준   - 2008/10/20 23:38:12  
소설이 참 짤막한데 담고있는 내용이 대단하군요.
군더더기 한구절도 없는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필요있는 말은 한마디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너무 정채롭게 씌여졌군요.
그런데 소설인지 수필인지...너무 짧아서 소설같지않기도 하고...
그러나 소설인것이 사실이겠지요?
너무 아쉽다는 생각도 들고..좀 더 길었으면 하고...
이미옥님 한일정님 김경훈님 세분의 평론글이 이 소설을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였습니다.
특히 이미옥님께 감사합니다. 감탄입니다.
길연예   - 2008/10/21 00:01:49  
ㅜㅜㅜㅜ
정말 무슨 말 못하겠어여ㅛ
소설이라는것은 정말....이렇게도 쓸수가 있는거네요..
바퀴벌레에 애완견에...세상이 말세가 아닌가요?
자본주의는 다 드러나있고 사회주의는 언론이 이렇게 다 드러내지 못하죠..
우리가 아는것 모르는것을 다 말할수 있어서 좋긴 좋은데...
갑작스럽게 받아들이기는...좀 ...ㅠ

길연예   - 2008/10/21 00:03:31  
동성애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많이 궁금했는데....
고독한 사람들은 빈방에서 저렇게 고독을 달래는구나...
인간이란 참....
할말이 없는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데 말못하겠습니다.
아마 제 평생에 처음 읽었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소설이 될것 같네요...
어쨌던 존경스럽고 놀라우신 유선생님이십니다.
추천드릴께요..
빈술잔   - 2008/10/21 00:58:06  
유작가님의 소설을 연거퍼 세번 읽어봤습니다.
한번 읽고나서 아래 댓글을 읽어보려던 욕망을 간신히 누르며 또 두번 읽으면서
나름대로 소설속에 담긴 내용 그리고 그 상징수법에 대해 음미해보았습니다.


선영이님, 이미옥님, 韓一井님, 김경훈님의 댓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중에서 이미옥님의 댓글이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지만, 이 몇분들의 평론에 뭔가 작가가 말하려는 그 무엇인가가 빠진듯한 느낌이 듭니다.
빈술잔   - 2008/10/21 01:01:17  
!!!!!!!!!!!유순호 작가님께 정중히 요청합니다------이 글의 탄생의도와 그 상징에 대해서 직접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옥   - 2008/10/21 08:05:16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 박애, 명성이고
네덜라란드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합니다.
색깔에 따라서 그 꽃말도 조금씩 틀려지므로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내릴 순 없고요.
튤립의 전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네요-

세 남자가 소녀에게 각각
"만일 나와 결혼하면 나의 왕관을 그대에게 씌워 주겠소"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좋은 칼을 주겠소"
"나와 결혼하여 준다면 나의 금고속에 가득한 황금을 전부 주겠소"
하고 청혼하였다.
소녀가
"난 아무것도 원치않아요."
라고 하자 그들은 욕을 퍼부었다.
소녀는 병들어 죽었고,
여신 폴로라는 소녀의 넋을 튤립으로 피어나게 하였다.
꽃송이는 왕관같고, 잎새는 칼과 같고, 황금빛 뿌리덩이같은-

이것도 출처가 네이버라 정확하진 않지만 한번 참고하고 싶었고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작가가 "튤립"의 전설이나 꽃말에는 의지하지 않은것 같고
그 모양의 동양적인 모습에, 신부를 떠 올리는 기제로 사용한 것 같네요.
아마 그 심상은 작가가 실제 튤립을 보고 느낀 이미지에 의한 것일 수 있고요.

(여러분들은 튤립의 모습을 어떡게 생각하나요? 저는 딱히 동양적이라는
느낌은 못받았지만)
주인공 남자는 그 화려한 모습에서도 동양적인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아마 향수때문이겠죠.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기억과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민자는 동양사람일테고, 그가 튤립을 볼 때마다 신부를 떠올리는 건
신부의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동양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여성성과 수용성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니까 적어도 글 속에서
"튤립"과 "신부"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어서 그것은 뭐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여성성에 대한 발견"이기도 하고 "향수"이기도 하고
"영원과 순수에 대한 지향"이기도 하고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아, 그리고 제가 보기엔
청설님은 이 글에 대한
부연설명은 스스로 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독자들의 반응은 지켜보고 있겠죠.

청설님의 스타일이기도 하고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니깐요. ^^
오히려 작가가 무엇이라고 하면,
독자들은 더이상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작가의 목소리대로 따라가니
작품은 그대로 소리없이 있는 편이
독자들의 생각을 더 자극하는 일면도 있고요.

저희는 이미 충분히 논의를 잘 하고 있고
그것으로 작가의 몫은 끝났다고 생각이 되네요.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까,
이렇게 열심히 토론하는 가운데
저희는 저의만이 생각으로 나름대로의 "이해"와 "감상"의
지평에 도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만의 "노"를 젓다보면
도착하는 섬은 다를지라도 똑같이 작은
땅을 하나씩 밟게 될테니까요.... ^^
빈술잔   - 2008/10/21 10:43:43  
항상 정성 들여서 댓글 쓰시는 이미옥님께 악수 청합니다..^^

이미옥님, 청설님의 스타일 저도 어느정도 감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작가님의 글은 이미 충분하게 사색의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아울러 그 여운은 길고 깁니다.
전부가 아닌 일부분 포인트를 청설님이 点解한다하여, 글의 여운이 자취를 감춰버리는게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한층 높은 차원에서 더 깊게 사색하게 만들겁니다.

니카 회원들의 이해력 수준이 일반을 초월한만큼, 청설님이 조금만 点解하면 정말로 눈이 더 즐거워지는 시간이 될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에 대한 청설님의 평론을 읽는 자체가 즐거워서, 유작가님의 이번의 "몽롱글?"에 대한 자체적 해석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청설님, 예전의 스타일 조금만 접으시고 저의 요청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무리한 요구였다면 죄송합니다.
이금화   - 2008/10/21 12:59:53  
이미옥님, "튤립"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튤립"의 의미를 알고 나니까 문장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네요.

이미옥님의 말씀대로 세상에 정답은 없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목에 걸면 목걸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중국의 시험문제에는 판단제가 많습니다.
어릴쩍 부터 이러한 시험문제를 접촉해온 우리한테 굳혀진 습관인거 같습니다.
꼭 옳고 그름을 가리려서 정답을 찾아내려는 그러한 공성.

사람의 삶의 방식도 천차만별이고 사유방식도 천차만별입니다.
꼭 작자의 의도를 알기보다는 작자가 우리앞에 내놓은 문장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도움이 되는 생각과 공명을 가질수 있다면 그러한 작품이야 말로 명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지않을가 싶습니다.

성란   - 2008/10/21 13:20:55  
미쳐요!!!!!!!!!!!!

이게 뭐라는거람.....참........
이대훈   - 2008/10/21 13:44:52  
가장 간결한 언어와 히스토리로 정채롭게 만들어진 소설이었습니다. 의심할바가 없습니다.
이야기속의 어떤 부분은 아마도 허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허구였어도 있을 만한 사건을 상상력으로 꾸며 낸 것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상당하게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소실이고 즐거움의 체험은 삼가하렵니다.
참으로 심원한 의미를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이민자들의 처절한 삶과 이 삶에 대한
이민자들의 반향과 절규에 대하여 우회하는 방법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미옥님과 김경훈님 두분의 댓글에 동의합니다. 특히 이미옥님 대단하십니다.
서울에서 인사드립니다.

정연   - 2008/10/21 21:05:56  
청설작가님은 정말 기발하고 대단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내용들을 떠올리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다만 신기하고 희한한 맘이 되였을 뿐입니다.
저도 이미옥님의 평론글이 넘 맘에 들어요^^
하마트면 작가님을 많이 오해할번했다는 생각.... ㅠㅠ
황성준   - 2008/10/22 02:05:58  
우리 니카에는 너무 훌륭한 분들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정말 난해하고 심오한 소설을 읽을수 있음과 동시에 이것을 터득하고
느낄수 있는 평론글과 댓글들이 퍽 감동적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소설가는 이와같은 심오한 도리를 다 알고 쓰는것 같지않습니다.
왕왕 좋은 작품은 좋은 평론가를 만나 의미가 발국되고 확장되군 하지요.
후에 사람들은 또 그렇게 문학을 배우게 되는것이겠구요...
황성준   - 2008/10/22 02:07:16  
이미옥님께 개인적으로 요청하고 싶군요.
우에 평론글들을 정리하시여
한편의 독립적인 평론으로 다시 올려주실수는 없는지요?
그렇게 기대해도 될가요?
두견화   - 2008/10/22 05:12:04  
어떻게 이렇게 얼굴이 뜨거운 소설도 쓰십니까?
평론하신 분들의 말씀도 잘 리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제 수준이ㅡ 문제겠지요...
두견화   - 2008/10/22 05:12:31  
그래도 유작가님은 언제나 존경합니다. 우리에게는 한분밖에 안계시는 멋진 분이시기때문입니다.
최정학   - 2008/10/22 06:17:08  
늦게왔군요. ㅎㅎ
소설이여서 작가님나름대로 상징적인 수법도 쓰고 묘사도 할수 있는것이겠다는것을 리해합니다.
서울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시는 연구생분의 평론글도 읽으면서 수긍하는면도 있지만~
솔직히 기분이 안좋군요.
이민자들을 비할데가 없어서 하필이면 바퀴벌레라고 하십니까?
이민자들은 미국에만 있는것이 아니고 한국이나 일본에도 모두 있습니다.
최삼룡선생님의 표현을 빈다면 회색군체들이 모두 바퀴벌레란말씀입니까?
유작가님은 그런 뜻에서 비유하신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최정학   - 2008/10/22 06:18:15  
저도 빈술잔님의 요청처럼 유작가님의 해명을 직접 듣고싶습니다.
우리가 바퀴벌레가 맞습니까?
다른데 비길데가 그렇게 없던가요?

??????????????????????????????????
최정학   - 2008/10/22 06:19:22  
오늘은 기분도 드럽고 실망하다가 갑니다...
박준   - 2008/10/22 07:03:52  
저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주제로군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바퀴벌레는 비천한 것인가, 숭고한 것인가 도착(倒錯)인것 같습니다.
사디즘, 마조히즘, 소아성애증, 페티시즘, 관음증, 노출증, 의상도착증, 분변음욕증….
이런 여러가지 유형태의 도착(倒錯)속에서 인간은 때로는 비천하고 때로는 숭고할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 저는 퇴폐성, 악마성, 인간성 상실, 잔인성 등을 특징으로 지어지는 비천한것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바퀴벌레는 창조적이고 숭고함을 보여주기도 하군요.
분명한 것은 도착증이 분명 "인류만의 소행"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감지할 때..
역시 인류만의 것이 되는 "문학"은 충분히 이렇게 쓸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준   - 2008/10/22 07:10:39  
대부분 정신분석학자들이 도착증은 악행을 저지르고
그러는 과정에서 쾌락을 느끼고 스스로 그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들이라고
아주 극단적이며 불공평하게 판단하군 하는데..
이 소설에서 존재하는 바퀴벌레..바퀴벌레가 만들어지고 있는 공간적인 의미의
무진공상태에 처한 주인공(실제로 주인공은 없습니다. 누군지 알수 없어요. 이름도 없고 그도, 나도, 누구도 아니니까...그렇게 교대되여있지 않나요?...)을 통하여
인류가 갖고있는 이런 도착증현상이..이런 현상을 모조리 변태로 일축해버리는
사회적인 강박관념을 허무는 작업을 진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우리 내면의 감춰진 어두운 부분을 산생시키는 사회(이 사회와 직결되여있는 종교)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박준   - 2008/10/22 07:13:44  
바퀴벌레의 의미는 위대합니다.
생명의 장구성과 생명의 연속성입니다.
바퀴벌레의 이야기를 통하여 상징적인 범위를 이민자들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이 소설의 심도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韓一井   - 2008/10/22 09:36:41  
인간은 아무리 성실하고 정직하더라도 허위가 3분정도는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이 3분정도를 꼭 보여줘야만 진실한 것이 아니다.왜냐하면 대중을 상대로하는 정당한 소설은 하지말아야하는 말도 있기때문이다.그런하지 못할 말은 뒤고방에서도 인간은 얼마든지 할수 있다.

이 소설을 쓴 유순호님의 뜻은 물론 분리의 소멸을 어떻게하여 이 소외된 군체를 통하여 극복을 원만하게 해결을 보겠는가를 다루었던 것으로 생각 된다.하기에 소제목이 가을 분만일 것이다.때가되면 소멸을 완성 할수 있기때문이다.왜냐하면 억압된 욕망을 열심히 분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감이 가는 원인은 소제를 잘못잡음에 있다.아무리 바퀴벌레의 특성이 우수하더라도 필경은 염오스런 것이다.이런 염오스러움을 변태적인 성욕과 관련지어 정당성을 찾는다면 무리이다. 왜냐하면 변태적인 성욕은 병이기때문이다.병인데도 그것이 정상이라고 하는 자체가 문제 된다.

그리고 변태적인 성욕가운데 동성연애를 넣을수도 있는데 본인은 틀린것으로 생각된다.왜냐하면 인간이 태여날 때 량성으로 태여날 기회가 있기때문이다.또한 이성으로의 전환의 계기로 태생적인 생리를 갖고 태여나기도하기 때문이다.

인도적인 각도로 놓고볼 때 이런 인간들의 행위를 저지 할 명분이서지 않는다.하기에 서방에서는 동성연애를 긍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그렇다고하여 본인은 이런 주장을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이따위의 것은 뒤고방에서나 찧고빻고해야 할것 들로 생각한다.

지금껏 부정을 펼쳤다.하지만 작자의 적극적인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고 픈 생각은 없다.단 소재를 부정함에 따라 작자의 의도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되여 그런것 뿐이지 다른 것은 없음을 밝히고 싶다.
리처드   - 2008/10/22 11:02:49  
슬픈 하루입니다.
죄악을 설교하시는 유순호작가님.
할말을 잃고 갑니다.
유순호작가님은 본인이 무슨 설교를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유순호작가님을 미워하지않습니다.
혈맥   - 2008/10/22 13:25:30  
글을 읽으면서 떠올린사람 하나----피카소!
글을 추상적으로 썻군요...
저도 추상적으로 읽고 갑니다.
----매일 열심히 딸딸이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박철수   - 2008/10/22 13:57:27  
문학을 잘 모르다보니 이렇게 심오한 소설을 놓고 왈가불가 말을 못하겠군요.
제가 받은 인상은 한마디로 조선족작가들은 아무도 쓸수없는것을 썼다는것입니다.
아마 한국이나 북조선을 모두 포함하여도 이런 소설을 써낼수 있는 작가님들이 과연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싶습니다.
서울대연구생님의 분석글이 설복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철수   - 2008/10/22 13:59:48  
우에 리처드님께도 한마디 하고싶습니다.
제가 관찰한바에 의하면 목사님이신것 같은데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죄악을 설교하는것입니까?
죄악을 이야기하면 종교계야말로 제일 자유롭지 못합니다.
죄악을 설교하는것이 아니라 죄악을 말하고 있는것이 아닙니까?
무엇때문에 외면하십니까?
죄악을 정면시하고 죄악에 대하여 말하는것은 좋다고 봅니다.
우리들도 목사님을 미워하지않습니다.
띰띰   - 2008/10/22 19:29:05  
순호옷빠!!! 홧팅^^!!!
SK 투어   - 2008/10/22 20:05:04  
우에 박준님의 댓글까지 읽고나서 유작가의 이 소설은 파고들면 더 깊은 의미를 찾아낼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단지 이민자의 삶에 대한 반항이나 절규같은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더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것 같습니다. 정말 궁금하군요.
姜美蘭   - 2008/10/23 04:09:02  
늦어도 한참 늦었습니다.
소설은 이틀전에 이미 읽었고 뭐를 썼는지 잘 알수 없었다가
오늘 많은 분들의 평론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의미를 김경훈교수님의 해석 딱 거기까지면 좋을것 같다고 봐요...
박준선생님의 말씀처럼 더 확대하는것은 침소봉대하는것이 아닐가는 우려 ^^
姜美蘭   - 2008/10/23 04:12:04  
튤립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어보고 싶네요..
저는 이미옥님께서 튤립에 대하여 해석해주신 설명대로
모종의 동양적 이미지를 떠올리기위함은 아니고..
분명하게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姜美蘭   - 2008/10/23 04:17:34  
이 소설에서는 분명하게 주인공이 미국에 방금왔을때..
무슨 식물원 튤립축제에 가서 우연하게 튤립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이전에는 튤립은 빨간색만 있는줄 알았다고 고백했었구요..
붉은 튤립의 꽃말은 사랑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사랑도 동양적인 사랑과는 다른 사랑..
아마도 사랑의 의미겠지요..

<< 다양한 무늬와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색깔에 화려함까지 지니고 있는 성당의 푸른창가에서...>>
<<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러한 화려함속에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동양적인 이미지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한 아메리카의 세련된 화사함>>라고 하였습니다.

姜美蘭   - 2008/10/23 04:20:35  
즉 서방은 동방을 알고있는데 동방은 서방을 잘 모른다...
서방의 화려함속에는 이미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동양적인 이미지까지 함께 포함되여
세련되여있다는 뜻...
동방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지역 나라 가리지 않고 모두 뉴욕에 와서
살고있지요. 이들이 가지고온 자기민족의 성풍속들도 모두 아메리카에 용해되여
꼭 우리가 모르게 다른 식으로 변해버렸을지도 모르지 않을가요..
姜美蘭   - 2008/10/23 04:25:10  
일전에 유작가님의 소설 <빵순이는 즐겁단다>를 읽으면서 기억해두었던 구절이 하나 떠오릅니다.'
여자들이 꽃미남들에게 주려있을 때 꽃미남들도 마찬가지도...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 주려있으며
이들이 서로 소통할수 없는것은 혹시 언어 아니면 민족적인 풍습과 서로 다른 관습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리하여 뉴욕이라는 세계도시는 남녀 이성문제에서 가장 자유로울것같으면서도
소통이 쉽지않은 원인으로 가장 자유롭지못하며 대부분 사람들이 성의 기갈속에서 살아간다는 뜻...
그러한 성의 기갈이 빚어내고 있는 자위행위가 제일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것이 아닐가요..
그리고 종교는 바로 이런 삶속으로 침투하고 있는것이라고 봐야겠죠..
姜美蘭   - 2008/10/23 04:27:07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주저없이 적었네요~
그냥 제 개인 생각이구요..옳지않은 점이 많을거라고 믿어요.
더 좋은 판단을 기대합니다.
김경훈교수님과 이미옥님께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저의 생각이 틀렸다면 기탄없는 지적 바랄께요..
리순녀   - 2008/10/23 07:06:00  
정말 너무 실망스럽습니다.이런 소설을 도저히 리해할수가 없네요.존경하던 마음이 다 사라집니다...그럼 오늘은 이만할께요. 너무 죄송합니다...
주정규   - 2008/10/23 13:33:02  
순호동생 기적일세..
동생의 소설을 읽고 오늘 많이 놀라네.
마침내 동생의 소설이 이 경지에까지 왔네..
이런 경지는 아무내 흉내낼수 없는것이라고 굳게 믿네
작년에 소호에서 설치작가 임충섭화백님의 슈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벽에 붙여놓은 어마어마하게 큰 로찌를 보았던 기억이 금방 떠올랐네...
그게 카크로치였구만...그게 그렇게 벌써 다 됐나..
오늘은 이만하고 물러가겠네. 또 봅세.
주정규   - 2008/10/23 13:33:29  
하여턴 축하하네..
리처드   - 2008/10/24 07:09:12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생각이 신실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삶이 지옥으로 굴러떨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신앙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사탄이 들어옵니다.
가을   - 2008/10/25 08:28:43  
저는 이 소설 충분히 리해할수 있어요...ㅋㅎ
오빠 쨔유!
이수산   - 2008/10/25 12:57:09  
유순호선생의 뜻 깊은 소설과 이미옥의 평론문도 잘 읽고 갑니다.다채로운 이 문학의 세계는 아름답기만 합니다.세계문호들의 작품을 습득하면서 이를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는 방향은 정확한 선택일것입니다.
미국엔 한번 가보았지만 궁금한것많아 다음엔 미국의 명작이거나 교육 문화 선거 가치관 생활 창의성 그리고 재미동포들의 작가 시인 문화 기업인 코리아타운의 생활을 소개하고 가장 익숙한 소재를 살려 창작해낸 철학과 작품은 가장 소중할것입니다.
재발굴 재조명 재창조 자주창신은 누구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것입다.
10,25
이수산   - 2008/10/25 12:59:26  
미국국민의 다양성과 특성화 창의성 교육과 문화를 더 많이 알고싶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10,25
예나   - 2008/10/25 13:41:35  
삼촌 미쳤어!!!! 이게 무슨 소설이야...ㅠㅠㅠㅠ
韓一井   - 2008/10/25 18:07:12  
소설스토리에 적힌 내용과 그 깊이와의 관계


문학비평은 긍정만 할 것이 아니라 부정도 있어야 정상이다.아무리 잘된 작품이라도 완미할 순 없다.세상에 완미한 창조가 있을 수 없듯이 말이다.주어진 조건이 없다면 그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있을 수 없지만 또한 그 조건에 근거한 인식 역시 적당한 곳에서 뭠추야 한다.자칫하면 곡해 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아래에 <바퀴벌레의 이야기>의 전반 스토리로부터 내용의 실질을 파보자.

벽에 붙혀놓은 바퀴벌레가 점점 모습으로 드러낸다.그러니 아마 무엇으론가 바퀴벌레를 만드는중이라 하겠다.이어 사건의 발생지인 맨하탄이란 환경이 교대되고 이민자로서 바퀴벌레를 만드는데 머리와 어깨부분에 뼈대만 붙이는데 꼬박 3년째라고 한다.왜서 3년세월이나 이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실지로 이런 작업을 하며 이민자로서 살아갈 수가 있는가?물론 불가능하다.또한 그럴 수 없다.그러하니 바퀴벌레를 만드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다.무엇을 만드는가?

주인공은 창문을 향해 어렴풋한 바다를 바라보다 성적충동을 일으킨다.그러면서도 <아,미쳐>하고 외마디 소리를 찌르는데 아마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것이다.그러면서도 신부가 허리와 엉덩이쪽을 슬슬어루만지던 기억이 난다.잇달아 튤립도 떠 올린다.왜서?성욕을 떠올리는 신부이기에서 이다.그러면서도 빨간색뿐이 아닌 수많은 색갈로 된 게다가 동양미까지 지닌 아메리카의 세련된 화사함에 취한다.결코 단조로움만이 아닌 복잡함의 세상인 아메리카를 암시한다.

사춘기 여자의 여리면서도 탄탄한 살결을 방불켜하는 신부 역시 단조로운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이다.량성적 태생인 듯하다.이런 복잡함이 아찔할 정도로 바지옆구리로 손을 밀어 넣을 때 단조로운 동양적인 튤립을 떠 오린다.동서방의 그 어떤 당하기 어려운 관념의 충돌을 전한다.다시말하여 성에 대한 동서방의 부동한 시각이다.

부지런히 바퀴벌레재료를 줏어오면서도 때때로 툴립을 보며 눈앞이 아찔해 날 지경으로 몸살을 떨었던 순간이 생각 키운다.동서방의 관념충돌이 너무나 강했던 것이기에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다.

바퀴벌레의 골조를 마치고 살붙이기를 시작하자 큰 골조보다 자그마한 조각무늬에 더 신경이 갔다.관념상에서 큰것들엔 적응이 되나 작은 관념들에 더 신경이 간다는 뜻이다.그러는 중에 느닷없이 달려드는 성욕으로하여 의지적이 아닌 생리적인 곤경에 빠진다.

결국 그날 저녁 성욕을 참지 못하여 자위로 넘어간다.그런데 머리와 등허리만 벽에 붙혀있는 바퀴벌레는 마일드모카를 뒤집어쓴 듯 내려다 본다.다시말해 스스로의 그 어떤 관념을 상징하는 바퀴벌레가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이다.죄의식일 것이다.

마침내 신부를 찾아가 말도 않되는 이야기를 꾸며내며 바퀴벌레와 성교를 했다고 죄의식의 해소와 성욕해소후의 허탈감을 위안 받으려 한다.그럼 왜서 성욕대상이 다른것이 아니고 바퀴벌레라야하는가? 본래 바퀴벌레는 그의 그 어떤 정신적인 것인데 이쯤 와서는 그 정신적인 것이 많은 모순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한 사상을 받을 만한 준비가 돼 있는 신부였지만 바퀴벌레와의 성교는 믿지 않는다.그러면서도 몇번 그런짓을 하였는가고 묻는다.생각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처음이 3년전인 것 같다고 하니 이민 온 그해부터 이런 욕망이 있음을 말한다.말하자면 그의 정신적인 것이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로하여 번뇌하면서도 아니라고 한다.왜냐하면 성욕이 주되는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부끄럽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신부는 하루하루 커가는 바퀴벌레가 얼마나 큰것이지 헤아릴 수 없다.다시말해 신부는 비록 복잡한 관념을 갖고 있지만 그 어떤 관념인 바퀴벌레의 크기만은 알지 못한다.그래서 그 관념이 거짓으로 받아들이지만 또한 그 관념이 진실이기를 바라며 고백성사를 진행한다.

바퀴벌레는 순수한 동물이 아니기에 반인류적이 아니기에 성모가 너그럽게 용서해 줄 것이라고 한다.다시말해 바퀴벌레와의 성교를 용서한다.하지만 비퀴벌레를 쓸어버리라고 한다.즉 불안정한 그 모순을 없애라고 한다.

신부는 다음 주일날에 고백성사를 하러 온 부자집 아내에게도 똑같은 기도를 한다.수간은 혼외정사나 근친상간처럼 무거운 죄의 하나이지만 왠지 덜 무거울 것으로 보기에서 이다.왜냐하면 자신의 행위가 죄악의 생명을 만들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신부의 이런 국한성으로하여 어떤 이민자의 셋방 벽에서 하루 하루 무섭게 커가는 바퀴벌레가 있음을 알수 없는 것이다.

살붙이기 즉 잔잔한 작은 관념의 변화가 점점 풍만해간다.올 가을에는 그 어떤 관념을 표현하는 바퀴벌레는 살아 움직일 것이다.다시말해 가을에는 그 어떤 관념이 완정한 사상으로 분만 할 것을 꿈구며 열심히 바퀴벌레와의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즉 경계의 소멸을 꿈꾸는 중의 모순을 해결함에 진력을 다한다.

이상으로 소설스토리에 적힌 내용에 더 넣치도 않고 더 빼려고도 하지 않고 원문 스토리를 따라가면 세세한 분석을 진행했다.

알수 있는바 작자의 의도는 선명하다.동서방의 관념갈등에서 신부의 관념보다 더 풍부한 관념을 분만하려는 것이다.소제목에서 밝히다 싶이 경계의 소멸을 꿈꾸어도 더 풍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한마디로 동서방 관념충돌에서 곤혹도하고 곤혹중에 좌절도 하지만 신심을 갖고 앞으로 달리려는 정신을 바퀴벌레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단 수간같은 소재선택에 반감을 일으킴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준   - 2008/10/25 21:11:14  
韓一井선생님의 평론글을 읽으니 떠오르는 경구가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박준   - 2008/10/25 21:14:23  
바퀴벌레를 관념상의 충돌자체로 보는것과 이민자의 삶으로 상정하는것..
좋은 평론입니다.
두분의 평론을 대조하면서 만리장성과 피라미트를 생각했습니다.
중국인과 이집트인 만들어내었던 건축예술이 아닙니까.
이들은 각기 다른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중국인은 만리장성을 이집트인은 피라미드를 로마인은 도로를 건설했지요..
대단하십니다..
이금화   - 2008/10/26 01:37:15  
韓一井님의 "소설스토리에 적힌 내용과 그 깊이와의 관계"가 유작가님의 소설에 또 다른 내용과 사상을 부여 한거 같습니다.
우에 분들이 댓글에서 말씀하셨듯이 이미옥님과 韓一井님의 평론은 독자들이 유작가님의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거 같습니다.
이 두분의 평론외에도 다른 분들의 평론도 기대가 가네요.

네잎클로버   - 2008/10/26 06:51:29  
전 정말 읽기 힘들었어요^^ ㅜㅜㅜ
리혜선   - 2008/10/26 07:07:34  
오랫만에 아주 좋은 소설 읽었습니다.
韓一井님께도 추천드립니다.
1004_love   - 2008/10/26 12:49:37  
아저씨 글 인기 짱이네요~ㅎㅎ

언제나 아저씨 글 읽으면
한번 읽으면 아리송해서
다시 읽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로양젤리   - 2008/10/27 02:48:24  
나는 문학은 문외한이지만 (그냥 읽어 터득하는 정도)
유순호선생님의 바퀴벌레를 읽는 순간 감동은 고사하고
전율이 오드만요~
아직 무슨 작품인지 판단이 서지앖습니다.
리처드   - 2008/10/27 02:50:27  
이런 추잡한 글은 이제 다시 입에 담을 가치 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수희   - 2008/10/27 18:28:02  
"바퀴벌레의 이야기", 문학적인 평론은 이미 이미옥님과 한일정님, 등 분들이 잘 평하였기때문에
이해에 크게 힘들 필요가 없어진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학의 진정한 경지, 그것이 말하자고 하는
진정한 의미, 지극히도 충격을 주는 글이였습니다.

문제는 아직 이글을 접수함에 있어서 조선족문학권내의 용해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를 주목하고 향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무엇이든지 거부부터 앞서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까진" 글이더라도 읽고서 그 진실된 감정을 감히 표출을 못하고 억제당한다는 느낌..

무엇이 장벽이며 왜서 스나오(素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건가?
단지 문화의 차이가 아닌 "장애물"이 있는것으로 느껴집니다. 똑같은 문자로 된 우리글 표현임에도
하물며 인간의 똑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과 공통속성이 내비치는 글임이 확연하고 절절한데도...
우리민족이 하루속히 진부에서 벗어나서 깨여진 "문명"을 창조해나갔음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주홍매   - 2008/10/29 00:20:30  
충격적인 소설을 잘 읽고 갑니다.
감상이 너무 커요~
백두호   - 2008/10/29 04:09:25  
문학이라는게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문학이라는 감투만 달면 이렇게 무엇이나 다 쓸수 있구나...
그러나 누구나 다 쓸 수 있는것은 아니고 반드시 용기가 없으면 안될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韓一井선생의 평론이 마음에 든다.
홍윤기   - 2008/10/29 05:50:14  
아주 정채로운 한편의 소설이라는데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건전한 일반인의 성관념을 해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의 수음행위에 대한 정신분석을 진행한 점이 상당히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허구와 개연성의 세계를 뛰어난 기교로 함축하여 진지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에서 많이 앞서간 소설이라는 점에서 추천드립니다.
백두호   - 2008/11/01 20:33:30  
다시 읽어보고 갑니다. 어쨌던 독특한 소설입니다. 이런 소설은 처음 읽어봅니다.
솔잎   - 2008/11/01 22:31:31  
감자를 그대로 먹으라면 짐승이 아니고서야 먹을손가 묻은 흙을 씻어버리고 껍질 벗기고 채를 치던 토막을 내던 볶던 끓이던 나름대로이다 ... 글이 누런담장을 흘낀 눈빛이였던 삶의 껍데기에 그린 그림이였던 관계치 않는다 형식이 새롭고 파격적이라서 구미가 댓동이다 이제 푸주간에 가마 몇개를 더 얹어놔야긋는디...
joy   - 2008/11/03 01:55:24  
이미옥님 평론 먼저 읽고... ㅋㅋ 소설 지금 읽어요 ^^

소설에 대해서는 할말없어요 ㅋㅋ

진짜 ㅜㅜ
종소리   - 2008/11/16 00:14:05  
위대한 작가님이시지만 정신과 상담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죄송 ㅋㅋ
lili   - 2008/12/04 14:44:59  
보통인으로써 문학적 각도로 보다 한명의 보통 독자로써 받은 개인적 충격을 느낌그대로 적고 싶다.

한다디로 읽는 내내 갑갑하고 안타까움이 동반되엿다.그것은 글속에서 흐르는 현대인들의 정신적 압력이 느껴왔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선 나 개인적 이해로 볼때 성욕이란 사랑이 배경으로 되여 튤립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게 피여나는것이기때문이다. 그외에 성욕이 있을수 있다면, 정신적으로 분석할때 생활이 너무 무미건조하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을때, 원시적인 성욕-즉 인간의 가장원시적인 성적인 자극을 통하여 내심 깊으곳으로부터 꼼지락거리고 있는 자아존재를 확인하고 싶을때일것이다.

하다면 글에서 나오는 바퀴벌레, 이는 사회생활에서 대중으로 볼때 아무런 존재의 가치가 없는, 누구나 짓밟을수 없는 비천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비록 바퀴벌레 자신본인으로 볼때는 역시 한생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존재이지만, 사회는 결코 그걸 승인해주지 않는다.

신부의 <당신은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써 스스로 신의 민족을 욕되게 했습니다. 당신은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죄를 지을번했으나 코크로치는 순수한 동물이 아닙니다. 용서받을수 있을 것입니다. >에서 바퀴벌레립장에서 볼때 심한 모독이겠건만 비천한 신분의 자존심이란 소위 신성한 사람에 의해 무시된다. 하기에 비천한 인간이 또다시 자신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병태적 사회, 이는 현시대 경쟁적 압력으로 오는 사회의 비극이다.

이러한 면은 한 부인이 신부에게 한 고백에서도 보여준다.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친구-강아지에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려 보는 자사자리한 변태적 욕망, 역시 사회에서 오는 정신적 압력을 못이겨 범죄인줄을 알면서도 신부에게 적당한 이유(혹은 변명)라도 찾아보려 몸부림치는 모습...

또 그리고 튤립과도 같이 신성하고 깨끗한 교회란 껍질속의 신부의 인간적인 앙큼한 속심. 신부로써 의무감으로써 모든걸 올바르게 이끌고 성결함을 지켜나야하겠으나 필경은 인간이기에 역시 나름대로의 꺼버릴수 없는 욕망에 자신을 자제하기 힘겨워 하는 모습이다.

나는 점점 살기 힘겨워 지는 사회현실에 대한 작가의 갑갑한 마음과 그러한 동료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지켜보는 작가의 안타까운 마음 토로라고 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해연   - 2009/01/01 09:22:40  
예전의 글에비해서 편폭은 짧지만 글이 생동하구 사람맘끌어 당기네요^^
좋은글잘읽고갑니다
새해엔 더좋은글 많이부탁합니다
shanghaitan   - 2009/04/08 20:58:19  
정말 대단한 소설입니다.
露露   - 2009/08/17 21:17:34  
안녕하세요 유순호 작가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는지요...
소설은 일단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의 이작품은 재밌기는 합니다만 예술적이지 못해요
아주 훌륭한 소재를 다뤘는데 왠지 추잡스럽게 느껴집니다
로맹가리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읽어보셨는지요
작가님이 필력은 대단합니다만 깊이가 없어요 그리고 예술적이지 못해요
그러나 <블랑카와 이자벨>은 아주 잘 쓴 소설인거 같습니다 인상깊습니다
소설을 예술화 시키세요
그리고 성교묘사를 할때 직설적인 표현은 삼가하세요 아주 추잡스럽게 느껴져요 ....
그런 부분은 독자들의 상상력에 맞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소설가로 성공하십시요



지나가다가   - 2010/04/19 10:30:18  
곤충삼부곡이라.... ㅋ 바퀴벌레, 벌, 쥐............

여기에 간첩이 섞였다. 쥐는 곤충이 아니라 동물이 아닌가?
지나가다가   - 2010/04/19 10:31:11  
어쨌던 대단한 소설들이다.
오랜 시간뒤에 내놓아도 퇴색할것 같지않은 명작이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명작은 시간과 시대의 고험을 겪어 이겨내는 법이니까...
김선   - 2010/04/19 16:38:07  
멋진 디자인^^ !!!

바퀴벌레라면 비명 지르고 소름 돋는데...

이 디자인에 바퀴벌레는 그렇게 징그럽지가 않네요..
ㅋㅋ

예술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멋진 디자인 추천드려요~

해바라기님 수고많네요 ~

이미옥   - 2010/04/20 07:58:31  
1. 바퀴 벌레로 상정된 이민자의 삶

가장 어두운데 있지만 오히려 그 어떤 생물보다 왕성한 생명력을 꿈꾸는 바퀴벌레는 그 남자가 꿈꾸는 욕망의 대상이자 그 남자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바퀴벌레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남자의 자의식을 대변한다. 첫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쓸어 버려야 할”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누구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한 이민자의 쓸쓸하고도 소외된 삶과 상통한다.

둘째는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생명을 갈구하고 번식해 나가는 왕성한 생산성은 그 남자가 꿈꾸는 바이며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아무런 빽도 권력도 재산도 없는 이방인이 마스터베이션 대상으로 바퀴벌레를 생각해 낸 것은 그만큼 바퀴벌레의 “강한 생존력”과 “다산성”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무엇보다 정착하기를 원하고 성공하여 자신의 자손이 바퀴벌레처럼 미국이라는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강하게 욕망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맨하탄 부자들이 쓰다가 버린 테이블이나 의자다리를 주어다가 바퀴벌레를 조금씩 살찌우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현실화하고 구체화시킨다. 그러나 그 과정은 길고도 지루한 것이고 남자의 욕망은 사실상 끊임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자는 “자위”를 통해 스스로를 “견디어”내고 홀로서기를 멈추지 않으며 바퀴벌레 만들기도 멈추지 않는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민자의 삶일수록 억압되어 있는 욕망은 더욱 크며, 욕망의 대상이 부재할수록 그 대상에 대한 집착과 환상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이 날로 비대해져가는 바퀴벌레는 그 남자, 즉 이민자의 욕망의 크기를 대변하는 한편 이는 곧 남자의 억압된 욕구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옥   - 2010/04/20 07:58:53  

2. 죄와 종교, 그리고 경계에 선 신부

“당신은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죄를 지을 번했으나 카크로찌는 순수한 동물이 아닙니다. 용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유일하게 인간의 죄를 심판도 하고 동시에 용서도 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경계가 허물어진 영역이다. 인간들은 처음에는 “절대적 구원”의 길로써 종교를 선택했으나 사회의 비대한 발전과 더불어 종교 또한 “경계”를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발전하여 여러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경계자”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죄를 잠식시켜 사회의 불화를 최대한 축소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현대에서의 죄는 무엇보다 “능력 없고 가난함”이며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죄”는 설마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더라도 가볍게 포장하고 묻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순수한 동물이 아니라서 용서받을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순수한 동물, 또는 인간과 성교했다면 그 죄는 용서하기 힘든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그 죄가 용서하기 힘든 이유가 되는 것은 무릇 무분별한 성교를 통해 생명이 창조된다는 것, 무엇보다 그렇게 계획 없이 태어난 생명을 양육하고 교육할 만한 여건과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그건 죄가 되는 것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동물이든 사람이든 음란한 행동자체는 죄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신부는 엉뚱하게도 “순수하지 않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그 죄는 용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현대적”인 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고 있는 신부 또한 경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부 또한 은밀한 성적 욕망을 갖고 있고 그건 바로 “남자를 만지기를 즐겨하는” 것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신부는 적어도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순수함의 상징인 신부한테 이성과의 섹스는 금기이자 “파멸”과도 같은 것이고, 그런 면에서 신부의 정신적 “성기”는 거세당한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세당했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까지는 거세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신부 또한 그 사이에서 처해 있는, 해결하지 못한 자신의 성적인 문제를 은밀히 감추고 엉뚱한 곳에 배출하고 전환한다. 표면적으로는 “죄”를 짓지 않은 영역에 그러나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소위 “변태”적인 모습으로 표출되는데 그것이 강제였던 선택이었던 이는 경계자들의 공통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미옥   - 2010/04/20 07:59:11  

3. 욕망의 억압 및 해소와 화합

글 속의 세 주인공들은 모두 섹스 할 상대를 가지지 못했다는 면에서 모두 “거세”당했다(혹은 그 상태를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음)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해소”와 “구원”의 길을 도모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바퀴벌레와 애완견과의 상상적 결합을 통해 그리고 그 “죄”를 “심판”해야 하는 신부는 “남자 만지기를 즐겨”하는 것으로 일차적인 해소가 된다. 그러나 이는 뭔가 미진한 감이 있다.

그들의 진정한 욕망의 해소는 죄의 “고백”과 “용서”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며 이 같은 관계는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성교”와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신부를 은밀히 찾아가서 자신의 “죄”를 확장해서 고백을 하고 꾸며 내는데 그들의 진정한 욕망의 해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신부한테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삽입하는 남자의 성기로 대변한다면, 어리고 예쁜 남자신부는 이들의 욕망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여자의 “질”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역할에 있어서는 “발산”과 “수용”이라는 면에서 조금 다르지만 사실 욕망의 근원에 있어서는 그 본질이 같은 것이고 어찌 보면 공생관계에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경계자들끼리의 화합이 이루어 진 것이고 그들의 욕망이 해소된 지점이다.

그들은 모두 금기시하는 “죄”라는 것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시인하고 피해가려고 한다. 그들은 결국 죄를 짓지 못하는 자들이고 죄를 짓지 않은 자들이요, 다만 억압되고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미옥   - 2010/04/20 07:59:30  

4. 현대인과 디아스포라的 삶

남자의 욕망이 “정액의 흩뿌림”에 있다면, 여자의 욕망은 “사랑 받음”에 있다. 이민자와는 달리 이미 정착하고 뿌리 내린 미국여자에게 있어서도 “외롭다.”는 욕망은 그 남자 만큼이나 강한 것이다. 마스터베이션 상대로 주인을 잘 믿고 따르는 애완견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현대문명의 상징이 된 미국사회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에 있어서는 과연 인간을 충족시키고 있나 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인간은 그 본질이 욕망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그 욕망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욕구를 부추기는 “물질적 삶”은 그만큼 인간의 정신을 왜소하게 만들고 더 큰 결핍을 불러온다. 인간의 욕구를 부추기는 대상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강도도 높아지지만 그러한 “자극”에 노출된 개인의 힘은 거대한 사회구조에 밀려 더 미약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욕구불만”의 문제는 그나마 가장 크고 해결하기 쉬운 성적문제로 귀결되므로 어둠속에서의 은밀한 “자위”나 변태적인 성행위의 충동은 결국 그 모든 것을 해소하려고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와 이런 신부는 곧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의 욕망은 수많은 제도 속에서, 사회적 틀 속에서, 타인의 시선가운데도 억압하고 억압되어 왔다.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더 거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억압하지 않으면 사회가 존속되어 갈 수도 없고 인간도 그 사실을 잘 안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인 성욕은 억압되는 대신,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또한 욕구를 지연시키고 확장시킨다. 법정스님은 “비우라.”고 말했지만 그것 또한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 경지에 대한 욕심이니, 사실 욕구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 하다. 대신 우리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들을 수도 있고 맞장구를 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남자가 꿈꾸는 바퀴벌레의 우리 안에도 한 마리씩, 아니 몇 백 마리씩 들어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 바퀴벌레가 정말 성교할 수 있는 거대한 바퀴벌레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문득 아름다운 신부에게 찾아가서 “고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내적인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미옥   - 2010/04/20 07:59:45  
5. 나오며: 경계의 ‘소멸’을 꿈꾸는 작가의 시선

이 글의 시점은 전지적시점이다. 주네트는 초점화의 유형을 무초점화, 내적 초점화, 외적 초점화로 나누고 있는데 전지점시점은 무초점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무릇 소설 속 주인공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그 남자로 초점화 되기도 하고 신부로 초점화 되기도 하고 또 그들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으로 초점화 되기도 한다. 이는 “경계”를 초월하려는 작가의식이 형식에까지 면밀히 영향주고 있음이 드러난다.

동양과 서양, 추함의 상징인 바퀴 벌레와 아름다움의 상징인 튤립, 이민자와 정착자, 죄와 무죄, 여성과 남성 그리고 동성애와 이성애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은 존재와 함께 경계를 가진다. 경계 안에서 주류적인 힘들에 의해 보호받는 자들이 있는 반면에, 경계 밖에서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맨 몸에 “욕망” 하나로 살아내야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생존권은 가장 바닥에 있으며 그들의 삶은 종종 소외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경계 밖에서도, 안에서도 역사는 만들어진다.

경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경계밖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나 경계 밖의 자들은 끊임없이 내부를 지향하고 욕망하므로 그들의 시선은 늘 방향성을 갖고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더욱 유연하고 변화 가능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들이야 말로 경계를 뛰어넘을 준비가 된 자이고 뛰어넘을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의 삶 또한 국경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화의 흐름으로 인해 오늘은 누구나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과 소수자로서의 지위를 경험하게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근대에는 침략이나 강제로 인해 공동체 집단에로부터의 이탈이 이루어졌다면 탈근대에는 국가 경계간의 끊임없는 “허물어짐”과 경제적 물결로 인해 자발적 의지나 사회적 상황에 의해 스스로 이탈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잠정적 소수자이자 이방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제시한 “자유로운 시선”이야 말로 진정한 경계의 허물어짐이 아닐까 싶다.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나 일 수 있는 발상은 내적인 경계를 초월하여, 외적인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을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현영   - 2010/04/20 10:10:39  
아저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소설두 멋지구 디자안 진짜 멋져!!!!

ㅋㅋ

근데 넘 야한거 있지...
許東煥   - 2010/04/20 14:07:31  
경계의 소멸! 우리 시대 선행자들의 사상과 수준을 보여주는 작가적 시각이 너무 경이롭습니다.
박성옥   - 2010/04/26 00:47:24  
유선생님 곤충삼부곡 다시 읽고 갑니다.
다른 분들의 리플도 읽으면서 정말 재밌다는 생각을 다시 또 하네요 ㅋ
언제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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