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kca

  세계조선족 문학작품정선
  니카 詩壇
  청설의 문학세계

  - 장편소설
  - 중단편소설
  - 수필•시•사론
  - 작가소개/사진보기
  - 자료실
  역사와 비평
  공지사항
  니카방명록
  니카동영상

  [김일성 평전 발췌] 항일연...[7]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힐 새...[6]
  [한국일보] 뉴욕 한인 작...[3]
  인생은 아름다워라[58]

  김재범의 귀순 전후과정-김일...[2]
  알고 싶습니다..[1]
  [실시간-뉴욕속보] 뉴욕 조...[2]
  "디아스포라문학 공동발전 기...[17]
  7월12일주일예배설교"다림줄...

  [이미옥 문학평론] 봉녀를 ...[114]
  서국화 수필 [아줌마는 즐거...[43]
  [채철호 생각하는 삶][8]
  아빠같은 남자, 오빠같은 남...[80]
  [최삼룡 문학평론][14]

  [글 쓴이: 송순희, 일본 교...[62]
  아날로그 엄마 VS 디지털 ...[40]
  성 숙[9]
  [이랑전]제36화 그림자의 ...

  노신, 친일 문인일 가능성 ...[61]
  [삶의향기편]-11[13]
  "유럽의 신세계적 건축미 연...[21]
  남설화 - 나 설화거든[72]
  [글 쓴이: 안향자, 중국 북...[31]

Home > 청설의 문학세계 > 중단편소설


 
봉녀
피안   Hit : 23425 , Vote : 421        [2008/11/17]




  [글 쓴이: 유순호, 뉴욕조선족통신 대표, 재미 조선인 작가]


   "참 이상하네..."
   나는 헐떡거리고 봉녀의 뒤에 따라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중얼거렸다.
   "뭐가?"
   하고 봉녀가 나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벌통은 내가 졌는데, 벌들은 왜 내내 누나 주변에서만 맴도는지 모르겠단말이예요?"
   나의 불평비슷한 대답을 들은 봉녀는 방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머리에 쓰고있었던 초모자 채양을 살짝 머리 위로 밀어놓고 얼굴에 두르고있었던 분홍생 수건을 입아래로 내리웠다.
   "누나가 왜 이런 수건을 얼굴과 목에 두르고 다니는지 모르겠니?"
   "모르겠는데요."
   내가 머리를 흔들자 봉녀는 여느때없이 맑아진 얼굴을 들고 한참 나를 돌아보았다.
   봉녀의 설명대로라면 벌들은 꽃밭에서 꿀을 채집할 때의 꽃과 비슷한 색깔의 수건을 쓰고 걷는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벌들이 온 산에 돌아다니면서 꿀을 채집하는데 꽃이 어디 한 가지 색깔뿐이나요?”
   내가 꼬치꼬치 질문을 들이대지만 봉녀는 한번도 짜증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누나는 가끔씩 여러가지 색갈의 수건을 바꿔 쓰곤 하잖아.”

   봉녀가 이렇게 대답할 때, 그녀는 앞으로 한달동안 자기와 산 속에서 함께 보내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마음속에 떠올리고있었다.

   어차피 이 산속에서 함께 보내다보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리라는 생각에 그녀는, 나중에 가서 갑자기 놀라고 얼떨떨해지기 보다는 지금 점차적으로 이해하여 나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의심벽(疑心癖)이 있는 내가 하도 쉴새없이 이것저것 캐고 물어서 숨길 수가 없었던지 하나, 둘씩 슬슬 털어놓기 시작했다.

    “누나가 평소에 이렇게 많은 벌들을 주변에 데리고 다닐 때 누나가 이들 벌들의 여왕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 없니?"
    "글쎄. 웬지 너무 대단해보인단말이예요."
    "잘 들어둬. 그리구 비밀지켜야 해."
    "네?"
    "이건 너한테만 알려주는 비밀이란다."
    봉녀는 이 깊은 산속에서 아무도 엿듣는 사람들이 없는데도 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누나는 여왕이 되기 위하여 나 자신만의 냄새를 벌들이 자고 먹고 하는 벌집에 몰래 뿌려둔단다.”
    “냄새라니요?"
   나는 몹시 놀랐다.
    "냄새가 물도 아니고 무슨 가루도 아닌데 어떻게 뿌리나요?”
    “동생아, 그렇다면 그냥 그런 줄 알렴.”
    봉녀는 끝없이 캐고 드는 것이 때로는 귀찮아질 때도 있었다.
    “숨쉴 때 말할 때 김이 새어 나오지 않느냐.”
    나는 유독 그 말을 명심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에 나도 봉녀에게서 배운 방법대로 벌통에 머리를 들이 밀고 콧김 입김을 내뿜다가 수십 마리의 벌들에게 콧등을 물렸다. 그것을 보고 봉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밤부터 동통이 일기 시작하면서 콧등이 발포되고 며칠 지나니 얼굴까지 붓기 시작하자 봉녀는 큰일 났다면서 평소에 응급용으로 채집해 두었던 봉독을 꺼내어 나의 온 얼굴에 발라 주었지만 별로 효과가 없자 급해 맞았다.

    “혹시 말벌에게 쐬었나? 우리 벌집 통에 말벌이 있을 리 있나.”

    너무 통증이 심해 산막에 드러누워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덮어 놓고 끙끙 앓음 소리를 내면서 엄살을 부리니 봉녀는 내 곁에 앉아 이마를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고, 또 내가 베개를 던지고 슬그머니 봉녀의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얼굴을 봉녀의 아랫배에 박고 두 팔로 허리를 꽉 안아 보아도 가만히 다 받아주었다. 그래서 더 엉큼한 생각이 들어 계속 얼굴을 박고 있었더니 내 등을 때렸다.

    “동생아, 숨 안 막혀?”
    “아니.”
    “누나 목욕 안 해서 아래서 냄새 나.”
    “아니.”
    “까불지 마. 누나 나가서 몸 좀 씻고 올게. 잠간 눈 붙이고 있어.”

    작열 때문에 머리가 흐리멍텅하여 눈 감고 반수상태에 있는데 나갔던 봉녀가 다시 들어왔다. 손에는 가느다란 참대 가치가 들려있었다.
    “누나 뭐 하려는 건데?”
    “동생 콧등 문 놈이 틀림없이 말벌이야. 그래 말벌 몇 놈을 잡아왔어. 이놈 몸에서 독을 빼 내여 동생 콧등에 발라줄 거야. 그럼 틀림없이 아픈 게 멎을 거야.”

    봉녀는 앞섶을 열어 놓은 홑적삼 한 벌만 걸치고 젖은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렸는데 가슴에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귀여운 작은 것들아."

   달빛이 비쳐 들어오는데서 칼로 참대 가치를 잘라 양쪽으로 구멍이 통하게 만들고 나무젓가락을 핀세트 처럼 잡고 산 벌 여러 마리를 잡아다가 통 안에 넣고 또 참대 가치 끝에 유리암폴을 대고 손전지를 켜서 구멍에 대고 비추면서 중얼거렸다.

    “누나가 좋게 할 때 빨리 분비물을 내 쏘란 말이야."
    봉녀는 꼭마치도 사람과 주고받는 것처럼 말하였다.

    "누나는 너희들의 그거가 필요 하거든. 그거 받아서 누나를 갖고 싶어 하는 저 동생 살려야하니까. 그래서 싫다 이거니? 그럼 어쩔 수 없어. 누나는 너들을 비틀어 매고 깔고 앉아서라도 너희들의 것을 방울방울 짜내는 수밖에...”

    손전지불로 전극을 이용하여 독액을 받아내려고 하였는데 벌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아주 나무젓가락으로 말벌을 집어 내여 왼손으로 벌의 두 날개를 잡고 오른손에 잡은 젓가락 끝으로 말법의 가슴을 살짝살짝 건드려놓았다. 그럴 때 말벌이 독침을 내뻗으면서 독액을 분비했다. 봉녀는 그것을 들고 나에게로 덮쳐들었다.

   “나왔어. 나왔어."
   이렇게 소리칠 때 분명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요것들이 마침내 그것을 내밀었어. 흘러나오고 있어. 빨리 수건 걷어.”

   말벌이 독침을 내 뿜으면서 독액을 분비할 때 봉녀는 한없이 흥분했다.
   그녀는 나의 곁에 와서 반쯤 기대며 왼손으로 나의 이마를 눌렀고 오른 손에는 독액을 떨구는 말벌을 나의 콧등에까지 가져다댔다.

    “눈 감어. 눈에 독액이 튀면 큰일 나.”

    명령이 떨어졌지만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봉녀의 탱탱하게 부풀어올라있는 젖꼭지가 얼굴에 와서 다치었다.

    “얼마나 신기해. 난 요것들의 독액을 다 뽑아냈지만 죽이지 않았어. 내일이면 또 날아다닐 거야.”

    봉녀는 독액을 받아낸 말벌들을 그대로 잡아서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숨이 붙어있는 말벌들은 조금씩 움직였고 또 날개들을 꼼찌락 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첫날 한 마리에게서 짜내고 두 번째 날에는 두 마리, 세 번째 날에는 세 마리를 짜냈는데 네 번째 날에는 열 마리를 한번에 짜서 모두 55마리의 말벌을 잡아왔다. 그러나 한 마리도 죽이지 않았다. 독액을 모조리 뽑히운 말벌들을 접시에 담아서 머리맡에 놓고 혼자 돌아누워 잠든 봉녀의 어깨와 옆구리 위로 심심한 벌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장난치고 다녔다. 자던 도중에 돌아눕고 싶으면 먼저 눈 뜨고 행여라도 벌들이 몸 밑에 깔려 죽을까봐 께끼 손가락 끝으로 벌들을 살짝 튕겨서 다른 데로 날려 보내고야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나를 향하고 돌아눕기도 했다.

   그런데 자고 깨나면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말벌들도 다 죽어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내가 발로 비벼 던지려고 하자 봉녀는 말렸다.  

   “아. 불쌍한 것들. 그냥 없애지마. 벌집 안에 틀어박혀 멍청하게 집안에서만 날아다니는 것들한테 줘. 뚱뚱하고 게으른 녀석들이지만 난 저애들이 필요해. 난 저애들이 어디서 꽃가루 묻혀오던 말던 상관하지 않아. 저들은 밤만 되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잘 때 내 주위에 와서 맴도는 거야. 게으름뱅이들이지만 저애들은 난소(卵巢)가 있거든. 난소가 있으니까 나를 탐하는 거야. 난소 없는 애들은 봐. 벌집도 청소해야지 나가서 꿀도 모아 와야지. 불쌍하잖아. 평소 게으름 부리는 뚱보들은 유독 나에게로 올 때면 정말 자랑스러워 하거든. 결과는 이렇게 모두 죽지만 말이야.”

    발포가 되었던 콧등이 다 내리고 산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오자 봉녀는 약속대로 나에게 자신의 몸을 모조리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날 밤에 나는 벌집에서 날아 나온 게으름뱅이들이 봉녀의 음모에 코와 입술을 박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게의 손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혀는 악마의 음경처럼 길고 흉측해보였다. 봉녀는 분명히 그것들의 혀가 자기의 음부 속을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데도 봉녀가 사람과 하는 듯한 체위를 시도하자 벌들은 능숙하게 해냈다. 그것도 역시 봉녀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침이 되자 봉녀가 하는 말을 들은 나는 내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여자의 몸을 경험하기 위하여 봉녀에게 굴복하다니! 무엇으로 앙갚음을 할 가고 생각하는데 봉녀는 간밤에 머리맡에 두었던 접시를 들어 모두 죽어버린 말벌의 시체들을 그대로 벌집 안에 깨끗하게 털어 넣고는 밖으로 나가 샘치 물을 떠다가 꿀을 몇 술 탔다.
  
    “마셔. 지쳤을 때는 밀수만한 것 없어.”
    “이제 꿀은 정말 지겨워요. 치가 다 떨리는데.”

    나의 대답에 봉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니야. 넌 바로 이것 때문에 살아 난거야.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워. 사랑의 기적이야. 밤에 그렇게 많이, 그렇게 깊게 밀어 넣었어. 그런데두 다시 무사하게 빼낼 수가 있었다는 게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 다른 애들은 다 죽었어. 깊이 들어올수록 빠져나가지 못해. 나가려고 버둥거리다가는 그것을 뜯어놔야 했어. 그러면 끝이야. 모든 것이 끝이야. 모두 목숨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어. 그런데 죽지 않고 살았잖아. 무사하잖아.”

    말을 마치고 봉녀는 다시 분홍색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꽁꽁 감고 나서 그 위에다가 초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벌통 열 개를 하나하나 안아 내오자 문을 열어 놓고 나무막대기로 벌통을 탁탁 하고 때렸다.

   벌들이 벌집에서 날아 나오기 시작하자 곁에서 방긋이 미소를 짓고 기다리다가 나중에 벌통 안에 대고 소곤거렸다.  
  
    “너희들은 말 안 해도 잘 알지? 난 너희들과 첫 경험 이후에도 다른 애들과 관계를 나눌 수 있어. 어제 밤에 너희들은 다 봤지? 콧등이 물린 저 애는 죽지 않구 살았어. 저 애는 물론 떠나갈 거야. 가고 나면 나는 또 새 놈이랑 만나서 대 여섯 차례 더 관계를 가져볼 거야. 몇 주가 지나 6월이 되면 나의 질에는 더 많은 정액이 쌓이게 되고 나는 수만 개의 알을 낳게 될지 몰라. 그것을 몽땅 너희들 봉 방에 선물할 테니까. 너희들은 섭섭하지 말아줘."




shanghaitan   - 2008/11/17 16:45:50  
재미도 있고 정말 충격적인 장면들도 죽여주군요.
그런데 유감스럽습니다.
통 뭐를 쓴 소설인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아볼수 있어야말이 아닙니까.
에로소설로 읽을수도 없고...
shanghaitan   - 2008/11/17 16:46:52  
소설속의 봉녀는 도대체 사람입니까? 아니면 벌입니까?
shanghaitan   - 2008/11/17 16:48:30  
제가 여기에 카피해오기도 구차스러운 장면은 구경 사람이 했다는겁니까?
아니면 말벌이 했다는겁니까?
황성준   - 2008/11/17 16:57:21  
허허. 저도 상해탄님과 동감입니다.
여러모로 무엇을 말하려는것일가고 생각하고 짐작하고 해보았지만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문학이라고 해도 너무 도를 벗어난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니카의 어린 녀회원들이 모두 기겁하고 도망가라고 이런 소설을 쓴것 같기도 하군요.
정말 너무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재미는 무섭게 재밌는데 무슨 소설인지 알수 없어서 유감스럽습니다.
그냥 재미 절반 충격 절반 읽고 갑니다.
추천은 못 드리겠습니다.
리혜선   - 2008/11/17 17:08:09  
니카에서 서울대 연구생 류경자님의 평론 한편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론의 제목이 <인간의 탄생과 순환, 그리고 변화와 발전>이였습니다.
딱히 무엇을 쓴 소설인지 일시 판단이 되지않지만 련상되는 작품들도 몇편 없는것은 아닙니다.
최서해의 <연주창과 독사>라는 수필도 떠올랐습니다.
서국화   - 2008/11/17 19:17:43  
ㅎㅎㅎ, Shanghaitan님과 동감입니다. 참 뭘 쓰려고 하는건지 알아보지 못하겠네요.
김명희   - 2008/11/17 20:15:58  
소설이 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도통 알수가 없네요...
바퀴벌레처럼 상징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건 같기도 하고...
이미옥   - 2008/11/17 20:58:06  
낼모레, 발표 논문을 열심히 쓰다가
유순호 작가님의 “봉녀 이야기”가 또 제 발길을 멈추게 했네요...^^

여왕벌의 이야기라,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왕벌의 생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벌들의 집단에서 여왕벌은 단 한 마리만 존재하며 혹 로열젤리를 잘못 먹여서 두 마리가 여왕벌이 되는 경우에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웁니다.
사실 인간들의 집단도 이와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역사의 대부분이 그러니까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이 통치하는 체제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지요.
게으르고 뚱뚱해도 난자가 있어서 잘난 체 하는 말벌 같은 인간(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에 비유되지요.)도 존재하고 말없이 일만 하다 결국 가는 불쌍한 인간들도 득실하게 존재하는 게 인간사회의 실상이니깐요.

그러나 인간사회에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여기서 여왕벌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접근해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냥 벌이 아니라 여왕벌이어야 하며, 왜 소년은 봉녀를 만나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의 의미 같은 것 같은 것들입니다.

역사의 무대에는 항상 남자들이 서왔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들입니다.
소설 속 화자도 “양봉을 함에 있어 꼭 여자와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그러니 “성공한 남자 뒤에는 위대한 여자가 있다.”는 말처럼 역사는 진짜 여왕벌 같은 여자들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추구하는 성공도 결국에는 아름다운 여자의 선택을 얻기 위한, 그리하여 더욱 우수한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것 일테구요.
우리의 삶이라는 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되어 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이라는 엄청난 시스템 안에서 마치 “매트릭스”처럼 움직여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봐서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그 역사적 사명을 위한 남, 여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됩니다.
욕망을 해소하고 난 후(정확히 말하면 성적인 결합 후) 남자는 엄청난 허무와 허탈감에 빠지지만 여자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잉태로 이어져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 더 큰 욕망으로 재생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생명력은 남자에 비할 수 없이 더 큰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죽어가는 말벌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남자의 쓸쓸한 역할과 허무에 대해서도 담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좌절이나 한계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저번 소설에서도 느꼈지만 유순호 작가는 인간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추함과 연약함 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그러한 적나라함은 인간 자체를 비판하는 듯 보이고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가만히 더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그러한 삶을 살아 내려는 생명력이 꿈틀 거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16살 소년은 소위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의 남성을 찾고, 경쟁에서도 살아남아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결코 쉬운 건 아니었지요. 육체적인 고통과 봉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수치심도 겪어내야 했으니까요. 어쨌든 소년은 봉녀를 통해서 “부활”했고 그랬기 때문에 더 강하게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든 여자가 봉녀 같은 건 아니지요. 모든 여자가 다 여왕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봉녀 같은 여자는 대단한 힘 즉 욕망을 가진 생명력의 상징이지요. 수컷들을 키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을 양산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하여 자신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진정 “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봉녀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창조”입니다. 단지 애기벌들 뿐만 아니라 수컷들도 잘 다스려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니깐요.
그러니 봉녀는 보수적이고 수줍음 많은 여자가 아니라 대단히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입니다. “일부일처제” 같은 것에 얶매여 있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냄새” -“향기”를 내뿜을 지도 아는 여자이지요. 봉녀의 목적은 한 남자를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수컷으로부터 “교미”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한껏~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보다보니 얼마 전에 극장에서 봤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뱀”처럼 요염하고 예쁜 주인공 손예진이 결혼을 하고도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지요? 그러나 묘하게 영화는 손예진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 갑니다. 손예진의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만으로 설득력을 얻어 내는 것이지요.
이건 변혁이지요. 사랑을 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 즉 서로 한사람만 볼 것을 암묵적으로 약속합니다. 그것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지요. 물론 생태적으로 “난 한 사람이면 족하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겠지만, 또 충분히 생리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결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 같습니다. 더 매력적인 상대를 보면 마음을 빼앗기고, 더 좋은 유전자를 갖기 위한 욕망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때 꽤 인기였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도 생각이 나는군요.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사회의 법도 도덕도 아니며 결국 우리의 유전자라는 것을 역설한 내용이었지요.

다시 소설로 돌아와 본다면,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러한 “진보적인 여성상”-여왕벌 봉녀의 강한 생명력과 그 생명력에 기대어 한 소년이 남자가 되고, 거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경험한 “통과의례”를 보여준 것이고, 좀 더 확장한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한 힘의 원천(여자의 욕망이라는 것)과 그 힘을 인정하고 전면에 드러내려 하는 작가의 “급진적” 사고가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대변했다고나 할까요, 대찬성입니다. (^^)
如然   - 2008/11/17 23:44:32  
왕벌은 비행시합을 통해 배우자를 택하며 이것을 婚飛擇偶라고 합니다.
승자는 왕벌과 교배를 한 후 수컷의 생식기가 왕벌의 생식기 속에 탈락되면서 죽어 버리고 패자는 그후론 먹기만 하고 채밀도 안하며 게으름만 부리다가 나중에는 工蜂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죠.
근데 그 중에서 살아 남았다….?ㅋㅋㅋ

벌의 사회를 ‘모계사회’라고 할 수 있죠.
왕벌은 후대를 번식하고 대가족을 이끄는 ‘통치’자…

인류사회에서 유일한 모계사회인 摩梭族이 기억나네요.
일부일처제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走婚’하는 민족…

역시 작가님은 대단하셔.
벌의 지식으로 이런 소설을 써내고…
비록 작가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사람은 자연을 떠나선 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황성준   - 2008/11/18 00:03:02  
다시 와서 여러분들의 리플을 읽어봅니다.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한둘이 아니군요.
리혜선님의 리플을 읽고 최서해의 수필을 찾아읽어보았습니다.
연주창환자는 독이 있어서 뱀이 물면 뱀이 되려 죽는다는 이야기던데
이 소설과 어울리는 같기도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던데요.
말벌에게 쏘인 독을 말벌독으로 치료하는것은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미옥님의 해석을 듣고 그럼 이 소설은 녀성의 해방을 노래하는 소설처럼 들리는데
그런건가요?
황성준   - 2008/11/18 00:07:32  
저는 녀성의 해방을 노래한 청설작가의 작품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조선족의 정조>라는 수필을 감동깊게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평론가 최삼룡선생님이 평론한것을 보니 이 수필은 바로 조선족의 녀성들이
현재상태에서 탈피하고 다른 상태의 녀자로 태여나야한다고 호소한것이라고 하였더군요.
이미옥님의 평론대로라면 이 소설도 녀자가 숱한 남자와 관계를 발생하고
죽일수도 있고(남자들은 너무 하찮은 존재로 되여있군요. 생명이 녀자의 손아귀에 쥐여있지않습니까?)
남자는 벌통이나 등에 지고 녀자의 뒤를 따라다니는 신세밖에...
그것도 무슨 약속대로라는것(방학동안 녀자를 따라다니느 대가로 녀자가 관계해주는것이 아닌가요...) 조건부가 딸려있군요.
이렇게 남자는 녀자의 몸을 갖기 위하여 가련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여있는 소설입니다.

황성준   - 2008/11/18 00:09:20  
마치도 모계시대의 이야기를 읽은같기도하고....??
이렇게 남자가 비참하고 성에 있어서 녀자의 앞에서 하잘것없는
송충이처럼 묘사된것이 과연 녀자의 해방과 성의 자유를 부르짖는것이라고 보아야하겠는지....
도무지 오리무중입니다. 통 갈래가 잡히지않습니다.
황성준   - 2008/11/18 00:11:13  
그럼에도 소설이 정말 재미있다는것은 승인합니다.
봉녀라는 녀자(저는 솔직이 녀자인지 벌인지 분간이 안되군요)가
벌통안에 대고 벌들과 이야기하는 대화를 읽으면 동화같은 감도 주는데요...
그런데 대화도 재밌게 하고 성에 관한한 묘사도 정말 이렇게 직설적이면서
몸서리가 돋게하는 소설은 처음 읽어봅니다.
이렇게해도 되는건가요?
helen   - 2008/11/18 00:43:13  
이미옥님 글 보니깐 이해가는것 같기도 하고
암튼 더 많은 평론이 있었으면 좋겟습니다
주정규   - 2008/11/18 01:06:10  
순호동생 한편한편 충격일세. 동생의 성애론이라고해야할지..
마광수교수의 '즐거운 사라'보다 십배 더 하네. 뺨치고 가겠네..
  - 2008/11/18 07:03:35  
소설만 읽으면 저 역시 다른 독자분들이나 하나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리벙벙합니다.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고 봉녀의 형상상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류순호선생님이 최근에 창작하고 계신 여러편의 단편소설들(<빵순이는 즐겁단다>(주인공 빵순이) <완두꽃을 먹는 녀자>(누나))에서도 봉녀 비슷한 형상들이 련상되였습니다. 이미옥님의 판단하신대로 <진보적 녀성의 견강한 생명력>이라고 공감하게 되지만 보다 생명력의 깊은 안에는 녀성의 야욕과 음심같은것이 느껴집니다. 야욕과 음심을 바로잡을수 있는 사랑과의 갈등이라고 해야할지..............어쨌던 녀성은 해방되였다고하지만 정치적 인권차원에서의 해방과 남녀평등이고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하여 더욱 주목하게되는것은 인간의 원욕에있어서 녀성들은 모계시대를 잃어버린뒤로부터 수천년동안 녀성특유의 야성까지도 모조리 짓밟혀왔던것이며 작가는 그런것에 대한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것이나 아닐가요??? 야성이 구체적으로 어떤것인지 전문가들이 표현하기에 따라 여러가지형태로 많이 존재하겠지만 작가는 이 소설에서 남자가 녀자의 음모속에다가 <코와 입술을 박았다>는 묘사로 표현했군요. 도덕적규범과 사회적인 통념관습상에서 보면 지금 시대에 성경험을 갖고 있는 남녀가 오렐섹스하는것은 정상적인 보편화된 현상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클린턴)까지도 오렐섹스추문으로 국가 청문회에 나서야했던 과거사도 있었지요. 마광수의 <성애론>도 오렐섹스에 대하여 상당히 깊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아마 서방문학에서는 스스럼없이 류행하고있지않나 싶은데 우리 조선족문학내지 중국문학권은 아마 아직은 아닌듯 싶군요. 그런데 제가 감탄하는것은 꿀벌의 동물계에서는 남자벌이 녀자 왕벌의 성기속에 삽입한뒤 빼내지 못하고 모두 죽는 과학적인 사실은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냈고 벌을 키우는 젊은 녀자와 있었던 밤의 정사를 통하여 묘사는 벌이 녀자와 한것처럼 만들어놓고 아침에 그것은 바로 소년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살짝 밝혀놓은것이 정말 기묘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여러번 읽으면서 꿈이야기를 썼는가 아니면 정말 벌이 녀자의 성기속에 들어가는것철머 환각이 일어나게 만든것이였나 판단하느라 했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얼떨떨하지만 우에서 如然님이 이것은 왕벌들의 세계에서 비행시합을 통해 배우자를 택하는 <<婚飛擇偶>>라는 표현을 읽고는 정말 이것은 의심할바 없는 한편의 독특한 예술이구나고 생각했습니다.
  - 2008/11/18 07:14:38  
본인도 문학을 깊은 흥취를 가지고 중외 문학작품들을 많이 읽어왔다고 자부하지만 서방문학의 차원은 확실히 동방문학과 다른 경지에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절감하였습니다.
특히 독자들을 철학적인 사색의 깊이에로 끌어들여가는 매력은 언제나 신선합니다. 제일 힘든것이 처음 읽었을 때 잘 터득이되지 않아 얼떨떨한것입니다. 외국영화를 볼때면 계속 졸음이와서 졸다졸다 다시 또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실마리가 풀리면서 작품의 내재적의미를 터득하게 되여가는 과정은 너무 행복합니다. 이미옥님이 봉녀는 <진보적녀성의 신형상>이라는 말씀을 해주셨기때문에 저는 금방 이 소설을 쓰신 작가의 의도를 터득할수 있었습니다. 신형상이 수립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느때의 시점을 기준으로하는지 모르지만 녀왕벌의 동물세계에서 모계씨족사회가 지금도 류행하고 있고 한번도 몇천년동안 흔들림이 없이 그대로 류행하고 있는 모습에서 저는 이 소설이 발표되는 오늘을 시작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봉녀의 어제는 모두 낡은 인습속에서 녀성의 야망이 짓밟혀왔다고 해야 하는것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인습과 낡은 제도 모두에 대하여 강력한 도전을 선포하는것이라고 해도 됩니까? 남자가 항상 한마리의 벌레처럼이나 녀성에 대하여 성노래기 아기출산도구 영원히 남자에게 종속한 노예 비슷한 이미지로 간주되는 어제까지의 <짓밟힌 녀성의 야욕>에 대하여 해방을 호소하였고 이런 해방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 2008/11/18 07:24:12  
때문에 남들은 입에 담기도 거북스러워하는 묘사(생략하겠습니다)야말로 녀성의 야욕을 짓밟은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으로 여겨지며 그런 비판을 실천함에 있어서 모두 봉녀와 섹스를 하였던 모든 숫벌들이 죽어버리는데 주인공 소년은 살게됩니다. 살게되는 원인은 사랑의 힘이 작동했다고 봐야되겠습니다. 말벌에 쏘인 코를 치료해주기 위하여 벌의 독을 채집하는 장명이라던가 베개삼아 무릎을 베고 봉녀의 허리를 부둥켜안을때도 그렇게 정답게 소년을 안아주는 봉녀의 모습은 사랑외에 다른것은 아무것도 없지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소설은 녀성의 해방은 여전히 사랑으로 죽음을 이기고 사랑으로 인간의 야욕을 정화시킬수 있다는것으로 리해합니다. 그런데 봉녀는 여전히 혼자 산속에 남아서 계속 다른 남자들과 살을 섞고 지낸다고 했군요.(........나는 또 새 놈이랑 만나서 대 여섯 차례 더 관계를 가져볼 거야. 몇 주가 지나 6월이 되면 나의 질에는 더 많은 정액이 쌓이게 되고 나는 수만 개의 알을 낳게 될지 몰라. 그것을 몽땅 너희들 봉 방에 선물할 테니까. 너희들은 섭섭하지 말아줘. 난 그래서 저애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는 거야......) 이런 장면은 정말 리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봉녀는 색마비슷하게 되여버린것 같습니다. <변강쇠>에서 나오는 옹녀와 흡사한데가 있는 녀성입니다. 옹녀는 변강쇠를 만나 더는 남자들을 잡아먹지 않고 변강쇠와 사랑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무엇때문에 봉녀는 그렇게 산속에서 사라지게 만듭니까? 나는 왜 또 산속으로 가야하는지....이런 결말에 대하여 리해할수가 없습니다. 봉녀의 형상을 생각하면 양봉하는 산이 신비로와지고 꿀을 마실 때도 봉녀의 생각이 떠오를것 같습니다.
종소리   - 2008/11/18 07:39:11  
니카시대라고 불린다는 싸이트 정말 대단합니다.
니카의 대표라는 작자분이 앞장에서 이처럼 음탕한 에로스를 설파하는군요.
할말이 없습니다.
두견화   - 2008/11/18 08:17:40  
유작가님은 수필도 알아보지 못하게 쓰고 소설도 알아보지못하게 쓰시네요..
수필들은 지금 다시 읽어보면 조금씩 뜻이 알리는데 소설은 아무래도 저의 능력으로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재미는 있어요 ㅋㅋ
문학이라는게 참 신비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들도 다 써낼수 있다는것이 희한합니다.
韓一井   - 2008/11/18 10:28:16  
소설의 내용을 떠나 소설 구성에 발목이 잡혀 읽는 중에 이해를 섯갈리게 만든다.그래도 끝까지 읽었다.하지만 아래의 댓글을 읽어보니 이야기 구성의 난해가 본인 뿐이 아님을 긍정하게 되였다.

소설에서 봉녀와의 관계를 두고 구경 내가 벌인지 벌이 나인지 분간키 어렵게 만든다.결국 벌이 한짓이 아니라 자신이 한짓이라고 한다.다시말해 내가 한짓을 벌이했다고 쓰지만 기실은 그때의 벌이 진짜의 벌이 아니라 진짜인 나를 벌의 행위로 대신해 묘사했을 뿐이다.이것이 이해되면 이 기초에서만이 소설내용을 파 볼 의미가 있다.

만약 이런 수법을 기교로 활용하였다면 수선 먼저 이 기법의 타당성이 긍정되여야 한다.하지만 처음으로 이런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어쩌면 이런 수법은 의식류소설 수법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게 보인다.왜냐하면 의식류의 소설을 읽음에 무질서한 의식의 흐름중에 질서를 찾는 노력이 있지만 이 소설의 구성은 사건 발전에 따라 진해되다 의식류적인 내용인 나와벌을 함께 반죽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수법이 타당하다면 읽는이들에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읽는이들에게 내용을 떠나 오리무중에 빠지게 하기 쉽다.또한 이런 수법이 재래식의 소설에선 환각정도로 나타났을 뿐으로 이해엔 지장이 없었다.
류영애   - 2008/11/18 11:28:03  
이글을 읽은뒤 너무 충격적이여서 속이 막 울렁거려요.

이미옥님의 평론으로 많은 이해가 가는데 女人时代가 도래하고있음을 느꼈습니다.
김동석   - 2008/11/18 11:36:42  
바퀴벌레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쉽게 터득했습니다.
봉녀는 상징성도 대표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주장하고 말하려는 하나의 상관물에 지나지않지만
지극히나 기발하고 意外性 깊은 독특한 기법으로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생각합니다.
꿀벌세계에서 여왕벌의 이야기는 세상에 다 알려져있는 사실인데
소설화하여 직접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였습니다.
읽는 도중에 많이 헷갈리였지만 그래도 이번 소설은 비교적 차분하게
해석도 잘해주셨습니다.

김동석   - 2008/11/18 11:41:02  
이미옥님의 평론에도 또 추천드립니다.
이번에도 또 고맙군요. 소설을 터득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春님께서 남기신 의문에도 함께 공감합니다.
이해되면서도 하나하나의 의문이 다 풀리기에는 어려움이 많군요.
허수옥   - 2008/11/18 13:40:03  
어떻게 작가님은 번마디 이런 소설을 쓰시는지 리해가 잘 안되네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현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련관되여있는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가장 감동적인 소설로 <빵순이는 즐겁단다> 한편을 제외하고 다른 소설들은
도저히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오늘읽은 소설로 말미암아 많은 실망을 받게 되였음을 고백하고 싶군요.
성란   - 2008/11/18 14:06:57  
아저씨 왔다가요~

아름다운 수필 많이 써주세요~

내 여자의 얼굴은 일일 사계절...이런거랑 다 좋은데요~

소설은 이제는 싫어용~

저뚜 빵순이는 좋던데~ㅋㅋ
성란   - 2008/11/18 14:07:40  
그치만 성란이는 언제나 어저씨 편이라는... ^^
주성호   - 2008/11/18 14:19:32  
이번에도 이미옥님의 평론이 아니였으면 저희 수준으로는 이 소설을 리해할수가 없습니다.
읽는 도중에 다른 사람들이 보고 뭐라할가봐 눈치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야말로 넌센스입니다.
문학도 현실생활에서 구상하고 생활속의 삶을 모체로 하지 않습니까.
이런 상상은 어떻게 하시는지 참으로 리해가 안되군요.
이미옥님과 春님의 글평을 읽으면서 많이 터득되고 감탄하게도 되지만
만약 이런분들의 평론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될가요?
일반 독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게될지 짐작할수 있는것이 아닙니까.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시간상관계로 이만 쓰겠습니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소설에는 정말 뭐라 태도를 표시하기가 어렵습니다.
박준   - 2008/11/18 21:46:05  
모계씨족사회를 경험하는 기분..
세계사를 보면 모든 변화의 갈피에 여자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야욕이라고 해야겠지요.
때로 이런 야욕들이 역사를 바꾸어놓는 경우도 푸술했구요..
여왕벌의 세계는 매력적인데가 있습니다.
왕위를 다투는 일인자들의 사투를 연상시킵니다.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박준   - 2008/11/18 21:48:17  
봉녀가 벌들과 주고받는 대화, 봉녀가 소년과 주고받는 대화가 명문입니다.
그렇게 생동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말그대로 대화의 예술입니다..
조화를 이루듯한..
희정이   - 2008/11/18 21:59:19  
유순선생님...추천드리고 갑니다. ^^.

저도 찬성입니다...
이미옥   - 2008/11/19 00:38:22  
이 소설은 표면으로 봉녀와의 “섹스”를 다루었지만 마치
자궁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현장을 은밀하게 스케치한 느낌도 듭니다.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기 위해서는
수억 마리의 정자가 치열하게, 아주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 중에서 살아남아 수정이 되는 건 단 한 마리뿐이죠.

“살아남는 다는 건”, 뭐 사랑이냐 행복이냐를 떠나서 “전쟁”입니다.
그렇게 수억 마리의 경쟁을 거쳐서 태어나서도 여전히 우리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정글”과도 사회에 던져져 있습니다.
즉 “사랑”을 논하기 전에는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1차과제입니다.
그리고 그 “살아” 남기 위해서 남들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길이죠.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싸워왔습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요, 또한 이러한 삶의 욕구가 팽창되면
“패권”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져 인간은 다른 이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적 욕망 다음으로 가장 큰 욕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남자의 세계에선 말이죠, 오죽하면 인류역사에서 왕권사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봉녀는 단지 여자에만 한계 짓을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기적으로”, 경쟁력을 축적하는 모든
인간의 또 다른 단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봉녀는 우두머리니까 특별히 우수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이긴 합니다.

사랑이니 도덕이니 하는 건 어쩌면 “위선”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작가는 당당히 제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을 한꺼풀 벗겨보면 누구나 “신음소리”-마치 철없는 소년이
벌을 건드려서 생채기가 난 것처럼 온통 힘들게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소년이 죽지 않았던 건, “사랑의 힘”보다도
그 자신이 다른 말벌과의 전쟁에서 (다른 수컷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지요.
마치 수억 마리의 정자 중, 살아남은 한 마리의 정자처럼
소년 또한 치열한 “경쟁”에서 선택되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받은 것이지요.
그것이 힘이든 매력이든 뭐든 말입니다.

그러니까 봉녀의 이야기는 두 가지를 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봉녀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벌들의 군상”-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투하는 사회의 일면, 인간의 싸움 본능”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의 “여자의 거침없는 욕망과 생명력”도 분명히 다루어져 있다고 봐야지요.

소설 속 봉녀는 두 가지 모습으로 환원됩니다.
1) 강력한 통치권을 갖고 있는 우수한 유전자-이기적인 리더의 모습도 있고
2) 또 자신의 수하-수컷들과 애기벌들로 비유되는 남자와 어린이들-들을 살뜰히 돌보는
모성본능도 갖고 있지요.

두 가지는 분명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만 하나로 읽어내기에는
조금 다른 속성 때문에 독자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특히 여성의 이미지는, 이기적이고 전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존의 상식을 뒤덮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소설 안에 두어 가지를 다 그 이상으로 담아내려 했기에
소설을 온전히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 읽어 내려는 독자들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쨌든 작가가 제기한 문제들,
벌집으로 비유된 인간 사회의 실체라든가 -
인간의 생존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든가 -
여성상의 진보적 제시상이라든가 -
하는 것들은 분명,
엄청난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너무 거대해서 사실,
표현으로도 벅찬!
(^^)
조연희   - 2008/11/19 00:57:49  
와~ 역시 이미옥님의 평론만 아니면 이 소설은 모르겠어요...
저는 소설보다 이미옥님의 평론글을 읽는 재미가 더 좋은 같애요..^^
유작가님께는 좀 죄송 ^^
어떤 장면은 너무 징그러워서...근데 평론을 읽고나면 다 이해가 갑니다.
생명에 대한 노래라고해야하나요...
근데 정말 감탄이에요...
조연희   - 2008/11/19 00:58:35  
전 미옥님 팬이되어버린같아요..
평론이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ㅋㅋ
정말 멋지세요....
강추!!
리련희   - 2008/11/19 00:58:49  

선생님...이 글은 많이 어렵네요.
글속 내용이 충격적이기도 하면서 웬지 모르게 끌리는 부분도 있고...
위에분들 리플을 읽어보면 뭔가 또 알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저로썬 잘 이해가 안되고 어려운 글이네요. ^^
김선   - 2008/11/19 01:21:13  
세상은 녀자의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유작가님의 소설과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고 받는 감상이 너무 많아서
딱히 어느쪽으로 갈피를 잡았으면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녀성과 생명에 대한 찬가라고 해야합니까?
김희옥   - 2008/11/19 02:49:06  
잘 읽고 갑니다.
문장을 이해하는데는 이미옥님의 댓글 도움이 많았습니다.
리처드   - 2008/11/19 03:21:44  
grotesque short story !!!
정연   - 2008/11/19 04:31:45  
성관계하는 장면에서 봉녀는 여왕벌로 변하고 소년은 수벌로 변하여-
평소에는 여왕벌과 관계하면 수벌은 무조건 죽게 될것이라는
무서울 지경으로 잔인하고 음탕스럽게 그려진 부분을 읽고난뒤에-
봉녀는 그렇게 말하게 하였습니다. 사랑의 기적...??
그런에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으니 사랑은 아닌것 같네요.
단순한 육욕 혹은 이성과 이성의 교미에만 그치는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그게 아니네요...

정연   - 2008/11/19 04:33:53  
이렇게 모르고보면 정말 리해할수 없는 소설인데~
이처럼 풀이할수 있는 이미옥님이 너무 신비스럽게 생각되네요 ..
문학전공 연구생들은 전문 이런것을 풀이하는 공부를 배우는것인가요?
저는 소설을 읽다가 내려와서 또 먼저 평론부터 읽고 ^^
아무튼 리해가 되였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공부가 되네요...
山子   - 2008/11/19 16:15:11  
충격을 주는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현영   - 2008/11/20 02:53:10  
아저씨 정말 이상해 ......................
전번에는 바퀴벌레구...글구 이번에는 꿀벌...ㅋㅋ
왜 이렇게 다 쪼꼬만 벌레들하구 섹스하는 이야기징...
현영   - 2008/11/20 02:54:11  
이미옥님 평론 읽으면 알것같기도 하지만 그래두 모르겠썽~~
징그러...
선영이   - 2008/11/20 06:39:16  
봉녀라는 여자의 형상을 통하여 새로운 여성세계를 생성하려는 작가의 강렬한 의지가 진부하게 안겨옵니다. 뛰어난 문학적 은유와 인간야성의 피상성 및 그 깊이에까지 갈대로 간 작품입니다. 유선생님 존경합니다.
김춘림   - 2008/11/20 07:53:25  
한국대학의 어떤 교수가 전문 여자의 성에 대하여 쓰다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법적제재까지 받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요.:::
유선생님은 미국에서 사시는 작가니까 누가 제재까지는 하지못하겠지만
눈총을 많이 받으리라는 각오는 해야될것같습니다.
어쩌면 존경의 대상이 될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ㅠㅠ
저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인간의 성애에 대하여 이처럼 변태적 사도마조히즘으로 묘사해도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어쨌던 선생님은 대단하신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선생님같으신 작가는 물론 작품도 니카를 알게되면서 평생 처음이니까요..
선생님 또 봐요~
리혜선   - 2008/11/20 08:03:52  
이미옥님의 댓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소설 속 리얼한 성묘사 부분이 잘 리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여왕벌과 관계한 수벌들의 운명에 대하여 말하는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닐지...
류순호선생님의 다른 일부 소설들에서도 보면 이와같이 기괴한
변택적 성행위를 볼수가 있는데 저는 줄곧 이런 행위에 대한 묘술을 통하여
세상의 위선적인 도덕과 금기, 권력, 억압 등 이런 관습을 찌르거나 또는 무너뜨리려는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봉녀에서는 이미옥님의 댓글을 통하여 그 자체를 사랑이 아니다고 보게되니
이러한 성행위의 너머에서 다른 무엇을 꿈꾸는 색다른 리상같은것은 도무지 발견이 안되군요.
이것이 저의 의문부분입니다.
이미옥님의 댓글을 통하여 기본상에서 리해가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희   - 2008/11/20 10:40:48  
또 한번의 놀라움
대글도 다 읽어도 아직도 아리숭..
잘 읽고 갑니다..
코스모스   - 2008/11/20 11:42:49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시는지요?
통 이해가 안 가네요~
윗분들의 플 다 읽어봤는데두...이해가 안가네요~
우~~~~~~~~~~~~~~~
코스모스   - 2008/11/20 11:44:08  
다음 부터 이런소설 말구요 ...좀 동화스러운 소설 많이 써주셨으면..합니다..
코스모스   - 2008/11/20 11:51:40  
이러다가 사람들이 아저씰 싸이코라고 잘못 생각하시면 어쩌죠??
샘터   - 2008/11/20 14:47:02  
이 글은 인간의 <七宗罪 Seven deadly sins> 를 말하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예전에 본 니콜라스 캐츠가 주연인 영화 七宗罪 가 떠오릅니다
어느 도시와 멀리 떨어진 섬에서 살고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벌을 토템처럼 숭배하는데
모든 면에서 벌하고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여왕처럼 모든걸 지배하고 매년마다 마을에서 제일 순수하고 총명한 여자아이 한명을 뽑아서 남자하고 치례를 치릅니다. 그냥 후대양식을 위한 치례라고 할가요.그리고 나서 선택된 남자를 죽이고 하는 내용입니다...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는데 엄청 공포적입니다.
인테넷에서 찾아보면 칠종죄는 성경,단떼의 신곡에서 나옵니다.

여왕벌한테는 인간의 모든죄행 칠종죄가 전부 존재합니다
1.색욕- 이 글을 음란하다고 표현한만큼 글에서도 칠종죄중에서도 색욕이 처음순위. 여왕벌은 모든 수펄을 차지
2.탐식- 여왕벌은 로얄젤리밖에 안먹는다.
3.탐욕- 여왕벌이 되려는 탐욕
4.게으름- 여왕벌은 누워서 해주는대로 받는다.
5.질투- 시기하고 질투하던 끝에 죽을때까지 싸운다
6.분노- 애벌레까지 죽인다
7.교오자만- 마지막에 봉녀가 한 말
이 칠종죄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 악마라고 합니다.
이글은 봉녀를 여왕벌에 비유하여 인간의 칠종죄를 말하려한것 같습니다
헌데 응당 죽어야 할, 죽여야 할 나를 살려서 돌려보냈다는것은 칠종죄를 전부 갖춘 여왕벌 같은 봉녀한테 악마가 아닌 인간의 순한 마음이 있다는것을 말하려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왕벌이 칠종죄를 모두 갖고 있는 악마일지라도 수많은 벌을 잉태하여 벌을 사회를 형성시키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서 여왕의로서 모든 죄가 용서될수 있다?

늦은시간이여서 그냥 두서없이 제가 이해한대로 적어봅니다. 틀렸다면 많이 지적해주길 바랍니다.
조연희   - 2008/11/21 01:56:53  
샘터님의 리플까지 읽고 비로서^^

어쨌던 유작가님은 정말 대단하셔여 ㅠㅠ

너무 우러러보입니다...

이미옥님 春님 샘터님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가르침이였어요 ~
shanghaitan   - 2008/11/21 04:22:22  
샘터님의 말씀에 설복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작가님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소설 만들었는지 리해가 가군요.
ㅋㅋ 우에 유작가님을 싸이코라고 의심하는 분도 계시네요 ....
저도 처음에는 동감이였습니다.
shanghaitan   - 2008/11/21 04:23:03  
이번에 정말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문학이고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성준   - 2008/11/21 04:54:00  
이미옥님과 샘터님께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였습니다.
황성준   - 2008/11/21 04:59:25  
아직까지 국내외 어떤 문학작품들에서도 읽어본적이 없는 독특한 작품인것을 승인합니다.
이런 뛰여난 작품이 중국의 조선말 잡지에서 발표될수 없는것이 조선족문학의 수준과 현주소가 어디에 와있는지 가늠하는것이 아닐가요?
솔직히 <장백산>잡지나 <도라지> <연변문학>같은 전문 문학지의 편집님들의 수준도 의심되구요.
어쩌면 그분들의 작품을 보는 수준이 조선족문학의 앞길의 여느냐 가로막느냐는 관건일수도 있는것입니다. 저는 유순호작가님의 작품이 중국의 조선말 잡지들에서 보통 발표되지 못한다고들었습니다.
우리 민족문학의 비극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해야할지 잘 판단이 안섭니다.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참으로 좋은 문학강연을 받은 기분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문학이고 진정한 예술인가/?
가을   - 2008/11/21 08:09:12  
평론글이 아니였으면 오해할번했네요 ^^

정말 너무 진부한 표현은 몸서리까지 돋을지경이였답니다.... ㅠㅠ

가을   - 2008/11/21 08:10:32  
어쨌던 못 말려. ㅋ 싸이코란 소리까지 다 듣구..ㅋㅋ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이 수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수필 좋아하는데..
김재이   - 2008/11/21 09:53:42  
작가님 오랜만에 단편 소설 한편 올리더니 이렇게 음탕한 글을 가지고 오실줄이야.ㅠㅠ
처음에는 좀 괜찮았는데 마감에 와서 기분을 몽땅 버렸습니다... ㅜㅜ
빵순이가 그립습니다.
최정학   - 2008/11/22 00:29:43  
정말 대단하십니다.
근데 이 소설은 누가 평론을 안쓰나보죠?
전번 카크로치이야기보다훨씬 더 충격적인데 말입니다.
ㅋㅋ
최정학   - 2008/11/22 00:30:43  
역시 이미옥님의 평론이 마음에 듭니다.
정말 옳은 같습니다.
김철호   - 2008/11/22 01:08:16  
류순호씨가 우리 조선족출신 작가인것을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우리 문학에 이런 작품이 나올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 문학의 진정한 현주소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있다.
진심으로 경탄과 감사를 드린다.
김선   - 2008/11/22 05:47:55  
성묘사가 이처럼 진부하게 진행된 소설을 보았던 기억이 없네요.
다는 알지못하지만 국내외 작품들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내용의 의미는 서울대 연구생분도 이미 자세하게 해주셨고 리해할것 같습니다.
진정한 작품이라는데 동의하지만 꼭 이렇게 음란물에 가까울정도로 성묘사를 진행한
의도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이 소설이 정말 잘된 소설로 인정받지 못할수도 있지않을가요?
그렇게된다면 너무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김선   - 2008/11/22 05:49:02  
어쩄던 평생 처음 읽는 대단한 소설이였다는것은 숨기지않습니다.
니카와 유순호작가님을 알게된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계속 많은것을 배우고싶습니다.
박철수   - 2008/11/22 08:15:15  
이 정도 성묘사를 가지고 전례가 없는것이라고 보는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성묘사 부분에서 이 작품을 진정한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기묘한 표현법입니까!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SK 투어   - 2008/11/23 07:20:30  
조선족작가들과 조선족문학작품에서 가장 선구자적인 작가와 작품이 될것같습니다.
지금 잠시는 제대로 된 평가와 긍정받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음란물로 볼수있는 오해의 소지가 너무 강하니까요.
그런데 우에 부분 독자님들이 말씀하신것처럼 진정한 예술이고 진정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백프로 찬성입니다.
SK 투어   - 2008/11/23 07:23:30  
중국 조선족의 문학사회가 이런 작품을 넉넉하게 수용할수 있을때면
조선족문학도 변두리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착하게 될것입니다.
이런 수준에까지 닿아있는 정말 대단한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채미화   - 2008/11/23 12:35:11  
벌둥지에서 녀왕벌과 그리고 봉녀와 그리고 주인공 본인사이에,
둘러싸인 한달간의 벌들의 콕콕 찌르는 번식과정을 통하여
주인공님이 행운스럽게 녀왕벌의 독특한 총애를 입고 난 뒤 지금도
그때 정경을 잊을 수 없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잘 읽고 갑니다......
정연   - 2008/11/23 23:31:05  
봐도 후회하고 안봐도 후회할만큼 충격적인 소설을 읽고 갑니다 ~
신선한 충격이였습니다 ~
빈술잔   - 2008/11/24 02:03:40  
단편소설 "봉녀"의 일부 구절과 단락들의 <표달방식>이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极品이라 해도 될만큼!
너무 적나라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의 구미를 잔뜩 돋구어주는 성에 대한 묘사라던가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펼쳐나가는데 대찬성입니다.

하지만, 유작가님이 일전에 쓰신 <바퀴벌레의 이야기>에서보다는 그 상징물이 이끌어나가는 여운의 깊이와 폭이 뒤진다는 느낌입니다.

암튼, 이런 소재와 이런 표달방식으로 글 지어내시는것에 탄복합니다.
스마일   - 2008/11/24 14:16:35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감수 적을렵니다.
지금 사회는 여자들도 자립하고 남자들 못지않게 여러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는 관념과 사상이 변하고 남자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봅니다.
남자들 또한 한번쯤 아픈 상처를 겪어야만 크게 되고 목표가 명확해 진다고 봅니다.
부족한 20대 올립니다.
金楓   - 2008/11/25 16:02:07  
축하하면 우려하는 마음도 함께 전한다.
이 작품을 읽을수 있는 조선족사회를 기대한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있어서 가히 선구자적 기념비적 작품이 되였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작품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최삼룡평론가와 이미옥씨의 평론에 동의한다.

정연   - 2008/11/25 16:27:20  
선생님. 또 한번 와서 읽어보고 갑니다.
소설이 점점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하네요 ^
김선   - 2008/11/26 04:09:03  
평론을 읽고 다시 와서 소설을 읽고 갑니다.
이 소설을 오래도록 기억할것같습니다.
박철수   - 2008/11/27 01:46:46  
최삼룡 이미옥 두분 평론가님의 도움으로 이 소설의 깊은 사상과 의미에 대하여 터득하였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작가님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창작하고 계실가는 궁금증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고 갑니다. 문학사에 오래도록 빛나는 한편의 명작으로 남게될것이라고 믿고싶습니다.
박철수   - 2008/11/27 01:48:54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리는 건의입니다.
작가님은 이처럼 좋은 작품들을 소설집이나 또는 수필집으로
묶어서 출판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출판비를 후원하고싶습니다. 제가 자세한 내용은 작가님의
이메일 liushunhao@hotmail.com 로 보냈습니다.
좋은 일에 투자하고싶습니다.
여정미   - 2008/11/27 06:33:07  
평론은 정말 주요한 것 같아요.
작가님만의 운치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뿜겨나고 있습니다.
작품이 하나도 저조하지않고 지극히나 서구적인 냄새와 함께
문학의 향기를 느끼게 만듭니다.


주홍매   - 2008/11/28 01:10:05  
소 설 이 정 말 재 미 있 어 요 . 다 리 해 됩 니 다 .
계미화   - 2008/11/29 03:03:34  
자기도모르게 오래동안 잠수탔습니다.
유순선생님의 글은 수필이던 소설이던 꼭 신선하고 충격적이애서
언제나 좋아합니다. 평론도 읽었고 너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전 솔직히 선생님의 소설을 읽은 기억속에는
제가 학교 다닐때 읽었던
-아아 님은 갔습니다...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제가 고중에 다닐때 읽었던 소설이라서 그런지
정말 그 소설이 최고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런 소설을 한번 더 읽고싶네요.
진선미   - 2008/11/29 11:18:51  
유작가님 오래간만입니다 ㅎㅎ

근데 글쓰는 스타일은 여전하시네요 ...

작가님 글에서 ..


[명령이 떨어졌지만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봉녀의 탱탱하게 부풀어올라있는 젖꼭지가 얼굴에 와서 다치었다. ]

그리고 아래부분은 정말 눈뜨고 볼수 없을거 같습니다 ㅠㅠㅠㅠ

앞으로 이런 글이 아닌 [ 가시고기 ] [ 아버지 ] [파란많은인생 ] 이런 스타일

으로 써보세요 ...니카엔 학생들이 더 많은걸루 알고 있으깐 .... -_-^


앞으로 좋은 작품 기대하겠어요 ... 좋고 감동스토리 인작품쪽으로 ....


추운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나 행복한 날들이 되세요 ㅎ.ㅎ


姜美蘭   - 2008/11/30 01:16:24  
유선생님 늦게야 왔다갑니다.
좀 바빴어요 ^^
언제봐도 유선생님은 깊이를 알수 없습니다.
좀 알것 같으면 또 이렇게 저희가 알수없고 보이지 않는
더 깊은 곳으로 혼자 가서 저만치 떨어져서 저희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가까이에서 접근해볼수 없는 선생님의 독특한 문학은 이제는
다득하게 느껴지네요. 그러나 다행히 니카가 있어서...

정말 너무 멋진 작품이였습니다.
lili   - 2008/12/04 16:10:02  
전번 바퀴벌레에 비해 이번글은 서운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미옥님 열심히 분석하시고 평을 하셨지만, 웬지 거부감이 드네요.(죄송하지만 ㅋㅋ)
글 자체에 거부감이 아니라 이미옥님 평이 솔찍히 맘에 안들었어요.

저의 짧은 소견으로써는 작가님이 알리고자 하는 뜻이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교배용의 수펄은 있지만 노동벌은 교배를 안하지요).

오직 벌의 여왕이 하나다는 점으로부터 수많은 벌들이 하나밖에 없는 여왕을 쟁취하려는 치렬한 전투를 보여준다는것도 어딘가 무리인것 같고(사랑이 없는 성적욕구가 그렇게 생존에 필요한것일가 의문???),

봉녀의 행위로부터 여인의 권위를 일으켜준다는것도 어쩐지 설득력이 없어보이네요(남남녀녀가 살아가는 세상 절대적인 그어떤 권위를 보장해야할 이유가???).

그리고 <나>는 벌이 아니여서 강하기에 살아 남았다(??).

진짜로 진짜로 전 이글에 내포된 작가의 뜻을 알수없는데 이미옥님의 평을 보면 이미옥씨도 제대로 포착못하고 평을 썼다는 느낌이 드네요.. .

아 글구 샘터님의 플 의견에도 설득되지 않았어요. ㅋㅋㅋ..
아이구,~~이런 완고통이라구야..ㅎㅎㅎ

작가님과 이미옥님, 샘터님 미안해유~~~
최미령   - 2008/12/09 13:40:27  
벌들의 이야기로 인간적 사실을 연관시킨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말해야될지 잘 모르겠네요.
뜻은 댓글도 보고 여러가지로 해서 이해는 햇다만... 아무튼 아저씨 잘 보고 갑니다. 미묘하게 뭔가를 깨달은것같네요. ㅋㅋㅋ
예나   - 2008/12/28 07:05:26  
삼촌 ^^ 미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해연   - 2009/01/01 09:27:51  
글속에 다른숨은뜻이 있어요^^
글의 겉만보고는 도저히 갈필을 잡지 못하겠는데요^ ^
09년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정금화   - 2009/05/10 01:27:46  
한번 읽었던 소설인데 오늘 또 다시 읽고 갑니당 ~
다시 읽어도 충격은 여전 ^^ 넘 뭇지세요 ~
하트   - 2009/05/10 12:03:11  
유작가님~ 저 왔다 가요^^
ㅋ... 근데 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구요~
다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 올리면 좋겠는데요...ㅎㅎ

지성   - 2009/05/14 09:49:54  
참으로 대단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중국조선족문학에서는 읽어본적이 없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중국공개지상에서 소개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철수   - 2009/05/19 19:52:18  
작가는 언제나 사회의 금기를 깨는 자다-황석영
전원주   - 2009/07/17 02:26:56  
소설 정말 좋네요. 이렇게 충격적이면서도 기억속에 오래오래 남을것같은 소설은 처음 읽습니다.
빨간인형   - 2009/09/22 09:52:50  
이 소설 진짜 디게 재밌네요^^
이미옥   - 2010/04/18 11:36:12  
낼모레, 발표 논문을 열심히 쓰다가
유순호 작가님의 “봉녀 이야기”가 또 제 발길을 멈추게 했네요...^^

여왕벌의 이야기라,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왕벌의 생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벌들의 집단에서 여왕벌은 단 한 마리만 존재하며 혹 로열젤리를 잘못 먹여서 두 마리가 여왕벌이 되는 경우에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웁니다.
사실 인간들의 집단도 이와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역사의 대부분이 그러니까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이 통치하는 체제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지요.
게으르고 뚱뚱해도 난자가 있어서 잘난 체 하는 말벌 같은 인간(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에 비유되지요.)도 존재하고 말없이 일만 하다 결국 가는 불쌍한 인간들도 득실하게 존재하는 게 인간사회의 실상이니깐요.

그러나 인간사회에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여기서 여왕벌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접근해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냥 벌이 아니라 여왕벌이어야 하며, 왜 소년은 봉녀를 만나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의 의미 같은 것 같은 것들입니다.

이미옥   - 2010/04/18 11:36:26  
역사의 무대에는 항상 남자들이 서왔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들입니다.
소설 속 화자도 “양봉을 함에 있어 꼭 여자와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그러니 “성공한 남자 뒤에는 위대한 여자가 있다.”는 말처럼 역사는 진짜 여왕벌 같은 여자들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추구하는 성공도 결국에는 아름다운 여자의 선택을 얻기 위한, 그리하여 더욱 우수한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것 일테구요.
우리의 삶이라는 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되어 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이라는 엄청난 시스템 안에서 마치 “매트릭스”처럼 움직여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봐서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그 역사적 사명을 위한 남, 여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됩니다.
욕망을 해소하고 난 후(정확히 말하면 성적인 결합 후) 남자는 엄청난 허무와 허탈감에 빠지지만 여자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잉태로 이어져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 더 큰 욕망으로 재생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생명력은 남자에 비할 수 없이 더 큰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죽어가는 말벌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남자의 쓸쓸한 역할과 허무에 대해서도 담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좌절이나 한계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저번 소설에서도 느꼈지만 유순호 작가는 인간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추함과 연약함 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그러한 적나라함은 인간 자체를 비판하는 듯 보이고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가만히 더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그러한 삶을 살아 내려는 생명력이 꿈틀 거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16살 소년은 소위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의 남성을 찾고, 경쟁에서도 살아남아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결코 쉬운 건 아니었지요. 육체적인 고통과 봉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수치심도 겪어내야 했으니까요. 어쨌든 소년은 봉녀를 통해서 “부활”했고 그랬기 때문에 더 강하게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든 여자가 봉녀 같은 건 아니지요. 모든 여자가 다 여왕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봉녀 같은 여자는 대단한 힘 즉 욕망을 가진 생명력의 상징이지요. 수컷들을 키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을 양산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하여 자신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진정 “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봉녀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창조”입니다. 단지 애기벌들 뿐만 아니라 수컷들도 잘 다스려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니깐요.
그러니 봉녀는 보수적이고 수줍음 많은 여자가 아니라 대단히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입니다. “일부일처제” 같은 것에 얶매여 있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냄새” -“향기”를 내뿜을 지도 아는 여자이지요. 봉녀의 목적은 한 남자를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수컷으로부터 “교미”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한껏~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보다보니 얼마 전에 극장에서 봤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뱀”처럼 요염하고 예쁜 주인공 손예진이 결혼을 하고도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지요? 그러나 묘하게 영화는 손예진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 갑니다. 손예진의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만으로 설득력을 얻어 내는 것이지요.
이건 변혁이지요. 사랑을 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 즉 서로 한사람만 볼 것을 암묵적으로 약속합니다. 그것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지요. 물론 생태적으로 “난 한 사람이면 족하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겠지만, 또 충분히 생리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결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 같습니다. 더 매력적인 상대를 보면 마음을 빼앗기고, 더 좋은 유전자를 갖기 위한 욕망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때 꽤 인기였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도 생각이 나는군요.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사회의 법도 도덕도 아니며 결국 우리의 유전자라는 것을 역설한 내용이었지요.

다시 소설로 돌아와 본다면,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러한 “진보적인 여성상”-여왕벌 봉녀의 강한 생명력과 그 생명력에 기대어 한 소년이 남자가 되고, 거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경험한 “통과의례”를 보여준 것이고, 좀 더 확장한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한 힘의 원천(여자의 욕망이라는 것)과 그 힘을 인정하고 전면에 드러내려 하는 작가의 “급진적” 사고가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대변했다고나 할까요, 대찬성입니다. (^^)
샘터   - 2010/04/18 11:40:35  
이 글은 인간의 <七宗罪 Seven deadly sins> 를 말하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예전에 본 니콜라스 캐츠가 주연인 영화 七宗罪 가 떠오릅니다
어느 도시와 멀리 떨어진 섬에서 살고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벌을 토템처럼 숭배하는데
모든 면에서 벌하고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여왕처럼 모든걸 지배하고 매년마다 마을에서 제일 순수하고 총명한 여자아이 한명을 뽑아서 남자하고 치례를 치릅니다. 그냥 후대양식을 위한 치례라고 할가요.그리고 나서 선택된 남자를 죽이고 하는 내용입니다...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는데 엄청 공포적입니다.
인테넷에서 찾아보면 칠종죄는 성경,단떼의 신곡에서 나옵니다.

여왕벌한테는 인간의 모든죄행 칠종죄가 전부 존재합니다
1.색욕- 이 글을 음란하다고 표현한만큼 글에서도 칠종죄중에서도 색욕이 처음순위. 여왕벌은 모든 수펄을 차지
2.탐식- 여왕벌은 로얄젤리밖에 안먹는다.
3.탐욕- 여왕벌이 되려는 탐욕
4.게으름- 여왕벌은 누워서 해주는대로 받는다.
5.질투- 시기하고 질투하던 끝에 죽을때까지 싸운다
6.분노- 애벌레까지 죽인다
7.교오자만- 마지막에 봉녀가 한 말
이 칠종죄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 악마라고 합니다.
이글은 봉녀를 여왕벌에 비유하여 인간의 칠종죄를 말하려한것 같습니다
헌데 응당 죽어야 할, 죽여야 할 나를 살려서 돌려보냈다는것은 칠종죄를 전부 갖춘 여왕벌 같은 봉녀한테 악마가 아닌 인간의 순한 마음이 있다는것을 말하려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왕벌이 칠종죄를 모두 갖고 있는 악마일지라도 수많은 벌을 잉태하여 벌을 사회를 형성시키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서 여왕의로서 모든 죄가 용서될수 있다?

늦은시간이여서 그냥 두서없이 제가 이해한대로 적어봅니다. 틀렸다면 많이 지적해주길 바랍니다.
이대훈   - 2010/04/18 11:56:18  
제가 읽은 유순호작가님의 수필들과 달리 최근에 창작된 3 편의 소설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거의 수식어를 찾아보기가 힘든 소박하고도 간결한 문자들입니다. 카크로치에 관한 소설은 3천여자 좌우 되고 이번의 봉녀도 고작 5천여자 쯤 되더군요. 단 한마디의 한구절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발견할수 없을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정채로운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의 하나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3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사유의 세계 깊이가 어디까지에 가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하여튼 삶의 세계가 상당하게 성숙되여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계에 대하여 소설로 그려내보이는 은유의 방법이 탁월했으며 표현력도 너무 놀라웠습니다. 특히 간결함에 있어서 간결미의 미학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단편소설이 중편소설 같아보이기도 하는 문장 형태상의 길이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부분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특히 카크로치와 봉녀는 깔끔한 압축미를 드러낸 소설이였습니다. 거의 흠을 찾아보기 힘든 소설이였다는 점에서 참으로 평론의 무한한 가치를 느끼게 합니다.
양춘백설   - 2010/04/18 11:58:24  
들어가는 말

최근 니카에 발표된 류순호의 단편소설《봉녀(蜂女)》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있다.

산에서 홀로 꿀농사를 하는 봉녀와 봉녀의 수하에서 한달간 꿀치기를 익히는「나」그리고 그 둘의 관계 그리고 또 그 이야기에 뒤받침되여있는 작자의 잠대사(潛臺詞)에는 실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있다.

봉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고 「나」는 이 소설의 화자이다.

여기서 먼저 하나 강조하고싶은것은「나」는 작품의 화자이지 작자가 아니라는것이다. 물론 이 소설의 한 인물이면서 화자인 「나」를 이 작품의 작자 류순호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 소설에 쓴 네트진들의 대글을 보면 적잖은 사람들이 화자와 작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기에 먼저 주의를 환기시키는바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나」를 작가 류순호라고 생각하면서 이 작품에 접근하면 오독(誤讀)을 피면하기 어렵기때문이다.
양춘백설   - 2010/04/18 11:58:53  

2. 성욕과 생명력과 권력의 화신 봉녀

봉녀는 비록 산골에서 외롭게 꿀농사를 하는 여자이지만 보통녀자가 아니다. 작자가 로골적으로 암시한것처럼 봉녀는 꿀벌군체에서 녀왕벌의 상징이다. 여기서 우리는 봉녀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꿀벌에 대한 연구를 하여야겠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꿀벌사회는 암벌, 수벌, 일벌 세가지 계층으로 구성된다.

이 암벌은 태여나서부터 불로장수의 령약이라고 불리우는 꿀벌의 타액선에서 나오는 분비물ㅡ로열젤리를 먹으며 왕왕 치렬한 경쟁에서 승자로 되여야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게 되며 그렇게 된 다음부터는 군체내에서 지고무상의 권력의 소유자로 된다. 그래서 녀왕벌이라고 한다.

그아래에 새 세대의 번식을 위해 전문적으로 여왕벌과 교배하는 임무를 맡은 소수의 수벌이 있고 또 수천마리 내지 수만마리의 일벌이 있다.

일벌은 역시 수벌이긴 하지만 그들의 생식기의 발육은 건전하지 못하고 란소가 없어 후대를 번식할 기능이 없다. 그러므로 한평생 꿀을 모으는 일을 하면서 여왕벌과 전체 벌공통체를 위하여 봉사하는수밖에 없다.

같은 수벌이지만 일벌은 여왕벌을 질투할 자격마저 없으며 태여나자마자 달갑게 여왕벌의 노예로 되여 충성을 다하는바 꿀을 채집하여다가 녀왕벌과 애기벌을 먹여살리며 수요될 때에는 자기의 생명으로 녀왕벌을 수호한다. 일단 녀왕벌이나 공동체가 위태로울 때에는 떨쳐나서서 꼬리부분에 있는 침으로 원쑤를 찌른다. 내장과 연계된 일벌의 침의 끝부분은 낚시침끝처럼 꼬부라져 적의 몸을 찌르고 나올 때 왕왕 자기의 내장까지 빠져나가게 되여 오래잖아 죽어버리게 된다.

이로하여 일벌은 왕왕 자기를 희생하며 충성을 다하는 보위병과 노복의 상징으로도 된다. 그들은 주인을 위하여 못하는 일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기를 기껍게 희생할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암벌은 바로 꿀벌군체에서 최고의 권력자 즉 왕이며 수벌과 일벌은 무조건 이 녀왕벌을 위하여 봉사하고 심지어는 이 녀왕벌을 위하여 희생하여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민족의 문화상징학에서 암벌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달갑게 자기를 따르데 하고 자기를 위하여 봉사하게 하는 매력이 있고 박력이 있는 녀자로 상징되여있으며 아울러 왕성한 생명력의 화신, 성능력이 뛰여나고 성욕이 매우 강한 녀자로 상징되고있으며 최고권력자의 상징으로 되고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류순호의 《봉녀》을 연구함에 있어서 우선 주의를 돌릴 대상은 암벌 즉 녀왕벌이다. 왜냐하면 봉녀의 성격이 바로 녀왕벌의 성격이기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봉녀는 비록 편벽한 시골에서 외롭게 묵묵히 꿀벌농사를 짓는 여자이지만 그의 성격과 기질은 바로 녀왕벌의 그것이다.

머리에 남달리 채양이 큰 초 모자를 쓰고 얼굴과 목에 분홍색 수건을 꽁꽁 두른 봉녀(蜂女)의 주변에서는 언제나 수백 마리의 벌들이 앵앵거리고 따라 다녔다. 벌통은 내가 졌는데 벌들은 왜 봉녀의 주변에서 맴도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것은 화자 「나」의 눈에 비낀 봉녀의 처음 형상이며 봉녀에 대하여 생긴 첫 의문인데 이 의문은 봉녀의 말로 풀이된다.

원래 봉녀는 이 숫한 벌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자기가 쓰는 수건의 색갈 등 복식에도 아주 신경을 쓰며 또 여왕이 되기 위하여 봉녀자신만의 냄새를 수벌들이 자고 먹고 하는 벌집에 몰래 뿌려둔다.

봉녀의 성격은 그후 「나」가 말벌에게 쏘였을 때 치료해주는 과정과 마침내 「나」의 첫녀자가 되는 과정을 통하여 생생하게 표현되였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봉녀가「나」를 치료하주기 위하여 말벌의 독액을 빼내는 과정에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말벌은 몸에 갈색털이 나있고 독침이 있는 벌인데 과일이나 꿀에 해를 끼친다. 이를테면 꿀벌의 적이라고 할수 있다. 말벌에게 쏘인 「나」를 치료하기 위하여 말벌의 독액을 빼내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봉녀의 뛰여난 판단력과 풍부한 경험 그리고 걸출한 능력을 보아낼수 있으며 또 봉녀의 온몸에 넘치는 성욕을 보아낼수 있다.

그럴 때 말벌이 독침을 내뻗으면서 독액을 분비했다. 봉녀는 그것을 들고 나에게로 덮쳐들었다.

「나왔어. 나왔어. 요놈이 마침내 그것을 내밀었어. 흘러나오고 있어. 빨리 수건 걷어.」

봉녀는 분명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고 말벌이 독침을 내 뿜으면서 독액을 분비할 때 한없이 흥분했다. 봉녀는 나의 곁에 와서 반쯤 기대며 왼손으로 나의 이마를 눌렀고 오른 손에는 독액을 떨구는 말벌을 나의 콧등에까지 가져다댔다.

「눈 감어. 눈에 독액이 튀면 큰일 나.」

명령이 떨어졌지만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봉녀의 탱탱하게 부풀어올라있는 젖꼭지가 얼굴에 와서 다치었다.

여기서 우리앞에 접근해오는 봉녀는 익숙한 솜씨로 말벌의 독액을 뽑아 「나」의 부어오른 얼굴에 떨궈주는 봉녀뿐이 아니라 또 성욕으로 충일된 몹시 흥분된 봉녀이다.

그 다음 우리는 「멍청하게 집안에서만 날아다니는것」들에 대한 봉녀의 평가에 대하여 응당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아. 불쌍한 것들. 그냥 없애지마. 벌집 안에 틀어박혀 멍청하게 집안에서만 날아다니는 것들한테 줘. 뚱뚱하고 게으른 녀석들이지만 난 저애들이 필요해. 난 저애들이 어디서 꽃가루 묻혀오던 말던 상관하지 않아. 저들은 밤만 되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잘 때 내 주위에 와서 맴도는 거야. 게으름뱅이들이지만 저애들은 난소(卵巢)가 있거든. 난소가 있으니까 나를 탐하는 거야.」

여기서 봉녀가 말하는 「멍청하게 집안에서만 날아다니는것」들이란 바로 수벌을 말한다.

꿀벌공동체에서 수벌의 직책과 생명의 의의는 꿀벌의 번식을 위하여 녀왕벌과 교배하는데 있다. 그런데 수벌은 일단 녀왕벌과 교배한 다음에는 오래 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교배시에 생식기를 녀왕벌의 체내에 떨궈버리기때문이다.

아무튼 수벌들이 필요하다는 봉녀의 말은 봉녀의 수벌들에 대한 기대감과 거기에 안받침된 왕성한 성욕이 암시되여있으며 이 왕성한 성욕은 또 봉녀의 왕성한 생명력을 나타내고있다.

여기서 필자는 모름지기 읽는이들에게 귀띰해주고싶은것이 하나 있는데 이 작품에 접근함에 있어서 봉녀의 세부적인 동작에 대하여 면밀한 주의를 돌려야 할뿐만아니라 그의 매 한마디한마디 언어에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돌려야 하며 더욱이 작자의 서술책략을 간파하여 어디까지가 실제 생활이고 어디까지가 작자의 상상인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는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은 많은 네트진들이 고백한것처럼 난해하기를 그지없는것이 된다.

보라. 여기서 「멍청하게 집안에서만 날아다니는것」들에 대한 평가는 비록 봉녀의 입으로부터 나왔지만 사실상에서는 있을수 없는 발상이다. 이 경우의 봉녀의 입은 사실상에서 녀왕벌의 입이다. 수벌들에 대한 녀왕벌의 호의와 기대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암시받을수 있는 것은 바로 녀왕벌의 성욕과 같이 왕성한 봉녀의 성욕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에 그려진 봉녀의 형상은 순수하고 리얼한 인물형상이 아니라 자연의 한 존재로서의 녀왕벌과 융합된 이중적인 형상이다.

우리가 여기서 봉녀가「나」와 그 일이 있은 다음 벌들과 속삭이는 말을 상기해보면 봉녀의 형상의 이중성을 더욱 명확히 파악할수 있을것이다.

「너희들은 말 안 해도 잘 알지? 난 너희들과 첫 경험 이후에도 다른 애들과 관계를 나눌 수 있어. 어제 밤에 너희들은 다 봤지? 콧등이 물린 저 애는 죽지 않구 살았어. 저 애는 물론 떠나갈 거야. 가고 나면 나는 또 새 놈이랑 만나서 대 여섯 차례 더 관계를 가져볼 거야. 몇 주가 지나 6월이 되면 나의 질에는 더 많은 정액이 쌓이게 되고 나는 수만 개의 알을 낳게 될지 몰라. 그것을 몽땅 너희들 봉 방에 선물할 테니까. 너희들은 섭섭하지 말아줘. 난 그래서 저애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는 거야.」

긴 분석이 없이도 알수 있는바 이것은 결코 순수 인간으로서 봉녀의 입에서 나오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 양봉녀의 말이지만 그밑에 깔려있는것은 사람의 체험이 아니라 녀왕벌의 체험이다.

양춘백설   - 2010/04/18 11:59:29  
3. 떳떳한 남자로서의 「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며 화자인 「나」는 열일곱살 나이의 남자, 봉녀를 따라 산에 들어와 꿀벌치기를 익히는 남자이다.

「나」가 회고적수법으로 열일곱살 때 봉녀와 있었던 첫 경험을 우리들이게 들려주는것으로 소설은 구성되였다.

이 산으로 꿀치기를 배우러 온 그는 봉녀의 일거일동에 대하여 많은 의문이 생기며 그 의문을 푸는 과정에 많은것을 배우며 점차 봉녀의 왕성한 생명력과 뛰여난 생존지혜와 능력에 감동되고 나중에는 봉녀의 넘쳐나는 성욕에 감염되여 마침내 봉녀의 남자로까지 되여버린다.

「나」의 성격을 파악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선 이 소설의 주인공 봉녀의 매 하나의 동작과 언어와 표정이 모두「나」의 감각에 의하여 묘술되였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전지전각적인 제3자의 시각에서가 아닌「나」의 제한된 시각에서 텍스트안에서 텍스트의 내용을 바라보기에 서사의 모든 국면이「나」의 단일한 시각에 의해서만 전달된다.

필자가 이것을 강조하는것은 다름이 아니라「나」는 이 일인칭 소설의 화자라는것이다.

그런데 작자는 「나」의 형상을 창조함에 있어서 작품의 한 주인공으로서의「나」와 화자로서의「나」이 둘사이에 추호의 바람샐 틈이 없이 잘 밀착시키고있다.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혼돈시키는 서술책략을 써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를 갈라놓기 어렵게 하고있다.

발포가 되었던 콧등이 다 내리고 산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오자 봉녀는 약속대로 나에게 자신의 몸을 모조리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날 밤에 나는 벌집에서 날아 나온 게으름뱅이들이 봉녀의 음모에 코와 입술을 박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나」가 봉녀와 첫경험이 있은 그 밤에 대한 묘술인데 작자는 역시 고의적으로 현실과 상상을 혼돈시키고있다.

「봉녀는 약속대로 나에게 자신의 몸을 모조리 보여주었다.」이것은 틀림이 없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벌집에서 날아 나온 게으름뱅이들이 봉녀의 음모에 코와 입술을 박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완전히「나」의 상상이다.

그아래의 게으름뱅이들과 봉녀의 섹스장면에 대한 묘사는 역시 상상임이 틀림이 없다.

게의 손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혀는 악마의 음경처럼 길고 흉측해보였다. 봉녀는 분명히 그것들의 혀가 자기의 음부 속을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데도 봉녀가 사람과 하는 듯한 체위를 시도하자 벌들은 능숙하게 해냈다. 그것도 역시 봉녀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바 여기서 작자는 고의적으로 녀왕벌과 수벌들의 교배장면과 봉녀와 자기의 섹스장면을 혼돈시켜 우리들에게 독해의 장애를 조성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봉녀가 녀왕벌의 상징인것처럼 「나」는 바로 수벌의 상징임을 보아낼수 있다.

그런데 묘한것은 꿀벌공동체에서 수벌들은 절대적로 녀왕벌과 한번 교배하면 죽게 되지만「나」는 기적적으로 죽지 않는다. 여기에 대하여 봉녀는 「사랑의 기적」이라고 말하고있다.

「아니야. 이것 때문에 살아 난거야.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워. 사랑의 기적이야. 밤에 그렇게 많이, 그렇게 깊게 밀어 넣었어. 그런데두 다시 무사하게 빼낼 수가 있었다는 게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 다른 애들은 다 죽었어. 깊이 들어올수록 빠져나가지 못해. 나가려고 버둥거리다가는 그것을 뜯어놔야 했어. 그러면 끝이야. 모든 것이 끝이야. 모두 목숨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어. 그런데 죽지 않고 살았잖아. 무사하잖아.」

표면적으로 보면 봉녀의 이 말은 수벌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개괄처럼 들리지만 잘 분석해보면 「나」, 수벌이 아닌 진짜 남자「나」에 대한 찬사인것이다.

여기에는 우선 작자의 극히 분명하고 단순한 론리가 안받침되였는데 그것은 즉 인간은 결코 수벌처럼 놀고 먹으며 피둥피둥 살이져서 한번 암벌과 교배하고는 죽어버리는 곤충이 아니라는것이다. 녀왕벌과 수벌의 교배는 자연적이고 습관적인 행위이지만 「나」와 봉녀의 그행위는 「나」의 「통과의례」이고 남자와 녀자의 사랑의 결과물이라는것이다. 그리고 이 봉녀의 말에 작자는 처음으로 남자가 돼본 「나」의 자신심을 은근히 깔아놓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무엇인가?」하는 이 원초적인 물음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한번 해답해볼것이 요청된다. 구경 문학은 문학이고 소설은 소설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것을 분명히 하여야 하는것이다. 류순호가 이 작품에서 하고있는것은 구경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지 꿀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것, 양봉학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는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본고의 마지막에 더 언급해야겠으므로 여기서는 이만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양춘백설   - 2010/04/18 11:59:52  
4. 봉녀와 「나」의 관계ㅡ 둘이 노는 권력유희

앞에서 고찰해본것처럼 이 소설에서 녀왕벌같은 봉녀는 왕성한 생명력의 상징이며 「나」는 수벌을 련상시키지만 수벌이 아닌 떳떳한 남자이다.

여기서 봉녀와 「나」 이 둘의 관계는 무슨 관계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것은 아주 흥미있는 문제이며 역시 이 작품에 접근함에 있어서 반듯이 해결하여야 할 하나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봉녀에게서 꿀치기를 배운다. 이러 의미에서 둘의 관계는 사장(師匠)과 도제(徒弟)의 관계 즉 사제(師弟)관계이다.

나이로부터 따지면 봉녀가 이상이고 「나」가 이하인데다가 봉녀가「나」를 「동생」,「동생」이라고 부르고 자칭 「누나」라고 하는것으로 보아 이 둘의 관계를 친자매는 아니지만 먼 자매(?妹)관계라고 할수 있다. 이 추측을 증명할수 있는것은 바로 어떻게 되여 「나」가 봉녀에게로 꿀치기를 배우러 올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에서 찾을수도 있는데 아마 이렇게 먼 자매관계라는 관계가 있었기에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였지 않았을까.

봉녀는 「나」의 첫 경험의 녀자로 된다. 바꾸어 말하면 16세의 「나」는 봉녀를 통하여 처음으로 남자로 되여본다. 여기로부터 이 둘의 관계는 연인(戀人)관계라고 할수 있다. 수벌을 상기시키는 「나」이지만 수벌과 다른 점은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죽지 않았다는것이다. 이 관계를 봉녀는 「사랑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이 둘의 관계를 사랑관계라고 하자면 미비한데가 적지 않으므로 그저 련인관계라고 해두자.

이제 권력론으로부터 이 둘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우리는 이 작품의 보다 심층적인 주제에 접근할수 있게 된다.

권력이란 일반적인 담론중에서는 사회관계중에서 눈에 보이는 지배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도덕학 내지 문화학에서 지배력은 능력, 기교, 혹은 품부(稟賦 ㅡ타고난 재능)와 류사하다고 해석된다. 다시말하면 외부세계에 효과를 산생시키는 능력 즉 사람의 모든 표연중에 잠재된 물리 및 심리 에네지를 권력이라고 총칭할수도 있으며 이로부터 사람이 구비하고있는 속성 혹은 품성을 모두 권력이라고도 칭할수 있으며 이로부터 권력에 대한 추구는 인류의 기본동기라고도 할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지배능력은 왕왕 세가지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로 일방이 다른 일방에 강제적으로 어떤 일을 시킬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되며 둘째로 어떤 공동체에서 유희규칙을 제정할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되며 셋째로 사람으로 하여금 불만을 일으키지 못하게 조종할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봉녀와「나」의 관계에서 우리는 봉녀가 바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상징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선천적으로 사제간의 관계에서 도제, 자매관계에서 동생이라는 이 각색이「나」는 피지배자이고 사장, 누나라는 신분이 봉녀는 지배자라는것을 결정하였다. 이것은 그리 리해하기 힘들지 않는데 둘의 련인관계에서 봉녀가 지배자라는것은 좀 분석해보아야 할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련인관계에서는 권력담론이 있을수 없다, 권력담론이 제기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련인관계는 평등관계라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권력에 대한 안일한 태도이며 역시 실제적이 못되는 리상주의적 리해이다. 사실은 미젤 포커(Michel Foucault) 의 말처럼 인간사회에는 권력이 없는 곳이 없으며 무릇 성욕이 있는 곳에는 권력관계가 있는것이다.

봉녀와 「나」의 관계를 보면 시종 봉녀는「나」에 대하여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녀가 어떤 복식을 차리는가? 그가 어떤 약으로 상처를 치료하는가? 그들이 언제 첫경험을 하는가? 등에 대하여 봉녀는 절대적인 지배력이 있을 뿐만아니라 이른바 련인관계도 철저하게 봉녀의 지배에 의하여 결정된다. 보라. 「나」를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는것도 봉녀의 권력의지에 의하여 결정된다. 살겠는가? 죽겠는가? 하는 결정권마저 봉녀에게 있으니 다른것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리고 「나」를 산에서 떠나보낸 다음에도 봉녀는 틀림없이 또 다른 남자들에 대하여서도「나」를 지배하듯이 지배할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봉녀와 「나」이 둘이 노는 유희규칙은 일방적으로 봉녀에 의하여 제정된것이고 그 유희과정도 줄곧 봉녀의 지배력에 의하여 진행된다.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다. 오히려 봉녀에 대하여 봉녀의 왕성한 생명력에 대하여 숭경하는 마음이며 자기를 남자로 만들어준데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다. 여기에는 작자의 봉녀의 생명력과 권력에 대한 모순된 의식이 안받침되여있다.

여기서 저 안토니오 게란스(Antonio Gramsci)의 저명한 한마디 론단이 상기된다.

문화패권이란 간단하고 적라라한 압박과 지배가 아니며 단순하고 조폭한 관념의 주입에 의하여 세워지는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피지배자의 모종 자원적인 승인과 여론과 의견의 일치가 요청된다.

바꾸어 말하면 권력은 대립되는 일방을 베여버리는것으로 유지되는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일방의 모종 리익을 자신에게 수용하는것으로 유지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봉녀의 권력에 대한 순종은 모종의 자원적인 승인의 결과물이라고 할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봉녀에 대한 숭배와 순종에는 아울러 권력에 대한 미련과 흠모 혹은 욕망이 뒤받치되여있는것이 아닐까.

제멋대로 펼치다보니 뜻밖에 아주 심각한 문제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일단 문제를 제기 하였으니 힘자라는데까지 밀어부칠수밖에.
양춘백설   - 2010/04/18 12:00:28  

5. 소설 《봉녀》에서 류순호의 서사책략.

이상에서 우리는 소설《봉녀》의 두 주인공과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비교적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아울러 이 소설의 창작에서 작자의 서사책략에 대하여서도 일부 건드려 보았다. 그래도 이 작품에서 작자가 하려는 말, 즉 이 작품의 주제가 구경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제를 분명히 하려면 우리는 아직도 이 작품이 안고있는 많은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여보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는데 작자는 이 소설을 창작하면서 고의적으로 현실과 상상을 혼돈시키고있으며 꿀벌과 사람을 교차시키고있다. 작자의 이 서술책략을 파악하는것이 우리가 이 작품을 독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하나의 작업으로 되여야 한다. 이른바 전통적이고 경전적인 소설미학에서 말하던 진실론으로는 이 작품을 포함한 류순호의 문학작품을 제대로 읽어낼수 없다는것은 이제 쟁론할 나위도 없다.

또 만약 누가 이 소설에서 꿀벌의 이야기를 삭제해버리고 양봉녀로서 봉녀의 이야기만 추려낸다면 결국 소설과는 거리가 먼 극히 무미건조한 몇마디 말밖에 남지 않을것이다.

봉녀도 꿀벌같고 꿀벌도 봉녀같다. 봉녀에 대한 송가인지 녀왕벌에 대한 송가인지 잘 모르겠다. 화자이며 주인공의 하나인 「나」는 봉녀의 권력에 순종하는 수벌이면서 또 봉녀의 생명력에 의하여 마침내 남자로의 성숙을 완성하는 남자, 생명력을 숭배하고 권력에 미련을 두고있는 남자이다.

이렇게 인물들의 이중성격을 씀으로써 비로소 류순호는 자기가 하려는 말을 할수 있었지 않았을까.

류순호의 다른 소설이나 수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도 남녀의 성애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성애묘사가 명확한 창작동기가 뒤받침되였다. 그것은 즉 녀왕벌의 왕성한 생명력과 지고무상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성애묘사는 필수적이였던것이며 「나」의 성숙을 보여주는데 성애는 「통과의례」로 제기되였던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봉녀와「나」의 성애묘사가 녀왕벌과 수벌들의 교배로 대체되였다. 아주 독창적이며 예술적이라고 평가할수 있다.

만약 우리의 전통관념에 의하면 이 소설에서 이 정도의 성애묘사라도 퍽 자극적이고 선정적(煽情的)이라는 평가를 받을수 있겠지만 이 작품의 안팎을 면밀히 따져보면 이 소설에서의 성애묘사가 역시 저급취미가 아니고 깨끗하다는 결론을 내릴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도 류순호는 심미(審美)보다 심추(審醜)에 더 신경을 쓰고있다.

주지하다시피 오래동안 우리 문학에서 심추는 생활중의 추악한것을 비판한다는 관념으로 풀이되였다. 다른것을 말하지 말고 우리가 로신의 소설에서 추악한것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림리(淋?)하였는가를 상기하면 이 문제는 쉽게 리해될것이다.

그러나 심추에 대한 현대적인 관념은 크게 변화되였는바 현대미학에서는 추는 곧 추이지 악(惡)과 가(假)의 부호거나 미의 대립면이 아니고 추도 미와 더불어 심미대상으로 리해되고있다.「추」는 「아름답지 않다」는 개념과 틀린다. 「아름답지 않다」는것은 밉고 낡았고 완벽하지 못하고 굳어졌다는 뜻과 통하지만 「추」는 평용하고 란잡하고 조작한다는 뜻과 통하는바 심추는 고유한 미학질서를 타파하고 창조주체의 반항욕을 표현하고 일종 설독(褻瀆ㅡ 더러움)에서 느끼는 쾌감을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한가지 수단으로 사용되고있다.

그리고 현대주의 문학과 예술의 발전사를 회고해보아도 서방현대주의 문학예술은 바로 숭고로부터 추에 이르고 추로부터 다시 황당에 이르렀는데 이것을 현대 문학예술과 미학발전의 3부곡이라고 한다.

우리는 류순호의 이 작품에서도 류순호의 심추의식을 쉽게 보아낼수 있다. 이 작품의 동기로부터 보면 원래 로동부녀로서의 봉녀의 미덕을 가송하는데는 전통적인 방식과 수단이 많지만 류순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과 이 소설에서 봉녀의 언어와 행동과 표정은 아름답다는것과는 거리가 멀거나 심지어는 그와 반대로 되였는바 읽는이들에게 더럽다는 인상을 준다.

중국의 어느 학자가 심추를 미문학에 반항하는(反抗美文學) 한 개념으로 해석한것처럼 우리가 여기서 느끼는 총적인 분위기는 류순호의 반항의식이다.

류순호의 작품에 그려진 질벅하고도 독립적인 추앞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문학작품은 너무나 우아하고 유약하고 아양을 부린다는 생각을 금할수 없다.

양춘백설   - 2010/04/18 12:01:13  
6. 소설 《봉녀》에서의 류순호의 잠대사

이제는 이 작품에서 류순호의 잠대사(潛臺詞)를 개괄할 때가 된것 같다.

구경 류순호가 이 소설에서 하려는 말은 무엇인가?
로동부녀 봉녀에 대한 송가인가? 꿀벌군체의 최고권력자 녀왕벌에 대한 송가인가?

「나」의 남자로서의 성숙과정에 대한 회고인가? 봉녀의 왕성한 생명력에 대한 「나」의 선망(羨望ㅡ부러워하여 바람)인가? 꿀벌군체에서 녀왕벌의 지고무상한 권력에 대한 「나」의 갈망인가? 우리 민족공동체에 봉녀와 같이 왕성한 생명력의 녀인들의 대량 창출할것에 대한 기대인가? 이 작품에서 남성으로서 류순호는 자기의 독특한 녀성주의를 선양했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저급적인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색정을 선양하는것인가?

필자는 이상 개괄이 죄다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읽는이에 따라 제나름대로 개괄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제의 다양성이 바로 현대소설의 매력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읽는이들에게 여러가지 사유의 광활한 공간을 만들어주는것이 전통소설에는 없는 현대소설의 우세가 아닌가.

여기까지 분석하면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이 끝난것인가? 아니다.

이 작품의 제일 믿바닥에 잔잔하게 깔려있는것은 류순호의 외로운 반항정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첫째, 류순호는 이 소설에서 전통적인 소설미학에 반항하고있으며 이른바 중국에서 지금도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있는 엘리트(elite)소설의 정치성, 엄숙성과 권위성에 반항하고있다. 류순호의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소설미학에서 소설의 3대요소라고 하는 환경, 인물, 묘사 중 환경과 인물은 아주 담박해졌다. 「열일곱살 때」,「어느 산골」 이밖에 환경에 대한 제시는 아무것도 없으며 두 인물은 인간인지 곤충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 대신 이 작품에는 창조주체의 풋풋한 시적정서가 있으며 복잡하고도 2중적인 정신실존이 있다.

둘째, 류순호는 이 소설에서 본질주의철학에 반항하고있다. 력사의 흐름, 우리의 현실, 인간의 본체, 기성 유희규칙 등등이 그래 본질주의 철학가들이 말하는것처럼 그렇게 필연적이고 아름답고 완벽하고 공평한가?

이에 대하여 류순호는 깊은 회의에 빠지고있다. 사실상에서 인간의 현실적 삶은 쪼각쪼각 깨여지고 부서진 상태로 존재하고 변화가 무상하고 순간에 나타났다가 순간에 사라지는 신비와 우연으로 가득차있다. 이것을 아는 류순호는 이 소설에서도 구태여 삶의 본질을 찾느라고 애를 쓰는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사는 감각의 파편들을 재현하기에 골몰하며 현실에 없는것은 상상으로 보충하고 사람에게 없는것은 곤충에게서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있는것이다.

셋째, 류순호는 「신체정치」에 반항하고있다. 이것은 약간의 설명이 요청되는 개념이다.

신체정치란 신체에 대한 규범과 반규범이 한차례 또 한차례의 승부를 겨루는 력사적인 게임중에서 형성된 하나의 문화학개념이다.

사실상에서 육체적충동과 욕망 그리고 쾌감은 신체에 숨어있는 생명력의 본질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Benidictde Spinnoza)는 「욕망은 사람의 본질자체이다.」라고 말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고금중외의 철학과 종교에서 신체에 대한 규범의 본질은 곧 신체욕망과 쾌감에 대한 압제였다. 유럽에서 고대의 순수리성이나 중세기의 금욕주의 그리고 17세기의 리성주의 그리고 중국의 유가에서나 도교에서 금욕주의는 모두 시종 리성을 감성보다 한층 높은 위치에 놓았고 리성이 감성을 이기는것은 문학의 한가지 모식으로 자리잡았다. 플라톤(Platon)은 사랑의 신을 두가지로 나누면서 순수애신을 찬양하고 정욕애신을 배척하였으며 공자는「극기복례(克己復禮)」를 제창하면서 사욕을 누르고 례의를 좇으라고 호소하였으며 오래동안 문학에서 신체와 욕망은 기시와 압제를 받았으며 리성으로 성욕을 말살해버렸다.

중국의 주류문화는 지난세기 80년대까지 줄곧 이러한 철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난세기 90년대에 이르러 중국의 문론에서도 드디여 신체정치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였으며 「세계의 모든 문제는 곧 신체문제로부터 개시된다」는 리론도 나오고 「녀인의 신체는 권력이 물샐틈없이 밀집되여있는 공간에 놓여있으며 역시 시공을 초월한 복잡하고 번다한 부호를 상징하고있다」는 리론도 나오고 「문제는 신체가 오로지 자신의 법칙에만 순종하는가, 아니면 령혼의 법칙에 순종하는가 이 량자를 대립되는 존재로 만들지 않는가에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신체는 비록 인간해방의 종점이다. 그러나 신체는 모든 사회관계의 해방을 담당할수는 없다.」는 담론도 나오고있다.

문화발전의 이러한 총적인 흐름속에서 류순호의 신체정치에 대한 반항을 리해한다면 우리의 심신은 퍽 가벼워질것이다.
양춘백설   - 2010/04/18 12:01:29  

7. 결론

이제는 류순호가 이 소설에서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말할수 있을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류순호는 이 소설에서 기성권력에 대한 반항을 보여주려 한것이다.

물론 이 반항은 당과 국가나 제도에 대한 반항이 아니며 정치적인 반항이 아니라 문화패권에 대한 반항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과 국가기구와 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 침투되여있는 전통미학과 전통철학 그리고 신체정치에서의 탈출과 해방이 없이는 한 지성인으로서 제대로 숨을 쉬면서 살아갈수 없다는것을 류순호는 비교적 심각하게 깨달은것 같다. 그래서 반항하기 시작한것이다.

문화패권에 반항하는 류순호가 어떻게 되여 봉녀의 녀왕벌식 권력은 숭상하는가? 이 아니 모순인가? 그렇다 . 모순이다. 심각한 모순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좀더 생각해보면 지금같은 세상에서 권력에 대한 반항은 권력에 의한 반항이여야 한다. 싸구려랑만주의자가 아닌 류순호가 어찌 이 도리를 모르랴. 딱히는 몰라도 류순호는 미국이민생활 먼저 중국에서 언녕 이 도리를 깨달았을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설《봉녀》에서「나」가 봉녀의 권력에 순종하고 흔상하는것은 극히 자연스럽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류순호처럼 문화권력에 반항의 기치를 든 지성인 혹은 작가는 아직 극 소수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류순호의 반항을 외로운 반항이라고 한다.
혹여 류순호의 이 반항은 비극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진정한 지식인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며 비극적운명의 소유자들이였다.

그들은 모두 한시대의 진리를 먼저 예측하였기에 외롭지 않을수 없었으며 슬프지 않을수 없었다. 로신이 그러하였으며 호풍이 그러하였으며 마인초가 그러하였으며 김학철이 그러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는 고독과 비극을 수요하며 지식인 또한 고독과 비극을 수요하는것이 아닐까.

중국에서는 이런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로써 존경하는 류순호작가를 면려하고 내자신을 안위할따름이다.

이미옥   - 2010/04/18 12:04:39  
“봉녀”는 “바퀴벌레”에 이어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년의 첫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여왕벌 같기도 하고 “대단한 여인” 같기도 한 그녀와의 결합을 통해서 소년에서 한 남성으로 변환되어 간다는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삶의 단면들과 봉녀의 다양한 면모는 거친 사회를 살아내는 여성성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미옥   - 2010/04/18 12:05:09  

1. 인간사회와 “무한경쟁”

인간집단의 모습은 종종 개미에 비유되어 왔지만 “벌”에 비유하여 이해할 수 있음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몇 가지 측면에서 그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에 따라서 엄격히 분화되어 있다는 것, 노동을 해야 하는 벌과 애기를 생산해야 하는 벌과 여왕벌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비록 “민주시대”로 전화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질서”를 갖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일면을 보인다. 게으르고 뚱뚱해도 난자가 있어서 잘난 체 하는 말벌 같은 인간(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에 비유된다.)도 존재하고 말없이 일만 하다 결국 가는 불쌍한 인간들도 득실하게 존재하는 게 인간사회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인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국가, 인종, 부, 외모, 지위 등에 의해 한계 지워지며 그 패러다임 안에서 평생 고투하는 모습은 “벌”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둘째는 “여왕벌”이 되기 위한 “생사결투의 현장”인데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벌들의 집단에서 여왕벌은 단 한 마리만 존재하며 혹 로열젤리를 잘못 먹여서 두 마리가 여왕벌이 되는 경우에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현상이 일어난다.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우리의 역사의 대부분이 왕권통치의 시대였고 “패권”에 대한 열망은 다른 이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살벌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성적 욕망 다음으로 가장 큰 것으로, 인간은 늘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타인을 짓밟고 이용 하는가 가하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온갖 제도와 규율, 심지어 자신의 “권위”로 타인에게 말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마르크스 사상과 혁명은 이러한 체제를 뒤엎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인류 역사의 최대의 도전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패러다임에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힘”이 있어야 하고, 국가든 개인이든 삶의 1차적 목적인 바로 “생존”을 위해서는 “힘”을 기르는 일에 전력을 다 하게 된다. 노예시대-봉건사회-자본사회-사회주의 실패를 거쳐 민주주의 시대에까지 이르렀지만 “통치하기 위한” 전략은 교묘해지고, 무한경쟁과 고도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미옥   - 2010/04/18 12:05:30  

2. 생존을 위한 소년의 “통과의례”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어린 소년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세상은 편하고 공평할 것.”이라는 환상을 깨는 일이다. 소년은 아직 세상의 살벌함을 모르며 남성으로서의 여성과의 결합에 대한 경험도 전후하다. 봉녀와의 만남을 통해서 소년은 최초로 말벌과 경쟁하게 되고 말벌이 주는 독침으로 고통 받게 되며 봉녀의 보살핌으로 구원받게 되고 그녀와의 결합을 통해 남성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자궁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현장을 은밀하게 스케치한 것 같이 은유적으로 묘사되었다. 즉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기 위해서는 수억 마리의 정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나 그 중에서 살아남아 수정이 되는 건 단 한 마리뿐이다. 소년이 죽지 않았던 건, “사랑의 힘”보다도 그 자신이 다른 말벌과의 전쟁에서 (다른 수컷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수억 마리의 정자 중, 살아남은 한 마리의 정자처럼 소년 또한 치열한 “경쟁”에서 봉녀의 선택을 받아 살아갈 힘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니 “살아남는 다는 건”, 사랑이냐 행복이냐를 떠나서 “전쟁”이다. 그렇게 수억 마리의 경쟁을 거쳐서 태어나서도 여전히 우리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 던져져 있다. 사랑이니 도덕이니 하는 건 어쩌면 “위선”일 수도 있음을 작가는 당당히 제기하고 있다. 삶을 한 꺼풀 벗겨보면 누구나 “신음소리”-마치 철없는 소년이 벌을 건드려서 생채기가 난 것처럼 온통 힘들게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년은 살아남았고 무사히 사회에 귀환했으며 이제는 스스로 기회가 된다면 “양봉”을 하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봉녀와의 경험을 통해서 소년 또한 기르고 창조하는 삶을 긍정하게 되고 자신 또한 그러한 역할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이미옥   - 2010/04/18 12:05:51  
3. 왜 봉녀인가, 봉녀에 내재된 두 가지 속성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봉녀의 1차적 상징은 “여왕벌”로 비유되는 강력한 통치체제를 바탕으로 한 일인자의 상징이며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고 “이기적으로” 경쟁력을 축적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표상이다. 소설 속 봉녀는 자신만의 “냄새”로 자신의 권위를 부여 받고 꽃 수건을 두르는 등의 방법을 통해 벌들을 유인한다. 말벌의 독액을 빼내기 위해서는 가슴을 살짝살짝 건드릴 뿐 “직접” 죽이지는 않는다. 또한 말벌들과 대화하고 달콤한 속삭임으로 그들을 설득시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이처럼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노련한 “기법”에서 새로운 통치의 전략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둘째는 이런 이기적인 리더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봉녀는 또 자신의 수하(수컷들과 애기벌들로 비유되는 남자와 어린이들)들을 살뜰히 돌보는 모성본능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독액을 빼낸 말벌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며 소년을 살려주고 어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조력자”로서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작가가 이처럼 “여왕벌”을 신선한 통치 체계를 통해 새로운 리더의 조건을 제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리더가 필요한 사회라면 남을 짓밟고 분열된 양상을 보이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보다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화합하고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수평적 관계로서의 새로운 상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이미옥   - 2010/04/18 12:06:10  

4. 또 하나, “진보적 여성-페미니즘의 문제”

소설 속 봉녀의 이미지는 거침없고 솔직하며 과감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남자를 기다린다.”는 벌들과의 속삭임에서 간과할 수 없는 봉녀의 “요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사실 모든 여자가 봉녀 같은 건 아니다. 모든 여자가 다 여왕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욕망의 크기가 다른 것처럼 봉녀는 유난히 큰 욕망과 힘을 가진 생명력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숫한 벌들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을 양산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봉녀는, 자신의 힘으로 왕국을 건설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적 존재이기도 하다. 봉녀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창조”이다.

그것을 위해 봉녀는 남자와의 “육체적 화합”을 통한 “힘의 축적”을 시도한다. 단지 애기벌들 뿐만 아니라 수컷들도 잘 다스리는 등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봉녀는 보수적이고 수줍음 많은 “전통적 여성”에 비견되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이다. “일부일처제”와 같은 제도에 얽매여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냄새로 향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봉녀의 목적은 한 남자를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수컷으로부터 “교미”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한껏 확대시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팜므파탈의 이미지와도 유사한 듯 보이나 결정적으로 보면 남자를 파멸시키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팜프파탈과는 다르다. 단지 “유혹”으로 보이는 여성의 존재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남자의 그늘에 서 있는 여성들의 욕망에 의해 오히려 세상이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자들이 추구하는 성공도 아름다운 여자의 선택을 얻기 위한, 그리하여 더욱 우수한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해소하고 난 후, 오히려 남자는 엄청난 허무와 허탈감에 빠지지만 여자는 그것이 잉태로 이어져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 더 큰 욕망으로 재생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자의 생명력은 남자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왕벌과의 교접에서 실패하고 죽어가는 말벌들의 모습은 어쩌면 남자의 쓸쓸한 역할과 허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좌절이나 한계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들의 시체는 또 다른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공급되고 그렇게 생명은 끊임없이 순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러한 “진보적인 여성상”-여왕벌 봉녀의 강한 생명력과 그 생명력에 기대어 한 소년이 남자가 되고, 거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경험한 “통과의례”를 보여준 것이고, 좀 더 확장한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한 힘의 원천(여자의 욕망이라는 것)과 그 힘을 인정하고 전면에 드러내려 하는 작가의 “급진적” 사고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미옥   - 2010/04/18 12:06:24  
5. 전략적 기법에 대한 소고(小考)

위에서 살핀 것처럼 봉녀는 이기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모성본능을 갖고 있으며 또한 요부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이러한 겹 층의 이미지는 분명 한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로 읽어내기에는 조금 다른 속성 때문에 독자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사람들은 “인지부조화의 원리”로 모순된 측면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이미지는, 이기적이고 전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온전히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 읽어 내려는 독자들은 다소 길을 헤매기도 한다.

또한 기법적인 측면에서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상징 대상물과 화자와의 동일시는 이번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봉녀와의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나는 사라지고 벌로 대체되어, 관계를 한 것이 벌인지 인간인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는 보통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감한 소재를 빌어 와 가감 없이 인간의 실상을 파헤치는 작가의 단 하나의 “위장”이며 유일한 “방패”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는 “죄”로 인식되는 “성”의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데 있어, 아담 또한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는 맨 처음으로 자신의 “성기”를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려야 했다.

작가 또한 인간의 성적 욕구의 본성을 거침없이 표현하는데 있어 이러한 “죄”와 “수치”의 문제를 완전히 피해가는 대신 동물로 환원시키는 장치를 선택한 것이다.


  - 2010/04/18 12:09:23  
소설만 읽으면 저 역시 다른 독자분들이나 하나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리벙벙합니다. 이미옥님의 평론을 읽고 봉녀의 형상상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류순호선생님이 최근에 창작하고 계신 여러편의 단편소설들(<빵순이는 즐겁단다>(주인공 빵순이) <완두꽃을 먹는 녀자>(누나))에서도 봉녀 비슷한 형상들이 련상되였습니다. 이미옥님의 판단하신대로 <진보적 녀성의 견강한 생명력>이라고 공감하게 되지만 보다 생명력의 깊은 안에는 녀성의 야욕과 음심같은것이 느껴집니다. 야욕과 음심을 바로잡을수 있는 사랑과의 갈등이라고 해야할지..............어쨌던 녀성은 해방되였다고하지만 정치적 인권차원에서의 해방과 남녀평등이고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하여 더욱 주목하게되는것은 인간의 원욕에있어서 녀성들은 모계시대를 잃어버린뒤로부터 수천년동안 녀성특유의 야성까지도 모조리 짓밟혀왔던것이며 작가는 그런것에 대한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것이나 아닐가요??? 야성이 구체적으로 어떤것인지 전문가들이 표현하기에 따라 여러가지형태로 많이 존재하겠지만 작가는 이 소설에서 남자가 녀자의 음모속에다가 <코와 입술을 박았다>는 묘사로 표현했군요. 도덕적규범과 사회적인 통념관습상에서 보면 지금 시대에 성경험을 갖고 있는 남녀가 오렐섹스하는것은 정상적인 보편화된 현상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클린턴)까지도 오렐섹스추문으로 국가 청문회에 나서야했던 과거사도 있었지요. 마광수의 <성애론>도 오렐섹스에 대하여 상당히 깊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아마 서방문학에서는 스스럼없이 류행하고있지않나 싶은데 우리 조선족문학내지 중국문학권은 아마 아직은 아닌듯 싶군요. 그런데 제가 감탄하는것은 꿀벌의 동물계에서는 남자벌이 녀자 왕벌의 성기속에 삽입한뒤 빼내지 못하고 모두 죽는 과학적인 사실은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냈고 벌을 키우는 젊은 녀자와 있었던 밤의 정사를 통하여 묘사는 벌이 녀자와 한것처럼 만들어놓고 아침에 그것은 바로 소년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살짝 밝혀놓은것이 정말 기묘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여러번 읽으면서 꿈이야기를 썼는가 아니면 정말 벌이 녀자의 성기속에 들어가는것철머 환각이 일어나게 만든것이였나 판단하느라 했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얼떨떨하지만 우에서 如然님이 이것은 왕벌들의 세계에서 비행시합을 통해 배우자를 택하는 <<婚飛擇偶>>라는 표현을 읽고는 정말 이것은 의심할바 없는 한편의 독특한 예술이구나고 생각했습니다.
수현   - 2010/08/14 08:16:52  
ㅎㅎ 잘 읽구 가요

좋은 아침 시간이 되였습니다
햇살이   - 2010/08/14 12:44:05  
완전 !!!!!!!!!!!!!!! 몰살아요 ^^
남호   - 2010/08/14 13:18:19  
이건 정말 대단한 소설입니다.
이렇게 짧게 씌여진 소설인데 이렇게 읽고난뒤에 충격이 크군요.
(그런데 혹시 전에 읽었던것과 조금 다른같은데....
혹시 수개라도 하신건가요? )
박상욱   - 2010/08/15 01:19:11  
다른 평론가님들의 평론도 훌륭하지만 가장 마음에 느껴오는 부분을 골라보았습니다.
春님의 리플에서 이 한마디가 가장 대표성을 띄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소설은 짤막한데 평론 리플을 읽는데 긴 시간을 보냈군요.
솔직히 읽으면서 이 소설을 재차 읽어보았습니다.
박상욱   - 2010/08/15 01:19:30  
이 소설이 발표되는 오늘을 시작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봉녀의 어제는 모두 낡은 인습속에서 녀성의 야망이 짓밟혀왔다고 해야 하는것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인습과 낡은 제도 모두에 대하여 강력한 도전을 선포하는것이라고 해도 됩니까? 남자가 항상 한마리의 벌레처럼이나 녀성에 대하여 성노래기 아기출산도구 영원히 남자에게 종속한 노예 비슷한 이미지로 간주되는 어제까지의 <짓밟힌 녀성의 야욕>에 대하여 해방을 호소하였고 이런 해방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수현   - 2010/08/15 07:40:55  
ㅎㅎ 역시.. 한번읽으면 완전히 알수 없었던 글을 오늘 또 와서 읽구 갑니다..

읽는 그대로 의미가 다인줄 알았지만.. 몰랐습니다

이렇게 풍부하고도 깊은 의미가 있을줄 ㅎㅎ .

왜냐면 그대로의 내용도 재밌었는데요 ㅋㅋ

이런 의미를 갖고 또다시 읽어야 할것 같습니다..

대단합니다 ~

????   - 2010/08/15 16:17:29  
이상한 디자인보고 에로영화 광고인줄 착각했단데... ㅋㅋㅋ
????   - 2010/08/15 16:18:56  
아무튼 대단한 소설이라는 점은 인정.

짤막한 소설이지만 파격적인 성묘사가 하도 기묘하게 진행되여서....

나나   - 2010/09/17 11:09:37  
대단합니다.
이 유명한 소설 이제야 읽구 가요
추천해요
려수니   - 2010/11/19 08:04:19  
너무 황당해요 !!!!!!!
홍윤기   - 2011/08/03 08:48:01  
사람의 자리를 동물과 사물이 차지한다는게 소설에서는 전혀 낯선 설정이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라면 가을층 심화된 인간소외의 국면들이 글 쓰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충동하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인간중심적 사고의 폐해와 한계를 그와 같은 관계의 확장을 통해 반상적으로 초극하려는 시도로도 읽을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왔다.
최학근   - 2014/01/01 19:48:49  
기묘한 묘사에 극찬을 보내면서 무궁한 발전 기원합니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파야   - 2019/12/13 21:11:45  
같은 문장이라도 연륜에 따라 견식에 따라 사람마다 각자 다른 해석이 있곘지요.
요즘말로 어장관리라고 하죠.저는 봉녀를 보며 딱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벌의 습관을 알고
종족을 알고 다스릴줄 알고 컨트롤까지 아는 여자~고수중의 고수요 왕중의 왕이 아니겠어요?한 사람한테 억매이지 않고 한놈 보내고 또다른 놈 맞이할 준비하고 있는 봉녀~주었지만 다 주진 않았고 안았었지만 완전히 안은게 아닌 봉녀의 품을 그리워하며 가슴에 묻고 살 그 남자...한마디로 고수한테 걸린겁니다.ㅎㅎㅎㅎㅎ
추천하기 목록으로


64.  만주기생 (滿洲妓女)     피안 2014/08/01 33034
유순호[재미 조선족 작가]





  하루 저녁 어느 한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몇은 춤과 노래를 잊은 채로 연변에서 오신 M선생의 주변에 모여앉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보니 누구도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
63.  괴물 드진     피안 2010/08/03 15385
   [글 쓴이: 유순호, 재미 조선인 작가]


                        ...
62.  중편소설 '몬탁괴물' (2)     피안 2008/12/11 12238

    캐서린이 토니를 폴의 엄마보다 더 구질구질하다고 말하는 근거는 몇가지 있다. 그나마 폴의 엄마는 그래도 2층에서 살고있잫아. 근데 넌 뭐냐? 이거다. 반지하도 아니고 제일 통지하에서. 거기다 쥐까지 득실거리는 땅밑에서 사니까 하는 말이다. 지하철과 가...
61.  중편소설 '몬탁괴물' (1)     피안 2008/12/11 11146



    “찍찍”
    쥐가 우는 소리에 잠을 깬 토니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쥐 우는 소리가 출입문 곁에 놓아두고 있는 쓰레기통쪽에서 나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쥐가 보이지 않았다. 베...
60.  단편소설     피안 2008/07/01 24052
[유순호 단편소설] 빵순이



  해승이와 길을 걷다 보면 그녀는 '파란 리본'이 들어간 빵집을 만나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꼭 들어가서 뭐든지 한조각 사들고 나온다. 내가 뭐라고 나무라면 그녀는 나에게  “헤헤.”하고 ...
.  봉녀     피안 2008/11/17 23425
  [글 쓴이: 유순호, 뉴욕조선족통신 대표, 재미 조선인 작가]


   "참 이상하네..."
   나는 헐떡거리고 봉녀의 뒤에 따라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중얼거렸다.
   "뭐가?"
   ...
58.  죽은 쥐 나무     피안 2010/08/03 11178
   [글 쓴이: 유순호, 재미 조선인 작가]


                        ...
57.  昆蟲三部曲之一/鼠     피안 2009/01/12 15416

   내가 폐차장 쥐동에서 살 때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다.

   롱아일랜드에서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집까지 팔아먹은 한 유태인 할머니가 시커멓게 생긴 잿빛 고양이를 안고 이사왔는데 이 고양이의 이름이 불랑카였다. 고양이가 늙었는지 아...
56.  昆蟲三部曲之二/蜂     피안 2008/11/17 15050
   나는 열여섯 살 때 처음 연상의 여자와 관계를 가져보았다.

   그 여자가 봉녀(蜂女)였던 까닭에 나는 만약 가능하다면 언제라도 죽기 전에 꼭 한번은 양봉(養蜂)을 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만약 혼자가 아니고 어떤 여자와 함께 한다면 더 재미날 것...
55.  昆蟲三部曲之三/蟑螂     피안 2008/10/19 10988



   벽에 붙여놓은 카크로치(cock-roach, 바퀴벌레)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다니면서 맨하탄의 부자들이 내다던진 테이블이나 또는 의자 다리를 줏어다가 머리와 어깨부분에 뼈대(b...

목록으로 다음페이지 1 [2][3][4][5][6][7]
 
Copyright 1999-2019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