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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의 귀순 전후과정-김일성 평전(하권) 발췌
피안   Hit : 1801 , Vote : 60        [2018/07/28]




[편집자의 말]

북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가끔씩 "김재범"이라는 이름이 나오군 합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항일연군의 역사에서 굉장하게 주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특히 2군 6사에서는 김일성 다음으로 주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북한의 모든 김일성의 항일투쟁사와 관련한 영화나 드라마 또는 책에서 보면 김일성은 사령관으로 되어있고 그의 곁에는 항상 정치위원이 존재하는데 이 정치위원은 이름이 없이 그냥 "정치위원"일 뿐입니다. 이  정치위원이 바로 김재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김재범은 그냥 단순한 김일성의 정치위원에만 불과했을 따름인가? 아닙니다. 김재범은 원래 6사의 주력부대였던 7퇀(연대)의 정치위원이었습니다. 후에 6사 부사장으로 선출되었고 2방면군이 결성된 뒤에는 2방면군 부지휘와 함께 당 위원회 서기로 임명되었던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는 김일성의 상관까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40년 3월 제2차 "두도류하 회의"(중공당 남만성위원회와 제1로군 당 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남만성위원회 동만사업부 부장(동만사업위원회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동만에서 군사활동을 하게 될 김일성의 2방면군은 이 동만사업위원회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일성 본인도 이 위원회의 일반 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김재범은 어젯날 김일성의 부하에서 김일성의 상관으로 바뀌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김일성은 그 명령에 따를리가 없었습니다. 그가 동만사업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기의 작전구역인 동만지방을 버리고 소련으로 달아다나는 바람에 군사적인 후원을 받지못하게된 이 동만사업위원회는 와해되며 김재범은 1940년 7월에 체포되어 귀순하고 맙니다. 한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었던 김재범의 체포과정을 현재 집필 마감단계인 유순호작가의 "김일성 평전"에서 일부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  


[사진설명] 귀순하여 노조에 쇼토쿠 토벌사령관(앞줄 중간, 그의 왼쪽은 다나카 요지 간도성 경비과장, 오른쪽은 유홍순 간도성 차장) 등 당시의 일본측의 고위관료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김재범(왼쪽 첫번째, 안경을 낀 사람),  그의 오른쪽 곁에는 3방면군 참모장 박득범과 김백산이 나란히 서있다.  






“위기를 극복하면 반드시 기회는 찾아온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그동안 안도와 화룡지방에서 한동안 뻗혀보았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계속하여 위기의 연장전이었다. 대오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겨우 7, 80여명밖에 남지않자 김성주는 더는 뻗혀낼 수 없음을 실감하기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때 열렸던 회의가 바로 오늘날의 북한에서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이 제시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라고 주장하고 있는 “소할바령 회의”(주체29(1940)년 8월 10일부터 11일까지)였다.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시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회의는 단 이틀만에 끝났다. 첫날 회의에서는 또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할데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보고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시한 전력적 과업에는 허다한 미사려구가 들어있다. 무슨 “력량을 보존축적”하고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로 육성”하고 또 나아가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키는 등, 이러루한 투쟁방침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군사적으로 “소부대활동”으로 전환하여야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지휘간부들과 전사들은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하고 세게의 모든 혁명력령과의 련대성을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작전적 방침을 제시하여 주었다고 그렇듯하게 널어놓고 있지만 실제 내막은 달랐다.
이 회의에 참가하였던 무량본이 생전에 남겨놓았던 이야기에 따르면, 이 회의는 한마디로 “도주를 모의했던 회의”였다. 이 회의 직전 이미 돈화의 한총구에 나와있었던 위증민에게도 비밀에 붙여두었던 회의였다.
위증민이 화전에서 돈화로 나왔던 것은 김재범과의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위증민과 김재범의 사이에서는 무전기로 연락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무전기는 1940년 1월에 소련의 하바로프스키에서 열렸던 “중공당 길동, 북만성위원회 대표연석회의”(일명 ‘제1차 하바로프스키 회의’)를 앞두고 소련공산당 원동지구 당 조직에서 소련과 비교적 멀리에 떨어져 있었던 남만성위원회와의 연계를 취하기 위하여 당시 소련군을 대표하여 항일연군의 소련이동 문제를 전문적으로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던, 왕신림(王新林)이라는 중국 별명을 사용하고 있었던 극동군 정보부장 소르킨(索尔金, Sorkin)이 직접 책임지고 보내주었던 최신 연락장비였다. 왕신림(王新林)이라는 이 이름도 소련 이름 와시리(瓦西里, Vasily)를 음사(音寫)한 것이었다. 그때 왕신림이 보내주었던 무전기 두 대가운데 한 대는 위증민이 남겨두고 다른 한 대는 바로 김재범이 가지고 동만으로 나왔던 것이었다.
그만큼이나 위증민은 동만사업위원회에 대하여 굉장히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7월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김재범쪽의 무전기가 먹통이 되고말았다. 무전기가 전지(電池)가 떨어진데다가 유일하게 무전기를 사용할 줄 아는 무전수가 그만 산에서 내려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무전수의 이름은 박동무(朴同志)로만 알려지고 있다.
박동무는 부모와 동생들이 모두 오늘의 용정시 세린하향 일신(日新)대대에 살고있었다. 특히 동생들 가운데 하나가 세린하의 친일 대지주 손영명(孫榮銘, 1947년에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했다)의 집을 지키는 자위단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범은 박동무의 집과 비교적 가까운 오늘의 세린하향(細鱗河鄕) 단결(團結)대대로 들어가는 장대에다가 사업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 장대의 이름이 바로 그 유명한 태양령이었다.
태양령에서 일신까지는 겨우 10여리 남짓할 뿐이었다. 30여명의 자위단이 지키고 있었던 손영명의 집은 높은 토성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토성 네귀에도 모두 포루가 있었다. 박동무의 동생이 자위단에 있었기 때문에 일신쪽으로부터 오는 위협은 방비가 된다고 생각한 김재범은 주로 대흥동쪽의 동태에 대하여 주시하였다. 왜냐하면 태양령에서 4, 5리 들어간 대흥동 골안은 화룡에서 연길현으로 이어지는 열두 산골짜기중 마지막 골짜기였다. 이 열두 골짜기가 끝나면 바로 평강벌이 펼쳐지고 평강벌을 지나면 장산령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태양령에서 불과 7, 8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각각 노두구(老頭溝)와 동불사(銅佛寺)가 좌우로 나뉘어있었다. 노두구방면으로 나아가면 안도와 가까워지게 되고 동불사방면으로 내려가면 바로 조양천을 거쳐 간도의 수부 연길에 도착하게 되어있었다. 한마디로 간도의 심장부와 같은 곳에다가 동만사업위원회 첫 거점을 설치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박동무가 어느 하루는 집에 갔다오더니 몹시 의기소침하여 김재범에게 물었다.
“주임동지, 우리가 진짜로 일본군을 이겨내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기나 한겁니까?”
“왜, 갑자기 그런 말을 묻소? 집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게요?”
“제가 유격대에 참가하면서 들어왔던 말이 ‘빠르면 3년 늦어도 10년’이면 일본놈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보천보에도 갔다오고 무산에도 갔다왔습니다. 그때는 당장 내일, 모레라도 내 나라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벌써 몇해째입니까? 제가 유격대에 참가한 햇수로부터 9년이나 되었습니다.  일본놈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우리 세력은 점점 더 약해만가고 있잖습니까. 양사령까지도 사망하고 이제는 전혀 앞날이 보이지 않아 그럽니다. ”
하고 맥이 빠져있는 박동무를 바라보며 김재범도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 제일 어렵고 힘 들 때라는 것은 나도 인정하오. 그렇지만 언제나 날이 새기 직전이 제일 어두운 법이오. 곧 새 날이 밝아올 것이오.”
김재범의 입에서는 겨우 이런 말밖에 더 나오지않았다. 그 자신의 심정도 공허(空虛)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오가 장성하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할 때는 쓸데없는 말이 다 소용없었다. 대원들 스스로가 이대로라면 얼마던지 2, 3년 안에 당장 일본군을 몰아내고 나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심으로 벅차오르군 하던 호시절은 불과 1, 2년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산판에는 온통 비행기로 살포한 투항권고문이었다.  
“글세 도리는 알겠지만 도무지 우리가 원하는 새 날은 올 것 같지못합니다.”
박동무는 그동안 식량을 얻으러 한번씩 집에 다녀올 때마다 부모들이 이제는 항일투쟁을 그만하고 빨리 장가도 들라고 재촉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혁명을 그만두고 이제는 귀순하겠다는 소리요?”
“저는 결코 귀순은 하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아래로 동생들 셋이나 모두 제가 장가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맏이니까요. 장가를 들고 가정을 이룬 뒤에도 계속 다른 방법으로 항일혁명은 할 수 있잖습니까. 더구나 지금 저는 무전기로 하고 있는 일이 거의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가 산속에서 밥축만 내며 있지말고 무전기를 집에 가져다가 숨겨놓고 주임동지께서 필요할 때마 저의 집에 와서 지시를 주고하면 훨씬 더 편리하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하고 박동무는 김재범을 설복하였다.
김재범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같았으면 단마디에 거절해버렸거나 아니면 의심이 들 때에는 즉결 처형이라도 해버렸겠지만 박동무에게만은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박동무는 유일하게 무전기를 다룰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자가 도망치거나 변절해버린다면 나는 당장 위증민, 전광동지와도 연락이 끊어지게 된다. 귀순만은 하지않을 것이고 장가 든 다음에도 계속 우리를 위해 일하겠다면, 이 자의 집을 우리의 연락소로 사용할 수도 있잖겠는가, 더구나 이 자의 동생은 자위단이라 의심을 사지않을 수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유익한 점도 적지않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김재범은 박동무가 무전기까지 가지고 산에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얼마 뒤에 박동무는 인차 장가들었고 박동무 부부의 신방은 사실상 동만사업위원회의 아지트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 때문에 박동무의 신부는 항상 불만이었다. 오늘날의 영화나 드라마 또는 책에서 보면 이런 경우에는 보통 혁명가의 아내나 가족들이 솔선수범하여 망도 보고 또 연락 심부름도 다니군 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현실은 차가웠고 항상 비정하였다.
앞에서 처형직전 최희숙과 만났던 그의 본 남편 박원춘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바 있다.  
당장 내일 모레 처형을 앞두고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받았던 최희숙의 앞에 나타났던 박원춘의 곁에 아기를 업고 나타났던 새 아내가 그 마당에서도 앙탈을 부리면서 “나와 결혼할 때는 총각이라고 하더니 이제보니 거짓말이었구나.”며 악을 썼다는 사실과 박동무의 새 신부가 남편의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찾아와서는 신방을 차지하고 앉을 때마다 잔뜩 눈살이 꼿꼿해지군 했던 것이야말로 누가 지어낸 거짓말이 아닌 팩트 그 자체였던 것이다.
드디어 어느날 박동무의 새 신부는 몰래 남편의 동생을 찾아갔다.
“도련님, 형님을 좀 어떻게 말려주세요. 형님은 사흘이 멀다하게 산에 들어갔다가는 며칠씩 돌아오지 않고 산 사람들도 밤만 되면 저의 집에 와서는 쌀독을 모조리 굽내고 있어요.”
박동무의 남동생은 형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형님이 지금 거래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도 몇 번 만나보았지만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고발해도 상금을 몇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난 지금 김일성이 이 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형님도 김일성이 오면 나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 만약 김일성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상금 1만원을 받게됩니다.”
“아, 그게 정말이예요?”
박동무의 아내는 깜짝 놀랐다.
그러던 어느날, 두 사람가운데 어느 한 사람은 반드시 김일성일 것으로 의심된다는 젊은 두 사람이 박동무의 집에 와서 며칠동안 휴식하였다. 한 사람은 다름 아닌 2방면군 참모장으로 파견되어 왔던 왕작주였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림청(于霖靑)이라고 부르는 원 1군 1사 출신 대원이었다. 이 우림청은 1939년 11, 12월~ 1940년 3, 4월 경 사이에 항일연군 제1로군 총정치부에서 거꾸로 일본군 토벌대와 경찰대들에 향하여 살포하였던 “귀순자들에게 보내는 글”(告降隊書)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원래 1군 1사 정빈의 부하였던 우청림은 귀순하였다가 다시 항일연군으로 되돌아왔던 것 이었다. 중공당 남만성위원회와 1로군 총사령부에서는 우청림을 가리켜 “암흑을 버리고 다시 광명을 찾아온 모범사례”로 간주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1로군 총정치부 주임 전광이 직접 “귀순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전단으로 만들어 부대에 나눠주었고, 정빈, 최주봉 등 귀순자들로 무어졌던 토벌대에게 쫓기고 있었던 부대들은 이 전단을 산속에 난발하였다. 이 전단은 전투중에 항일연군이 거꾸로 뒤를 쫓아오고 있었던 토벌대를 향하여 뿌렸던 전단으로 유명하다. 이 전단에서는 안광훈, 호국신, 정빈 등 귀순자들의 일일이 열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책하고 있다.

“너희들은 때로는 혁명에 참가하고 때로는 혁명을 배신하고 종당에는 혁명을 파괴하는 등 사상적으로 모순되는 비열한 행동을 끝없이 자행하고 있다. 묻노니, 이런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너희들은 수치와 부끄러움도 모른채로 기편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우리 항일연군내 극 소수의 불온분자들을 동요시키고 있지만 우청림의 정확한 선택에서 보다시피 결코 우리의 항일혁명에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최후의 승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가 있겠느냐?” “你们始而參加革命,繼而背叛革命,終而破坏革命,思想矛盾,行動卑鄙,試問人生意義在哪里?……你们恬不知恥辱招搖撞騙的行为,雖影響到抗日聯軍內極少數動搖不穩分子的附和,但覺不能設革命无望和不能取得最后的成功.” (“告降隊書”之中)

이 전단을 읽은 최주봉의 돌격대에서도 또 몇몇 귀순자들이 탈출하였다고 한다.
키시타니 경무청장은 어떻게나 놀랐던지 양정우 다음으로 가는 사살자 목표속에 넣군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위증민과 전광은 차라리 우림청을 동만으로 떠나는 왕작주의 경위원으로 함께 파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 우림청은 나카지마 공작반의 파견을 받고 재침투하였던 첩자가 아니었을가고 의심하기도 한다.
왕작주는 몽강현 삼도왜자에서 탈출할 때 복부에 당했던 관통상이 깨끗하게 낳지않아 상처 구멍에서 계속 고름이 흘러내리군 하였다고 한다. 우림청이 그 상처를 처치하는데 필요한 소독약과 붕대 등을 구하려고 김재범이 붙여주었던 또 다른 1명의 당지 출신 연락원과 함께 태양령에서 멀지않은 동불사로 내려갔다가 그 연락원이 길에서 한 낯익은 사람과 만나 몇마디 인사수작을 건넨 뒤에는 허둥지둥 우림청에게로 돌아와 이렇게 말하더란다.
“저 사람은 전에 동만청총에서 나와 함께 활동했던 사람인데 후에 귀순했다고 들었소. 어떻게하다나니 여기서 이렇게 우연하게 만났구려. 진짜로 귀순했는지, 지금은 뭐하고 지내는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난 빨리 피하지 않으면 안 되오. 그러니 당신 혼자서 돌아가오.”
“돌아가는 길이 익숙하지가 않소.”
하고 우림청이 대답하자 그 연락원이 손짓을 해가며 자세하게 알려줬다.
“여기서 곧추 서쪽으로 바라보이고 있는 저 양철지붕을 한 집이 동불사 기차역이오. 그 기차역까지 가지말고 중간에 가로 나져있는 길이 있소. 그 길을 따로 오른쪽으로 한 5, 6리 가면 왼쪽으로 굽어드는 산길이 있는데 그 산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가파른 올리막이 나지게 될 것이오. 그 장대가 바로 태양령이고, 태양령 밑에 있는 동네가 태양촌이오. 태양촌에서 대흥동쪽으로 들어가는 사이에 주임동지가 계시는 산막이 있소.”
그때 동불사에서 김재범의 연락원을 발견하고 경찰서에 달려가 고발하였던 사람이 바로 김금열(金今烈)이었다. 그러나 김금열은 이 사실을 철저하게 부인하지만 고발당했던 연락원 김세균은 해방후 연변 연길시 제 초대 시장이 되었다. 김세균이 자신은 김금열의 고발로 붙잡혀 죽도록 매맞았다고 지목했지만 조사결과 김금열이 확실하게 고발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자 공안부문에서는 김금열을 석방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김금열은 역사반혁명분자로 되어 그때 김재범 등이 거점을 잡고 활동하고 있었던 세린하에서 정착하였고 대흥동 골안(저자가 취재 당시 이 골안은 세린하향 단결 7대에 속하였다)에서 늘그막에 만난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김세균과 헤어진 우림청은 동불사역을 바라고 내뛰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깜빡하고 그만 왼쪽으로 접어들어버렸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얼마 안가서 바로 조양천에 다달으게 된다.
조양천은 일본군에게 있어서는 군사중진(軍事重鎭)이었다. 간도의 수부 연길의 문호였을 뿐만 아니라 이때는 또 조양천에서 개산툰까지의 조개선(朝開線)열차가 개통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찰대뿐만 아니라 헌병대와 호로군까지 몰려들어와 있던 고장이었다. 자연스럽게 거리도 번창했고 술집과 기생집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우림청은 길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기생집의 유혹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찍 귀순하여 있던 기간에 기생집을 다녀보았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몸에 가지고있던 돈도 있었으므로 조양천의 한 기생집에 들어가 밤을 보내고 나오다가 기생집 주인이 부르는 값을 치르려하니 돈이 모자랐다. 그리하여 한참 티격태격하던 중에 기생집 주인이 우림청의 몸에 어디 숨겨놓은 돈이라도 없나 뒤지게 되었는데 그만 권총 한자루와 수류탄 한 개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림청이 그 수류탄으로 기생집 주인의 이마를 내리치고는 바깥으로 내뛰다가 뒤쫓아온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총까지 가지고 있었으면서 왜 쏘지않았느냐?”
고 묻는 경찰에게 한 우림청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내가 돈도 제대로 다 지불하지 않고 달아나고 있었던 것만 해도 미안한데 어떻게 총까지 쏠 수가 있었겠소.”
“참 자네는 막부득이해서 비적이 되었던 것이지 본심은 이렇게나 정직한 사람이었구려.”
경찰들이 모두 이렇게 감탄했다고 한다.
우림청이 동불사 경찰서에 끌려왔을 때 몸에서는 권총 한 자루와 탄알 140여발 그리고 수류탄 한 개가 나왔다. 이미 한번 귀순한 경험이 있는 우림청은 두 번째 귀순도 아주 식은죽 먹기였다. 그가 털어놓은 정보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남만성위원회 동만사업부를 발견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간도지구 토벌사령부에서는 즉시 자동차 두 대에 일본군 한 개 중대를 갈라싣고 연길에서부터 달려왔다. 불과 1시간도 안되어 자동차가 동불사에 도착하자 여기서 우림청이 또 동불사 경찰서의 경찰 3, 4명과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 들은 태양령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박동무의 집이 있는 쪽으로 가고 다른 한갈래는 태양령에서 대흥동쪽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김재범은 왕작주를 찾아와 김성주의 2방면군과 연락을 취할 방법을 의논하고 있던 중이었다.
“연속 연락원을 두 번이나 파견했는데 계속 연락이 닿지 못하고 있으니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분명 화라즈 아니면 장산령쪽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그쪽으로 갔던 연락원들이 모조리 헛물만 켜고 돌아왔단말이오.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한총구쪽으로 한번 나갔다와야 할 것 같소. 그 사이에 이 곳은 왕작주동무가 나 대신 잘 지켜주기 바라오.”
이에 왕작주는 말렸다.
“어차피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 바로 사람은 나니까 내가 가겠소. 나중에 내가 이 곳으로 쇼위(小于, 卽于霖靑)를 다시 보내서 소식을 알리겠소.”
“그런데 쇼위는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소?”
김재범은 갑자기 우림청이 보이지 않자 그때에야 깜짝 놀라며 물었다.
“동불사로 약 사러 내려간 것이 어제 아침인데 어떻게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단말이오?”
“내가 계속 열이 나면서 머리가 좀 흐리멍텅해 있었구만.”
왕작주도 비로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느낌이 좋지않구만. 빨리 이동하기요.”
김재범은 부리나케 일어나 왕작주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때 마당 밖에는 벌써 박동무의 아내가 데리고 온 세란하 자위단 30여명이 도착하여 있었다. 박동무의 동생이 세린하 자위단 단장 김익룡(세린하의 대지주 손영명의 사위)과 함께 마당밖에서 머리를 내밀고 김재범과 왕작주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들 두 사람은 이미 포위되었습니다. 우리 자위단이 30여명이나 다 왔으니 당신들 두 사람은 긍정코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순순하게 투항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김재범은 머리를 내밀고 박동무를 찾았다.
“일단 자네 형님을 이리로 데려다 주게. 자네 형님이 이렇게 하라고 시켰나?”
“이 일은 우리 형님과 상관이 없소. 난 언녕부터 당신을 주시하고 있었소? 당신의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김일성이 아니오?”
왕작주는 박동무의 동생이 자기를 “김일성”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박동무는 모르고 있는 일 같구만. 일단 저 자부터 죽여버리고 포위를 뚫고 나갑시다. 내가 엄호할테니 재범동무가 먼저 대흥동쪽으로 빠지오. 저 놈들을 다 처치해버린 뒤에는 나도 뒤따라 그쪽으로 이동하겠소. 그러나 만약 대흥동쪽의 연락소도 폭로되었으면 직방 화룡쪽으로 나갑시다.”
하고 김재범에게 시켰다. 그러자 김재범도 동의하였다.
왕작주는 김재범에게서 권총 탄알을 수십발 보충받은 뒤에는 부리나케 바깥 사랑채로 이동하였다가 그 곳에서 박동무의 아내를 붙잡았다.
“네가 한 짓이냐? 아니면 너의 남편이 한 짓이냐?”
“저의 남편이랑 상관없어요. 제가 우리집 도련님한테 부탁해서 당신네들을 검거했어요.”
하고 박동무의 아내는 눈살이 꼿꼿해서 대들었다.
급해맞은 왕작주는 박동무의 아내를 방패로 삼아 등을 떠밀면서 마당 문쪽에다 대고 총 몇방을 갈겼다. 정면으로 돌파해오는 것을 본 자위단 30여명은 모조리 마당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왕작주의 손에 인질이 잡혀있는 것을 보고 함부로 총을 쏠 수 없었다.
그 틈에 왕작주가 쏜 총에 자위단 3, 4명이 연속 꼬꾸라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자위단쪽에서도 반격을 가하는 바람에 박동무의 아내가 총에 맞아 죽고말았다. 왕작주는 이미 숨이 진 박동무의 아내를 그대로 방패삼아 끌고 마당밖으로 뚫고나간 뒤에 시체를 세린하 물속에 던져버리고는 그 길로 허둥지둥 대흥동쪽을 바라고 달려갔다.
이것이 1940년 7월에 세린하에서 발생하였던 “김재범 체포사건”이다.
“김일성이 세린하에 나타났다!”
“김일성이 노두구에 나타났다!”
하룻 밤 새에 이런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다.
장산령에서 김성주를 놓쳤던 임수산도 이때 즉시 공작대를 이끌고 세린하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임수산의 공작대를 직접 지휘하고 있었던 다나카 요지 경방과장과 나카지마 현병조장은 소식을 받자마자 직방 연길로 달려와 연길 노조에 토벌대사령부(延吉野副討伐隊司令部, 卽間島地區討伐司令部) 관계자들과 함께 이 작전을 진두지휘하였다.
“김일성이 이 곳에 직접 나타났거나 아니면 조만간에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굉장하게 큽니다. 이럴 때 만약 김재범을 산채로 붙잡지 못하게 되면 김일성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토벌을 중지하고 사람을 들여보내어 담판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미 퇴역한 헌병조장 나카지마 다마지로는 이때 연길 사령부의 여느 관계자들보다도 직위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동안 “항일연군과의 토벌작전”에서 크게 이름을 날려왔던 연고로 말미암아 모두 그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자네는 이 방면에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그럼 자네의 의견대로 하지.”
마침 연길에서 내려와있었던 노조에 토벌사령관은 간도성 차장 유홍순(劉鴻洵) [주석 348]등과 함께 나카지마가 데리고 온 임수산 등을 직접 만나주기까지 하였다.


[주석 348]

유홍순(劉鴻洵)은 조선의 근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여러 도(충청북도, 함경남도)에서 고위 관료를 지내다가 1934년 11월에 조선총독부의 파견을 받고 만주국 이사관으로 선발되어 주로 조선인의 거주지였던 간도성에서 실업청장과 민생청장, 연길지방사도훈련소 소장 등을 거쳐 1940년에는 간도성 차장으로 승진하였던 친일부역자다.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은 나카하라 코우준(中原鴻洵)이었으며, 1940년부터 1942년까지 2년동안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를 조직하였고, 후원회의 고문 및 간도성 공작반 총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치안숙정공작’에 적극 협력하였다. 1941년 7월 만주국으로부터 국세조사기념장까지 받았다. 이후 1943년 12월에는 조선으로 귀국하여 1945년 6월까지 강원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이 기간에도 계속하여 ‘내선일체의 실을 거두고 국방국가체제를 완성하며 동아신질서 건설에 매진할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국민총력강원도연맹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8월는 또 조선총독부에서 열린 전국 도지사 회의에 참석하여 일제의 전쟁 완승을 위해 순국의 정신으로 전력 증강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반민특위 강원도지부에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같은 1949년 7월 6일 반민특위 재판에서 ‘일제 때 행정 최고 책임자로 민족에게 박해를 가한 자’라고 하여 징역 5년의 형을 받았으나 11일 다시 열린 재판에서 ‘공민권 3년 정지’의 구형을 받았다. 1950년 12월 25일 사망하였다.




“김일성”이 세린하쪽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도 바로 임수산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또 임수산뿐만 아니라 남만의 반석에서 얼마전에 체포되었던 김광학에 의해서도 김성주의 2방면군 뿐만 아니라 1로군 내 나머지 부대들이 모두 동만을 경유하여 한창 북만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노조에 토벌사령관은 이 참에 하루라도 빨리 중공당 동만사업위원회를 발본원색하여야 한다고 독촉했다.
“그렇다고 임수산 이 사람을 담판대표로 들여보낼 수는 없잖겠습니까. 김일성이 정말 세린하 골안에 들어와있다면 임수산을 살려보내겠습니까?”
하고 유홍순 간도성 차장이 걱정하자 다나카 경방과장이 대답했다.
“아, 담판대표로 들여보낼 적임자는 우리가 이미 따로 한 사람을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게 누구요?”
노조에 토벌사령관과 유홍순 간도성 차장은 잔뜩 호기심이 동했다.
“김광학이라고, 역시 조선인입니다. 일찍 환인, 관전지구에서 1군 제3사 조직과장을 하다가 후에 1방면군 정치부 주임이 되었는데 조아범이 사살당한후 남만성위원회로 소환되었습니다. 김재범이 동만사업위원회 책임자로 파견받고 내려올 때 김광학도 반석사업위원회를 책임자로 파견받았다가 얼마전에 우리한테 체포되었습니다. 이미 자술서도 바쳤고 또 만주국에 충성하겠다는 맹세도 하였습니다. 현재 나카지마군이 수하에 데리고있습니다. 김재범과는 화전에서 한동안 함께 보냈고 그때 서로 속마음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고 합디다. 우리는 이 사람을 들여보내어 김재범을 설복해 볼 생각입니다.”
다나카 경방과장의 설명을 들은 노조에 토벌사령관과 유홍순 간도성 차장은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찬탄을 금치못했다.
“일이 아주 순조롭게 착착 잘 돌아가고 있구만. 좋소. 지금 세린하쪽으로 출정한 부대가 누구의 중대냐? 즉시 지시하여 토벌작전을 중지시키고 담판대표를 들여보내도록 하라.”
노조에 토벌사령관은 부관에게 물었다.
“우나미대대장(宇波大隊長, 卽間島省警察討伐大隊)이 책임지고 토벌대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나카 경방과장은 다시 노조에 토벌사령관에게 요청하였다.
“우나미 대대 산하 무라카미 신이치(村上信一, 間島省警察討伐隊宇波大隊第二中隊的中隊長)중대가 지금 세린하에 나가있습니다. 사령관께서는 우나미대대장에게 지시하여 이 중대로 하여금 나카지마 공작반의 지휘를 따르게 해주시면 됩니다.”
“김일성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야 무엇인들 못해드리겠소. 어서 작전을 실행하도록 하오.”
이렇게되어 귀순한지 불과 10여일 밖에 안되었던 김광학까지 이 작전에 투입되었다.
자료에는 김창영이 직접 김광학을 데리고 연길로 왔다고 한다. 지휘부는 동불사 경찰서에 설치되었다. 대흥동에서 화룡까지의 열두 골짜기를 참빗 빗듯이 수색중이었던 무라카미 신이치 간도성 경찰토벌중대는 명령을 받자 즉시 수색을 중지하고 태양령바깥으로 물러났다. 임수산 공작대가 직접 김광학을 데리고 대흥동골안으로 들어갔다.
숲속을 뒤지고 다닌지 나흘만에 김광학은 김재범과 만날 수 있었다.
김재범은 꼬박 나흘동안 굶은데다가 물 한 모금도 못 얻어먹고 당장 질식사 직전이었다고 한다. 김광학이 수행 1, 2명만 데리고 한 나무등걸이에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그 나무등걸 밑에 있는 한 웅덩이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뒤집어쓰고 숨어있던 김재범이 불쑥 나타나더란다. 그때 김재범이 내뱉은 첫마디가 이랬다.
“이보게 광학이, 물이 있으면 좀 주게.”
김광학은 급히 수행이 가지고 갔던 물통을 건넸다. 얼마나 목이 말랐던지 그 물통의 물을 모조리 다 마시고난 김재범은 그제서야 권총을 빼들고 김광학에게 으러렁거리더란다.
“이 더러운 반역자 놈아, 반석에 있어야 할 네놈이 어쩐 일로 여기 와서 돌아다니고 있느냐?  고작 이 꼴이 되자고 왜놈의 ‘개’가 되었느냐?”
그러자 김광학은 오히려 측은한 눈빛으로 김재범을 달랬다고 한다.
“아이구, 재범형, 그렇게 듣기 거북한 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총도 좀 내려놓소. 형은 방금 더러운 변절자가 준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게 아니고 뭐요. 여기 가까운 곳에 형네 2방면군 참모장 임수산도 함께 와있소. 아마 지금쯤 저기서 지켜보고 있을게요. 난 형을 귀순하라고 설복하고 싶은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소. 그냥 내 말을 듣고나서 나를 죽여버리던지 아니면 계속 달아나버리던지 마음대로 하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게냐?”
“난 지금 우리 항일연군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하여 그냥 사실대로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오. 저기서 여기를 지켜보고 있는 임참모장도 오게하면 안되겠소?”
김재범은 허락했다.
“혼자 오라고 하게. 몸에 총을 휴대해서는 안되네.”
그러자 김광학은 수행에게 시켰다.
“네가 가서 전하거라. 그리고 너는 오지 말고 그쪽에서 기다리거라.”
조금 뒤에 임수산이 혼자서 술병과 삶은 돼지머리고기를 한봉지 들고 나타났다.
김재범은 땅이 꺼지게 한 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 재범이, 자네도 총을 내리게. 우리 둘은 자네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네. 이곳은 이미 토벌대가 겹겹이 포위하고 있네. 그렇지만 우리 둘은 자네를 살리고 싶어서 토벌대를 설복하여 수색을 중지시켰던 거네. 그냥 함께 술이나 한잔 하고 헤어지세.”
하고 임수산도 진심으로 권고하자 김재범은 머리를 끄떡였다.
“도대체 바깥 사정은 어떠하오?”
김재범 본인도 동만으로 나온 뒤에 사실상 산속에만 들어박혀 바깥 소식에 너무 무지했다.
동만지방의 당 조직을 복구하기 위하여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겨우 세린하에 만들어놓았던 거점마저도 박동무 내외가 귀순하는 바람에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2방면군 신임 참모장으로 내려왔던 왕작주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며칠째 종무소식이었다.
그러자 임수산이 먼저 한마디 물었다.
“이 사람 재범이, 먼저 하나만 대답해주게, 김일성이 이곳에 와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게 묻는 당신이 과연 몇해째 김일성의 참모장 노릇을 해왔던 사람이 옳기나 한지 의심스럽구만. 정말 김일성이 이 곳에 있다면 내가 이 처지에 빠질 수가 있겠소.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여기서 나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겠소.”
하고 김재범은 임수산을 핀잔했다.
“그럼 아니란 말인가? 글세 그렇겠지, 나도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네.”
임수산은 비로서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나서 임수산과 김광학은 번갈아가면서 현재 항일연군이 처하여 있는 상황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일단 양정우, 조아범이 사망하고 위증민도 건강상태가 좋지않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위증민, 전광 등이 머물러왔던 화전현 경내의 밀영들도 최근에 모두 토벌을 당했으며 두 사람 모두 실종상태라는 사실 앞에서 김재범은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전연락이 끊긴지도 벌써 한달 남짓이 된데다가 안도와 화룡 경내의 2방면군 밀영들이 모조리 결단나버렸기 때문에 현재 위증민이 가있을 곳이란 3방면군이 활동하고 있는 돈화의 액목 아니면 교하, 오상쪽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 10여년 동안 나는 얼마나 허무한 짓거리들을 해왔는지 모르겠소…….”
하고 김광학이 또 한참 이야기했다.
그 “허무한 짓거리”란 조선인으로 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할 생각은 하지않고 도대체 뭘하려고 중공당에 참가하여 이 험난한 고생을 자청해왔든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물론 일본 사람들과 싸워서 이겨야 내 조국도 독립할 수 있다는 공산당의 선전을 굳게 믿어왔던 것은 사실인데, 그렇지만 귀순하고나서 만주국의 번영을 다시금 새로운 눈으로 살펴보는 계기를 갖게되었다고 설명했다. 만주국, 이 얼마나 좋은 모델인가. 자기의 국명, 자기의 황제와 행정부를, 외교권을 다 가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립국가로 되어있지 않느냐고, 귀순한 뒤에 김창영에게서 직접 강의받군 했던 내용들을 한바탕 널어놓았다.
“글세 우리가 그동안 산속에서 공산당의 유혹에만 빠져 얼마나 무지하게 세월을 보내왔는지는 더도 말고 단 한가지의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합시다. 현재 우리가 그렇게 반대하고 뒤집으려고 해왔던 만주국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들로부터 정상적인 독립국가로 인정받고 있는지 알기나 하오? 그리고 그 나라들가운데서 제일 처음 만주국을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관계까지 맺었던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알기나 하오?”
김재범은 홀린 듯이 김광학과 임수산을 바라보며 그 대답을 기다렸다.
“바로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숭상해오고 있었던 소련이었단말이오. 소련공산당은 언녕부터 만주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왔고 그들과 수교까지 한 상태였소. 그런줄도 모르고 우리는 산속에서 계속 ‘반만항일’만  웨쳐왔던 것이오.”
이어서 김광학과 임수산은 또 김창영에 대하여 장황하게 소개했다.
김창영에게서 배워왔던 조선을 독립하는 방법, 즉 만주국과 같이 일본의 적극적인 후원하에서 일약 중공업국가로 변모할 수도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건설에 조선인들은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김재범에게 남김없이 전달했다.
그러면서 임수산은 계속하여 또 하나의 충격적인 비밀도 터뜨렸다.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모르게 김일성도 계속 김창영선생과 귀순협상을 진행해왔던 것이오. 김일성은 김창영선생에게 선물로 산삼까지 보내주었더구만. 그런데 그 사실이 여백기와 필서문에게 들통이 나는 바람에 양사령이 알게되어 이종락이 화전으로 끌려가 처형되지 않고 어쨌소. 이와같은 사실들은 우리가 지어낸 거짓말이 아니오. 형이 만약 믿겹지가 않으면 우리와 함께 김창영선생도 만나 뵙고 또 여백기, 필서문도 모두 증인으로 나서줄 수가 있소. 그리고 그때 김일성이 김창영선생 앞으로 직접 보냈던 편지들도 자기 눈으로 다 확인할 수가 있소. 우리 두 사람이 보증하건데 형이 꼭 한번 김창영선생과 만나뵙기를 바라오. 그리고 지금 연길에 계신 유홍순(간도성 차장)선생도 말이오. 형이 이 두분을 만나뵌 뒤에도 만약 마음이 돌아서지 않아 귀순하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하면 이 두분은 절대로 형을 붙잡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내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오. 어떻소?”
이런 이야기를 듣고있던 김재범은 반신반의하던데로부터 점점 믿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나카지마 다마지로가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이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던지 김재범을 설복하러 들어갔던 임수산은 품속에 1940년 4월23일 자 “만선일보”(滿鮮日報)까지 한 장 가지고 들어갔다. 그 신문을 읽고난 김재범은 몸서리를 치지않을 수 없었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박차석과 이종락이 몽강에 찾아왔을 때 일은 나도 모르지는 않지만 김지휘가 이렇게 우리 몰래 김창영과 귀순협상까지 진행하였던 내용은 정말 모르고 있었소.”
그 신문기사속에서 김성주의 할머니 이보익이 기자에게 하고 있었던 말을 보면, 김성주는 벌써 그의 할머니가 만주에 불려나와 손자를 찾아다니고 있을 때 이미 귀순하려는 마음을 먹고있었던 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었다. 앞에서 이미 한번 소개되었던 그 인터뷰 내용을 여기서 다시 한번 돌아보기로 한다.

“우리 가정에서는 하루라도 속이 귀순하기만 고대하고 있습니다. 서로 갈라진 지도 이미 七개년이 지내었스니 그동안 심리가 엇더케 될것은 모르지요. 작년 녀름에 내가 통화에 가 잇슬때에 귀순하겠다는 회답을 밧고는 무어라고 말할수 업는 깃붐에 싸혀서 밤잠도 이루지 못해요. 기대럿지만 양정우란 놈의 방해로 귀순하지 못하게되엿지요.” (1940년 4월23일 자 “만선일보”(滿鮮日報) “匪首 金日成의 生長記”)

‘이 정말 더럽고도 음험한 자였구나. 이렇게나 우리를 깜쪽같이 속여왔다니.’
김재범은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한참 말을 못했다. 후에 귀순하고 연길에서 김창영, 유홍순 등과 만났을 때 그가 울음을 터뜨리자 유홍순이 왜서 우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고 김재범은 김성주에게 속아넘어갔던 것이 분해서 운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하 생략]



????   - 2018/07/28 23:59:27  
김일성과 박차석 리종락의 이야기는....가짜 귀순이 아니고 진짜 귀순이 될번했다는 소리같기도 하군???
연변독자   - 2019/03/13 03:03:29  
새로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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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렇게 힘든 것인줄 몰랐습니다]




   사랑이 이렇게 힘든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마음 독하게 먹고 그대를 잊기에 죽도록 노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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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440 Date : 2006/11/06 Hit : 4636 Vote : 369 Name :  피안
   "뉴욕조선족통신"이 추천한 송미옥 님의 시 "작은 여자이고 싶었습니다"가 중국 월간 문학 "송화강" 11기에서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송미옥 님은 중국 연변 용정 출생으로써, 97 연변과학기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일본 京都 대학...
 [글 쓴이: 오해연, 일본 동경]   
No : 439 Date : 2009/01/14 Hit : 13415 Vote : 640 Name :  시로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사랑이 다시 한번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딸이 아버지한테 효도할 시간마저도 주시지않고 무정하게 떠나가신 아버지, 얄미우면서도 불쌍하시다 . 하늘나라에서도 자식들한테 따뜻한 사랑과 일전한푼이라도 보태주시려고 하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더욱더 마음이 아프다 ....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멋진 사람   
No : 438 Date : 2016/10/13 Hit : 11417 Vote : 246 Name :  으노기
[글쓴이: 조은옥, 중앙민족대학 3학년 재학생]

이제부터 내가 소개할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중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이다.

그녀는 멋대로 사는 딸을 하고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한다고 말할줄 아는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지금 내가 이렇게 된것은 너를 그렇게 몰아간 세...
 사랑이 이런건가요   
No : 437 Date : 2008/02/16 Hit : 22183 Vote : 953 Name :  캐서린 킴
[글 쓴이: 김향옥, 중국 심천]




  사랑이 이런것인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못한 나에게, 아빠 엄마의 허락도 없이, 언니 오빠의 허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다가올줄은 몰랐습니다.

   어떡하면 좋죠? 여...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를 마라..   
No : 436 Date : 2007/05/07 Hit : 6248 Vote : 226 Name :  낙화류수
   [글 쓴이: 최영현, 중국 천진]

   따뜻한 봄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회사 앞의 큰 호수곁에 바람 쏘일겸 저녁 먹고 나갔는데 매일매일 사무실에 박혀있어서 흐리멍텅하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지는것 같았다. 황혼이라 더운 기운을 몰아버리는 시원한 바람에 농...
 청설의 산문 문학   
No : 435 Date : 2015/02/17 Hit : 6743 Vote : 220 Name :  피안
   또 새해가 시작되어 나의 인생은 다시 요란스러워지고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활기에 넘치려고 한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음일가?  

   작년에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던 일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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