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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단편소설] 이 남자, 사랑이다 (3)
피안   Hit : 4104 , Vote : 192        [2008/10/17]




[글 쓴이: 김영란, 조선족, 미국로스앤젤레스 거주]  


    나는 신을 벗다말고 어정쩡하게 머리를 까딱하는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도 쏘파에 앉은 채로 머리를 끄덕여서 인사를 해왔고 다시 TV에 눈길을 돌렸다. 살짝 건방져 보이긴 하지만 일단을 외모가 맘에 들어서 두고 본다. 근데 이남자,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것 같았다.

    “뭐해. 들어오지 않고…”

    연아가 넋이 나가 있는 나의 등을 떠밀면서 내 손에 지저분하게 들려있는 짐들을 받아들자 그가 우리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나는 그에게 고정되여 있던 시선을 급히 돌리면서 말했다.

    “나 갈아입을 옷좀줘. 샤워할래.”
    “앉아서 좀 쉬었다가 하지 그래.”

   나는 연아의 말을 무시하고 하이힐에서 내려와 쩔뚝거리며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의 뚜껑을 닫고 앉았다. 여성우월주의가 사상의 절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여서, ‘항상 남자 앞에서는 굽혀들지 않는 당당함과 여유로움을 유지하자’를 신조로 읖조리면서 다니는 나였고, 항상 내가 리드를 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 남자 만큼은 웬지 느낌이 달랐다.

    내가 움직이는대로 움직여줄 만큼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누구냐, 천하에 김세영 아니여!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게 자고로 내 취미였다.

    “그나저나 집에 갔다더니, 둘이 짜고 날 놀린거야? 그건 그렇고, 이런 말도 안되는 꼬라지로 나타났으니 실망했겠지? 거기다가 연아는 자기 친구랍시고 자랑을 많이 했을텐데… 알게 뭐야. 될대로 되라지.”

    혼자서 궁시렁 거리면서 아무리 둘러봐도 수건이 없었다.

     “연아야…”

    나는 변기통에 앉은채로 소리를 질렀고, 부를줄 알았다는 듯이 금방 문을 열고 수건을 건네주었다.

    “삼프랑 비누는 저기 있어. 스위치 켜놓고 잠깐 기다리면 물이 더워질거야.”

    나는 물이 더워지기를 기다리면서 방금전에 봤던 그 모습을 떠올렸다.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아서 희미하게 보였지만 분명히 잘생긴 얼굴이였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에 비해 그는 너무나도 깔끔하고 럭셔리 했다. 사람은 두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얼굴. 다른 하나는 감성만으로는 보아낼 수 없는 이성적인 얼굴이 있다. 어디선가 마주친적이 있는것 같았고, 그때 그의 두번째 얼굴을 봤었던것 같은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그게 언제 어디서 였던지, 정말 이사람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내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연아가 뭔가를 가방안에 쑤셔 넣으면서 주방으로 왔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연아를 팔을 잡아 끌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뭐가?”“집에 갔다며?”
    “아~ 갔었지. 다시 왔어.”
    “장난해 지금? 아니면 나 놀리려고 작전 짠거야?”

    “아니. 진짜 갔었어. 가다가 생각하니까 이대로 너 못만나면 꼭 후회할 것같은 느낌이 들더란다. 그래서 다시 왔대. 방금전까지도 전화로 일처리 하느라구 정신이 없드라. 저쪽에서 안오면 안된다고 하는걸 여기저기 부탁해서 일단 내일까지 미뤄달라고 했나봐. 그리구 이렇게 너를 만나니까 너무 좋댄다. 니가 샤워하러 들어갔을때 그러더라.”

    정말이지 오래만에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우리 세영이만 보고 있어도 너무 좋다.’
     항상 엄마는 그랬고. 아버지는 언제나 나만 보면 싱글벙글 이셨다.
     ‘이렇게 만나니까 너무 좋댄다.’

    내가… 우리 엄마, 아버지 이외의 사람에게도 만나기만 해도 좋은 사람일 수 있었구나. 꾀죄죄했던 외모를 떠나서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고 기쁜 마음을 선물 할 수 있는 사람이였구나. 한순간, 말 한마디에 존재의 이유가 늘어난 그 기쁨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그것도 나한테 직접말한게 아니라 연아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까 더 한층 감동이였다. 직접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면 무조건 선수라는 딱지를 뒤집어 썼을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말로 모든 계산을 하고 행동하는 아주 고단수인 선수거나, 아니면 진짜 멋진 사람 둘중하나 였다. 아직은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나는 이미 빠져들고 있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오늘 건이 생일인건 기억하냐?”

    연아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서 나를 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니 생일은 까먹어도 건이 생일을 까먹는건 예의가 아니지~”
    “건이 생일 챙겨주는건 고마운데 그일 때문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 없어.”
    “이럴땐 내가 진짜로 웃긴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분명한데 생각하는대로 하지 못하고 있잖아. 그래서 건이 한테 더 미안해.”

    “건이도 괜찮다고 했잖아. 이해한다구.”
    “고마워. 항상 이해해줘서. 그리구 미안하다. 이해받을 일 만들어서.”
    “니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도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너 먼저 국철이 오토바이타고 건이네 집으로 가있어.”

    “왜? 너는?”
    “나는 일이 있어서 어디 좀 들렀다 갈려구.”
    “무슨 일인데? 같이가자.”
    “너 그냥 먼저가. 나 현주한테 가봐야 돼. 돈두 돌려줘야 되구. 할말두 있구. 빨리 가자. 조금있으면 건이 친구들이 들이닥칠텐데 준비도 못했단 말이야. 세영아 니가 니서 이것저것 도와줘야 될거야. 건이는 생일이니까 일시키지마.”

    “어이구. 끔찍해요~ 알았어. ”

    연아를 살짝 야려주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내려가 보니 국철은 벌써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타구가.”
    연아가 내 등을 떠밀었다.
    “나 그냥 뻐스타구 갈거야.”
    
    연아가 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것 같았다. 오토바이에 않좋은 기억이 있는 나였고, 그걸 알고 있는 연아였기에 나한테 억지로 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헬멧을 쓰고 자신의 오토바이에 폼나게 앉아있는 그를 봤다.
    아무렇지 않은것 같은 모습으로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신경도 많이 쓰이고 불안한거 안다. 그래도 어쩔수가 없었다. 연아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국철이 한테로 다가가서 뭐라고 몇마디를 하자 국철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럼 너는 니가 알아서 가. 나 금방 뒤따라 갈께.”
    “그래.”

    나는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항상 우정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연아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연아는 무슨뜻인지 안다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어깨를 툭치고는 먼저 갔다.

    나는 뻐스를 타고 중간쯤에 위치한 창문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가는데 웬지 느낌이 이상해서 창밖을 내다보니 국철이가 내가 탄 뻐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앉은 자리의 딱 옆에 붙어서 달리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이상한 파문이 일어나는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런 경험도 처음이였고, 이런 느낌도 처음이였다.

    뭐든 처음 경험 하는건 나를 설레이고 들뜨게 하면서도 그속에 두려움과 긴장함이 잠재하고 있었다. 첫연애도 그랬고, 첫키스도 그랬고, 첫섹스도 그랬고, 첫수술, 첫시험, 첫여행, 처음 외박하던 날, 처음 기차와 비행기를 타던날도 그랬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일을 상상하고 은근히 바랄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그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이 세상에 백마탄 왕자님과 빛나는 유리구두를 신겨주는 왕자님을 싫어할 여자는 없으니까. 사실은 나도 중학교를 다닐때 까지만 해도 바랬다. 나만의 왕자님이 생기기를. 하지만 이세상을 알아가면서 현실에는 그런 왕자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였고 현실생활 자체가 ‘진정한 왕자님’을 묵살해 버리고 자사자리하고 인간냄새를 씻어버린, 생존본능에만 충실한 동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보아버렸다.

    그리고 대신에 위대한 여자가 위대한 남자를 만든다는 현실적인 철학을 깨달았고 눈을 감고 허황한 꿈을 꾸며 침만 흘리기 보다는 내 힘으로 그런 남자를 직접 만들어 가는게 더욱더 현실적인 일이라는것을 알기 때문에 나의 여성우월주의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져만 갔다.

    그 실험품으로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자’가 좌우명인 수혁이가 죽어나고 있었다.

    그것때문에 우리는 많이 싸우기도 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사람의 결점까지도 받아들이는 거라는데 자꾸만 그것을 끄집어내서 고치려 하는 나와, 그런 나를 자기생각대로 바로잡으려는 수혁이는 종종 대립되는 인생관과 가치관 때문에 싸우군 했다. 결국에는 수혁이가 투항하고 천천히 고쳐나가는 쪽으로 협의가 되지만 그래도 거기서 만족할 수 없는 나였기 때문에 분쟁은 그치는 날이 없었다.

    그런 분쟁속에서도 2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걸어올 수 있었던건 오직 수혁이의 끈질기게 사랑을 지키려는 순수한 마음때문이다. 그런데 이남자는 내가 노력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처음부터 이렇게 내 마음을 꿰뚫어주는, 아니 내가 바라는 그 이상을 해주는 매너를 갖추고 있었고, 건이네 집에서 가까운 정거장에 도착할때까지 한발자국도 멀러지지 않고 묘하게 따라오는 이 남자를 바라보면서 잠시 16살 철없는 소녀와 같은 생각들도 해보고 추억들도 떠올려 보았다.

    그런 느낌도 그닥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그도 거기서 멈춰섰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커다란 헬멧을 쓰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헬멧에 씌여진 썬글라스와 같은 특수제작한 유리를 통해서 나를 보고 있을 것이였다. 그렇게 나를 보고있다고 생각하자 민망해서 나는 먼저 앞어서 건이네 집을 향해 걸었다.

    “물건 들어줘?”

    그는 내손에 주렁주렁 들려있는 주머니들을 내려다 보면서 물었다.

    “아니야. 괜찮아.”

    건이네 집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조용히 걸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그렇지 진짜로 안 들어 주냐? 딴남자들을 잘도 빼앗아서 들어주더만…속으로는 그렇게 툴툴거도 사실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였다.

    무작정 잘해줘서 점수를 따려고 하는 남자들 보다는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거나 다가 올듯 말듯, 관심이 있는듯 없는듯 미스테리를 남겨주는 남자가 더 매력적인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야 도전적인 맛이 나니까.그리고 무엇보다고 이런 남자들은 배짱있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분명하고 그만큼 자기 확신이 뚜렷해서, 굳이 여자한테 잘해주거나 점수를 따려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종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할 잠재력과 용기와 끈끼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은 이러한 그의 표현들이 내가 짐작하고 있는 만큼 대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의 눈빛이 맘에 들었다. 예전에 드라마를 보면서 엄마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너는 결혼을 한다면 반드시 쌍꺼풀지고 큰눈을 가진 남자만큼은 피하라고. 내가 그건 왜 그래야 되냐고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범, 사자, 승냥이, 사냥개, 독수리, 그리고 사슴, 말, 소, 양. 이 두부류가 가장 큰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니?”

    “앞은 잡아먹는 자들. 뒤는 잡아 먹히는 자들.”
    “그래. 잡아먹는 자들과 잡아 먹히는 자들의 눈을 관찰해 봐라. 잡아먹는 자들은 눈이 작고 외거풀이고 눈빛이 강렬하지만, 잡아 먹히는 자들은 눈이 크고 쌍거풀이고 눈에 정기가 돌지 않고 순해보이기만 하다.”

    “아~”

    나는 그때까지 들어본적이 없는 얘기였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했다.
    그리고 엄마는 한마디를 더 보충했다.

    “만약에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면 두번째 부류의 남자를 택하는게 행복해지는 길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너에게는 첫번째 부류의 남자가 필요할 것 같다. ” 건이네 집에 도착해서 문들 두드리자 용수철에 의해 튕겨져나오듯 건이가 문을 열고 튀여나왔다. 우리를 보고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밝게 웃어주었다.

     “왔어? … 우리 연아는? 왜 너희둘만와?”
     “친구만나고 온댔어.”
     “그래. 들어와. 국철이 오토바이 타고 온 느낌이 어때?”“나 뻐스타구 왔는데?”

    “아~ 그래. 오직두 오토바이 타기는 좀 그렇지? 근데 국철아. 너는 집에 일이 있다구 간다구 하지 않았냐? 내 생일파티 참석못해서 미안하다고 까지 하고 갔잖아. 안갔어?”문을 넘어서지도 않았는데 건이가 재촉하며 물었다.“어차피 오늘은 늦어서 내일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국철은 건이의 방으로 옷을 갈아 입으러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냐? 나쁜놈. 친구보다 여자가 중요하지?! 너 오늘 주거쓰~”

    건이가 문에다 대고 눈을 얇쓸하게 뜨고서 요상한 표정을 짓는것을 보고서 나는 팔을 걷고 부엌으로 갔다.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연아가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참 성격과 같이 행동도 속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세영이는 어디갔어? 왜 안보여?”
     “부엌에 있어.”“자기가 뭘 할 줄 안다고 부엌에가서 얼쩡거려?”

    말소리가 들리더니 연아가 부엌에 나타났다.

    “야, 너 여기서 뭐해?”
    “도우라메? 건이 일 시키지 말라메?”
    “너 이리 나와. 여기 오늘 전업요리사가 대령하셨다.”

    나는 쭈쿠리고 앉은 자세로 감자와 양파를 양손에 들고 연아옆에 서있는 건장한 남자를 올려다 봤다.

    “인사해. 우리 형이야. 이쪽은 연아 친구.”

    나는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김세영이예요.”
     “강훈이예요. 반가워요.”

    그는 걸상에 걸쳐져 있는 앞치마를 두르면서 물었다.

    “몇사람이나 올것같냐?”
    “안돼두 한 열명은 더 올걸?!”“사람이 그렇게 많으면 밖에서 하지 왜 집어서 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러면서 연아와 건이가 동시에 나를 보는 것이였다.

     내가 뭐? 나는 손에 감자와 양파를 든채 두 눈만 껌뻑거리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상한 눈빛들로 나를 보고 있는 그들을 무시하고서 나는 건이의 형을 보며 물었다.

    “제가 뭐 할줄 아는건 없지만 도와드릴건 없을가요?”

    그는 참으로 선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였다. 예전에 연아한테서 이사람에 대해 들은적이 있다. 건이를 매우 아끼는 형이고, 덤으로 연아까지 아껴주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기독교 신자라서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는 바른 생활사나이라고 했다. 만약에 나에게 야망이 없다면 꼭 잡아서 결혼을 하고, 귀여운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살고 싶은 남자였다.

    관건적으로 밥도 잘한다고 했다. 이런 남자들을 세상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집안이 돌아가는 형세에는 관심이 많아서 어떤 상황이거나를 막론하고 집안살림을 빈틈없이 꾸려나가고 자기 가족은 철통같이 지키고 아끼며 통장에도 항상 여윳돈이 있어야만 하는, 많은 여자들이 선호하는 결혼상대였다. 한마디로 1등 신랑감이였고, 대표적인 두번째 부류에 속하는 남자였다.

    “할줄 아는게 없다… 그럼 감자랑 양파,마늘은 깔줄 알죠?”
    “네. 그것 쯤이야…”
    “세영아. 그럼 니가 수고 좀 해라. 우리는 나가서 마실거 좀 사가지고 올께.”

    나는 팔을 걷고서 감자부터 깎기 시작했다. 내가 한창 열심히 머리를 파뭍고 감자를 깍고 있는데 국철이가 들어와서 내 옆에 쭈크리고 앉았다.

    “내가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나는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여전히 감자깎기에 열중하면서 대답을 하자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커다란 그릇에 물을 떠다가 내 앞에 놓아주는 것이였다.

    “뭐야 이건?”“이렇게 하고 양파를 불면서 까면 덜 매울거야. 한번 해봐.”

    그러고서는 주방을 나가 버렸다. 그말에 또다시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 지는것을 느꼈다.

    이남자, 오늘 여러가지로 날 감동시킨다. 물론 처음이라, 점수따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없지않아 있을 것이다. 이런걸 바로 신선함이라고 그러겠지. 그리고 내가 이런걸 바래서 수혁이를 등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싶어했을 것이고.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는것처럼 그는 차근차근 내가 원했던 것들을 해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이렇게도 싸가지가 없는 여자였나 반성을 하게 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시켜주는대로 힘을 주어 후후불면서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고작 세개도 채 까지 못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왔고, 눈은 매워서 잘 떠지지도 않는데다가 힘주어 불었더니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건이 형은 하도 측은해 보이던지 그만까고 가서 세수라도 하라고 했다.

    나는 어지럽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아서 더듬으면서 화장실을 찾았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눈이 매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으헉.”짧은 비명소리에 나는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눈을 빼꼼 뜨고 봤더니…

    “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왔고, 하필이면 그때 연아와 건이가 알콜음료들을 사가지고 친구들과 같이 들어서고 있었다. 내 비명소리에 건이 형은 무엇을 썰고 있었는지 칼을 들고 주방에서 달려나왔고, 연아는 신을 벗다말고, 건이의 친구들은 문을 들어서다가 모두가 그대로 굳어버린채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 미처 들어도지 못한 친구들이 계속밀고 들어오면서 신벗는 곳이 비좁아지자 제일 앞에 있던 연아는 신을 신은 채로 장판에까지 밀려 들어왔다. 그다음으로는 마치도 누군가가 이 상황에 스톱모션이라도 눌러놓은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연아가 신을 벗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그게…”

    내가 어떻게 상황수습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버벅거리고 있는데 국철이가 마침 그때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런 젠장…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는 없는 법. 처음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이야. 내가 마치도 코믹영화속의 어리버리한 여자주인공이라도 된것같았고, 생각보다 그런 상황은 나를 즐겁거나 행복하게 해주는게 아니라 창피해서 죽을것 같았다. 정말로 쥐구명을 파고 싶었다. 일그러 질대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서있는 나와, 그뒤에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얼굴로 서있는 국철이를 연아와 건이와, 건이의 친구들은 속수무책의 표정들을 짓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채로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야, 안들어오고 뭐해. 들어와. 야야 빨리 문닫어 파리 들어온다.”

    건이가 말을 꺼내서야 모두가 간신히 스톱모션에서 풀려났고 모두들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하기야, 무슨일때문인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였다. 그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지만 나는 발이 장판에 떡 들어 붙은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행이 연아가 나를 건이의 방으로 끌고들어가면서 다그쳤다.

     “너희들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나 말시키지 마.”

     “너 왜 울어? 그리구 소리는 또 비명은 뭐야? 국철이가 너한테 무슨 짓 하디? 무슨 짓을 해도 그렇지.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나 몰라. 집에 갈래. 너희들 끼리 잘 놀아라. 건이 한테 생일축하하고고 미안하다고 전해줘. 자 이거 건이 생일 선물.”

    연아는 내가 건네주는 선물함을 받아서 한쪽에 놓으면서 내팔을 잡아 앉히는데 건이가 들어와서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봤어?”
    “무슨 소리야? 뭘봐?”

    연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얼굴에 물음표들을 가득 달고서 건이를 다그쳤다.
    내가 대답대신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리자 건이가 한다는 말이.

    “남자꺼 처음봐? 울긴 왜울어?”
    “못봤어. 아니, 안봤어. 그리구 나 방금전에 양파깠구, 그게 매워서 눈물나는거야.”

    내가 갑자기 소래를 꽥 질러 버렸고 그말에 건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쿡-하고 웃었다.
    내가 봤을때도 너무나도 단순하고 순순한 소녀의 반응이였다.

    (젠장, 이건 내 반응이 아니잖아.)

    속으로 그렇게 후회를 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너희들 무슨소리 하는거야? 무슨일인지 너는 알지? 건아. 국철이가 뭐라구 그랬어?”
    "연아. 화장실 쓰구 있는데 세영이가 갑자기 들어오길래 놀라서 오줌 끊겼다구 하더라.”
     “푸하하하하… 으헵…”

    연아는 배를 끌어안고 숨넘어갈듯 웃다가 내 살벌한 눈빛을 느끼고서 뚝 멈추었다.

    “벼..별일 아니네. 심각하게 생각할거 없어. 어차피 오늘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수혁이 친구도 아니고, 건이 친구들앞에서 그런 쌩쑈를 하고 내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 앞에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면서 놀아?”

    “그게 뭐가 어때서. 내 친구들 이런 일갖고 뭐라고 할만큼 웃기는 놈들 아니야.”
    “그럼 나 잠깐 쉴래. 너희들은 나가봐.”“알았어. 참… 국철이 어때?”

    건이가 나가다 말고 다시 들어와서 내게 물었다.

    “지금 그거 꼭 물어보고 싶니?”
    “응.”
    “선수더만.”
    “그래? 근데 섹스는 완전 프로다.”

    그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내며 웃어버렸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빤스도 뒤집어 보여주는 친군데 그정도는 기본이지.”

    나는 그들이 나가는것을 보고서 침대에 누웠다.

    어느새 눈에서 줄줄 흐르던 눈물이 멈추고, 더이상 맵지도 않았다. 그런데 낮에 먹은 멀미약이 아직도 효과를 발휘해서 그런지 눈꺼풀이 묵직해져 오면서 졸려오기 시작했다. 사실은 연아네 집에서 나올때부터 몸이 무겁고 졸리는것도 티를 낼 수가 없어서 참고 있었다. 밖에서는 벌써부터 시끌벅적 제법 분위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생각했다.

    국철이는 기분이 어땠을지, 나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진짜로 고의적으로 그런건 아닌데 해명이도 해야 되나…내가 거의 몽롱하게 꿈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를 조심스럽고 가볍게 흔들었다.

    코끝에 진한 니코틴 향과 함께 알릴듯 말듯한 비누냄새가 닿아왔고, 나는 눈을 감은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아~ 이냄새. 선배의 몸에서 나던 냄새. 센스있는 남자에게서만 나는 특육의 향기.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이 향기,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주세요. 내 주위 어딘가에 선배가 있는게 분명하니까…

    “김세영. 밥 다 됐어.”
    “으~응. 선배…”
    “저기… 김세영. 세영아.”

     나를 흔드는 이 손길이 선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내 눈앞에는 선배가 아닌 국철이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고, 나는 그 센스있는 남자 특유의 향기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나가자. 생일파티 시작한다.”

    그는 아직도 비몽사몽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정말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런 그를 보자 혹시 아까 그 화장실 사건이 꿈이 아니였나 하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

    나는 대답하고서는 정신이라도 차릴려고 세수하려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갔다. 그러고 보니 머리를 묶었던 끈을 침대머리에 놓고 온게 생각나서 다시 들어가는데 국철이가 전화를 하고 있는게 들렸다.

     “응. 만났어. 근데 이여자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수고했다. 그래… 알았어. 고맙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조금 놀라면서 전화를 끊고 나를 보았다.  





남정수   - 2014/02/24 13:46:36  
소설 너무 좋은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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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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